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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4장 12절 다시 읽기
최재석  |  jschoi41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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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10월 03일 (화) 20:32:24
최종편집 : 2023년 10월 13일 (금) 12:28:16 [조회수 : 2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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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에 <당당뉴스>와 『착각에 빠진 한국교회』에서 신학자들이 마가복음 4장 12절이 반어적 진술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일이 있다. 그 구절이 반어적이라는 것을 모르고 문자 그대로 읽으면, 비유를 즐겨 사용하신 예수님의 의도를 곡해하게 된다. 이것은 중대한 문제이다. 

그런데 목회자들이 성경공부 시간이나 설교에서 그 구절을 여전히 잘못 가르치는 것을 보고 그 구절에 관해 다시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에는 전에 썼던 것을 짧으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려고 한다.

예수님의 비유를 읽다가 마가복음 4장 11-12절에 오면 누구나 어리둥절해진다.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람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비유를 사용하신다는 이 말씀은 복음을 잘 이해시키려고 비유를 사용하신다는 마가복음 4장 33-34절이나 마태복음 13장 34-35절과 반대이다. 그리고 이 언급은 비유에 대한 문학적 상식과도 맞지 않는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마가복음 4장 12절에서 마가복음이나 마태복음에서 비유를 긍정적으로 언급하신 것과 반대일 뿐 아니라 문학적 상식과도 맞지 않는 말씀을 하셨을까? 

우리는 이렇게 사실이나 문맥과 반대되는 언급을 반어적 진술(ironic statement)이라고 말한다. 반어적 진술의 사전적 의미는 “원래 하고자 하는 말을 반대로 표현하는 말”이다. 남편이 계속 어리석은 짓을 할 때, 속이 상한 부인이 역정을 내면서 “그래 잘 났어요. 잘 났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그 부인은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말하고 있다. 이것이 반어적 진술이다.

우리가 이렇게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반어법을 작가들도 즐겨 사용한다. 작가들은 반어법을 일종의 수사적 표현으로 간주한다. 예수님이 마가복음 4장 12절에서 하신 말씀을, 이 부인의 언급과 같이, 말하는 사람의 진의와는 상반되는 수사적 표현, 즉 반어적 진술로 받아들이면, 이 구절의 의미가 속 시원하게 드러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마가복음 4장 12절은 이사야 6장 10절의 인용이기 때문에, 이사야의 그 구절은 마가복음의 구절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된다. 그래서 마가복음 4장 12절을 고찰하기 전에, 여호와께서 이사야를 보내시면서 왜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고 명령하셨는지, 그리고 이사야는 그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부터 알아보겠다.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여호와께서는, 어느 부인이 남편의 어리석은 행동에 실망한 것처럼, 백성들의 어리석은 행동에 실망하셨다. 이사야 1-5장에서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에 관한 이사야의 계시가 나온다. 그 계시에서 보면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유다 백성에게 몹시 마음이 상해서 “노를 발‘(5:25)하셨다. 

그 계시 직후에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사 6:8) 하시는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이사야가 “나를 보내소서”라고 말하며 나선다. 이사야를 포함해서 모든 선지자는 여호와께 순종하지 않는 백성들을 깨우치려는 사명을 가지고 백성들에게 나간다. 이사야도 같은 마음으로 자원하였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이사야에게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라고 명하신다. 이사야는 노하신 여호와의 그 명령이 선지자를 백성에게 보내시는 그분의 진의와 반대라는 것을, 다시 말하면, 그 말씀이 반어적 진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사야는 여호와의 그 말씀에 개의치 않고 백성 가운데로 나가서 그들을 깨우치려고 진력했다. 

마가복음 3장에서 보면 예수님은 당신을 배척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에 대해서 “노”하셨다(3:5). 예수님이 미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3:22)라고 말했다. 그들의 말에 “노”하신 예수님은 불순종하는 백성에게 “노”하셨던 여호와를 상기시킨다

그들의 말에 마음이 몹시 상하신 예수님은 이사야서를 인용하시면서 여호와처럼 반어적으로 말씀하셨다. 다시 말하면, 마가복음 4장 12절의 말씀은 이사야 6장 10절과 마찬가지로 반어적 진술이다. 그 말씀은 예수님의 진의와는 반대이기 때문에, 이사야가 여호와의 반어적 진술을 개의치 않았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반어적인 말씀을 개의치 말아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의 비유를 연구한 신학자들뿐 아니라 성경의 문학적인 면을 중시하는 신학자들까지도 마가복음 4장 12절을 반어적 진술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그 구절을 문자적으로 읽으면서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애쓰다가 결국 포기하고 만다. 

문학적 소양이 성경 연구에 필수적인 요건이라고 주장하는 N. T. 라이트는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에서 마가복음 4장 12절의 어법을 “암호적인 어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구절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셈이다. 

문학비평에 관심이 많은 존 도미닉 크로산조차 『비유의 위력』에서 마가가 문맥에 맞지 않는 마가복음 4장 12절을 기록한 것은 그의 실수라고 말했다. 문맥에 맞지 않는 말이 반어적 진술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더라면, 그는 그 기록을 마가의 실수로 돌리지 않았을 것이다.

내로라하는 현대 신학자들이 이렇게 마가복음 4장 12절을 놓고 쩔쩔매는 마당에 한국의 목회자들이 그 구절을 잘못 가르친다고 해서 그들을 탓할 수는 없겠다. 그런데 이 구절이 반어적 진술이라는 데에 착안하기만 하면, 그것의 의미가 속 시원하게 드러난다. 

그 반어적 진술은 예수님의 진의와 반대이기 때문에, 이사야가 여호와의 말씀에 개의치 않은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그 말씀에 개의치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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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유 (61.83.252.57)
2023-10-07 20:37:48
성서학자들의 중론에 따르면,
1) 마가복음은 복음서 가운데 가장 일찍 기록된 복음서로 예루살렘 신전이 파괴(기원후 70년)되기 직전 또는 직후에 기록되었다.
2) 저자는 이미 존재하던 수집자료(기적, 치유, 종말자료 등등)를 이용하여 기록하면서 새로운 의견을 더 하였다.
3) 마가복음의 주요 독자 또는 청자는 기독교로 개종한 이방인이며,
기록목적은 선교가 아니라, 개종한 사람들의 믿음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즉 마가복음은 소규모의 사람들이 읽던 책이었다. 기독교 전체가 마가복음의 독자(청자)가 된 시기는 적어도 기록시기로부터 수백년은 지나야 한다.

이정도면 저자가 마가복음에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람을 얻지 못하게 하려>를 삽입한 이유는 뻔하다.

마가복음이 기록되던 당시, 1) 많은 기독교인은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기 시작했으며, 2) 기독교는 점차 유대교와 분리되어 유대교의 억압이 강화되어갔고(유대교와 기독교 분리의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예루살렘 신전의 파괴이다.), 3) 기독교인들에 대한 비기독교인의 박해 또한 심각하게 강화되어가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저자가 속한 집단은 구성원 사이에서 심각하게 발생하던 예수에 대한 의심과 공동체로부터 이탈을 막는 데 절실했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내적 단결을 위해 구성원들의 특수성을 강조해야 했다. 요즈음 이단들이 자기네 들이 특수하니까 자기네로부터 떨어지면 구원을 못받는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결론> 마가복음이 기록되던 당시에 마가공동체는 구성원의 의심과 이탈로 인해 위기를 맞았다. 따라서 그들은 그 위기를 넘기위해, 자기네들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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