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가톨릭 작가 그레이엄 그린(1904-1991)의 대표작 『권능과 영광』(The Power and the Glory)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 작품은 겁 많은 순교자에 관한 신앙적 이야기이다. (『권력과 영광』으로 번역되기도 한 이 소설의 제목은 주기도문의 마지막 부분 “For yours is the kingdom and the power and the glory forerver.”에서 왔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스데반 같은 용감한 순교자가 아니다. 그는 한 인간으로서 육체의 고통을 면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면서도 사제로서 그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애쓰다가 결국 순교의 길을 택한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이 교회를 박해하는 멕시코의 타바스코주에서 10여 년 동안 숨어다닌다. 다른 사제들은 공산주의자들에게 순교 당했거나 그곳을 버리고 떠난 마당에 그는 그 폭력의 땅에 혼자 남아서 신도들을 돌본다. 

그의 목숨을 노리는 공산주의자들을 피해서 도망 다니는 동안, 그는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해서 위스키를 과음하여 위스키 신부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는다. 한번은 취중에 동네 여인과 동침하여 브리기타라는 딸을 얻기도 한다. 

간음죄까지 지었으니 그는 타락한 사제가 되고 말았다. 위스키 신부가 자신의 타락상을 의식하면서도 모든 사제들이 떠난 이 폭력의 땅에 남아 있는 것은 자신마저 이 땅을 버리면, 이 버려진 사람들을 보살펴줄 사제가 하나도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앞뒤에는 ‘방관자들’이라고 불리는 일단의 군소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가족과 헤어져서 재결합할 희망이 없거나, 현실을 직면할 용기를 잃었거나 혹은 추상적인 계율에만 집착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외면하는 사람들이다. 그린은 그들을 ‘버려진 사람들’이라고 그리고 그들이 사는 곳을 ‘버려진 땅’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위스키 신부는 이 ‘버려진 사람들’을 구하려고 고난을 당하고 죄를 짓는 가운데서 옛날의 오만한 신부에서 죄인들까지도 사랑하는 겸손한 신부로 거듭나게 되었다. 

위스키 신부가 브랜디를 소지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을 때, 그는 자신이 거기에 있는 죄수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인간은 죄인이든 선인이든 가릴 것 없이 모두 신의 형상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죄수들에 대해서 친근감을 느낀다. 

그는 생사를 넘나드는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 된 지금 죄인들에 대해서까지도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이것은 그가 신부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교회의 규율을 철저히 지키면서 모범적인 신부 생활을 하던 평화로운 시절에 그가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작가 그린은 위스키 신부의 이런 변화를 통해서 고통의 신비와 죄의 신비를 드러낸다.

경위가 그를 체포하기 위해서 현상금을 걸고 마을들을 샅샅이 뒤지자 그는 어쩔 수 없이 박해가 적은 이웃 주 취아파스로 넘어간다. 그런데 그는 비교적 평화로운 그곳에서 자신이 자부심 많았던 옛날로 돌아가는 것을 발견하면서 고난의 땅 타바스코에서의 삶이 더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렇게 고난의 가치를 확인하지만, 위스키 신부는 여전히 안전하고 안락한 삶에 대한 갈망을 버리지 못한다. 그는 자신을 겁쟁이라고 자책하면서도 취아파스보다 더 안전한 곳으로 가고 싶어한다. 연약한 육체에 얽매인 그는 신부로서의 사명을 외면하는 구제 받을 수 없는 겁쟁이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 작품의 말미에서 이 겁쟁이가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그에게 맡겨진 ‘잔’을 마신다. 그가 죽음의 고통을 두려워하면 할수록 그가 짊어지는 십자가는 더욱 빛난다. 이것은 고통의 신비나 죄의 신비와 함께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역설이다. 

위스키 신부는 취아파스에서 여비를 마련하자 나귀를 구해서 평화로운 라스카사스로 가려고 길을 떠날 채비를 한다. 그런데 그가 막 떠나려는 참에 한 혼혈인이 나타나서 타바스코에서 죽어가는 미국인 은행 강도가 신부에게 고백하기를 원한다는 쪽지를 보여준다. 

그는 그 혼혈인이 현상금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과 타바스코로 돌아가면 경위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한편 경찰과 그 강도가 총격전을 벌인 현장을 보았기 때문에, 그는 그 강도가 총에 맞아 죽어간다는 것도 거짓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강도의 쪽지를 읽은 후 그는 평화로운 땅으로 가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생각한다. 전에도 여러 번 자기를 부르는 음성에 응하려고 도피를 포기했었다. 이번에도 임종 직전에 자기를 부르는 강도의 부름을 외면할 수는 없다. 죽어가는 사람을 위한 임종 기도를 거부하고 라스카사스에 가서 자기를 부르는 강도를 버리고 왔노라고 고백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는 발길을 돌려 혼혈인을 따라 은행 강도의 곁으로 간다. 자기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지기로 한 것이다. 그렇지만 체포된 다음에 당할 죽음의 고통을 예상하기 때문에 산길을 오르는 그의 다리가 후들거린다. 죽음의 ‘잔’을 마시기로 작정한 그는 ‘버려진 땅’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나아간다. 

그는 타바스코로 돌아가서 강도를 만난 후 그를 기다리던 경위에게 체포되어 결국 순교 당한다. 그가 갈망하는 육체의 안일과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에게 맡겨진 사명 사이에서 심각한 갈등을 겪는 가운데 사명을 택하는 그는 겟세마네에서 피땀 흘리며 간절하게 기도하시던 예수님을 생각하게 한다. 

그는 사형당하는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지난날의 죄를 회개하면서 빈손으로 하나님 앞에 가게 된 것을 후회한다. 조금만 더 자제심이 있고 용감했더라면 성자가 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그는 육신의 고통을 두려워하는 겁쟁이였다. 실상 중요한 것은 성인이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성인이라는 단어로 끝난다. 

그의 생각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성인이라는 단어가 중간에 오기 때문에 그의 생각을 영어 원문대로 옮겨본다. “He knew now that at the end there was only one thing that counted―to be a saint.” 이 문장에서 강세를 받는 마지막 단어 “saint”가 긴 여운을 남긴다. 

작가 그린은 ‘그를 성인으로 볼 수 있을까?’라고 우리에게 묻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