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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망각(Memory & Oblivion)민족의 온전한 보전과 발전,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바라보며 결단해야
김홍섭  |  ihom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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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9월 06일 (수) 10:39:28
최종편집 : 2023년 09월 07일 (목) 03:02:24 [조회수 : 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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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사람과 다양한 일과 만나게 된다. 새로운 공간과 일상은 물론 비일상의 순간들과도 마주치게 된다. 그런 만남들은 우리에게 즐겁고 기쁜 감정을 주기도 하지만 아쉽고 슬픈 느낌으로 남아있기도 한다. 너무 기뻐 눈물이 날 정도의 생에 최고의 순간이 있고 우리는 이를 오래 기억(memory)하기를 원한다. 오래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기념일은 정하여 매번 행사와 관련 사람들을 모아 잔치를 벌이며 즐거워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픈 일이나 슬픈 기억은 잊고자 한다. 오브리비언(oblivion,망각이란 뜻의 영어)과 프랑스어 망각(oublier)은 라틴어 Oblivisci(to forget)가 어원이다. 망각은 모든 것을 잊는다는 의미이며, 꿈도 꾸지 않는 깊은 잠이나 죽음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는 기억과 망각의 시간을 살고 있다. 많은 사건, 사고에서 우리는 잊지 말고 기억하기를 다짐한다. 세월호 때 우리 사회는 “잊지 않을 께”라고 말했다. 젊은 학생들의 맑고 청순한 얼굴들과 그들의 좌절된 꿈을 기억하리라고 다짐했다. 그런 사고를 낳은 우리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사회악을 고발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과 무관하게 유사한 사고가 이태원에서도 일어났다. 대낮에 젊고 아름다운 젊음들이 최소한의 대비와 행정적 조치 없이 사라져 갔다. 어떤 충분하고 납득할 만한 조치나 책임짐 없이 시간과 더불어 망각되어 가고 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언덕에 자리 잡은 '야드 바셈(Yad Vashem)'이 있다. ‘야드'는 "기억, 기념"이란 뜻이고 셈은 "이름"이란 뜻이다. 나치의 폭압으로 희생당한 유대인들을 기억하기 위한 국가기념관이다. 나치에 의해 학살된 600만 명의 유태인을 추모하기 위해 예루살렘 헤르츨(T. Herzl, 히브리어: בִּנְיָמִין זְאֵב תֵּאוֹדוֹר הֶרְצְל 빈야민 제에브 테오도르 헤르츨, 1860~1904) 언덕에 설립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흔히 “나치를 용서한다 그러나 영원히 기억한다(잊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억은 힘이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한 놀이와 맛있는 음식의 기억은 우리의 평생에 남아 있다. 첫사랑의 추억과 이별의 아픔은 깊고 큰 위로와 상흔을 남긴다. 기억은 우리를 지탱하는 뼈대이지만 동시에 마음과 영혼을 누르고 지배하는 무거운 짐이자 형벌일 때도 있다. 그래서 기쁘고 좋은 기억은 오래 기억하고 슬프고 억울한 일들은 얼른 잊어버리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정신의학자는 말한다.

가을은 결실과 조락의 계절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추억들을 기억하며 반추하여 우리의 존재의 근간이 되는 과거의 경험들과 사람들을 기억하는 일을 아름답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것을 다 기억한다면 우리는 아마 속이 터져서 죽게 될지도 모른다. 망각은 사람을 살게 하는 묘약이기도 하다. 한 때 국민의 사랑을 받던 여배우 윤정희가 망각의 강을 건너가 아끼던 사람들께 아쉬움과 슬픔을 주고 갔다.

그리스 신화에서 레테(Lethe)는 망각의 여신이다. 그리스 신화 속의 지하 하데스 왕국의 다섯 강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아케론(Acheron)은 슬픔/비통, 코키투스(Cocytus)는 탄식/비탄, 플레게톤(Phlegethon)은 불, 레테(Lethe)는 망각, 스틱스(Styx)는 증오를 상징한다. 레테는 '망각'이라는 개념을 의인화한 신이며 저승에는 이 여신의 이름을 딴 강이 흐르고 있다고 한다. 레테의 강을 건넘으로 이승의 기억을 지우고 저승으로 들어가게 된다. 망자는 명계로 가면서 레테의 강물을 한 모금씩 마시며 강을 건너게 되는데, 강물을 마신 망자는 과거의 모든 기억을 지우고 전생의 번뇌를 잊게 된다. 단테의 '신곡'에도 레테가 연옥의 산꼭대기에 있어 레테의 강 건너 저쪽에 천국의 문이 있다고 쓴다. 연옥에서 죄를 씻은 영혼들이 레테의 강에 몸을 적시고 모든 죄의 기억을 지운 뒤 천국에 오른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기억과 망각의 갈등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제의 핍박과 위안부 문제, 강제 징용과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 창씨개명(創氏改名)과 역사날조 등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기억과 망각의 갈등에 있다. 근래에는 독립운동과 홍범도(洪範圖) 장군 등 독립투사들의 과거 이력을 기억할지 망각할지를 놓고 갈등하고 있다. 전체주의와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세계사에서 우리는 대표적인 두 국가들을 생각하게 된다. 1.2차 대전을 일으킨 제국주의와 나치 독일과 군국주의와 천황제의 일본 그리고 그 반대편의 이스라엘과 한국을 들 수 있다. 독일은 브란트(Willy Brandt, 1913~1992)의 동방정책 이후 끝없는 역사 반성과 이스라엘 등 피해국에 사죄를 지속하고, 나치를 드러내는 행동을 처벌하는 입법까지 완비해 유럽제국의 이해와 동조를 이끌어 냈고, 이를 기반으로 독일 통일을 이루었다. 반면에 일본은 난징사건, 관동살인사건, 위안부, 강제징용 등 군국주의 시대에 저지른 악행에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고 있으며, 세계가 인정하고 제정한 평화헌법을 고쳐 다시 군사 대국화를 지향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독일로 부터의 피해를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하려 전방위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청산되지 않은 일제잔재로, 이승만 정부의 친일세력 재기용으로 역사와 민족에 대한 의식과 이해가 갈라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가 과거 역사의 무엇을 망각하고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는 과거와 오늘은 물론 미래 우리역사와 후손들의 삶과 평화를 결정하는 중대한 결정이 될 것이다. 더구나 이념에 의에 70여년 찢어진 강토와 분노로 무장한 남북한의 세력들에 의해서 전쟁의 위기가 높아가는 이 땅에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망각할 것인가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미래지향적으로 그리고 민족의 온전한 보전과 발전, 더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보며 현재를 이해하고 결단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분단 고착화와 영구화는 주변의 거의 모든 나라가 원하는 바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오직 우리 한민족만이 결단하고, 주변의 협력을 통해 우리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관점이다. 독일 통일의 마지막 난관을 극복한 것은 전 시민들의 왜침 “우리는 한 민족이다( Wir Sind ein Volk)”이었다.

 

   
▲ 넋전춤, 이해균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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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1.54.116.232)
2023-09-07 05:05:33
선택적 기억과 선택적 망각
1. 일제시대를 어떻게 봐야하는가?

고종황제가 이왕직 세습권과 각종 이권 보장받고 일본천황에게 나라를 갖다 바쳤다. 그 후 황제는 일본에 적극 협조하면서도 국권을 되찾고자 노력한 흔적도 보인다.

광복군, 김일성군, 홍범도-김좌진군 등이 일본과 무장 항쟁에 나섰다. 역사학자에 따라 다른 데 일본과의 무장 항쟁에서 사살한 일본군의 수는 적게는 100명에서 최대 1,000명으로 나와 있다. 이들은 극소수다.

반면 일본에 협조한 민중이 대다수다. 즉 백선엽, 박정희, 정일권 등이 일본에 적극 협조했는데 징용이 아닌 자원입대로 일본군을 모집할 때 그 경쟁률이 요즈음 9급공무원 경쟁률을 능가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44년 중반 이후에나 강제에 의한 징용이 이루어졌는데 징용에 의해 일본군이 된 숫자보다 자원입대자가 월등하게 많다. 이들은 일본군으로 입대하여 천황폐하만세를 외치며 미군 등 연합군을 상태로 싸웠다. 미군 등을 많이 죽였고 자신도 죽었는데 지금 일본 야스쿠니신사에만 해도 조선인병사 20,000명이 잠들어 있다. 천황폐하만세를 외치던 박정희는 살아남았지만, 천황폐하만세를 외치던 이름 없는 병사 20,000명 이상은 전사했다. 이들은 미군을 죽이려다 도리어 죽었다.

2. 우리는 왜 분단 당했나?

독일의 식민지 프랑스, 일본의 식민지 조선을 비교해보면 그 답이 명확하게 나온다.

프랑스는 패망 전에 독일군에게 엄청난 희생을 당했고 패망 후에는 드골이 망명정부를 세웠다. 각종 레지스탕스, 드골군에 의한 상륙작전, 파리 탈환 후 국력 재정비 후 독일로의 진격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독일 패망 후 전후 처리할 때 프랑스는 당당하게 프랑스 핏값을 요구했다. 프랑스 핏값을 인정한 연합군이 독일을 4등분하여 하나를 프랑스에게 주었다. 프랑스는 전쟁에서 흘린 피의 대가를 보상받았다.

조선은 일본군을 상대로 일본군을 죽인 숫자는 최소 100명, 최대 1,000명이다. 반면 미군 등 연합군을 죽이려다 도리어 죽은 숫자가 최소 20,000명이다. 즉 우리는 일본의 부역국가로서 미군 등 연합군을 상대로 싸웠다, 일본군을 상대로 싸운 병사에 비해 미군을 상태로 싸운 병사가 월등한데다가 김구의 임정군은 일본군을 상대로 전쟁하려다가 준비부족으로 주저앉았고, 김일성군은 소련에 투항하여 발언권이 전혀 없었다.

프랑스는 연합군에게 당당하게 프랑스의 핏 값을 내놔라고 요구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오히려 미군의 핏 값을 물어주어야 할 처지가 되었다. 그 결과가 한반도 분할이다. 대일본제국의 부역국가로서 미군에게 총부리를 겨눈 결과 美蘇간의 한반도 분할시 찍소리도 할 수 없었다. 임정은 미군이 인정해주지도 않아서 개별자격으로 고국에 돌아와야 했으며 김일성은 소련에 아부하여 한반도의 반 쪼가리라도 통치하기 위하여 親託 나팔수가 되었다. 훗날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도 조선은 일본의 부역국가라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프랑스는 독일에 항전한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3. 우리는 선택적 기억과 선택적 망각으로 自慰하고 있다

극소수 항일투쟁에 참여한 홍범도, 김좌진, 이승만, 김일성, 김구, 김준엽 등을 제외하면 우리백성은 고종황제의 뒤를 이은 천황폐하를 받들어 모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지금 북한이 천황폐하의 뒤를 이은 김씨왕조를 받들어 모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걸 보면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다. 조선일보 호외판은 6.25때 김일성이 서울을 점령하자 “김일성 장군 만세!”라고 했으니까. 노예근성이 우리 DNA의 하나다.

해방되자 95%가 일본에 복종, 5%가 일본에 항거한 역사적 진실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너나 할 것 없이 항일 투사 아니면 일본에 돌이라도 하나 던졌다는 식으로 면피하고 있다.

북한은 김일성이 나뭇잎으로 압록강을 건넜다는 전설에 심취했고, 한국은 95% 친일보다는 5% 항일을 각색한 국뽕 교과서만 보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는데... 역사적 진실을 파고드니 참으로 참담하였다.

김일성은 소련에 대놓고 아부하여 소련이 하자는 대로 곡두각시 노릇했으나, 이승만은 미국이 한반도에서 아예 손을 떼려한 것을 되돌려 반 쪼가리라도 차지하게끔 외교전을 펼쳤다.

국뽕에 젖어 우리가 대단했던 것처럼 우쭐거리는 것에 앞서서 우리가 미군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는데 미군이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고 소련이 전부 다 먹으려는 한반도의 반 쪼가리라도 지켜준데 대해 감사부터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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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1.54.116.232)
2023-09-07 16:20:46
2차세계대전 後 舊조선의 정확한 지위는? 역사바로세우기는? 남북 초기내각 비교 그리고 통일은?
1. 舊조선은 舊시암과 함께 일본의 부역국가

샌프란시스코 협정(1951년 9월 8일) 당시 舊조선은 오스트리아, 핀란드, 이탈리아, 발트3국, 태국(舊시암)과 함께 <특수상태국>의 지위에 있었다. 즉 오스트리아, 핀란드, 이탈리아, 발트3국은 독일의 부역국가 신분이었고, 舊시암과 舊조선은 일본의 부역국가 신분이었다.

연합국에게 독일, 일본이 적성국이었고 오스트리아, 핀란드, 이탈리아, 발트3국, 한국, 태국은 준적성국이었다. 이 준적성국을 <특수상태국>이라고 한다. 舊조선은 일본과 함께 연합국에게 총부리를 겨눈 나라로 자리매김 되었다.

2. 진정한 역사바로세우기

한국이 準전범국으로서 일본에 부역하여 연합국에 총부리를 겨눈 사실에 대해 인정, 사죄부터 하는 게 진정한 역사바로세우기다.

※구조선이 일본과 함께 연합국에 총부리를 겨누었다는 근거자료

<1938년~1943년, 조선인 청년의 日本軍 자원입대 현황> 
1938년 400명 모집에 2900여 명 지원, 1939년 600명 모집에 1만2300여 명 지원, 1940년 3000명 모집에 8만4400여 명 지원,1941년 3000명 모집에 14만4700여 명 지원, 1942년 4500명 모집에 25만4300여 명 지원, 1943년 5330명 모집에 30만3400여 명 지원/ 일본이 전시징용을 한반도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은 1944년 9월 이후인데... 그 이전에는 강제가 아닌 일본군 자원입대 모집에 매년 수십만 명이 일본군이 되기 위해 줄을 섰다.

<싱가포르 이광요 수상의 목격담>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조선인은 일본군복을 입고 싱가포르를 함락시킨 침략의 협력자였다." 

3. 남북 초기 내각 비교

*대통령-이승만(李承晩, 상해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부통령-이시영(李始榮, 임정내무총장)
   *국무총리*국방장관-이범석(李範奭, 광복군 참모장)
   *국회의장-신익희(申翼熙, 임정내무총장)
   *대법원장-김병로(金炳魯, 항일변호사)
   *무임소장관-이윤영(李允榮, 국내항일)
   *무임소 장관-이청천(李靑天*광복군 총사령관)
   *외무장관-장택상(張澤相, 청구구락부사건)
   *내무장관-윤치영(尹致映, 홍업구락부사건)
   *법무장관-이 인(李 仁, 항일변호사, 한글학회사건)
   *재무장관-김도연(金度演, 2.8독립사건)
   *상공장관-임영신(任永信, 독립운동가-교육가)
   *문교장관-안호상(安浩相, 항일교육)
   *사회장관-전진한(錢鎭漢, 국내항일)
   *체신장관-윤석구(尹錫龜, 국내항일, 6.25전쟁 중 인민군에게 총살)
   *교통장관-민희식(閔熙植, 재미항일)
   *총무처장-김병연(국내항일)
   *기획처장-이순탁(국내항일)
   *공보처장-김동성(국내항일)
  
   ▲북한 김일성 내각의 친일파
  
   *김영주-북한 부주석, 당시 서열 2위, 김일성 동생 (일제시대 헌병 보조원)
   *장헌근-북한 임시 인민위원회 사법부장, 당시 서열 10위 (일제시대 중추원 참의)
   *강양욱-북한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당시 서열 11위 (일제시대 도의원)
   *정국은-북한 문화선전성 부부상 (아사히 서울지국 기자)
   *김정제-북한 보위성 부상 (일제시대 양주군수)
   *조일명-북한 문화선전성 부상 (친일단체 ‘대화숙’ 출신, 학도병 지원유세 주도)
   *홍명희-북한 부수상 (일제시대 임전대책협의회 가입 활동)
   *이 활-북한군 초대공군 사령관 (일제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
   *허민국-북한 인민군 9사단장 (일제시대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
   *강치우-북한 인민군 기술 부사단장 (일제시대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
   *김달삼-조선로동당 4.3사건 주동자 (일제시대 소위)
   *박팔양-북한 노동신문 창간발기인, 노동신문 편집부장 (일제시대 만선일보 편집부장)
   *한낙규-북한 김일성대 교수 (일제시대 검찰총장)
   *정준택-북한 행정10국 산업국장 (일제시대 광산지배인 출신, 일본군 복무)
   *한희진-북한 임시인민위원회 교통국장 (일제시대 함흥철도 국장)
   *이승엽-남조선 로동당 서열 2위, 월북 후 빨치산 유격투쟁 지도 (일제시대 식량수탈기관인 ‘식량영단’ 이사)

4. 통일은?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통일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즉 독일어를 쓰는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처럼 북한 따로 한국 따로 생각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영어를 사용하는 영국, 미국 식이다.

아마 이들이 사회의 주축이 되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가 더 이상 불리지 않게 되리라본다. 원래 한반도에는 여러 나라가 있었다. 그걸 김유신과 왕건이 통합하여 한민족이란 개념이 생겼다. 우리의 젊은이와는 결이 다르지만 북한이 역시 통합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호칭을 자주사용하고 더 나아가 한민족과 김일성민족은 다르다며 한민족에서 김일성민족으로 독립을 추구하고 있다.

최근 젊은이들의 북한에 대한 태도나 북한이 김일성민족독립, 대한민국호칭 등이 맞물려 통일 움직임은 이전 세대보다는 동력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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