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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감사절을 노래하자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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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11월 12일 (일) 00:22:44 [조회수 : 3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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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중순에 신문을 읽다가 활자 제목이 눈에 확 뜨였다. 혹시나, 싶었다. 기사 제목은 ‘고려인 부부 예술가의 고려인 홍범도 장군 진혼’이었다. 역시나,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20년도 넘은 일이지만, 아직 생생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홍 장군이 여생을 보낸 카자흐스탄 고려인 후예 김겐나지(77) · 문공자(76) 부부는 음악으로 홍 장군을 진혼한다. 부부는 카자흐스탄 예술인 최고 권위인 ‘공훈 예술가’ 반열에 올랐다. 기타리스트인 김 선생은 카자흐스탄 알마티 음대에서 기타를 가르쳤으며, 고려극장장을 지냈다. 고려극장은 말년의 홍범도 장군이 수위로 일하기도 했다. 김 선생은 ‘판타지아 아리랑’ 연주를, 문 선생은 ‘사할린’ 등을 노래할 참이다.”(‘한겨레’ 10월 13일자)

  광복회 충북지부 등이 주관하는 행사가 다음 날 충북대 개신문화관에서 열린다는 예고기사였다. 이날 산오락회 음악가들과 아리랑 협연할 것이란 내용도 있었다. 문제는 내가 신문(新聞)이 아닌 구문(舊聞)을 읽는다는 점이다. 워낙 귓등으로 날아다니는 뉴스가 많으니 일일이 챙길 새 없이, 쌓아둔 신문 일주일 치를 한꺼번에 자료 찾듯 일견(一見)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예의 고려인 음악가 기사를 본 것 역시 며칠 지나고서 였으니, 이런 낭패가!

  이미 연주회는 끝났다. 어쩌면 출국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관련 인물을 검색해 보았지만 더 이상 추가 기사나, 연결할만한 단서가 없었다. 딱히 알만한 사람도 없어서, 유일한 제보자인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신문 기사 아래 작성 기자의 메일이 있는 이유는 기사에 대해 소통을 하겠다는 선한 의도가 아닐까 싶었다. 

  “오 기자님께.. ‘고려인 부부 예술가’ 기사를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의왕시 색동교회 목사 송병구라고 합니다. 제가 산오락회 연락처를 알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제가 독일 복흠교회에서 목회하던 2001년에 김겐나지 극장장과 문공자 님을 초청하여 독일에서 수차례 공연한 일이 있어, 꼭 다시 뵙고 싶습니다. 10여 년 전까지 연락을 주고 받았는데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기사를 읽고 연락을 드립니다. 도움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 연락처는 ... 입니다.”

  급한 마음에 간절한 심정을 담아 메일을 보냈지만, 지금까지 보낸 메일함 수신확인에 따르면 ‘읽지 않음’ 상태이다. 다른 기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부탁할까 했으나, 나 역시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아쉽게도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기사 속 사진으로 본 두 분은 얼굴에서 노년의 기색이 짙었다. 처음 만난 것이 1999년 봄이었으니 무려 24년 전 일이다. 더듬어보니 그들은 50대를 막 시작한 때였다. 부부 음악가는 고려극장 극장장과 극장에 속한 배우로서 활약 중이었는데, 단원만 80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컸다. 구 쏘련 시절, 알마티에 있는 4대 극장 중 하나인 고려극장은 고려인이 있는 곳이라면 소비에트 전역을 찾아다니며 공연을 꾸렸다. 

  그들과 만난 것은 쏘련 해체 이후 실낱같던 국가지원이 끊겨, 극장이 해체될 위기에 처하면서이다. 그때 지푸라기처럼 등장한 것이 독일에서 답사차 방문한 우리 일행이었다. 실제로 2년 후에는 기타리스트와 가수 두 사람일망정 15차례 정도 크고 작은 규모의 독일 초청공연을 성사시켰다. 안팎에서 실효성을 이유로 반대도 있었으나, 고집스럽게 관철시켰는데 고려인 부부 음악가의 독일방문은 동포사회에 신선한 관심을 불러왔다.    

  그들이 복흠과 지겐에서 추수감사절 때 불렀던 특송을 나는 지금도 부른다. 얼마 전 I대학교 추수감사절 채플에서 설교 중 노래를 불러, 조는 학생들을 깨우기도 하였다. 바로 고려인 노동요(고려인 1세대 작곡가, 연성용 작)이다.

  “이 넓은 논판에 씨뿌려/ 풍년의 가을이 돌아오면/ 누렇게 누렇게 벼이삭/ 우거 우거져 파도치지/ 에헤이야 뿌려라 씨를 활활 뿌려라/ 땅의 젖을 짜먹고 와싹 와싹 자라나게
  콜호즈 농장에 깨뜨려/ 봄을 마중 해 소리치니/ 뜨락또르 또르르 굴려라/ 파종의 씨앗이 늦어 말게/ 에헤이야 뿌려라 씨를 활활 뿌려라/ 땅의 젖을 짜먹고 와싹 와싹 자라나게” 

  두 분이 한국을 방문한 것은 얼마 전 여론을 들끓게 했던 홍범도 장군에 대한 모독이 계기가 되었다. 홍 장군도 말년에 고려극장 직원이었다. 고려인 공동체는 한국 사회의 의리없는 행동에 대해 몹시 분개했을 것이다. “이럴 거면 왜 모시고 갔냐”는 그들의 성난 얼굴이 눈에 선하다.

  다시 감사절이다. 나라 잃고, 남의 나라에서 온갖 차별에 시달리던 고려인들은 황무지에 물길을 내어 논을 만들고, 마침내 벼농사를 짓는데 성공하였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들 두 음악가는 감사를 잃어버린 민족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감사를 잃어버린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호소한다. 그럴 것이 해마다 감사제를 드려야 마땅한 우리 민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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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8.48.116.237)
2023-11-12 19:27:10
난 홍범도를 이렇게 평가한다!
韓日合邦 이후부터 현재까지 활동한 ‘정치적인 인물’ 중에서는 1등 이승만, 2등 전두환, 3등 홍범도로 본다.

이승만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1848년 대한민국을 건국한 國父이기 때문이다. 전두환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7년 단임 실천과 平和的 政權交替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홍범도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對日武力抗爭의 선봉에 섰기 때문이다.

이승만의 독재, 전두환의 군부쿠데타, 홍범도의 동포배신 등 부정적인 면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된장을 담그다보니 구더기가 나온 정도로 부정적인 면을 가볍게 본다. 즉 功이 過를 명백하게 압도하기에 그렇다.

홍범도의 경우 對日무력항쟁에 초점을 맞추면 영웅이다. 우리나라는 對日무력항쟁이라고 내세울 것이 없었는데 그나마 홍범도, 김좌진 등이 무력투쟁에 나섰다. 김일성은 일본기록상 일본군 1명 사살이 전부다. 김구는 무력투쟁 준비만 하다가 실행하지 못해 연합군으로부터 인정받지도 못했다. 그나마 抗日 戰功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게 홍범도, 김좌진의 무력투쟁이다. 이 두 사람은 일본 기록상 최소한 수십명 이상의 일본군을 사살했다. 이 두 사람이 없었다면 우리는 <완전 쪼다>가 될 뻔했다. 이런 측면에서 홍범도와 김좌진이 위대한 거다.

그러나... 홍범도와 김좌진의 차이는 홍범도는 모택동의 大長征 홍군처럼 행동했고, 김좌진은 장개석의 막가파 군대처럼 행동했다. 모택동은 절대로 양민을 약탈하지 못하게 했다. 차용증 써주고 우리가 정권을 획득하면 훗날 갚아주겠다며 양식과 옷을 빌렸다. 장개석은 애국한답시고 양민의 재산을 막무가내로 약탈했다. 모택동-장개석의 싸움은 뻔할 뻔자가 되었다.

홍범도는 양민 약탈하는 걸 자제한 반면 김좌진-김일성 등은 우리가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하니 백성들이 우리를 먹여 살릴 의무가 있다는 논리로 약탈을 일삼았다. 그래서 김일성 일당을 마적단이라고 하는 거다. 김좌진 역시 그랬다. 조폭처럼 거들먹거리며 對日무력항쟁이 그 무신 벼슬이랍시고 양민 약탈을 일삼다가 약탈당한데 불만을 품은 한 공산주의자에게 피살되었다.

홍범도는 김일성-김좌진 방식을 자제했다. 홍범도는 자유시 사변에서 김일성-김좌진 등 다른 파벌을 학살하는 공을 세웠다는 게 定說이다. 레닌 훈장도 받았다. 스탈린그라드전투 등에도 참가하고자 했으나 나이가 많아서 거부되었고, 극장의 수위로 일하다가 죽었다.

韓日合邦時代에 박정희가 혈서를 쓰고 천황폐하 만세한 것, 조선교회가 일본천황 만세한 것, 홍범도가 레닌동지만세한 것은 시대상황상 어쩔 수 없었다는 측면이 있다. 박정희와 조선교회가 천황폐하만세한 것을 용서한 나인데 홍범도가 레닌동지만세 한 것을 용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김일성-김좌진과는 달리 홍범도는 독립운동, 항일운동 했다고 어깨에 힘 팍 주고 거들먹거리거나 양민을 약탈하지 않았다. 말단 수위로 근무하면서 자기 입에 들어갈 양식을 구했다.

共産主義와 國家社會主義가 건곤일척의 싸움을 벌일 때 공산주의 편에서 싸웠다는 점, 자기와 다른 파벌의 토벌에 협조했다는 점만으로 홍범도를 폄하하기에는 그의 功이 훨씬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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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8.48.116.237)
2023-11-12 21:36:17
陸士에 홍범도를 모시는 것은 어색하다
親日한 박정희를 反日祠堂(反日인물도감 등)에 등재할 수 없듯이 親共한 홍범도를 反共祠堂(육군사관학교 등)에 모실 수는 없다. 홍범도는 독립기념관 등 적절한 장소에 모시는 게 맞는다.

홍범도에 대해 백안시하는 陸士人이 많다. 그를 장군이라고 칭하는 것도 못마땅하다고 여기고 있는 陸士人이 수두룩한데 게다가 동상까지 세우려고 하니까 말이 많은 것이다.

문재인이 택도 없이 越權했다. 문재인 가문이 이북출신, 탈북자출신이라서 그의 정체성에 대한 일각의 불신을 홍범도에 기대어 완화시키려고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문재인의 꼼수 때문에 난리가 났다.

굳이 홍범도를 陸士에 모시려면 陸士人들과 사전에 충분히 대화하고 의견을 수렴했어야만 했다. 문재인이 물러나자 육사인들 거의 대부분이 홍범도를 육사에서 치워라고 민원을 넣었고 윤석열이 덜컥하고 받아들였다. 윤석열도 너무 성급했다. 차분하게 홍범도의 공과를 설명하면서 육사인의 반대가 많아서 더 좋은 곳에 모시고자한다며 양해를 구하는 식으로 하지 않고 뭔 건수 올리기 식으로 치고 나오니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반발이 일어날 수밖에... 이런 건 한 건 올리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5.18 묘지에 전두환을 안장하자고 하면 5.18이 가만히 있겠는가? 공산주의자와 싸운 육사에 문재인이가 어느 날 갑자기 공산주의자 홍범도 동상을 지멋대로 세우니 육사인이 부글부글 끓을 수밖에... 그가 대통령일 때는 아무 말도 못하다가 그가 물러나자 아우성이 터지는 건 당연지사. 홍범도는 애초에 陸士에 모시지 말아야했다. 등신 같은 문재인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육사 교정이 아니더라도 다른 좋은 장소가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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