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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세바의 남편
최창균  |  onnure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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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8월 31일 (목) 13:36:24 [조회수 : 1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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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서는 수없이 많은 전우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비록 적군이기는 하지만 암몬 사람들이 죽는 것도 우리야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야는 요압 장군으로부터 다윗왕이 자신을 불렀다는 전갈을 받았다.

한참 전시상황인데 왕이 왜 나를 오라고 한 걸까? 우리야는 전장을 벗어나며 궁금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우리야는 한나절을 걸어서 다윗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왔다. 예루살렘은 전장과 달리 평온함 그 자체였다. 마을은 그 모습 그대로였다. 죽고 다치고 하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보였다.

예루살렘 궁으로 들어서자 그를 알아본 문지기와 군인들이 우리야를 반겨 주었다. 전쟁의 참혹한 현장에서 돌아온 용사에게 성에서는 진심 어린 환대를 해주었다. 우리야는 자신이 과연 누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가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자신은 순수 이스라엘 민족 출신이 아닌, 헷이라는 지역에서 온 이방인이었지만, 이스라엘에 귀화한 이후로 이스라엘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이방 사람 우리야는 이스라엘 안에서 출신성분이 아닌, 조국에 대한 충성심과 그의 출중한 능력으로써 정당한 대우를 받게 되었었다.

이스라엘 민족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왔으며, 좋은 사람도 소개받아 긴 연애 기간 끝에 결혼도 했다. 우리야의 피앙새가 너무 미인이다 보니, 친구들은 우리야를 공공의 적이라고 놀렸으며, 우리야의 별명이 도둑놈으로 바뀌기도 했다. 사실 우리야도 꽤 미남이었다. 그래서 배우자인 밧세바 또한 여자들 사이에서는 공공의 적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주위의 부러움과 질투를 받으며 부부가 되었고, 행복한 신혼생활을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자 우서방도 어쩔 수 없이 신혼집을 떠나 전장에 배치되었다. 비록 능력 있는 군인이었지만, 전쟁은 언제나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다. 눈물 흘리는 밧세바를 뒤로하고 우리야는 집과 예루살렘을 떠나 전투가 벌어지는 랍바 성으로 향했다.

그러던 그가 다윗왕의 부름을 받아 다윗 앞에 섰다. 다윗왕은 우리야의 그간의 노력을 칭찬하며, 요압의 안부와 군인들의 안부를 묻고 싸움터의 형편도 물었다. 우리야는 그러한 다윗에게 동료 군인들의 근황 및 전장의 상황에 대해서 충실하게 답변을 했다. 다윗은 상세히 알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런 다음에 다윗은 우리야에게 말하였다. "이제 그대의 집으로 내려가서 목욕을 하고 쉬어라." 우리야가 어전에서 물러가니, 왕은 음식도 선물로 함께 딸려서 보냈다. 그러나 우리야는 다윗의 호의를 따를 수가 없었다. 바로 얼마 전에도 자신의 친구가 전사하기도 했다. 동료들이 이렇게까지 고생하고 있는데, 그들을 저버리고 자신만 편히 집에서 쉬는 것을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야는 대궐 문간으로 갔다. 거기서 성문을 수비하는 군인들과 선물로 받은 음식을 저녁 식사로 함께 나누었다. 그리고는 결국 자기 집으로는 내려가지 않고, 그들과 함께 누워서 잤다. 다음날 다윗은 우리야가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오후에 우리야를 궁으로 다시 불렀다. 그리고는 우리야에게, 원정 길에서 돌아왔는데 왜 집으로 내려가지 않는지를 물었다.

우리야가 다윗에게 대답하였다.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모두 장막을 치고 지내며, 저의 상관이신 요압 장군과 임금님의 모든 신하가 벌판에서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저만 홀로 집으로 돌아가서, 먹고 마시고, 나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할 수가 있겠습니까? 임금님이 확실히 살아계심과 또 임금님의 생명을 걸고 맹세합니다. 그런 일은 제가 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답변을 하였다.

사실은 어느 날 저녁에, 다윗은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 왕궁의 옥상에 올라가서 거닐었다. 그 때에 그는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옥상에서 내려다 보았다. 그 여인은 아주 아름다웠다. 다윗은 신하를 보내서,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 보게 하였다. 다녀온 신하가, 그 여인은 엘리암의 딸로서,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라고 하였다.

엄연히 남편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서 그 여인을 데려왔다. 밧세바가 다윗에게로 오니, 다윗은 그 여인과 정을 통하였다. 밧세바는 왕의 명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그런 다음에 밧세바는 다시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얼마 뒤에 그 여인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서, 자기가 임신하였다는 사실을 알렸다.

다윗이 그 소식을 듣고는, 자신의 범죄함을 감추기 위해 요압에게 전갈을 보내서, 헷 사람 우리야를 왕궁으로 보내게 하였던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계획이 틀어지자 다시 우리야에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오늘은 날도 저물었으니, 여기에서 지내도록 하여라. 그러나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겠다."

그리하여 우리야는 그날 밤을 예루살렘에서 묵었다. 그 다음날, 다윗이 그를 불러다가, 자기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였다. 그래서 밧세바에게 보낼 참이었다. 그러나 저녁때에 그는 여전히 왕의 신하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고, 자기 집으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정말로 충직한 군인인 것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다윗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어쩔 수 없이 다음날 아침에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야의 편에 보냈다. 다윗은 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너희는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치열한 전선으로 앞세우고 나아갔다가, 너희만 그의 뒤로 물러나서, 그가 맞아서 죽게 하여라." 이 편지를 들고 우리야는 드디어 다윗을 떠나 전투가 벌어지는 랍바 성으로 다시 돌아왔다.

길을 걸으면서 우리야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에게는 다윗이 했던 얘기들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엄연히 전령이 있는데, 왜 전투병력인 자신을 오라고 해서 중간보고를 받은 걸까? 예루살렘에 왔지만 집에도 안 갈 정도로 충성을 보였는데, 어째서 다윗은 오히려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은 걸까? 왜 그리도 날 걱정해 준 걸까? 집에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 밧세바는 잘 있는 걸까?

우리야는 편지의 내용에 궁금증과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봉투를 조심스럽게 봉인을 떼어서 내용을 본 후, 봉인을 불에 녹여 감쪽같이 다시 붙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양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요압 장군과 다윗왕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여겼다.

우리야가 예루살렘에서 돌아와 건넨 편지를 읽으며 요압은 깜짝 놀랐다. 대체 왜 이렇게 충직한 군인을 사지로 몰라는 것인가? 요압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백 세에 낳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얘기를 들은 아브라함의 마음이 이랬을까? 요압은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눈물이 흐르고 또 흘렀다.

다음날 요압은 우리야를 전장으로 차마 보낼 수가 없었다. 우리야에게는 후방의 방어를 시켰다. 다음날도 우리야를 후방에 배치했다. 하지만 사흘째 되는 날, 요압은 어쩔 수 없이 결단을 내려야 했다. 마치 자신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처럼, 무겁고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우리야를 전방으로 보내게 되었다.

요압의 군대는 랍바에 있는 적의 성을 포위하고 있었다. 요압은 자기가 알고 있는 대로 적의 저항 세력이 가장 강한 곳에 우리야를 배치하였다. 그러자 그 성의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의 군인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그 동안에, 다윗의 부하들 쪽에서 군인 몇 사람이 쓰러져서 죽었고, 그 때에 헷 사람 우리야도 결국 전사하고 말았다.

우리야는 요압장군이 갑자기 자신을 최전방으로 보내는 까닭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원래 자신의 보직은 최전방 공격수가 아닌 허리 쪽 내지 후방 지원조였다. 체급으로 따지면 헤비급이 아닌 미들급으로서, 직접적인 전투보다는 팀으로 움직이며 밀리는 쪽을 커버하고 공수의 연결고리를 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었다. 손흥민보다는 이강인이나 김민재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날 우리야가 맡은 것은 최전방 공격수였다. 자신보다 체격이 큰 적군들과 육탄전을 벌여야 했다. 이것은 자신의 장점이 최대한 살아나지 않는, 다소 무모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야는 요압을 신뢰했으며 후방지원팀도 믿었다.

전투라는 것은 각개격파가 아니다. 팀웍에 살고 팀웍에 죽는다. 무기의 성능이나 사람 수가 좌우하지 않고, 팀의 결집능력과 작전이 실질적으로 승패를 좌우했다. 그렇게 해서 다윗과 요압의 군대는 여태까지 승승장구 해 왔다. 거기에서 키맨의 역할을 하는 중간 장수 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야였다.

우리야는 전투를 하며 이 상황들을 주도해 왔는데, 이날은 직접 앞에서 싸웠다. 이제 이 상황에서는 2진이 진입해 와야 한다. 그러면 1진은 물러나고 3진이 준비하게 된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왜 2진이 아직도 안 들어오는 거지?

우리야가 뒤를 돌아본 순간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의 뒤에는 2진이 안 오고, 오히려 적군이 둘러싸고 있었다. 뭐가 잘못된 것이지? 우리야는 쏟아져 들어오는 적들을 물리치며 끊임없이 뭐가 잘못됐는지를 복기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야는 더 이상의 공격을 멈추고 작전상 후퇴를 함으로써 자신의 동료들을 구출해야 했다.

우리야와 그 동료들은 후퇴를 감행했다. 한 팀은 후방 퇴로를 뚫고, 한 팀은 최대한 전방을 커버했다. 그렇게 1km 가까이 후퇴를 했는데도 지원병력은 오지 않았다. 우리야의 빠른 판단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도 사상자가 부지기수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지원병력은 오지 않았다. 우리야 또한 혼자 힘으로 고군분투하다가 결국은 쓰러졌다.

쓰러져 있는 우리야는 계속 생각했다. 오늘 작전은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다시 한번 창이 그의 몸속 깊숙이 들어왔다. 창을 맞으며 우리야는 문득 깨닫게 되었다. 다윗이 나를 죽이려 한 것이었구나! 또 한 번 창을 깊이 맞으며 죽음에 다다른 우리야는 영안이 열리고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눈앞에서 다윗이 밧세바를 간음하는 장면이 마치 영화처럼 펼쳐졌다.

우리야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분노하지 않았다. 자신이 밧세바를 보살펴주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며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다윗을 용서했다. 그리고 요압도 용서했다.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주여 다윗은 자신의 죄를 모릅니다. 그를 용서하시고 이스라엘의 영광을 위해 거듭나게 하소서. 또다시 창이 몸속으로 들어왔다.

우리야는 자신의 죽음 앞에 이르러서까지 타인을 저주하고 싶지 않았다. 분노하며 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았다. “주님이 주신 생명, 이제 거둬가셔도 저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사랑하는 밧세바와 인연을 맺게 해 주셨던 것 감사합니다. 내가 없더라도 누군가가 밧세바를 다시 행복하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다윗왕의 좋은 면만 기억하며 떠나겠습니다. 나의 영혼을 주님께 의탁합니다.”

그렇게 감사하고 축복하는 동안, 창이 또 들어왔다. 하지만 우리야는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되었고, 하늘이 열리고 주의 천사가 자신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우리야가 더는 움직이지 못하게 됨으로써, 그날의 전투는 끝났다. 적들도 우리야의 전사에 경의를 표하며 남은 부대원의 후퇴에 퇴로를 열어 주었다.

요압은 우리야의 전사 소식을 들으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전사자들을 수습할 수 있는 데까지 수습하고 전열을 정비했으며, 다음 전투를 또 준비했다. 그리고는 다윗에게 정기적인 보고를 위해 전령을 보냈다. 요압은 항상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서 전쟁의 상황을 모두 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요압은 전령에게 추가적인 지시사항을 얘기했다. "네가 이번 전쟁의 상황을 모두 임금님께 말씀드리고 났을 때에, 임금님이 화를 내시며 네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왜 그토록 성에 가까이 가서 싸웠느냐? 적의 성벽 위에서 적병들이 활을 쏠 줄도 몰랐단 말이냐? 여룹베셋의 아들 아비멜렉을 누가 쳐서 죽였느냐? 어떤 여자가 성벽 위에서 그의 머리 위로 맷돌 위짝을 던져서, 그가 데벳스에서 죽지 않았느냐? 그런 것을 알면서, 너희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성벽에 가까이 갔느냐?' 하시면, 너는 '임금님의 부하 헷 사람 우리야도 죽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라는 얘기를 할 것을 주문했다.

전령이 그 지시사항을 듣고 요압을 떠나 다윗에게 이르러서, 요압이 심부름을 보내면서 일러준 말을 모두 전하였다. 전령은 다윗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의 적은 우리보다 강하였습니다. 적이 우리와 싸우려고 평지로 나왔으므로, 우리는 적들을 성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 성문 가까이까지 적들을 밀어붙였습니다. 그 때에 성벽 위에 있는 적들이 임금님의 부하들에게 활을 쏘았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의 부하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 죽었고, 임금님의 부하인 헷 사람 우리야도 죽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사상자가 많았다는 얘기에 꾸짖지 않은 채 전령에게 말하였다. "너는 요압에게, 칼은 이 편도 죽이고 저 편도 죽이기 마련이니, 이번 일로 조금도 걱정하지 말라고 전하여라. 오히려 그 성을 계속 맹렬히 공격하여서 무너뜨리라고 전하여, 요압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하여라." 하고 용기를 북돋는 얘기를 했다.

그날에 우리야는 백 명의 전투 요원과 함께 출정했으나, 후방지원팀의 협조를 받지 못하여 절반에 해당하는 50명이 전사했다. 25명이 부상을 당해 포로로 잡혔고, 25명만이 귀환했다. 이스라엘 용사들은 우리야의 전사 소식에 망연자실한 채 전의를 상실했고, 결국 전투를 포기하기로 했다.

요압은 랍바성에 전령을 보내어 화친을 요청했고, 랍바성에서는 25명의 포로를 풀어 주었다. 이렇게 다윗은 위계에 의한 성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그것을 어렴풋이 짐작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아무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은 채 그 일은 묻혀가는 듯했다. 주님께서 예언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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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1.54.116.232)
2023-09-01 15:42:43
가톨릭 캘리포니아대교구 500여건의 아동 성학대 소송에 휘말려 파산신청!
물적 재산을 팔아도 뒷감당이 안 되니 아예 벌러덩 하고 누워버렸네요. 어쩌다가 한 두 건도 아니고 500여 건이라면 이건 ‘집단성착취 홀로코스트’인 셈인데 이런 가톨릭교구가 한두 곳이 아니고 지천에 깔려있다고 합니다. 이 문제 대처 방안을 놓고 로마교구 안에서 권력투쟁이 벌어져 로마주교가 어느 누구를 쳐냈다고 하여 대중이 혀를 끌끌하고 차고 있습니다. 개가 아무리 짖어도 기차는 가듯이 바티칸에서는 오늘도 내일도 대광장에 모여 주여, 아멘! 외치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한 코미디는 없을 듯합니다.

교회가 아동 성학대 문제로 파산신청이라니! 이런 개종자들이 거룩한 탈을 쓰고 거룩한 행세를 했으니 역겹기 그지없는 데 다윗이 바세바와 통정한 구약시대사건은 요즈음에는 아예 사건에 명함도 들이미지 못합니다. 다 큰 유부녀를 상대로 통정한 것과 아동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큽니다. 성착취 당한 아동이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겠습니까? 삐뚤어지게 자란 일부 아동이 총기사건을 일으켜도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소식을 들었다면 다윗은 뭐라고 비평할까요? 지천에 깔린 게 너나 할 것 없는 비평가인데, 다른 비평보다는 다윗이 하는 비평을 듣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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