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최재석 칼럼
예수님은 왜 자신을 인자라고 하셨을까?
최재석  |  jschoi4111@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3년 08월 30일 (수) 11:28:43
최종편집 : 2023년 10월 13일 (금) 12:28:04 [조회수 : 4927]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내가 신대원를 다닐 때 공관복음서 시간에 한 학생이 왜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라고 했느냐고 질문했다. 그때 교수는 그것은 다니엘서 7장에서 유래한다고 말하고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나도 그 질문한 학생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자신을 왜 “인자”(인간의 아들)라고 불렀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다니엘서를 비롯해서 신학책들을 읽으며 그 답을 찾아보려 했지만, 속 시원한 답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당당뉴스 독자들 가운데에도 예수님이 왜 자신을 인자라고 하셨는지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독자들을 위해서 마커스 보그와 존 도미닉 크로산의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 제임스 던의 『신약성경이 말하는 예수』 등을 참고해서 인자의 유래와 예수님이 왜 자신을 인자라고 하셨는지 알아보려 한다.

인자라는 용어는 에스겔서에 처음으로 나온다. 에스겔은 인자를 90번 이상 사용하는데, 거기서 인자는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말을 거는 호칭으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겔 2:1)는 식이다. 여기서 인자는 히브리어 ‘벤 아담’(ben adam) 인데, 벤은 아들을, 아담은 인간을 뜻하기 때문에, ‘벤 아담’은 “인간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에스겔서에서 사용된 인자라는 호칭은 약 400년 동안 구약에 나타나지 않다가, 기원전 2세기에 기록된 다니엘서에 변형된 개념으로 다시 등장한다. 다니엘서가 기록될 즈음 유대인들은 외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유대인들을 붙들어갔던 페르시아인들은 그 지역의 주도 세력인 마케도니아인으로 교체되었다. 그 후 유대인들은 시리아와 이집트에 의해 번갈아 가며 지배당했다.

그때 유대인들은 소위 묵시주의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역사 안에서 얻게 될 해방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초역사적으로 얻을 수 있는 해방을 꿈꾸었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올 메시아를 기대했다. 이 메시아는 세계의 종말에 최후 심판을 주재하고, 그 후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을 땅 위에 건설할 분이었다. 

이 메시아를 다니엘서에서 “인자 같은 이”(7:13)로 불렀다. 다니엘서 저자는 에스겔서에서 “인자”의 호칭을 빌려왔지만 그것을 매우 다른 의미로 사용했다. 에스겔서에서는 “인자”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상이었지만, 다니엘의 묵시에서 “인자”는 종말의 때에 모든 나라를 다스릴 권세를 받은 분, 다시 말해서 유대인들을 외세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킬 메시아를 가리킨다.

신약에 오면 예수님이 다니엘서에 나온 “인자”를 당신의 칭호로 사용하신다. 인자라는 칭호는 신약성경에 86번 나오는데, 공관복음서에는 69번, 요한복음에는 13번 언급되어 있다. 4복음서에서는 오직 예수님만이 자신을 가리켜 이 칭호를 사용하신다. 

4복음서 외에서 인자를 예수님의 칭호로 사용한 네 번의 사례는 스데반의 환상을 전하는 사도행전 7:56, 시편 8:4를 인용한 히브리서 2:6, 다니엘 7:1을 암시하는 요한계시록 1:13과 14:14이다. 사도행전, 히브리서, 계시록에 언급된 인자는 분명히 메시아로서의 예수를 가리킨다.

예수님은 공생애 초부터 자신이 메시아임을 의식하신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이 세례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마 3:17)라는 음성이 들렸다. 그리고 예수님이 40일 동안 금식한 후 사탄의 시험을 받을 때 사탄은 예수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마 4:3)이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시험했다. 

그리고 옥에 갇힌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서 장차 “오실 그이가 당신”이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 사실을 인정하셨다. 여기서 “오실 그이”는 이스라엘이 고대하던 메시아를 가리킨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신 후에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마 11:19; 눅 7: 34)라고 언급하셨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그리고 인자가 모두 예수님을 가리킨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하나님의 아들이나 메시아를 피하고 인자라는 칭호를 사용하셨을까?

다니엘이 살던 시대와 마찬가지로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들은 외세의 지배에 시달리면서 그들을 해방시킬 메시아를 고대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다니엘서에서는 묵시주의의 영향으로 초역사적인 세상의 종말에 나타날 메시아를 꿈꾸었지만, 신약 시대에는 정치 현실에 직접 참여하는 메시아를 고대했다는 점이다. 

신약 시대에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무력을 사용해서 로마의 지배로부터 그들을 해방시킬 것이라고 믿었다. 당시에 자기가 메시아라고 말하면서 로마에 항거하는 무력 폭동을 일으킨 지도자들이 나타났고 많은 사람이 그런 투쟁에 가담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폭력으로 로마와 싸우려고 하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비폭력 저항을 통해서 그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셨다. 

예수님이 병자들의 병을 고쳐주시자 그들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이 아무에게도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신 것은 사람들이 당신을 폭력을 사용해서 로마로부터 그들을 해방시킬 메시아로 오판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이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이 그를 칭찬하시면서도 제자들에게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마 16:20)고 경고하신 것도 제자들을 비롯한 당시의 유대인들이 기대하는 그리스도(메시아)와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메시아가 달랐기 때문이다.

신학자들은 사람들이 당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 혹은 메시아라고 말할 때, 예수님이 그것을 발설하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리신 것을 가리켜서 ‘메시아 비밀’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자신을 인자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 메시아 비밀을 지키려 하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폭력을 행사하는 메시아로 오해받는 것을 피하시려고 다니엘서에 나오는 인자라는 칭호을 사용하셨다.

최재석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61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1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김경환 (211.54.116.232)
2023-08-31 21:28:26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
이 부분은 나로서도 여태껏 완벽하게 풀리지 않는 불완전한 未知의 영역이었는데 본문 글을 읽고서 하루 종일 관련된 다른 참고서와 비교한 후에도 여전히 똑 부러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미진하고 부족한 탓이긴 하겠지만...

예수님은 그 당시 사회통념과는 정반대로 똑 부러지게 “죄 없는 자 돌로 이 여인을 쳐라!”라고 약자를 보듬는 방식으로 기득권층 또는 사회통념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또 “돈을 땅에 묻어둔 자는 게으르다”라고 일갈하여 무위도식하는 자를 질타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뱃세다야!”라며 마구 저주를 퍼붓기도 했습니다. 아주 똑 부러진 의사표명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알고 싶은 가장 중요한 부분인 인자, 하나님의 아들... 이런 부분은 대체로 秘密主義로 나갑니다. 어떻게 보면 너희들 역량에 따라 알아서 해석하라는 放任主義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호성 때문에 각자가 알아서 예수님을 해석하다보니 이 세상에 수만 가지의 敎派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최재석 칼럼니스트의 본문 글도 예수님의 진정한 뜻인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성경책에 나와 있는 것을 이리저리 짜깁기하여 한쪽으로 몰아서 해석한 것인데...

<예수님은 그 당시 사회 질서를 파괴했습니다. - 이건 大革命家입니다>
1. 성전의 장사치에게 물리력을 행사했습니다.
2. 제사장을 공공연하게 모욕했습니다.
3. 舊約상 지켜야할 안식일 등 여러 가지 규례를 철폐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사회질서에 순응했습니다. - 이건 保守主義者입니다>
1. 체포에 순응하여 묵비권을 행사할 뿐 바리새인의 사법질서를 존중했습니다.
2. 처음에는 모친과의 혈연을 배제하다가 십자가의 마지막 순간에는 모친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은 인자인지 메시아인지의 여부를 귀속 말로 했습니다. - 이건 너희들 알아서 판단하라는 放任主義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大革命家로 낙인찍혔는데... ‘폭력도 불사하는 메시아’를 바라는 유태인의 심기를 살피느라 ‘비폭력 메시아’라고 베드로 등에게 귀속 말로만 소곤소곤 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최재석 칼럼니스트의 글을 읽어도, 다른 참고서를 읽어도 여전히 명쾌하게 풀리지 않는 의문입니다.
리플달기
0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