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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된 무기력을 떨쳐버리고
김기석  |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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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9월 07일 (목) 02:56:54 [조회수 : 3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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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된 무기력을 떨쳐버리고

세상이 펄펄 끓고 있다. 기후 위기는 징후가 아니라 전면적 현실로 우리 앞에 당도했다. 만기가 도래한 약속어음처럼. 집중호우에 제방은 무너지고, 편리를 위해 만든 터널이 무덤으로 변한다. 벌목과 택지 개발이 이루어졌던 산은 흘러내린다. 흔히 재앙은 무차별적이라 말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해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떠오르고, 비도 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을 가리지 않지만 그 결과는 공평하지 않다. 재난의 일차적 희생자들은 늘 안전의 취약지대에 사는 이들이니 말이다.

우리의 살림살이를 위협하는 것은 자연재해만이 아니다. 철근을 빼먹고 지은 아파트가 곳곳에 서 있다. 순살 아파트라는 신조어가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우리 시대의 슬픔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책임을 져야 할 당국자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남 탓하기에 분주하다. 무엇이든 정치화하는 순간 책임 소재는 불분명해지고 거친 싸움판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비관주의가 스멀스멀 우리 의식을 파고 든다. 공공성에 대한 의식의 쇠퇴를 차가운 미소로 반기는 이들이 있다. 누릴 것을 다 누리고 사는 이들이다.

역사의 과정에 의해 이미 심판을 받은 이들이 속속 귀환하고 있다. 숨 죽여 살아왔던 시간에 대한 복수심 때문인지 그들은 이전보다 더 독한 말로 무장하고 있다. 그들의 입에서 가르는 말, 조롱하는 말, 격동하는 말이 폭죽처럼 터져 나온다. 일단의 사람들은 시원하다고 말하고, 다른 이들은 이를 간다.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할 것 같지 않다. 가름의 대상이 된 이들은 처음에는 분노하지만 똑같은 일이 뻔뻔할 정도로 반복되면 실소를 터뜨리고 만다. 학습된 무기력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절망감에 포획되는 순간 역사의 퇴행은 기정사실이 된다.

열 여섯 살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살아난 에디트 에바 에게는 한동안 과거로부터 숨기 위해 몸부림쳤다. 과거에 잡아먹힐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고통을 계속 감추는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수용하기를 거부하는 것들은 고통을 줄여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고한 감옥이 되어 우리를 가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는 과거의 중력을 떨쳐버리고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라는 책에서 그는 ‘희생되는 것victimization’과 ‘희생자 의식victimhood’을 구분한다. 희생되는 것은 나의 의지나 선택과는 상관없이 외부로부터 발생한다. 희생자 의식은 내면으로부터 발생한다. 그는 ‘자기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우리를 희생자로 만들 수 없다’고 말한다. 어떤 일이 닥쳐오든 우리 앞에는 언제나 선택의 가능성이 주어진다. 절망의 심연에 속절없이 끌려 들어갈 것인가,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명랑하게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인가?
  
수해 복구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분들을 본다. 토사와 탁류가 밀려와 안온했던 삶의 자리를 파괴한 현장에서 그들은 피눈물을 흘렸지만, 절망감을 딛고 일어서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일하는 모습이 내게는 차라리 성스럽게 보인다. 자기 삶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희생자 의식에 삼키워지지 않을 묘책이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가 창조한 인물 ‘돈키호테’는 자신을 편력기사로 생각하는 일종의 광인이다.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여 돌진하고, 양떼를 무도한 군인으로 생각하고 칼을 휘두른다. 객줏집을 성으로 오인하기도 한다. 그는 정상의 범주에 들지 못한다. 그러나 그를 섬기는 산초 판사는 돈키호테가 꿍심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본다. 그가 사방에서 두들겨 맞고 불운한 일을 겪으면서도 차마 주인 곁을 떠날 수 없는 것은 돈키호테가 누구에게도 나쁜 짓은 할 줄 모르고, 악의라고는 전혀 없는 순박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돈키호테 또한 자기가 겪는 불운이 마법사들의 농간이라고 굳게 믿지만 그 때문에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 “진정한 용기를 이길 마법이 있겠는가? 마법사들이 내게서 행운을 앗아 갈 수는 있을지 몰라도 노력과 용기를 빼앗지는 못할 것이야.” 이 담대한 희망이 그를 위대한 존재로 만들어준다. 학습된 무기력에서 벗어나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도래할 수 있는 조그마한 틈을 만들어야 한다. ‘새 일은 늘 틈에서 벌어진다’(김지하)지 않던가.

(* 2023/08/05일자 경향신문 '사유와 성찰'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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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1.54.116.232)
2023-09-07 07:32:46
위대한 돈 키호테!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이 돈 키호테라고 한다. 돈 키호테는 읽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다양한 상상력을 불러오는 인물이다.

키호테는 이미 몰락해버린 기사도 정신을 그리워하는 한 狂人으로서 原중세의 기사도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외친다. 중세의 타락에 반발하여 그리스-로마 시대로 되돌아가자고 하는 외침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原중세가 타락만 한 것도 아니고 충분히 본받을 점도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기사도 정신이라는 거다. 중세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키호테가 탄생했다.

둘시네아를 완전히 천덕꾸러기 취급하는 민중에게 “이 버러지들아, 기사도 정신을 잃다보니 숙녀를 아무렇게나 취급하구나!”면서 헌 칼을 빼들고 공격에 나섰다가 한방에 나가떨어지기도 했다. 예수님의 “죄 없는 자, 돌로 이 여인을 쳐라!”라는 일갈과 키호테가 둘시네아를 감싸면서 날린 민중을 향한 질타는 전혀 차이가 없다.

세르반테스는 거의 사라져버린 原중세의 기사도 정신을 그리워했고, 그 자신이 실제로 전쟁터에 나가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늙은이들이 “나 때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는 이러이러했다!”고 회한에 젖어 현재 세계보다는 과거 세계를 그리워하는 것과도 전혀 차이가 없다.

키호테는, 흘러가버린 과거 중에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좋은 교훈마저도 내다버리고 그저 안락한 생활에 만족하는 민중의 나태를 어릿광대짓으로 희화화해서 풍차를 향해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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