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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손에 쥔 채로
김기석  |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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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11월 17일 (금) 00:19:35 [조회수 : 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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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우리를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세운다. 서방 언론은 이 전쟁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 칭하고, 아랍게 언론은 이스라엘-가자 전쟁이라 칭한다. 한쪽은 암암리에 전쟁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상기시키고 있고, 다른 쪽은 주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주목하라고 요구하는 듯하다. 어떻게 칭하든 지붕이 없는 거대한 감옥 같았던 그 땅은 황폐하게 변하고 있다. 가자 땅에서 들려오는 폭발음과 애곡하는 소리가 무딘 귀에도 아프게 들려온다.

 
벌써 양측을 합쳐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었고, 그 중에는 전쟁과 무관한 어린이와 여성들이 많다. 이스라엘 폭격기들은 사회 기반 시설을 철저히 파괴하고 있다. 난민촌도 공격을 받아 많은 이들이 죽었고, 성 포르피리우스 교회도 파괴되었다. 주민 대부분이 연료, 물, 식량, 의약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피난길에 오를 기회조차 잡지 못한 이들은 절망의 심연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지상군이 투입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전쟁은 맹목적이다. 전쟁터의 빛깔이 검은색인 것은 그 때문이다. 예외가 있다면 붉은 색 피뿐이다. 상대를 제거하고야 말겠다는 절멸에의 의지가 작동하는 순간 인간의 존엄은 유보된다. 적은 괴물이고 악마이기에 파괴되는 것이 마땅하다. 전쟁은 가장 큰 낭비이다. 물자를 낭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장 소중한 생명조차 아끼지 않는다.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던 작가 팀 오브라이언은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이라는 책에서 “진실한 전쟁 이야기는 결코 교훈적이지 않다. 그것은 가르침을 주지도, 선을 고양하지도, 인간 행동의 모범을 제시하지도, 인간이 지금껏 해오던 일들을 하지 않도록 말리지도 못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이렇게 어리석다.
 
상대를 철저히 궤멸시키면 평화가 올까? 전쟁과 혼란의 시기를 살았던 노자는 군대가 주둔하던 곳엔 가시엉겅퀴가 자라나고, 큰 군사를 일으킨 뒤에는 반드시 흉년이 뒤따르게 된다고 했다. 전쟁은 누군가의 가슴에 증오의 씨를 뿌리는 일이다. 그 후과는 또 다른 분쟁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증오의 씨를 심어 평화를 거둘 수 없다. 바람을 심는 이는 광풍을 거두게 마련이다.

유럽에서는 이미 유대인들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이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푸른색 페인트로 그려진 다윗의 별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그 별은 나치 시대의 공포를 떠올리게 하기에 섬뜩하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탓할 대상을 찾는다. 무질서가 심화되어 혼돈 상태에 이를 때 폭력의 충동은 증대되고, 나쁜 정치인들은 그 충동의 희생양을 대중들 앞에 던져준다. 가난한 사람들, 난민, 소수자, 외부자들이 그 대상이 되기 쉽다. 세상은 점점 위험한 곳으로 변한다.

평화의 꿈은 그저 헛된 꿈일 뿐일까? 히브리의 예언자들은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고,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고,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않는 세상을 꿈꿨다. 평화로운 시기에 나온 비전이 아니다. 기원전 8세기, 앗시리아 제국이 중근동 세계를 공포로 휩쓸고 있을 때 예언자들은 그런 꿈을 들고 나왔다. 망상처럼 들리는 그런 꿈조차 없다면 인간은 얼마나 빈곤해질까?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하마스의 로켓 공격으로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친 현장을 목격한 한 유대인 소녀에게 어느 기자가 물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어요?’ 소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오, 그냥 평화롭게 함께 지내고 싶어요’. 평화의 꿈은 어떤 경우에도 스러지지 않는다. 증오와 혐오를 부추기는 이들이 많지만 평화를 갈망하는 이들 또한 많다.

2015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여 독일과 싸웠던 러시아 여성들을 인터뷰한 후에 쓴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지금도 기억나 어느 마을에 갔다가 한 노인의 장례식을 봤어. 노인은 밤에 목숨을 잃었어. 밭에 씨를 뿌리다가 죽임을 당한 거야. 그런데 별짓을 다해도 노인의 손가락이 펴지질 않는 거야. 씨앗을 어찌나 꼭 쥐고 있던지 할 수 없이 씨앗을 손에 쥔 채로 땅에 묻었지.” 씨앗을 손에 쥔 채로 땅에 묻힌 그 노인은 어쩌면 길을 잃은 채 방황하는 우리에게 평화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2023/11/04일자 경향신문 컬럼 '사유와 성찰'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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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섭 (58.120.230.21)
2023-11-17 21:20:31
인긴에게 마지막 희망은 그 순간에서도 주님께서 모든 생물에게
삶의 희망을 주실것을 믿기에 그 손에 씨앗을 쥔 채로 죽어가는 존재임을
우리가 깨닳아야 한다는 귀한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주님의 섭리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살아 남기 위한, 보다 더 윤택한 삶을 위한 처절한 아귀다툼의 삶을 살아 가는 오늘의 우리에게 경고와 애타는 주님의
호소를 우리가 모르는 오늘의 우리의 모습입니다. 주여!!! 저희의 눈과 귀를 밝히시사 이를 깨닫게 하소서!!!!! 이 어리석은 존재에게 차라리 견디기 힘든 채찍으로 다스리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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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8.48.116.237)
2023-11-17 13:27:12
전쟁은 인간성 발현의 하나 일뿐이다, 평화(휴전) 역시 그렇다!
낮과 밤이, 선과 악이, 삶과 죽음이, 사랑과 증오가, 평화(휴전)와 전쟁이 서로 交差하는 세상이 인간이 사는 세상이다. 이런 법칙은 하나님이 창조한 거다.

태어나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삶과 죽음의 무한반복’을 거부하고자 보리수나무 밑으로 떠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역시 배고파서 托鉢하다가 상한 돼지고기 먹고 며칠 설사하며 고생하다가 삶을 마감했다. ‘삶과 죽음의 무한반복’을 극복했다는 석가모니 제자들의 주장이 있기는 하다.

전쟁과 평화(휴전)도 ‘무한반복의 법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인류역사는 거의가 전쟁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전쟁이 지겨워지면 평화(휴전)한다. 하나님이 전쟁과 평화(휴전)를 창조했다. 어느 누구도 이를 거역할 수 없다.

짧은 평화(휴전)가 인간을 미치게 만들어 긴 전쟁으로 나가는 경우가 더 많다. 현재 진행 중인 전쟁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로힝야族-버마族 전쟁, 南北예멘 전쟁, 수단-南수단 전쟁, 중부 아프리카의 각 종족간의 전쟁, 나고르노 카라바흐 전쟁 등이다.

화제를 좀 돌려서 인간도 여러 가지 성향으로 나뉜다. 호전광이 있고 평화주의자가 있다. 이 둘 다 하나님이 창조했음은 물론이다.

홍범도는 好戰狂이었다. 나이 60살이 다되어 스탈린그라드전투에 참여하겠다고 신청했으나 스탈린군대가 말렸다. 나이가 많다면서 푹 쉬라고... 홍범도는 젊은 시절에 한국기록으로는 수백명, 일본기록으로는 일본군 수십명을 사살했다.

어제 어느 한국인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러시아 편에 서서 싸우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감격했다. 이불 속 평화를 걷어차 버리고 자기 목숨을 걸고 전투에 참여했다니... 세르반테스, 헤밍웨이, 홍범도, 클라크 게이블, 아랑 드롱과 같은 冒險主義者였다. 나는 박수를 쳤다. 온통 평화를 부르짖는 겁쟁이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홀로이 빛나는 북극성 같은 존재였다. 몇 개월 전에는 이근 예비역 대위가 우크라이나 편에서 총을 들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때도 박수를 쳤다.

오늘 뉴스를 보니 툰베리라는 극단적인 환경주의자가 환경보호집회에서 하마스를 감싸다가 이스라엘 지지자들에게 마이크를 빼앗겼다고 한다. 하마스를 지지하건 이스라엘을 지지하건 그건 자유다. 극단적인 환경보호주의자와 극단적인 양민학살세력이 서로 통하는 모양이다.

분명한 건 이번 전쟁은 하마스의 민간인 대량학살로 의해 개시되었다는 점이다. 戰爭狂 히틀러조차 민간인 대량학살로 전쟁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폴란드 국경수비대에 대한 선제공격으로 시작했다. 폴란드가 침공 독일군에게 반격을 가해 2차세계대전의 막이 올랐다. 그런데 하마스는 전쟁을 양민 대량학살로 개시했다. 이스라엘에 무제한의 보복권리 갖다 바치고서 전쟁을 개시했다. 하마스가 헌납한 무제한 보복권을 이스라엘이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은 바보가 되고 만다. 이래서 바이든, 숄츠 등이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보복에 ‘입만으로 규탄’할 수 있을 뿐이다. “이번기회에 하마스는 멸절되어야 한다. 살려두면 또 양민 학살한다.”라는 이스라엘의 논리가 먹혀든 것이다. 물론 툰베리 같은 親팔레스타인 계열도 많지만 그저 ‘입으로만 규탄’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란 등도 마찬가지.

이스라엘이 북부 가자를 평정했다고 하니 이제 남부 가자에 숨어있는 하마스를 손 볼 때이고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손보기 바란다. 하마스를 멸절시키지 못하면 더 큰 화를 부른다. 역사적 실례가 있다. 빌헬름 2세가 망명지에서 히틀러에게 친서를 보냈다. “존경하는 나의 총통!...” 히틀러가 감격했다. 카이저, 힌덴부르크 대통령으로부터 “어쩌다 출세한 中卒인 육군 상병!”이라는 조롱을 받았는데 황제가 머리를 굽히고 나의 총통이라고 하니까... 이렇게 되자 황태자를 비롯한 호엔졸레른 가문과 독일군부의 실세 융커가 전부 히틀러에게 충성을 바치게 되었다. 이들은 히틀러와 함께 장렬하게 전사했다. 즉 히틀러 패배로 말미암아 게르만 군국주의 세력도 함께 몰락했다. 융커세력이 몰락한 독일에서 단지히, 폴란드 일부, 쾨니히스베르크 등의 반환을 요구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평화가 이루어졌다.

하마스 완전 멸절은 독일 융커 세력의 멸절과 같은 ‘당분간의 긴 평화’를 가져오게 된다. 잔혹하면서도 무자비하게 밀어붙인 이스라엘이 이번 전쟁에서 승리해야만 逆說的으로 조금이라도 더 긴 평화가 오게 된다. 아니면 이스라엘을 만만하게 보는 헤즈볼라, 이란, 후티반군 등이 들고 일어나 중동은 완전 전쟁판이 되고 만다. 지금 이스라엘 욕하는 사람들은 의도하지 않게 中東의 大戰爭을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은 모를 것이다. 가자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하마스를 지지한 대가를 치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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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8.48.116.237)
2023-11-17 18:50:58
아주 비겁한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하메네이를 아주 겁먹게 한 것은 이스라엘의 무지막지한 반격이다!
코란은 부당하게 고난당하고 있는 무슬림 형제를 도우라고 명령하고 있다. 코란의 가르침에 따라 이란은 하마스 집단에게 정신적, 물질적 후원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헤즈볼라, 후티반군 등과 마찬가지로 하마스 역시 이란의 꼭두각시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이란 승낙 없이 하마스가 자체적인 판단으로만 이스라엘을 침공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양민을 학살하면서 이번 전쟁을 시작했을 때 이란, 헤즈볼라, 후티반군 등이 거의 동시에 이 사실을 알았다. 이스라엘이 거의 반나절동안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서 헤맨 사실과 비교된다. 하마스는 이란의 묵인 하에 침공을 개시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여기에서! 만일 이스라엘이 반격하는 데 머뭇거리거나 반격한 이스라엘의 공세가 시원찮았다면 이란, 헤즈볼라, 후티반군들은 신바람이 나서 하마스를 편들면서 참전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안면몰수하고 병원, 학교 등을 구분하지 않고 무차별 보복을 자행하니 하메네이가 겁을 집어먹고 말았다. 그저 후티반군은 미사일 몇 발 쏘다가 관망 중... 헤즈볼라 역시 북부 이스라엘과 시리아 미군시설에 로켓포 몇 발 쏘고 관망 중...

역시! 이스라엘이 옳았다. 평화를 주장하는 몽상가들이 주축이 된 일부 세계여론을 깡그리 무시한 채 군사적 효율성 측면에서 신속한 파괴와 보복을 단행하니 이란, 헤즈볼라, 후티반군 등이 겁먹고 물러섰다.

만일! 평화를 주장하는 몽상가들이 주도하는 일부 세계여론에 주눅이 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양민 살해를 두려워하면서 진군 속도를 늦추거나 조심스레 공격을 단행했다면 이란, 헤즈볼라, 후티반군 등은 이스라엘 군대의 지리멸렬함에 기세등등해져 가자지구 전투에 참여했음직하다.

결국! 네타냐후의 무지막지한 보복이 이란, 헤즈볼라, 후티반군을 겁먹게 만들어 더 이상의 확전은 피하게 했다. 하마스는 이란, 헤즈볼라, 후티반군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으니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중과부적의 이스라엘군을 맞아 고군분투하고 있다.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의 “무조건 평화!” 호소대로 이스라엘이 조심조심 전투했다면 지금 중동은 완전 난장판이 되었을 것이다. 졸렬하고 겁먹은 이스라엘 군대를 보고선 기고만장해진 하메네이가 참전 명령을 하달하지 말란 법이 없다. 하메네이가 하마스를 내세워 이스라엘을 한 번 떠봤는데 그 반격의 강도에 놀라 이젠 슬그머니 하마스를 버리려하고 있다. 아주 비겁한 하메네이다. 이런 비겁한 하메네이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하마스다.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의 평화호소를 묵살한 채 하마스를 무지막지하게 보복 파괴한 네타나후 수상이야말로 오히려 이번 전쟁을 가자지구로 국한시키는 지혜를 발휘했다. 네타냐후 방식이 백번 옳다. 하메네이는 아주 비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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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nuree (222.113.251.199)
2023-11-20 09:43:11
지금 현재 총을 든 자가 범인이다
극단적인 양민학살을 지금 현재 하고 있는 놈들은 또 한 번의 홀로코스트를 당하고 싶어 애쓰고 있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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