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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터에서의 믹스커피 한 잔
임석한  |  skygrac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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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11월 07일 (화) 23:42:40 [조회수 : 5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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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관련한 칼럼을 쓴지도 4년이 지났다. 이 글이 203번째 글이다. 시간이 참 빠르다. 2019년 11월 첫 주에 올린 “내 생애 최고의 커피”라는 제목의 글에서, 내 생애 최고의 커피는 15년 전 눈보라치는 한라산 정상을 등반하고 내려오는 도중에 건네받은 따뜻한 믹스커피 한잔이었다고 했다. 그 커피는 함께 사역했던 한 여자심방전도사님이 타 주신 커피였다. 추위 속에 꽁꽁 얼어있는 두 손과 온 몸은 따뜻하고 달콤한 커피 한모금의 감동과 함께 사르르 녹아내렸다. 정상에 올라와서 목사님들께 드리려고 믹스커피와 종이컵과 따뜻한 물을 보온병에 담아 배낭에 매고 등산을 했다는 그 전도사님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작년에 그 전도사님의 근황이 궁금해서 당시 함께 사역했던 다른 전도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충격적인 대답을 전해 들었다. 질병으로 수년  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믿겨지지 않았다. 부지런하고 지혜로울뿐 아니라 사람을 이끄는 리더십과 통찰력이 있었던 그 전도사님을 하나님께서 너무 일찍 데려가셨다. 

지난 한 주간 우리교회에 두 번의 장례가 있었다. 2년 동안 백혈병을 앓으며 힘든 투병생활을 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마흔 살의 성도는 우리교회 집사님부부의 장남이었고, 또 한 분은 우리 교회 여자집사님의 아흔한 살 연세의 친정아버님이셨다. 특히 마흔 살 아들의 치유를 위해서 온 교회가 지난 2년 동안 기도해 왔었기에 아쉬움이 컸다.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알 수가 없다. 내가 집례자가 아니었기에 우리 교회 성도들이 함께 가서 드린 조문예배 이후에도 고인이 출석하던 교회에서 주관하는 입관예배와 발인예배, 화장예배와 납골당안치까지 참석하였다. 참척(慘慽)의 아픔을 당하여 망연자실한 두 집사님을 위해 목사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함께 있어줌으로 위로해 드리는 것뿐이었다. 

화장터에서 기다리는 두 시간 사이에 매점 자판기에서 믹스커피 한잔을 뽑아 마셨다. 자판기커피의 온기를 손에 느끼며 마시는데 갑자기 내 생애 최고의 커피를 타주셨던 그 전도사님이 떠올랐다. 그 전도사님보다 훨씬 젊은 이 아들을 왜 그렇게 일찍 데려가신 것일까? 마흔 살 아빠의 죽음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9살 아들과 4살 딸,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를 남겨놓으시고 하나님은 왜 그렇게 일찍 데려가셨을까?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울컥했지만, 우리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며, 남겨진 이들을 위한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을 것이라 믿고 기도를 드렸다. 

2018년 4월 20일 금요일에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이륙하여 달라스로 가는 한 여객기의 엔진이 약 9100미터 상공에서 폭발했다. 부서진 엔진 조각이 비행기의 유리창을 뚫고 들어온 긴급 상황이 벌어졌다. 기압이 떨어져 아수라장이 된 기내에서는 승객 한명이 참변을 당했다. 하지만 전투기 조종사 출신이었던 기장은 필라델피아 공항에 침착히 비상착륙하여 나머지 승객 148명을 구했다. 고도를 급강하하며 불시착을 앞둔 상황 속에서 승객들은 어쩌면 생의 마지막을 곧 맞이하겠다고 직감했고, 휴대전화로 가족에게 문자를 보내고 울면서 불안해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지 20여분 쯤 지났을 때 여객기는 비상착률에 성공했다. 생의 위기를 모면한 승객들에게 기자들이 인터뷰를 하는데, 그 중 매트 트랜신이라는 한 남자는 이렇게 말을 했다. “아내가 임신 8개월입니다. 태어날 우리 아이에게 하고 싶었던 마지막 말을 생각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매일을 마지막처럼 여겨야겠습니다”

애플의 창시자 스티브잡스는 17세 때 “매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라는 경구와 만나게 된 이후로 33년간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물었다고 한다. ‘오늘이 내 인생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며칠 연속 ‘No’라는 답을 얻을 때마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2004년 스티브 잡스는 평소 어디 있는 지도 몰랐던 췌장에 암이 생겨 길어야 6개월 정도 살수 있다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그에게 말했다. 죽음을 준비하고 삶을 정리하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그는 수술을 받고 회복이 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곧 죽는다는 생각은 인생의 결단을 내릴 때마다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사망 선고는 외부의 기대, 자부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을 사라져버리게 했습니다. 내 인생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당신이 유한한 존재라는 점을 늘 생각하면 무엇인가 잃을 게 있다는 두려움은 곧 사라져버리고, 반드시 당신이 원하는 바를 따르게 됩니다. 잡스는 늘 ‘죽음’이라는 떨쳐내기 어려운 ‘운명의 덫’을 의식하면서 하루하루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날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낼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서 한 순간이라도 허투루 지내지 않았을 것이다.  2005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잡스는 졸업생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남의 인생을 살기 위해 삶을 낭비하지 말라. 다른 사람의 생각에 갇히지 말고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라.”

올 한 해 동안 내 동기와 선후배들 중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이들이 세 명이다.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을 떠나는 지인들의 소식들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매일을 마지막처럼 여겨야겠습니다 ”라는 말이 귓가에 맴돈다. 


임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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