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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물결 충북연회 '공교회 회복을 위한 성서신학적 고찰' 세미나'하나님 아버지 앞에 모든 사람이 형제 됨을 믿노라' 교리적선언
방현섭  |  racer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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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9월 05일 (화) 19:37:09
최종편집 : 2023년 09월 10일 (일) 00:02:57 [조회수 : 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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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회목회자모임 새물결(이하 새물결) 충북연회가 2023년 9월 4일(월) 충주베델교회(담임목사 황효덕)에서 세미나를 개최하였습니다.

이번 세미나는 새물결의 기획사업인 공교회 회복 시리즈의 일환으로 협성대학교 이진경 교수님이 '공교회 회복을 위한 성서신학적 고찰'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였습니다.

세미나를 시작하기에 앞서 사랑의사도교회 김용민 목사님의 인도와 사회로 찬양과 기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양화교회 김형국 목사님이 기도를, 충북연회 대표인 황효덕 목사님이 환영 인사와 강사소개를 하였습니다.

 

이 교수님은 "교회가 세상을 향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공적교회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내세와 현세를 이원론적으로 구분하여 세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존재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데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되었다고"라고 전제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서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야 하며 비그리스도인들 앞에서 몸소 선한 일에 힘써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좋다고 여기는 일이 도리어 비방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그리스도를 이렇게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 (롬 14:16-18)

또한 1930년 한국 감리교회의 첫 번째 총회에서 천명한 교리적 선언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실현된 인류 사회가 천국임을 믿으며, 하나님 아버지 앞에 모든 사람이 형제 됨을 믿노라.'라고 고백한 것에서 한국감리교회의 역사적 뿌리를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이어서 “처음 감리교회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형제됨을 고백했다. 그리스도인들이 비그리스도인들과 분리되지 않고 그들과 더불어 형제로서 살아감을 고백했던 것이다. 불행한 비그리스도인 형제들을 돌보고, 불의로 억압받는 비그리스도인 형제를 위해 싸우며,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쳤던 것이다. 이런 감리교회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교회의 공교회적 성격을 보다 깊이 성찰하고 교회 공공성의 회복을 위해 부단히 애써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세미나 후에 질의응답을 통해 열띤 토론의 시간이 이어졌고 경신교회 김인철 목사님이 아름다운 찬양으로 특송을 하고 새물결 상임대표인 이경덕 목사님이 축도하심으로 모든 순서를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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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1.54.116.232)
2023-09-07 20:36:56
디트리히 본회퍼는 교회의 정체성를 버려도 좋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본회퍼는 교회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선교에 힘쓰는 사명보다는 인간의 공동생활을 위한 세속적 사명에 참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교회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사회에 들어가라는 통상적인 견해와는 다르다.

이러한 관점에 선다면, 이러한 관점이 옳다면 정의구현사제단의 함세웅 신부가 “노무현은 재림예수다!”라고 한 대중선동도 이해가 되고, 전광훈 목사가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고 하는 장광설도 이해가 되고, 백색교회의 일원인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가 히틀러에게 방아쇠를 당기려고 한 암살시도도 이해가 된다. 물론 디트리히 본회퍼와는 반대편에 선 제국교회의 루드히 뮐러 주교가 “히틀러는 재림예수다!”라고 한 대중선동도 이해가 된다.

나는 그동안 새물결이라는 단체가 또 다른 함세웅, 전광훈, 디트리히 본회퍼, 루드히 뮐러類라고 생각하여 상당한 적개심을 가져 될 수 있으면 쳐다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오늘 세미나를 보니 내가 잘못 판단했다.

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하여, 교회의 정체성을 가진 채 사회 속으로! 이 얼마나 근사하고 똑 부러진 이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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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176.198.203.172)
2023-09-08 00:39:10
본회퍼를 얼마나 공부하신 건지...
독일에서 본회퍼 전공하고 학위 받은 사람입니다..
본회퍼가 교회의 정체성을 버리고 세속적 사명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 건 본회퍼의 어느 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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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1.54.116.232)
2023-09-08 12:43:30
반갑습니다. 저도 2012년도에 뮌헨 Odeonsplatz 부근에 몇개월 체류했습니다.
2012년 오데온광장에서 개최된 Notte italiana 콘서트 보러갔다가 몇 개월 눌러지낸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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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1.54.116.232)
2023-09-08 11:44:05
본회퍼가 주장한 ‘die mundige Welt’ 에 의하면
본회퍼가 주장한 ‘die mundige Welt’ 에 의하면 성숙한 인간은 하나님이란 후견인이 없어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주장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감옥의 담장 위를 걷는 것이 고 이쪽과 저쪽의 줄타기인데 조금 더 나아가면 ‘무종교’가 된다. 본회퍼는 ‘사회성’에 집착하다보니 그리스도를 ‘타자를 위한 존재’로 정의한다. 기존교회가 그리스도를 ‘왕’으로 규정한 데 대한 반발인데 본회퍼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타자를 위한 존재며, 그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도 타자를 위한 존재이며, 이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공동체인 교회도 타자를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본회퍼의 견해에는 크게 두 가지 관점이 있다. 보수적인 기독교인과 진보적인 기독교인의 관점은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보수적, 진보적이란 종교적 관점이 아니고 정치적 관점을 말한다. 나는 보수적 인장인데 이 사상이 왜 위험하냐 하면 主가 하나님 副가 사회가 아니게 되면 하나님을 망각하고서라도 사회를 개혁하자는 데 치우치는 사람이 나타나게 마련이라는 거다. 대표적인 게 함세웅, 전광훈이다. 이들이 본회퍼를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데 이런 게 <본회퍼 사상의 결과물>이라서 위험하다는 거다.

본회퍼 입장에서는 히틀러가, 함세웅 입장에서는 박정희가, 전광훈 입장에서는 문재인이 ‘타자를 위한 교회’가 되기 위해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다. 즉 테러리스트도 불사해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본회퍼는 히틀러를 제거하려고 시도했고, 함세웅은 박정희뿐만 아니라 자기와 정치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우파계열 대통령은 누구라도 씹는다.

히틀러 타도, 박정희 타도, 문재인 타도가 지고지선은 아니다. 뭔 말이냐? 2차대전 말기에 독일민중 사이에서 이런 신화가 퍼졌다. 악마 스탈린을 막기 위해 연합군이 독일과 타협할 수도 있다. 즉 히틀러는 小악마고 스탈린이 大악마라는 거다. 이해하기 쉽게 한국의 예를 들겠다. 박정희는 小악마고 김일성이 大악마였다. 그러나 함세웅은 小악마 박정희는 타도하자면서 大악마 김일성에 대해서는 모른 채했다. 전광훈은 문재인 타도를 자기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키는 데 사용했다. 그기에 군중이 몰려들자 이 군중을 교회 재건축 방해에 동원하여 수백억원을 벌었다. 그러면서 전광훈은 틈틈이 본회퍼를 팔아 거룩한 행세를 했다. 본회퍼 암살미수사건 이외에도 큰 것만 해도 15차례나 암살사건이 계속 빈발하자 히틀러가 반역자를 처단하는 데 힘 쏟다가 정작 大악마를 막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에르빈 롬멜 장군도 히틀러에게 반역했다는 이유로 제거되었다. 유능한 지휘관은 사라지고 고만고만한 지휘관만 남아 전투를 벌이다가 大악마 스탈린에게 나라를 빼앗겨 독일이 4등분되었다.

나도 한때는 디트리히 본회퍼의 빠돌이였다. 그때는 세상을 너무 좁게 봤다. 세상을 조금 넓게 보니 ‘主가 하나님, 副가 사회’라도 로마주교나 목사가 장난을 치는데 ‘主가 사회, 副가 하나님’이어도 역시나 함세웅, 전광훈 등이 장난치는 것을 목격했다.

아우구스티누스, 루터와 칼뱅에 대한 비판 엄청나다. 본회퍼는 절대 비판하면 안 되는 지존인가? 라고 되묻고 싶습니다. 더 궁금한 사항은 시중에 본회퍼 찬양서적, 반대서적 골고루 사서 한번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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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 해석은 (176.198.203.172)
2023-09-08 16:14:28
본회퍼 해석은 자유지만..
본회퍼가 교회의 정체성을 버려도 좋다고 어느 글에서 언급했는지가 질문의 핵심이었는데 두루뭉술하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김경환 님의 본회퍼에 대한 입장은 전광훈이 본회퍼를 들먹이며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본회퍼를 찬양하건 비판하건 일단 가장 먼저 생각해야 되는 건 본회퍼가 어떻게 이야기했느냐 이겠지요? 그러나 본회퍼를 인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나중에 생각해야 될 문제라고 봅니다. 지금은 본회퍼의 신학적인 입장을 따지는 중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본회퍼를 절대 비판해서는 안될 존재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본회퍼를 공부하면서 본회퍼 신학의 부족한 부분을 느꼈으니까요.

die mündige Welt개념은 본회퍼가 베트게에게 보낸 1944년 6월 8일자 편지에서 제일 처음으로 찾아볼 수 있는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본회퍼가 감옥에 있을 당시에 이 개념을 처음 이야기했고 우리가 다 알듯이 아쉽게도 그 이후에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개념이지요. 그러니까 이 개념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본회퍼의 전체적인 입장을 충분히 숙고한 뒤에 이야기해야 하는 겁니다. 김경환 님께서는 die mündige Welt 개념을 마치 무신론적이고 비기독교적인 개념으로 생각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이는 한국개신교 신학계에서 본회퍼의 언급을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가르쳤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본회퍼가 이야기한 Die mündige Welt는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현대사회를 지칭합니다. 그러나 본회퍼는 반대로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이 현대사회가 그리스도와 복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Dietrich Bonhoeffer Werke Band. 8, 482쪽.) 왜냐하면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는 현대사회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동시에 우리를 떠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So führt uns unser Mündigwerden zu einer wahrhaftigeren Erkenntnis unser Lage vor Gott. Gott gibt uns zu wissen, dass wir leben müssen als solche, die mit dem Leben ohne Gott feritg werden. Der Gott, der mit uns ist, ist der Gott, der uns verlässt., DBW 8, 533쪽.)
본회퍼는 십자가에 무력하고 나약한 모습으로 달린 하나님, 현대사회에서 변두리로 내쳐진 하나님이야말로 성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이신 하나님의 존재라고 이해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질고를 짊어지시고 우리의 모든 슬픔을 당하신 분이야말로 우리를 진정으로 도우시는 하나님이시지요. (Gott lässt sich aus der Welt herausdrängen ans Kreuz, Gott ist ohnmächtig und schwach in der Welt und gerade und nur so ist er bei uns und hilft uns. DBW 8, 534쪽.) 그래서 본회퍼는 Die mündige Welt가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는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있고,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지요. 저 개념에 하나님이 없다거나,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잘못된 이해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신학을 쫓고 그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세상을 좁게 보는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이 또한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경환 님께서 본회퍼를 너무 좁게 이해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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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1.54.116.232)
2023-09-08 18:08:36
디트리히 본회퍼 어록을 읽어보고 판단!
“기존의 형태와 해석으로는 기독교가 곧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1935년)

“만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고는 우리는 성실할 수 없다” (1944년 7월 16일).

종교가 기독교의 한 의복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 - 그 의복은 여러 시대에서 매우 다양한 외관을 보이고 있지만 - 무종교적 기독교란 어떤 것일까? …우리는 종교 없이, 다시 말하면 형이상학이나 내면성 등의 시간적으로 제약된 전제 없이 어떻게 신에 대해서 말할 것인가? (1944년 4월 30일)

“우리들의 1900년에 걸친 기독교의 선교와 신학은 인간의 종교적 先驗性 위에 세워져 있다. 기독교는 항상 ‘종교’의 하나의 형식이었다.” (1944년 4월 30일)

도대체 구약성서에 영혼의 구원이라는 것이 문제된 곳이 있을까? 일체의 중심점이 이 세상에서의 신의 의와 신의 나라에 있는 것이 아닐까? (1944년 5월 5일)

나는 언제나 구약성서 적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 것 같다. …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때라야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허락되는 것이다. 인생과 이 세상이 상실되면 모든 것이 상실되고 종언을 고한다고 생각될 정도로 인생과 이 세상을 사랑할 때라야 비로소 죽은 자의 부활과 새로운 세계를 믿는 것이 허락된다. 하나님의 율법을 받아들일 때라야 비로소 언젠가 은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허락된다. … 너무나 조급하게 그리고 너무나 직접적으로 신약성서 적으로 존재하고 느끼려고 하는 것은 내 생각으로는 결코 基督者 적이 아니다. (1943년 12월 5일).

(나의 판단)

단지 히틀러 암살을 기도해서 ‘실제 행동’했다는 그 사실만으로 위 어록을 수용하기에는 나의 사상과는 너무 간격이 크다.

거기다가...

본회퍼 曰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이 세상과 화해하셨고, 그분은 이 세상을 하나님의 현실로 만드셨다. 윤리적인 삶은 바로 이 하나님의 현실에 그저 참여하는 것이다.” <본회퍼 저술 倫理學(Ethik)의 주제>

본회퍼 曰 희생자의 관점에서 판단을 한다면, 희생자를 위한 결단을 내린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정확한 출처는 모르겠다. 그런데 오래전 내 노트에 이렇게 적혀있다.)

예수 曰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쟁케 하러 왔다!”

앞서 ‘主 사회 副 하나님’의 경향으로 본회퍼式으로 접근하면 어떤 부정적인 결과가 도출되는지는 앞선 댓글에 있기 때문에 반복하지 않겠다.

앞에 어록에서는 보면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이 舊約的이라고 했다가 倫理學(Ethik)에서는 新約的으로 바라본다고 했다. 이 부분은 이 사람이 젊은 나이에 사망했기에 그의 사상이 완성되지 아니한 未完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비꼬아서 극단적인 예를 들겠다.

1. 하나님이 만든 현실에 그저 참여하는 게 윤리적이라는 삶이라는 주장은-(종교적도 아니다)- 하나님이 만든 히틀러(社會惡)에게 항거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인가?

2. 희생자의 관점에서 판단한다면 히틀러(社會惡)에게 항거하는 것은 어떤 면으로는 윤리적이다.

3. 예수님은 이 세상에 화평을 주기보다는 분란을 주겠다고 했는데 이 경우와 1, 2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본회퍼가 그의 사상이 완성되기 전에 일찍이 죽어 단편적으로 나타난 그의 사상을 그저 좋은 쪽으로만, 이용가치에 따라 필요한 쪽으로 몰아서 “본회퍼는 이렇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야말로 아주 웃기는 거다

예수님조차 화평보다는 분란을 주겠다고 하여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이게 도대체 무슨 뜻 일까하고 이 사람 저사람이 질문하고 비평하고 해석하고 있는데 똑 부러진 답은 없다. 그런데 애매하게 짝이 없는 본회퍼의 사상을 전세 낸 사람이 이것만이 본회퍼 사상 빼박이다라고 한다면, 이야말로 웃기는 일 아닌가?

적어도 니체처럼 어느 정도 완성된 철학을 가지고 논한다면 “아, 그래요? 알고 보니 그런 뜻도 있네요.”하면서 수긍하겠는데 기껏해야 반 쪼가리 완성된 철학을 전세 내어 이게 무조건 맞는다고 우기면 이것 참 난감하지요.

분명히 본회퍼는 ‘사회가 主 하나님이 副’라고 하였고 어떤 의미로, 어떤 조건에서, 이런 사상이 적용되는지 확실하게 책으로 내거나 釋明하기 전에 죽었기에 설령 내가 ‘사회가 主 하나님이 副’를 아주 부정적으로 본다고 하여 이것이 무조건 틀렸다고 한다면 이거야 말로 웃기는 거지요.

나는 본회퍼의 불완전한 사상이 남용되는 것이 못마땅해서 나름대로는 불완전하지만 그 위험성을 지적했고, 오래 전에 본회퍼 빠돌이 졸업했다. 한마디 덧붙이면 모딜리아니가 그림을 그렸는데 완성된 그림이 아닌 그리다만 그림을 붙들고 모딜리아니는 “무조건 이렇다!”라고 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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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1.54.116.232)
2023-09-08 18:38:48
쓰고 보니도 습관적 버릇이 나왔내요
우리모임이 있는 데 토론할 때 경처체를 일체 쓰지 않습니다. 너, 나 이렇게 합니다. 이게 습관이 배어서 댓글도 그렇게 달았네요. 양해바랍니다. "고객님, 커피님,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하는 엉터리 경어체에 완전히 질려서 우리모임에서는 나이 이런 것 따지지 않고, 김 성도, 김 간사, 이렇게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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