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계
카나다 최초의 조선 자비량 선교사 윌리암 존 맥켄지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3년 09월 30일 (토) 22:56:44
최종편집 : 2023년 10월 07일 (토) 18:36:28 [조회수 : 959]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 캐나다연합교회(UCC) 동부 지역 홈페이지 “William J. MacKenzie” 아카이브

http://ucceast.ca/wp-content/uploads/2012/11/Photo-of-William1.jpg

  이요환 목사(토론토 소금과 빛 염광교회. 카나다 크리스천신문 이사장)

 

윌리암 존 맥켄지(William John Mckenzie)는 누구인가? 

윌리엄 존 맥켄지는 1861년 7월 15일 케이프 브레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스코틀랜드계로 캐나다에 이주한 매우 신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는 핼리팩스 달하우지 대학을 1888년에 졸업한 후 자신의 미래를 하나님께 완전히 의탁하기로 결심하며, 파인힐 신학교(현 AST)에 입학하여 졸업하였습니다.


1. 맥켄지 선교사는 캐나다 국적의 
최초의 선교사로 자원하여 섬겼습니다

그는 한국에 오기전 먼저 북극 래브라도 섬에 단기선교사로 자원하여 혹독한 추위와 가난 질병 등의 위협 가운데 얼어붙은 에스키모인 들에게 열정적으로 18개월간 복음을 전했는데 이것이 맥켄지가 조선선교를 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그는 1891년(30세)신학교를 졸업한 후 트루로 스튜워크장로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담임목회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어떤 문서를 통해 미지의 땅 조선을 알게 되었고 강력한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속한 캐나다 장로교단의 파송을 받기 원하였지만 당시 캐나다장로교단은 다른 동남아지역 선교에 전념 중이어서 조선까지 선교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교단은 맥켄지에게 미국장로교단의 선교사로 신청해보라고 권했지만, 그는 단호히 “나는 캐나다인이요. 어디를 가든 캐나다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고 싶다”고 결심했습니다. 캐나다의 여러 성도들의 물질적 동참으로 1년 생활비를 모으게 되어 1893년 10월 트루로 버라카교회에서 파송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그래서 미지의 땅 조선을 위해 기도하는 중보기도후원자들이 생기게 되었고 그들의 후원을 받고 조선으로 출발하게 됩니다.

 

   
▲ 캐나다연합교회(UCC) 동부 지역 홈페이지 “William J. MacKenzie” 아카이브http://ucceast.ca/wp-content/uploads/2012/11/Book.jpg


2. 맥켄지 선교사는 철저히 조선인으로 살았습니다

캐나다 횡단 기차를 타고 밴쿠버로 가, 거기서 일본행 배를 타고 요코하마에 도착 후 다시 부산행 배에 몸을 싣고 2달 만에 1893년 12월 12일 부산항에 도착하게 되었고, 서울로 가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평양에서 장로교선교사 마펫을 만나는데, 한국인과 똑같이 살면서 복음을 전하는 모습에 맥켄지는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1894년 10월 10일 당시 한국인들에 의해 최초로 세워진 소래교회의 초대 담임목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조선 사람들과 똑같이 조선의 의복과 음식과 온돌에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너무 열성적으로 전도함으로 열병으로 인해 몸이 점차 더 불편해지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서울의 언더우드 선교사가 고기와 치즈와 서양음식을 보내주었지만 그는 거기에 손을 대면 다시는 조선인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그것을 마을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몸 상태가 점점 심해져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혼미해졌습니다. 그는 주일 아침 곁에 앉아 있는 서경조에게 요 12:24 “한 알의 밀알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를 낭독케 한 후, 자신의 의복과 돈 172달러를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유언하고 조선 선교 불과 1년 6개월만인, 1895년 6월 23일 34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여기서부터 캐나다의 조선 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맥켄지가 죽자 서경조는 “맥켄지같은 선교사를 보내 달라”는 편지를 언더우드 선교사를 통해 캐나다 장로교단에 전달했고, 이 편지를 받아본 캐나다 장로교 총회는 심각한 논의 끝에 1897년 그리어슨(핼리팩스), 푸트(켄트빌), 맥레(케이프 브레튼)를 공식적으로 조선에 파송하게 됩니다(역사엔 이들이 최초선교사로 등재). 그 후 184명의 캐나다 선교사들이 계속적으로 파송되어 주로 조선 동북부 지역인, 원산, 성진, 함흥 간도 등지에 수십 개의 교회와 학교, 수천 명에게 구원의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중 토론토 의대 출신 하디 선교사와 맥켄지의 약혼녀였던 맥컬리는 원산 부흥운동에 이어 평양 대부흥운동의 주역으로 한국교회 부흥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3. 캐나다 교회에 빚진 
한국과 캐나다 한인교회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1893년 복음을 들고 미지의 땅 조선에 최초로 발을 내디딘 지 정확하게 100년 후 1993년, 그가 선교했던 나라의 후손들인 한국인들이 맥켄지 선교사가 수학했던 그 파인힐 신학교 채플에서 핼리팩스 한인교회가 세워졌고 금년이 30주년이 됩니다. 조선에 대해서도 그 백성들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그때, 그저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던 그의 헌신과 죽음이 바로 오늘의 한국교회와 한인 이민교회를 탄생하게 만들었습니다.


4. 맥켄지 기념사업에 대하여

2021년 6월경 민석홍 장로님(윤경남권사)내외가 토론토 염광교회를 방문하게 되었고 대화를 나누면서 80대 중반의 이 노부부가 맥켄지를 찾아 수차례 핼리팩스를 다녀오면서 ‘누가 이 맥켄지를 아시나요?’라는 기고문을 한국일보에 연재로 올렸고, 여러 가지 프로젝트까지 계획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일을 추진할 여력이 없었는데, 성령의 감동이 저에게 다가오게 되어, 이 일을 2022년 3월 봄노회 때에 선교부 프로젝트로의 당위성을 호소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우리 캐나다 동노회 교회들이 맥켄지에 대한 빚진 마음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 10월에 맥켄지 선교 팀들이 케이프 브레튼을 방문하게 되었고 그 후 맥켄지의 생가터와 맥켄지의 부모 형제의 묘가 있는 가족 묘지를 발견하게 되면서, 캐나다 동노회와 서노회 교회들의 협력으로 3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1) 가족묘지에 맥켄지 묘비를 세우고, 2) 핼리팩스교회 교육관에 맥켄지 기념관을 만들고, 3) 교회가 위치한 다운타운에 맥켄지를 알리는 동판을 만들어 세우는 사업을 이번 2023년 10월 4일, 현지 케이프 브레튼과 핼리팩스 교회에서 기념식 및 제막식을 거행하게 됩니다. 
이 일을 통해 캐나다 현지인들과 특별히 우리의 다음세대들이 그의 정신과 역사를 계승하며 맥켄지 선교 정신으로 복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소원해 봅니다. 특별히 2023년은 한카수교 60주년이며 맥켄지가 조선에 입국한지 130년, 그리고 핼리팩스 한인교회 설립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번 캐나다 동,서노회 산하 모든 지교회들이 이 맥켄지 기념사업에 동참케 되면서 복음의 빚진 자로서의 사명을 다시 한 번 깨달으며 한국교회의 뜻 깊은 사업이 되길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 한국에서 사역 중인 메켄지가 1895년 5월 1일 John W. Mont에게 보낸 편지출 처: 캐나다연합교회(UCC) 동부 지역 홈페이지 “William J. MacKenzie” 아카이브

http://ucceast.ca/wp-content/uploads/2012/11/Letter.jpg

 

   

▲ 1895년 10월 3일 캐나다장로교총회 회의록에 언급된 윌리엄 매켄지의 소천 소식. 출 처: 캐나다연합교회(UCC) 동부 지역 홈페이지 “William J. MacKenzie” 아카이브

http://ucceast.ca/wp-content/uploads/2012/11/Obituary.jpg

 

 

 

<윌리엄 맥켄지 선교사 기념 사업>

1. 기념 사업 개요

초기 조선선교는 주로 미국과 영국출신 선교사들이 주도했습니다. 당시 캐나다 장로교는 조선선교에 동참할 여력이 없♘기에 몇몇 캐나다 출신 선교사들은 미국교단에 소속해 선교활동을 펼칠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 교회에 많이 알려진 제임스 게일 (James Scarth Gale) 선교사 (토론토 YMCA 의 파송을 받은 후 미국 북장로교 소속 )이나, 윌리암 홀 (William James Hall, 미국 감리교단 소속된 캐나다 출신 의사)이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 바로 ‘윌리엄 존 맥켄지 (William John McKenzie, 15 July 1861 – 23 June 1895)’ 입니다. 맥켄지는 동부 노바스코샤주 케이프 브레튼 출신으로 핼리팩스 파인힐 신학교(현, Atlantic Theological Seminary)를 졸업 후, 1893 년 10 월, 32 살에 캐나다 장로교단의 파송을 받지 못하자 지역교회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미지의 땅 조선으로 향해 같은해 12 월 12 일 제물포 항에 도착합니다. 맥켄지가 조선 선교를 결심했을 때, 그에게 미국 장로교단에 가입해 파송받으라는 제안도 있♘지만 이를 거부했습니다. 왜냐하면 당당히 캐나다의 이름으로 조선 땅을 밟고 싶♘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는 캐나다에서 조선으로 건너간 최초 자비량 선교사가 되♘습니다. 맥켄지가 한국에서 지낸 시간은 559 일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중 313 일은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에 위치한 소래교회 (조선인의 손으로 지은 최초의 교회 -서상윤, 서경조 형제)의 초대 담임목사로 사역합니다. 당시 다른 선교사들과는 달리 맥켄지는 스스로 조선인이 되기로 마음 먹습니다. 조선인이 먹는 음식을 그대로 먹고 의복과 생활 방식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 조선을 사랑하는 진정성 있는 방식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너무나 복음 증거에 매진한 나머지 과로와 심한 열병으로 사역에 마침표를 찍고 그가 그토록 사랑한 조선 땅에 묻히게 됩니다 (1895 년 6 월 23 일). 맥켄지의 순교 소식은 언더우드 선교사를 통해 캐나다 장로 교단에 알려집니다. 언더우드는 얼마든지 미국 출신 선교사를 소래에 요청할 수 있♘지만, 맥켄지의 나라, 캐나다에 그의 사역을 이어줄 선교사 파송을 정중히 요청합니다. 그로부터 5 년 후, 5 명의 캐나다 선교사가 정식으로 조선에 파송되었고, 캐나다 출신 선교사들은 함경도와 간도를 중심으로 활발한 선교 활동을 하게 됩니다. 비록 대부분의 캐나다 출신 선교사들이 지금의 분단된 북한 지역을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했기 때문에 현재 남한에 역사적 자료나 정보가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30 년이 지난 맥켄지 선교사의 헌신이 그대로 묻히고 한국 교회와 성도들에게 잊혀지기에는 그의 열매가 너무 큽니다. 1893 년 미지의 땅에 한 알의 밀알로 심겨진 맥켄지의 헌신과 섬김으로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파송된 선교사의 숫자만도 200 여명이 넘습니다. 그리고 맥켄지 선교사의 희생으로 시작된 캐나다-조선 선교사의 고향은 단일지역으로는 핼리팩스가 당시에는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게 됩니다 (McRae, Foote, Grierson 의 부부와 단독선교사까지 총 7 명). 더군다나 맥켄지가 조선을 향했던 때로부터 정확히 100 년 후인 1993 년에 한인교회가 세워집니다. 맥켄지가 그토록 사랑했던 조선의 후손들이 캐나다로 이민을 와 맥캔지의 고향이며 그가 신학을 공부했던 파인힐 신학교 채플실에서 핼리팩스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위한 핼리팩스 한인교회(해외한인장로회, KPCA)가 세워지게 됩니다.

위의 내용을 바탕으로 해외한인장로회 캐나다 동노회에서는 맥켄지 선교사를 기념하는 사업을 2 년전부터 추진하게 되♘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된 맥켄지 선교사의 잊혀진 역사를 조금이나마 발굴하고 복원해 캐나다 이민교회 뿐 아니라 조국 교회에 알리어서 그의 사역을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들에게도 이 역사적 사실을 교육하고 본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동안 맥켄지의 역사적 흔적과 자료를 발굴하고 추적해온 분들 (특히 유영식교수, 민석홍장로)의 도움으로 노회 선교부에서는 맥켄지의 고향을 다시 방문해 맥켄지 후손과의 만남 및 중요한 역사적 흔적들을 추가로 발견하게 되♘습니다. 이 흔적들이 또 다시 시간 속에 묻히기 전에 반드시 보존하고 매듭을 지어야 합니다. 이를위해 모든 교회가 합심하여 동참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캐나다 선교사들에게 빚진자 된 한인 이민교회의 모든 교우가 한 알의 밀알로 심겨진 맥켄지 선교사를 본받아 복음과 선교의 열정에 다시한번 도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맥켄지 선교사를 기념하며 추모하는 일을 공식적으로 추진하는 이유

첫째, 한국과 캐나다 수교 60 주년과 맥켄지 선교사가 조선 땅을 밟은 130 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윌리엄 맥캔지 선교사의 사역을 기리고 감사하기 위함 입니다. 한국과 캐나다 교회에서는 캐나다에서 온 조선 최초 자비량 선교사, 맥켄지 선교사를 아직 모를뿐 아니라, 이에 대한 감사를 기리는 작업이 전무한 상태입니다. 잊혀진 역사를 조금이나마 복원하려는 노력은 캐나다와 한인 이민교회, 뿐만 아니라 조국의 모든 교회에도 한 알의 밀알이 된 맥켄지를 알리는 것은 우리의 영광이고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우리의 후손들에게 분명한 선교적 뿌리 (한국-캐나다)와 이민 역사를 교육하고 알리기 위함 입니다. 한인 이민사의 시작이 캐나다-조선 선교사들의 깊은 영향이 있다는 점과 1 세대 한인들이 캐나다에 정착하는데 캐나다 선교사 가족들의 도움이 컸다는 사실을 한인이민자들은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다음 세대들이 캐나다와 한인교회를 짊어지고 가야하는 이 시기에, 한국과 캐나다의 선교적 뿌리가 든든히 연결되어 있음을 알리고 교육하는 것은 현 기성세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이것의 출발점이 바로 윌리엄 맥켄지 선교사 기념사업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3. 사업 진행 상황

(1)  맥켄지 선교사의 역사적 흔적과 자료를 묵묵히 발굴하고 추적해 온 유영식교수(토론토대)의 도움과 지난 코로나의 어려운 시기 가운데에도 저희는 맥켄지 기념 사업 추진단을 세워 지난 2 년간 핼리팩스한인교회와 맥켄지의 고향 방문 및 현지인 조사를 토대로 중요한 역사적 흔적(생가, 가족묘 발견)을 추가로 발견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2) 2022-2023 모임 때 마다 윌리엄 맥켄지를 소개하는 자료와 영상을 꾸준히 알리고,(관련 영상 https://youtu.be/NqNC4Tzet1k) 캐나다 동노회 선교부와 맥켄지 사업 추진단은 정기적 모임을 통해 맥켄지 선교사가 조선에 첫 발을 내디딘 130 주년을 기념하는 올해, 기념비를 세우고 핼리팩스한인교회 안에 기념관을 세우는 사업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2023 년 캐나다 한인들과 교회들이 함께 힘을 합쳐 맥켄지 선교사를 기리고 그 역사적 뿌리를 기념하며 후손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4. 구체적 기념 사업 계획 및 진행사항

(1) 맥켄지 기념 사업단에서는,

1)    출판 및 다큐: 유영식 교수 편저 “케이프 브레튼에서 소래까지” 를 지교회에 배포, 판매해 성도들도 함께 동참하게 함  / 맥켄지 선교사 고향방문과 일대기 영상 제작배포 

2) 맥켄지 선교사 묘비 세우기: 맥켄지 선교사는 조선에 묻혔지만, 그의 묘비를 맥켄지 가족묘지에 세워 기리기 위함입니다. 케이프 브리튼 현지 제작 및 설치 후 맥켄지 할아버지와 아버지 묘비 옆에 세울 예정입니다 .

3) 맥켄지 선교사 기념 동판 제작: 핼리팩스한인교회 앞 매인 도로 옆에 동판을 세워 캐나다 현지인들과 방문객에게도 알리는 사업.

4) 맥켄지 선교사 기념식 추진 (핼리팩스, 케이프 브리튼 2023 년 10/3-10/5).

(2) 핼리팩스 한인 교회에서는,

1) 맥켄지 선교사 기념관: 핼리팩스한인교회 내에 건립 예정입니다.

맥켄지 파송 100 년 후 1993 년 그의 고향에 핼리팩스한인교회가 세워졌습니다. 특별히 올해 창립 30 주년을 맞은 핼리팩스 한인교회에서는 맥켄지 기념사업에 적극 동참하면서 교회 내 기념관을 세우기 위해 리모델링을 진행하고, 비전 펠로쉽 (기념관에 전시될 자료 및 디자인 지원)과 노회 (프린트 지원)가 협업하려고 합니다.


5. 캐나다 한인교회 협조 요청 사항

(1)  맥켄지 선교사의 일대기를 그린 책 (케이프 브레튼에서 소래까지)을 지교회별로 구매 후 성도들과 자녀들이 맥켄지 선교사에 대해서 알도록 해 주세요.

담임목사님은 맥켄지 선교사에 대해 설교 (맥켄지 주일) 및 세미나를 통해 성도들과 다음세대가 알고 기억할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2)  맥켄지 선교사 기념 사업을 위한 지교회별 특별 헌금(맥켄지 주일 or 교회 사정에 맞게) 및 도네이션을 부탁드립니다. 기념사업에 후원하는 교회와 개인은 기념관 내 후원 게시판에 교회 이름 및 명단을 올릴 예정입니다 (10 구좌이상 교회 및 개인).

(3)  아래에 소요되는 예산에 교회나 개인이 후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체를 하기 어려운 경우는 1 구좌 $20 로해서 후원할 수 있습니다 (예 :  10 구좌- $200, 100 구좌- $2,000)

(4)  각 교회에서 후원을 거두어 명단과 함께 노회 선교부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작정도 가능) 후원 체크 Pay to: KPCA  (메모란에 ‘맥켄지선교’ 표기해 주세요)

체크 보낼 주소: Yumkwang Church (노회선교부) 2850 John St. Markham. ON. L3R 2W4
Tel: 905. 415. 9115

(5)  이번 맥캔지 선교사 기념 사업을 위해 캐나다와 한국의 모든 교회가 힘을 모으고 기도로 준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맥켄지 기념사업 도네이션 안내>


1.    맥켄지 선교사 기념 묘비, 동판, 기념관 설립을 위한 도네이션 및 책 주문을 받습니다.

2.    1 구좌- $20, 개인별, 교회별로 10 구좌 이상은 기념관에 이름이 표기 됩니다.
도네이션해주신 개인과 교회에는 '케이프 브리튼에서 소래까지' 책을 선물로 드립니다.

3.    체크 Payee: KPCA (메모에 '맥켄지 선교' 라고 표기해주세요)

4.    보내실주소:  Yumkwang Church (노회선교부)

2850 John St. Markham. ON. L3R 2W4
Tel: 905. 415. 9115

5.    마감일: 2023 년 8 월 31 일까지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7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