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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웃음의 DNA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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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10월 07일 (토) 21:20:06 [조회수 : 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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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퍼 밀릐아호.’ 주말에 우리 집에 온 손님의 이름이다. 발음이 참 어렵다. 그가 북유럽 핀란드에서 왔기 때문이다. 이름을 묻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로마자 ‘Y’에 대한 핀란드식 발음을 강조한다. 여러 차례 반복한 끝에 가장 비슷한 발음을 한글로 옮겨 적으며 그렇게 부르기로 하였다. 사실 이름과 성 사이에 중간 이름이 두 가지 더 있으나, 아예 기억하지 않기로 했다.

손님은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온 남학생인데, 장기호스트 가정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잠시 우리 집에서 머무른 것이다. 갑자기 둘만 살던 집이 분주해졌다. 몇 해 전에 이미 두 아들이 독립한 상황이어서 오래도록 집안 분위기가 아주 호젓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춘기 남학생, 게다가 의사소통이 서툴고, 입맛이 다른 외국인의 등장은 긴장감을 부추겼다. 그렇다고 캐스퍼 중심으로 돌려야 할 시계는 우리 집에 없었다. 하루 만에 초대를 결정하고 갑작스레 준비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행히 낯선 손님을 따듯하게 맞아주는 마루가 있어서,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졌다. 고양이에게는 국경도 없고, 사람차별도 없었다. 자기 보금자리를 불쑥 차지한 손님이지만, 원망하지 않고 침대 가장자리에 잠자리를 잡으며 공생하는 관용미가 있었다. 예정된 일주일은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어린 손님에게 친절한 한국인 가정에 머물렀다는 좋은 인상을 주고 싶다. 처음 온 나라, 낯선 사람들 틈에서 늘 부대낄 테지만 젊은 캐스퍼의 도전이 그저 부러웠다.

십오 년 전에도 어린 손님을 맞은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 온 남학생의 이름은 배순주, 재일동포 4세였다.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해 한글 읽는 법부터 가르쳐준 기억이 새롭다.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여 맨 처음 읽은 단어는 비교적 복잡한 ‘동태찌개’였다. 사춘기 소년은 한여름에도 방문을 꼭 닫고 지냈다. 꽉 막힌 의사소통의 틈을 비집고 들어간 것은 훨씬 어린 초등학생 아들이었다. 두 사내아이는 단어의 공통분모 없이도 손짓과 몸짓으로 어울렸다.

우리 집에 두 주간쯤 머물렀지만, 금새 한 식구처럼 친밀해졌다. 고등학생 순주는 참 정이 많은 아이였다. 돌아가는 공항에서 작별 인사를 나눌 때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홀가분하게 환송하려던 우리 가족도 모두 울었다. 오후 늦게 에 일본에서 순주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순주와 종일 한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이젠 부자지간에도 감정이 통하더라는 놀라움이었다.

그 후에도 대학생이 된 순주는 몇 차례 더 서울에 다녀갔다. 나 역시 오사카를 방문해 쯔루하시 시장에서 순주와 함께 삼겹살을 구워 먹은 적이 있다. 나중에는 순주 부모도 만날 수 있었다. 그들 부부 역시 자녀 키우는 일, 직장생활의 멍에, 건강과 미래를 염려하는 비슷비슷한 고민을 지닌 어깨동갑 세대였다. 그의 제안으로 함께 불렀던 가곡 ‘기다리는 마음’은 서툰 발음이었으나 감동 그 자체였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임은 오지 않고..’ 울컥 목이 메어 부른 그 노래 속에 담긴 기다림은 과연 무엇일까?

얼마 전에 읽은 <파친코>(이민진)는 재일동포 곧 자이니치 4세대에 걸친 삶의 노정을 담은 소설이다. 역사적 무게가 일상의 멍에와 함께 더깨더깨 무겁게 짓눌렀다. ‘해방 이전에 일본에 온 사람과 그 자손’으로 정의된 재일동포는 현재 59만여 명으로, 일본에 사는 전체 외국인 중 28퍼센트를 차지한다.

종종 한(恨)과 정(情)은 우리 민족만이 지닌 고유한 유전자란 착각을 한다. 사실 ‘닭똥 같은 눈물’은 이 땅에 와서 살게 된 필리핀인, 인도네시아인, 몽골인, 조선족, 탈북인들의 몫이기도 하다. 그들의 존재 역시 일반명사이자, 고유명사임에 틀림없다. 잠시 머무르는 낯선 손님이든, 함께 살러 온 이주자들이든 그들에게는 친밀한 이웃이 꼭 필요하다. 기억해야 할 것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울고 웃는’(롬 12:15) 가족, 사랑, 친절이란 디엔에이로 서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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