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오늘의칼럼
깨볶는 소리
박효숙  |  hyosook0510@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3년 10월 03일 (화) 00:42:22 [조회수 : 3546]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가을비가 내립니다. 툭툭 투두둑 깨 볶는 소리를 내면서 가을비는 낙엽과 함께 포도 위를 뒹굽니다. 유난히 비를 좋아해서인지 가을 비 오는 소리는 늘 깨 볶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비 소리를 듣고 있자니, 오래전 신혼 초에 참깨 볶는 방법을 몰라 친정어머니께 전화해서 물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친정어머니는 “에구 에구 이런~ 결혼한 새댁이 그것도 모르면 어쩌니~?” 하며 걱정하는 목소리를 높이셨지만, 당신이 아는 것을 물어보는 딸에게 투박한 목소리로 따뜻하고 자상하게 “깨 볶는 방법” 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먼저, 참깨를 볼에 담고 물을 갈아가면서 서너 번 씻어서 가는 체에 건져 놓아야 해. 참깨엔 작은 돌이 섞여있는 경우가 많아 잘 씻어야 한단다. 한 시간 가령 물기를 뺀 다음 조금 높은 후라이팬에 깨를 넣고, 나무 주걱으로 쉬지 말고 계속 저어. 처음엔 센  불에 볶다가 깨가 툭툭 튀기 시작하면 중불에 볶아야 하지. 팔이 아프고 힘들어도 자리를 떠나지 말고 나무 주걱으로 잘 저어주어야 타지 않고 맛있게 볶아진단다. 참깨가 곱게 볶아지면 노르스름해지고 통통해지는데  손으로 으깨어 보아 부서지면 다 볶아진 거야. 볶은 깨는 후라이팬에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금방 타버리기 때문에 바로 넓은 볼이나 절구에 부어 빻아서 보관해야 해. 고소한 맛을  계속 유지하려면 공기에 노출되지 않도록 바람관리를 잘 해주어야 한단다. 눅눅해지면 잘 빻아지지 않거든. 그래야 두고두고 맛있게 먹을 수 있어.

친정엄마께서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하신 건 그 자리를 지키고 계속 나무주걱으로 저어줘야 맛있는 참깨 보숭이를 잘 만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시커멓게 타버리므로 주의해야한다고 누차 강조하셨습니다.  

친정어머니가 가르쳐주셨던 깨 볶는 방법을 차분차분 기억해 가며 쓰고 있는데 몇년 전에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뭉클 그리워집니다.  

어렸을 때 시골에 살았습니다. 황금빛 물결~ 가을, 이맘때면 여기저기 깻단, 볏단을 모으고 탈곡하는 풍경을 보며 자랐습니다. 탈곡기 소리가 우렁차면 그 해 가을, 동네 사람들의 얼굴은 유난히 밝고, 마음은 더욱 넉넉해져 보였습니다.  

참깨를 수확하는 방법 또한 참 신납니다. 가을이 되어 어느 정도 여물어 무르익으면, 베어 다발로 묶습니다. 묶은 다발을 세워서 20일 이상 햇볕에 말리면 깨가 들어 있는 꼬투리가 입을 활짝 벌리기 시작합니다. 이때 깨 다발을 거꾸로 세워서 막대기로 두드리면, 순식간에 황금알갱이 같은 참깨가 펴놓은 방석에 우르르 쏟아져 내립니다.  

참깨를 터는 순간, 황금알갱이 같은 깨가 신나게 쏟아지는 것을 좋아했던 옛 어른들이 신혼부부의 사랑을 비유할 때  “깨가 쏟아진다”라고 했나 봅니다. 

깨는 고소함의 상징이라 금슬이 좋으면 “깨 볶는 냄새가 나네”라는 표현을 하나 봅니다. 친정어머니께 듣고 혹시나 태울까 조심조심 깨를 볶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참 많은 세월이 지났습니다.    

참깨는 불로장생의 묘약이라고 합니다. 중국의 <신농본초경>이나 우리나라의 <동의보감>이나 모두 참깨를 불로장생의 묘약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노화(老化)는 질병이 아니라 자연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 노화에 활성산소가 크게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물질이 바로 항산화물질이고, 참깨에 다량 함유되어 있다고 합니다.  

어디로 튈지 모를 깨 볶는 소리 같은 가을 비 오는 소리를 들으며, 지나간 시간 속에 잠시 머물러 보는 여유를 가졌습니다. 

참깨를 심어 결실을 거두려는 농부의 심정도 생각했고, 거두어들인 결실이 식탁 위에서 아름다운 조연을 하기 까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참깨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이 모두 사람들의 노력이나 정성을 통해 생활 곳곳에서 맛있게 조리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생각하니 손길 하나하나가 너무나 감사해집니다.  

누군가의 손길을 통해 빚어지고 만져져서,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지난 날을 회상하며 글을 쓰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귀하게 여겨져서 감사한 마음이 강물처럼 흐릅니다.

 참깨의 꽃말은 ‘기대’라고 합니다. 참깨의 꽃말처럼 우리 모두, 이 가을에는 기대되는, 기대하는, 그래서 더 가까와지는 서로 서로가 되길 기도합니다.  

알콩달콩, 깨 쏟아지는 소리를 내면서, 기쁨을 나누는, 그래서 영적으로 더욱 풍성해지는, 그런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효숙목사
청암크리스챤 아카데미 분노치료연구소장  

박효숙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22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