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계
기감 월간지 <기독교세계> 지령 1100호 맞아 감사예배 드려- 1933년 1월 시작해 90년 동안 이어져 ... 기감 역사의 산증인
심자득  |  webmaster@dangdang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3년 09월 07일 (목) 21:06:46
최종편집 : 2023년 09월 08일 (금) 08:24:19 [조회수 : 1123]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지령 1100호를 맞은 기독교세계가 7일 감리회본부교회에서 감사예배를 드렸다.
   
 

[당당뉴스 KMC뉴스 뉴스엠 공동취재]기독교대한감리회 월간 소식지인 <기독교세계>는 지령 1100호를 맞아 9월 7일(목) 오전 11시 광화문 본부에서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 자리에는 이철 감독회장을 비롯해 호남특별연회 김필수 감독, 동부연회 김영민 감독, 감신대 전 총장 김진두 목사, 그리고 본부 임원들과 목회자들, 평신도 지도자들 70여 명이 함께 해 축하했다.

 
1930년 남•북감리교회가 하나로 통합하여 기독교조선감리회로 새롭게 시작한지 3년 후인 1933년 1월 監理會報(감리회보) 라는 이름으로 첫 발행을 시작한 <기독교세계>는 일제강점기 폐간 조치와 통폐합, 한국전쟁으로 인한 중단 등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90년 동안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동안 주간, 격주간, 월간 등 다양한 모습으로 발행하다가 현재는 월간지로 자리 잡았으며 2023년 9월호로 지령 1100호를 맞았다. 90년간 기감의 역사와 맥을 같이해 온 유일의 월간지인 셈이다. 

매월 1일 1년에 11회(7‧8월호 합본) 발간하는 <기독교세계>는 감리회 기관지로서 총회의 정책, 본부와 연회 소식을 교회에 전달하며, 목회자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여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도록 돕고, 평신도를 위한 문화사역, 신앙교육 등 신앙인으로서의 소양을 함양하는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시의적절한 특집, 기획, 시론 등으로 시대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와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 <기독교세계>의 역사 ... (이 내용은 도서출판kmc 제공한 것입니다.-편집자 주)

1933년 1월 20일 <監理會報(감리회보)>라는 이름으로 첫 호를 발간했다. 1930년 제1회 총회를 통해 ‘기독교조선감리회’의 태동을 천명하고, 감리교회의 일치와 소통을 위한 유일한 통로로 기관지의 발행을 결정한 것이다.

그 후 많은 부침의 역사를 걸었다. 일제의 탄압으로 폐간을 당하며 장로회·성결회·구세군과 합동 발간한 신문으로 통폐합되기도 하고, 전쟁 때문에 중단되기도 했다. 감리교회 내의 분열과 대립으로 반쪽의 목소리만을 내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굴곡진 세월 속에서도 그 빛은 꺼지지 않았다. <조선감리회보> <감리회보> <감리교생활> <기독교세계>로 제호를 바꾸고 발행 형태와 판형을 달리하며, 또다시 새로운 마음과 다짐으로 감리교회의 역사와 함께 했다.

<기독교세계>는 교육정책 뿐만 아니라 감리교 신학을 계도하고 교육하는 기능과 함께 홍보의 기능을 감당해 왔다. 또한 국내 전도(선교)운동을 안내하고 홍보하며 한국 감리교회의 성장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 해외선교에 대한 관심과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교두보 역할을 감당했다. 폭넓은 기사와 필진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각종 대회를 비롯하여 지방의 다양한 소식들을 나눔으로써 회원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또한 감리교회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시대 변화를 이해하고 선도할 수 있도록 시의적절한 특집, 기획, 시론 등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교회와 지방회,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신학과 성서, 문화와 복음을 균형 있게 다루며, 소식과 공고 등을 제공하여 공동체성을 유지하는 매체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 사회 / 도서출판kmc 김정수 사장

 

   
▲ 설교 / 이철 감독회장

 

1부 예배

이날 열린 1100호 기념예배는 이철 감독회장의 집례에 의한 성찬예배로 진행했다. 2부에서는 축하인사와 홍승표 목사(아펜젤러인우교회)의 ‘기독교세계를 조명하다’ 라는 제목의 발제가 이어졌다. 또한 본부 회의실 입구에 <기독교세계> 초판본 등을 전시하고, 예배에 참석한 이들에게 <기독교세계> 1100호와 기념십자가를 선물로 증정했다.

이날 예배는 도서출판kmc 사장 김정수 목사의 사회로 시작해 ▲하나님께로 나옴(경배찬양-개회기도-은혜의 약속) ▲말씀과 응답(조명을 위한 기도-성경봉독-설교) 후에 이철 감독회장이 성찬식을 집례했다. 성찬 순서 앞에 김정수 사장과 노덕호 부장이 떡과 포도주를 봉헌하고 뒤를 이어 도서출판kmc 직원들이 자신의 소명의식을 상징하는 도서와 물건들을 차례로 봉헌했다. 그리고 이철 감독회장의 분병례 후에 김필수 감독(호남특별연회)과 김영민 감독(동부연회), 김정수 목사(도서출판kmc 사장)의 보좌로 성찬을 진행했다. 김진두 목사(원로)의 축도로 성찬예배를 마친 후 2부 순서 축하와 나눔의 시간을 진행했다.  

이철 감독회장은 ‘편지하노니’를 제목으로 한 설교에서 남•북감리교회가 1930년 하나로 통합한지 3년 후에 창간한 기독교세계가 90년을 이어왔다며 대단한 역사라고 강조했다. 90년 동안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며 일제치하에서의 교회 통폐합, 해방직후 혼란, 전쟁, 산업화 과정, 민주화운동 등의 역사를 언급한 후 그런 굴곡에서 기록으로 남기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매진해 교류의 통로로 역할해 왔다는 점에서 대단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바울의 편지가 성경으로 전해지고 있다며 그를 통해 오늘의 우리는 복음과 목회를 이해하고 시대를 관통하는 참신앙에 대해 이해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것은 더 이상 편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부연했다. 마찬가지로 역사의 혼란에서도 감리교회를 지키며 이끌어 온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숨은 이야기를 전하는 일에 매진하여 1,100호에 이르렀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시대를 담고 복음을 담고 감리교회의 핵심을 담고 오늘까지 왔다.”며 “지나간 역사는 배워야 할 것이기에 귀하게 남겨야 한다. 이제부터 써나가야 할 부분은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기독교세계는) 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기록했기에 하나님에게서도 기억될 것이라는 점에서 오늘 우리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지금까지 그 사명을 감당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지나간 것에 대해 폄훼하기보다 배우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라며 “더 건강하고 진솔하게, 희망적으로 써 가기를 기대한다.”고 부연했다. 이어 오늘의 자리에서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점에서 아직 우리에게 할 일이 있다는 결단과 실천이 필요하다며 해야 할 일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으로 전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음의 빛을 위해 새롭게 쓰여지는 기독교세계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격려하고 힘써 달라는 말로 설교를 마쳤다.

 

   
▲ 도서출판kmc직원 소개
   
▲ 축하케이크

 

2부 축하와 나눔

박영신 부장의 진행으로 먼저 임직원들(12명)이 앞으로 나와 인사했다. 이어 박영신 부장이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선물로 나눠 준 십자가에 대해 설명했다. 성찬 집례시 목에 걸고 하는 청동십자가라며 십자가를 볼 때마다 도서출판kmc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계속해서 기독교세계를 위해 수고한 직원에 대한 시상으로 유영신 서기(2011년~현재)와 조혜정 서기(2017~현재)에게 이철 감독회장이 공로패를 수여했다. 이어 이철 감독회장을 비롯해 김필수 감독, 김영민 감독, 황병원 목사(삼남연회 직전감독), 김정수 사장 등이 기독교세계의 지령 1,100호를 기념하고 축하하는 케이크의 촛불을 끄고 절단하는 식을 진행했다. 

 

   
▲ 기념강좌 / 홍승표 목사 "<기독교세계>를 조명하다"

마지막 순서로 한국교회사를 전공하고 연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는 홍승표 목사(아펜젤러인우교회)가 기독교세계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에 대해 짧게 강의했다. (홍승표 박사 강의안 아래 첨부)
 
홍 박사는 글을 부탁 받고 쓰면서 마음 속에 흐르는 감동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감리교회에는 아펜젤러 선교사로부터 흐르는 ‘문서선교 DNA’가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며 초기 선교사들이 영문잡지를 만든 이력에 대해 소개했다. 특별히 1897년 아펜젤러가 국문으로 된 선교신문인 주간 「죠션크리스도인회보」를 발간해 초기 한국감리교회와 일반사회에 한국교회 소식과 현대지식을 공유해 나갔다고 설명했다. 이후 「대한크리스도인회보」(1899년) → 「그리스도신문」(1905년/감.장 합동) → 「예수교신보」(1907년) → 「그리스도회보」(1911년)로 발전하면서 일제의 탄압에 의해 폐간과 재창간 과정을 반복했다고 부연했다. 감리회의 경우 남과 북으로 갈라졌던 교회가 하나로 통합해 기독교조선감리회로 새롭게 출발한지 3년 만인 1933년 「감리회보」로 시작했고, 이것이 현재의 기독교세계로 이어져 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 박사는 초기 한국교회의 신학 체계화와 이론화 작업도 감리교회에서 처음으로 시작했다며 특별히 에큐메니칼 정신에 입각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감리교회에서 발행한 죠선그리스도인회보와 신학월보를 장로교회와 함께 하기 위해 Korea Mission Field, 기독신보로 명칭까지 변경했다며 이는 에큐메니칼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정신은 감리교회가 하나로 통합되는 정신적 배경이 됐다고 덧붙였다. 

특별히 명칭에 주목했다. ‘기독교와 세계’가 아닌 ‘기독교세계’라는 점에 주목한다며, 둘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보는 통전적인 시각이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김교신 선생이 「성서조선」의 ‘창간사’에서 “다만 우리 마음의 전부를 차지하는 것은 ‘조선’ 두 글자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낼 제일 좋은 선물은 ‘성서’ 한 권 뿐이니 둘 중의 하나를 버릴 수 없어서 된 것이 그 이름”이라고 했던 말을 인용하며 「기독교세계」의 제호를 정한 이들의 마음도 “다만 우리 마음의 전부를 차지하는 것은 ‘세계’ 두 글자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낼 제일 좋은 선물은 ‘기독교’ 뿐이니 둘 중의 하나를 버릴 수 없어서 된 것이 그 이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1964년 「기독교세계」의 ‘창간사’에서 밝힌 ‘미래의 나아갈 길’(❶모든 교회에 봉사 ❷기독교 교양 함양 ❸교회의 사회적 책임 대변)을 소개한 후 오늘의 「기독교세계」가 균형감 있고 건강한 교회의 방향성과 나아갈 길을 제시하면서 교회에 봉사하는 매체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 설교 / 이철 감독회장
   
▲ 설교 / 이철 감독회장
   
 
   
 
   
 
   
 
   
 
   
▲ 성찬과 봉헌
   
▲ 성찬과 봉헌
   
▲ 성찬과 봉헌
   
▲ 성찬식
   
▲ 성찬식
   
▲ 성찬식
   
▲ 성찬식
   
▲ 성찬식
   
▲ 성찬식
   
 
   
▲ 축도 / 김진두 목사

 

   
▲ 2부 축하와 나눔 사회 / 박영신 부장
   
▲ 공로패 전달 / 유영실
   
▲ 공로패 전달 / 조혜정
   
▲ 축하케이크
   
 
   
▲ 기념강좌 / 홍승표 목사 "<기독교세계>를 조명하다"
   
▲ 광고 / 노덕호 총무부장

 

한국 감리교회 정기간행물의 역사와 「기독교세계」

홍 승 표/아펜젤러인우교회 담임목사, 한국교회사 전공, 연세대 강사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정기간행물 「기독교세계」가 어언 지령 1,100호를 맞았다. 그동안 「기독교세계」는 기독교대한감리회의 공식적인 기관지로서 교회 현장의 소식과 최근 동향을 공유하는 기능과 더불어 한국교회를 향한 신학적 제언과 토론의 장, 성숙하고 균형감 있는 신앙을 고양하기 위한 교양과 영성의 함양 기능을 함께 수행해 왔다. 이러한 「기독교세계」의 정체성은 최근의 새로운 경향이라기보다는 한국 개신교 선교의 초기부터 그 어느 교파보다도 출판사업과 문서선교에 두각을 보였던 감리회의 역사적 전통과 유산에 근거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월간 「기독교세계」의 뿌리가 되는 감리회 계통 정기간행물들의 역사와 전통을 개관하고, 그 노정 위에 서 있는 「기독교세계」의 위상과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역사적 성찰의 과정을 통해 향후 「기독교세계」가 감당해야 할 오늘의 과제와 소명이 무엇인지 보다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감리교회 정기간행물의 역사와 「기독교세계」

선교 초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간행된 한국 감리교회의 정기간행물은 크게 영문 선교잡지, 국문 선교신문, 국문 신학잡지라는 세 가지의 형태로 분류된다. 

첫 번째로 영문선교잡지는 1892년 1월 올링거에 의해 간행된 월간지 The Korea Repositoy로 부터 시작되었다. 1901년에는 헐버트 선교사가 월간지 The Korea Review를, 존스 선교사가 The Korea Methodist를 각각 발행했다. The Korea Methodist는 같은 해 장로교회의 빈톤이 부정기로 간행했던 The Korea Field와 통합하여, 1905년에 The Korea Mission Field로 새롭게 창간되었다. The Korea Mission Field는 1905년부터 1941년 폐간되기까지 20세기 전반부, 일제강점기를 관통하는 기간 동안, 한국 개신교 제 교파들의 다양한 선교 현장 소식과 다양한 기고를 수록하였다. 이 잡지는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컬 전통을 수립하고 선교 현장과 선교 본국 간의 원만한 이해와 소통을 견인하는 주요한 매체가 되었으며, 오늘에 이르러 초기 선교사들의 다양한 사역과 역사적 사실을 파악하는 가장 요긴한 사료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The Korea Mission Field에 깃든 에큐메니컬 정신과 교회 일치를 향한 결실들에는 존 웨슬리의 신학과 유산이 큰 영향을 미쳤으며, 감리회의 초기 선교잡지들이 그 모체가 되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한국 감리교회의 국문 선교신문은 1889년 5월 아펜젤러 선교사가 월 2회 간행한 「교회」지에서부터 시작된다. 아펜젤러는 그동안 발행하던 「교회」를 발전시켜 1897년 주간 「죠션크리스도인회보」를 발간해 초기 한국 감리교회와 일반사회에 한국교회의 소식과 현대지식을 공유해 나갔다. 이 신문은 1899년부터 「대한크리스도인회보」로 명칭을 변경하였다가 1905년 6월 24일까지 발행된 후 폐간되었으며, 그 후 장·감 합동으로 「그리스도신문」을 1905년 7월 1일부터 발행하였다. 「그리스도신문」은 2년 후인 1907년 12월 10일부터 「예수교신보」로 이름으로 바꾸어 간행되다가 일제의 탄압으로 1910년 11월 29일자 제1권 40호가 총독부에 압수당해 발행이 금지되었다. 이 당시 「예수교신보」에 대한 일제의 탄압 명분은 “치안을 방해했다”는 것이었다. 압수된 「예수교신보」의 기사가 어떤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그 내용이 어떤 것이었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분명 반일(反日)의 성격이 강한 내용이었을 것이다. 이 사건은 한국 기독교 언론사(言論史)에서 일제의 탄압 제1장으로 기록되고 있다.

한일강제병합과 「예수교신보」의 종간 이후 한국의 남감리회와 북감리회는 과거 「죠션크리스도인회보」를 계승하는 의미에서 1911년 「그리스도회보」를 간행했다. 그러나 1910년대 한국 개신교 내의 활발한 에큐메니컬 운동과 연합사업의 분위기 속에서 1915년 초교파 연합신문인 「기독신보」의 간행과 더불어 이에 합류함으로써 역사의 소명을 다했다. 「기독신보」는 1915년부터 파시즘 시기인 1937년 폐간될 때까지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대표적 주간신문으로서 한국교회의 소식과 현대신학의 소개, 보편적 개신교 신앙의 형성과 교회일치에 크게 기여 했다. 초대 편집진에는 감리회 선교사 캐이블이 참여했으며, 1903년 원산대부흥의 주역인 하디 선교사가 10년간 사장을 맡기도 했다. 

세 번째로 국문 신학잡지는 1900년 12월에 존스 선교사에 의해 창간된 「신학월보」로부터 시작되었다. 「신학월보」는 감리회 한국인 사역자들의 양성과정이 체계화되는 과정에서 신학잡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펴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단순히 신학적인 글 외에도 「만국통일주일공과」를 게재해 기독교교육적 기능과 더불어 당대 한국교회와 사회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보도와 소식도 함께 공유하고 있어서 한국감리교회의 기관지 기능을 종합적으로 감당했음을 알 수 있다. 「신학월보」는 1910년 가을까지 간행되고, 이후 남북감리회가 연합으로 창간한 「그리스도회보」가 그 성격을 계승하게 되었다. 감리회가 간행하는 신학잡지의 기능은 1916년 2월 감리교회협성신학교에서 간행한 「신학세계」가 그 맥을 이었다. 「신학세계」는 보다 전문화된 신학학술지로서의 성격을 강화하면서 한국교회 신학발전에 기여했다. 「신학세계」는 일제말기 신학교 강제폐교와 함께 종간되었다가, 1952년 부산 피난지에서 속간되어 오늘날 「신학과 세계」로 이어오고 있다.   

 

「감리회보」에서 「기독교세계」까지

이상의 선교 초기 감리회 정기간행물의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았다. 한국근대사 속에서 한국감리교회는 문서운동과 출판선교의 효시와 선구자 역할을 담당했다. 아울러 처음에는 감리회의 독자적인 기관지 역할로 시작한 초기 정기간행물들이 한국교회 일치와 연합운동 과정에서 감리회만의 배타적 우위와 주도권만을 내세우기보다는 타교파들과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롬 8:28) 믿음으로 초교파적 연합잡지와 신문들의 탄생을 주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초기 감리교회의 에큐메니컬 출판운동의 전통과 정신은 오늘의 한국감리교회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이자 유산이며, 오늘의 「기독교세계」의 창간 정신으로까지 이어진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한국 감리교회 에큐메니컬운동의 빛나는 결실 중 하나로서, 1930년에 남·북 감리회가 통합하여 기독교조선감리회가 출범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조직의 출범으로 한국 감리회는 보다 견고한 신앙정체성 수립을 요청받았으며, 그 결과로 기독교조선감리회 「교리적 선언」, 「사회신경」 등이 채택될 수 있었다. 아울러 교회 현장에서의 제도적 정비와 시스템 구축, 교회들 간의 원활한 소통과 공교회성 확립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기독교조선감리회의 독자적인 기관지 창간도 필수적인 사업으로 상정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오늘날 「기독교세계」의 실제적 뿌리가 되는 「감리회보」였다. 

우리 교회 제도는 다른 교파와 달라서 교회 수효는 얼마가 되던지 각립(各立)된 것이 아니요 서로 연락되는 것이므로 일반 교회가 서로 교통하는 것은 우리가 사업을 해나가는데 극히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조선 감리교회가 조직될 적에 「감리회보」를 발행하기로 총회에서 작정하고 그 규정을 우리 장정 규칙에 넣었습니다. … 그리하여 금년부터 「감리회보」를 달마다 한 번씩 발행하여 총리원 각국 사업과 각 지방 정황과 우리 교회 안의 모든 기관에서 활동하는 모든 소식과 우리의 신앙생활에 유익한 사항을 여러분께 전하여 드리고자 하오니 우리 교회의 여러 형제 자매들은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같이하여 여러분의 기관 되는 「감리회보」를 이용하며 북돋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리회보」 발행에 대하여”, 「감리회보」, 창간호, 1933년 1월호, 14.) 

「감리회보」는 1931년 간행한 『기독교조선감리회 교리와 장정』에서 법제화한 대로 첫째 교회의 통신, 둘째 사업의 선전, 셋째 신자의 교양이라는 세 가지 목적과 성격을 지닌 감리회의 기관지로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감리회보」의 정체성은 앞선 역사에서 여러 제호와 형태로 간행된 다양한 정기간행물들의 역할을 종합적으로 계승하고, 새롭게 조직된 감리교회의 유기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매체로서 그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러나 일제의 파시즘 말기 감리회, 장로회, 구세군, 성결교회 등이 연합한 기독교신문협회에서 간행하는 「기독교신문」에 통폐합(1942년 4월) 되는 굴종의 시기를 거쳐야 했으며, 1944년 8월 15일 이 신문마저도 폐간되었다. 해방 이후 1947년 12월 「조선감리회보」가 복간되었지만 이 또한 민족의 분단과 파벌 분열 속에 갈등과 대결을 대변하는 대변지 역할로 전락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1949년 4월 재건파와 복흥파의 합동과 화해를 통해 1949년 8월호부터 「대한감리회보」로 변경되어 교회와 사회를 향해 화해와 일치의 가치를 전달하는 본래의 목적에 부합하는 간행물로 본래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대한감리회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재출발한 기쁨도 잠시, 이내 6.25전쟁이라는 민족적 비극 속에서 다시 발행 중단과 속간을 반복하였으며, 1954년에는 류형기 감독의 자격을 문제 삼은 호헌 측이 분열되면서 1955년부터 「호헌감리회보」가 간행되어 교단 분열의 아픔을 고스란히 끌어안아야 했다. 이러한 분열의 아픔 속에서 총리원 측에서는 1959년 1월부터 「감리회보」를 「감리교생활」이라는 제호로 변경하여 잡지의 성격과 의미의 전환을 모색했다. 기존 「감리회보」에 「기독교교육연구」을 합하고, 새롭게 발간 계획 중이던 「목회월보」의 기능까지 통합한 보다 큰 규모의 종합지로 개편을 시도한 것이었다. 이렇게 바뀌었던 「감리교생활」은 1964년 12월에 감리회의 교파적 명칭을 벗고 보다 보편적인 개신교 신앙과 에큐메니즘을 지향하는 「기독교세계」로 새로운 시작을 알리게 된다. 

 

「기독교세계」의 창간이 남긴 역사적 과제와 소명 

감리교회의 발전과 일반 기독교계, 나아가서는 민족 내지 인류 전체에게 보다 나은 공헌을 해 볼 길을 모색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문서를 통한 격의 없는 신속한 대화라고 생각하여 오랫동안 간절한 기도와 여러 사람의 의견과 동시에 협력을 구하여 오던 중, 금년 가을에 접어들면서 그 숙망을 성취할 기회가 닥쳐와서 드디어 주보로 「기독교세계」라는 새로운 이름 아래 우리 기관보가 첫걸음을 교계와 사회에 내디디게 되었다. …

이제는 때가 왔다. 어렵더라도 신속하고 정확한 보도와 기독교 교양에 시대적이고도 풍부한 재료와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다루어 보아야 할 세상의 여러 가지 문제를 서로 주고받을 문서운동이 일어날 때가 왔다. … 주님 나신 거룩한 날에 「기독교세계」라는 귀한 어린이를 탄생시킨 것이다. (“발행취지문”, 「기독교세계」, 1964년 12월호, 8.)

1964년 성탄절을 즈음하여 「감리교생활」에서 「기독교세계」로 새로운 이름을 짓고 작성한 “발행취지문”의 일부이다. 「기독교세계」가 언론매체로서 고민한 중요한 키워드는 “문서를 통한 격의 없는 신속한 대화”였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상을 담아내고자 했던 저널리즘의 고민이 묻어난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이해영 목사도 새 창간호의 축사에서 “아직도 편협한 교파 중심주의와 독선적 분파주의가 마음의 문을 닫고 사귐의 길을 막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이 시대에 가장 아쉬운 것은 만남과 대화”이며 「기독교세계」가 그러한 “만남과 대화의 장소”가 되어주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기독교세계」가 “만남과 대화의 장”이 되기 위해서는 존 웨슬리의 에큐메니컬 정신과 복음 안에서의 일치신앙을 통한 상호 간의 다름과 차이를 극복하고 소통하는 것이 전제 되어야 할 것이다. 제호를 바꾼 「기독교세계」 창간호를 향한 각계 인사들의 축하글 속에 바로 그러한 「기독교세계」에 대한 한국교회와 사회의 바람과 기대가 역력히 깃들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기독교세계」가 안은 포부와 가진 이상 실현에 만난(萬難)을 이기고 매진하여 한국 교계는 물론 거족적으로 평화, 사랑, 구원의 봉화가 되기를 빕니다. (류형기[전 감리회 감독], “민족 구원의 횃불 : 문서운동에 앞장서서”, 「기독교세계」, 1964년 12월호, 8.)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어두움이 충만하다. 학원 내에서 같은 진리를 탐구하는 벗들이 서로 다른 배경 때문에 의심한다. 정책과 정강을 내세우고 국민 앞에서 신임을 물어야할 대임(大任)을 지닌 한 정당 내의 기본동지(基本同志)들 사이에 “사귐”이 없고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균열과 갖은 추태가 연출되고 있다. 심지어는 기독교계 안에서의 갈등과 분열 때문에 전도의 길조차 막히는 일이 없지 않다. 

부정 불의 부패 신악(新惡)과 구악(舊惡)이 다 사라진 빛의 세계에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다운 교제와 사랑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곧 「기독교세계」인 것이다. 그러한 표제를 가진 본지는 문자 그대로 빛을 주어 이 나라를 그리스도의 세계화할 사명이 있는 줄 안다. (정일형[국회의원], “참된 소망과 빛을 주라”, 「기독교세계」, 1964년 12월호, 5.) 

교회 기관 잡지는 이 “에큐메니컬” 시대에 있어서 각 교파가 자기 자신의 생활을 돕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서로 여러분의 잡지를 읽음으로 서로 더 잘 이해하고 자기의 입장을 더 진실히 판단함에 도움을 받고 서로 감화를 받을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기독교세계」는 감리교 이외의 다른 교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리처드 러드[성공회 신부], “교파적 특생을 존중하면서”, 「기독교세계」, 1964년 12월호, 5.) 

분열과 대립으로 상처투성이가 된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고된 시련을 극복하고 그리스도의 정신 아래 사랑과 이해를 깊이 하고 인화와 일치의 본을 보여준 감리교회의 오늘을 위하여  … 「기독교세계」도 국내에 있는 프로테스탄트교회와의 친선과 연합을 긴밀히 하며 세계교회와의 호흡과 우의를 증진하며 복음을 위한 공동의 사명에 전진하는 최전선의 기수가 되어 줄 것을 믿습니다.(이해영[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만남과 대화의 광장이 되라”, 「기독교세계」, 1964년 12월호, 8.)

금번 「감리교생활」이 그러한 교파적인 테두리를 벗어나 상당히 포괄적인 이름인 「기독교세계」로 그 제호부터 바꾸었다는 사실은 감리교회가 얼마나 에큐메니칼하고 진취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도 남음이 있다. … 「기독교세계」의 앞으로의 발전 여부는 그 내용에 있다고 본다. 「기독교세계」지를 통해서 세계와 세계교회, 한국과 한국교회를 보여줌과 동시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보여줌으로써 오늘날 세계가 얼마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으며 그 결과 이 세계가 어떠한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깨닫고 있으며 우리의 살길이 무엇임을 알게 하는데 이 기관지의 존재 이유가 있다고 본다. (박대선 [연세대 총장], “세계와 세계교회를 보이라”, 「기독교세계」, 1964년 12월호, 8.)

김교신 선생은 「성서조선」의 “창간사”에서 “다만 우리 마음의 전부를 차지하는 것은 ‘조선’ 두 글자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낼 제일 좋은 선물은 ‘성서’ 한 권뿐이니 둘 중의 하나를 버릴 수 없어서 된 것이 그 이름”이라고 말했다. 「기독교세계」의 제호를 정한 이들의 마음도 이에 빗대어 “다만 우리 마음의 전부를 차지하는 것은 ‘세계’ 두 글자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낼 제일 좋은 선물은 ‘기독교’ 뿐이니 둘 중의 하나를 버릴 수 없어서 된 것이 그 이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김교신이 그토록 사랑한 ‘조선’과 ‘성서’처럼, 「기독교세계」는 존 웨슬리의 선언 “세계는 나의 교구”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저널리즘의 표제로서 새롭게 구현한 것이리라. 

1964년 「기독교세계」의 “창간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미래의 나아갈 길을 선언했다. 

이제 「기독교세계」가 걸어 나갈 그 길을 밝히고자 한다. 1. 모든 교회에 봉사한다. 2. 기독교 교양을 함양한다. 3.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대변한다. 

「기독교세계」는 교회로 눈을 뜨게 하고 사회적 책임을 힘차게 대변하련다.

이제 「기독교세계」라는 씨는 뿌리어졌다. 열매를 따야겠다. 좋은 열매가 맺도록 매고 가꾸고 북돋고 좋은 거름을 주고 있는 힘을 다하여 부지런히 일할 것을 약속하면서 만천하 그리스도인들의 협력을 호소한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염원이 「기독교세계」의 염원이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분부를 「기독교세계」의 기치로 삼고 예수의 지휘대로 어디든지 돌진하려 한다.

대철 쇼펜하워는 신문을 일컬어 세계사의 초침이라고 말하였다. 산 기록이요, 가장 정확한 역사요, 인류의 위대한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라는 것이리라. 이제 「기독교세계」가 바로 이 땅의, 이 겨레의, 온 그리스도의 교회의 초침이 되고자 한다. (“창간사”, 「기독교세계」, 1964년 12월, 1.)

“창간사”의 정신에 비추어 볼 때, 오늘의 「기독교세계」는 균형감 있고 건강한 교회의 방향성과 나아갈 길을 제시하면서 교회에 봉사하는 매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현대사회의 새로운 학문적 도전과 시대적 이슈들을 열린 자세로 경청하고 토론하며, 감리교회의 전통과 관점으로 이들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독자들 스스로가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성숙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독교 교양을 함양하는 데 매진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저널리즘의 실천을 통해 교회와 세계, 신자 개인과 사회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한국교회가 사회 속의 어두운 현실과 소외된 이웃들의 삶의 자리를 늘 마주 볼 수 있도록 경종을 울려 주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세계」의 역사적 소명이 온전히 성취될 때 비로소, 현대 한국교회의 크리스천들이 “성숙한 그리스도인”과 “책임 있는 시민”이라는 실존적 두 정체성을 균형감 있게 조화하고 형성해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심자득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0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