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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받는 이들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다
전남병  |  고난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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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8월 29일 (화) 14:25:09
최종편집 : 2023년 08월 30일 (수) 00:24:25 [조회수 : 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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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한반도 평화를 위한 원탁회의 『발제3-남북 학술, 문화, 경제 교류』

고난받는 이들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다

 

전남병 목사(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 사무총장, 선한이웃교회)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 소개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The fellowship with the sufferers, 이하 ‘고난함께’)은 1989년, ‘평화로운 세상, 올바른 믿음의 교회’를 목표로 창립되었습니다. 군 복무 중 양심선언한 한 명의 신학생을 돕기 위해 시작한 작은 모임이 이제는 ‘평화’, ‘통일’, ‘인권’의 가치를 가지고 이 사회에서 다양한 문제로 고난받는 이들을 지원하는 단체로 확대되었습니다. 

우리는 한반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평화와 통일에 있다고 믿으며,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일합니다. ‘고난함께’는 그리스도의 ‘평화’가 교회의 본질이라고 생각하여 평화의 가치를 교회에 전파할 목적으로 ‘평화교회연구소’를 만들었으며, 통일 시대를 준비할 그리스도인을 교육하기 위해 ‘한반도 통일역사문화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또한 ‘바나바평화선교회’를 설립하여 청년들이 에큐메니칼, 사회선교를 배우고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매년 여름 개최되는 ‘청소년 평화캠프’를 통해 지금까지 약 2,000명의 청소년들이 함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했습니다. 

‘고난함께’는 한국 사회의 인권 문제에도 커다란 관심을 갖고 사역합니다. 특히 양극화로 고통받는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노동자, 젠트리피케이션 피해자들과 함께 매주 길에서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또한 대한민국을 비탄에 빠뜨렸던 사회적 참사 유가족들(세월호, 스텔라데이지호, 10.29 이태원 참사)을 돕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각은 한국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인권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는 생각으로 우크라이나, 미얀마 시민들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으며, 특히 아시아 인권에 대한 관심으로 ‘라오스평화선교회’를 창립하여 두 명의 평화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이 모든 활동 가운데 ‘고난함께’가 중요하게 진행해 온 하나의 사역을 설명하겠습니다. 

 

‘비전향 장기수’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비전향 장기수’는 사전적으로 ‘인민군 포로나 남파 간첩 가운데,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사상을 포기하지 않아서 감옥 생활을 오래한 사람’을 뜻합니다. 넬슨 만델라는 27년간 복역한 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일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지만, 비전향장기수들은 적게는 20년, 최장 45년을 감옥에 갇혀있으면서 남한에도 북한에도 속할 수 없는 경계인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들을 전향시키겠다는 의도로 정부 당국은 수시로 구타, 고문을 자행하였으며, 그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장기간 구금되었습니다. 

‘고난함께’는 1990년부터 비전향 장기수를 세상에 알리고 그들을 지원하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감옥에 갇혀있던 그들이 편지 교류를 통하여 세상과 연결되게 하였습니다. 정기적으로 면회를 했고 영치금을 지원하였습니다. 출소해서도 남한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을 계속했습니다. 매년 한 번 한반도 남쪽의 여러 곳을 방문할 수 있도록 ‘효도나들이’를 진행했습니다. 그들은 어린아이와 같이 즐거워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인 그들이 교회가 자신을 돕는 것에 대해 기뻐했습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63명의 비전향 장기수가 북한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전에 전향 각서를 썼다고 분류된 사람들은 신청했으나 거절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쓴 전향 각서는 대부분 회유, 협박, 폭력, 고문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2001년, 위와 같은 상황에 있던 33명의 장기수가 자신들의 전향은 강제적인 공작에 의한 것임을 밝히며, 고향으로 보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들 중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사람은 10명입니다. 

 

박종린의 이야기

박종린은 1959년 6월에 공작원으로 남파되었습니다. 내려올 당시 아내와 태어난 지 100일도 채 안된 딸이 있었습니다. 오래 머무르는 임무는 아니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체류가 길어졌고, 그해 12월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무기징역을 두 차례나 받았고, 35년간 감옥에 있어야 했습니다. 1993년 12월, 병보석으로 형집행정지를 받아 다 죽게 된 몸으로 출소한 선생은 전남 무안의 한 교회에서 돌봄을 받았습니다. 그는 전향서를 쓴 적이 없었으나 2000년 1차 송환에서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전향자로 분류돼 송환자 명단에서 제외됐습니다. 정부는 공산주의자가 교회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전향의 증거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는 남과 북 사이에 훈풍이 불 때인 2007년, 평양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증언입니다. “당시 평양 태권도전당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복도 쪽에서 한 중년여성이 자꾸 쳐다봐서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에 북측 관계자에게 물어봤더니 딸이라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돌아오는 날 버스에 앉아 있는데 딸과 사위, 손자, 손녀가 배웅을 나와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뛰어 내려갔는데 주위에서 막는 바람에 손도 한번 잡아보지 못한 채 겨우 얼굴만 보고 와야 했습니다.” 선생은 중국에 있는 조카를 통해서 딸이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로 있다는 것과 아내가 20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2021년 1월, 끝내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장례식에서, 그를 받아주고 살 공간을 마련해주었던 목사님이 울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박종린 선생을 교회로 모셔왔기 때문에 그가 전향자가 되어 고향 땅에 가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죄송합니다.” 박종린은 신앙생활을 하다가 집사 직분을 받고 삶을 마감했습니다. 죽기 전 그는 목사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교회가 아니었으면 이미 죽었을 것입니다. 교회가 나를 받아주어서 사람답게 살 수 있었습니다. 한 번도 목사님이나 교회를 원망한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니 미안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고난함께’가 이런 일을 하는 이유

그들은 기독교인이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남한에서 빨갱이로 불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자칫 위험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사회에서도 교회에서도 ‘고난함께’는 불온한 단체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도왔습니다. 지금도 꾸준하게 돕고 있습니다. 

‘고난함께’의 활동 근거는 성서입니다. 많은 어려움과 비난 속에서도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창세기 1:27). 또한 예수님은 배고픈 사람, 목마른 사람, 나그네, 헐벗은 사람, 병든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시기 때문입니다(마태복음 25:34-40). 예수님은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하고 실천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한 사람, 남한과 북한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경계인, 누구도 손 내밀지 않는 그 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고, 지금 우리 가운데 오시는 예수님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비전향장기수들을 고문하고 때리고 가두었을 뿐 아니라, 감옥에서 출소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감시한 정부 당국과도 싸워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이들에 대한 폭력은 하나님에 대한 폭력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불법적으로 가두는 것은 하나님을 가두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교회가 깨어서 준비해야 합니다.
1953년 한국전쟁이 휴전한 지 이미 70년이 지났습니다. 좁은 면적에 가장 많은 재래식 무기로 서로를 겨누고 있는 한반도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입니다. 지속되는 전쟁 상태는 사회뿐만 아니라 각 사람들의 내면에 커다란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이제는 끝내야 합니다. 무기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고향으로 가고 싶은 이들은 돌아가야 합니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한국교회가 나서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으로 하나 되게 하신 ‘평화’를 추구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지난 70년의 분단 상황에서 남과 북의 모든 연결이 끊어졌을 때에도 남한의 교회와 북한의 교회 사이에 존재하던 가느다란 연결고리는 전쟁의 위험을 감소시키고 한반도 통일의 마지막 희망이 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다섯 여성이 등불에 기름을 채우고 신랑을 기다렸던 것처럼 한국교회는 갑자기 맞이할 수도 있는 통일을 깨어서 준비해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세계 평화를 위한 미연합감리교회(UMC)의 노력과 이미 분단과 통일을 경험한 독일 교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고난함께’는 주어진 사명을 묵묵히 계속해서 감당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The 4th Round Table for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Peace Report 3. Inter-Korean Academic, Cultural, and Eeconomic cooperation

“To see the image of God in the afflicted”

Rev. Nam-byong Jeon (General Secretary of the fellowship with the sufferers, Good Neighborhood Church)

Introducing ‘The fellowship with the sufferers’
‘The fellowship with the sufferers’ was founded in 1989 with the aim of ‘Peaceful world, Church of righteous faith’. It was a small group that started to help a seminary student who made a declaration of conscience while serving in the military. Now, with the values of ‘peace’, ‘unification’, and ‘human rights’, it has expanded into an organization that supports those suffering from various problems in South Korea.

We believe that God's will for the Korean Peninsula lies in peace and unification, and we work for peace and unific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with the identity of Christians. Thinking that Christ's ‘peace’ is the essence of the church, ‘The fellowship with the sufferers’ established the ‘Peace Church Research Institute’ to spread the value of peace to the church, and established the ‘Korean Peninsula Unification History and Culture Research Institute’ to educate Christians preparing for the era of unification. It also established the ‘Barnabas Peace Mission’ to provide young people with opportunities to learn and train ecumenical movement and social missions. In addition, through the ‘Youth Peace Camp’ held every summer, about 2,000 teenagers have been thinking about peace and reunific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and seeking alternatives.

‘The fellowship with the sufferers’ works with great interest in human rights issues in South Korea. In particular, we worship together on the road every week with irregular workers, laid-off workers, and victims of gentrification suffering from polarization. In addition, we are continuing activities to help the bereaved families of social disasters (Sewol Ferry, cargo ship Stella-Daisy, 10.29 Itaewon disaster) that plunged Korea into grief. 

Our perspective is not confined to Korea. With the idea that human rights are a universal value of mankind, we are working to help citizens of Ukraine and Myanmar. In particular, we founded the ‘Laos Peace Mission’ and sent two ‘Peace missionaries’ out of needs in human rights in Asia. Among all these activities, I will explain one ministry that ‘The fellowship with the sufferers’ has been carrying out.

Have you ever heard about ‘Bi-jeon-hyang-jang-gi-su’?
‘Bi-jeon-hyang-jang-gi-su’ means unconverted long-term political prisoner. In dictionary, ‘Unconverted long-term political prisoner’ means ‘a person who has lived in prison for not giving up socialist or communist ideas among prisoners of the People’. Nelson Mandela was awarded the Nobel Peace Prize after serving 27 years in prison for his work for reconciliation and peace in South Africa, but they had to live as borderline people who could not belong to South Korea or North Korea for at least 20 years and up to 45 years. With the intention of converting them, government authorities frequently beat and tortured them, and they have been detained for a long time as “non-existent” in the blind spot of human rights.

Since 1990, ‘The fellowship with the sufferers’ has continued to promote and support 'Unconverted long-term political priesthood' to the outer world. Those who were imprisoned were able to connect with the world through the exchange of letters. We visited regularly and provided a detention fund. Even after being released from prison, we continued to provide support to settle down well in South Korean society. In addition, once a year, we conducted a ‘Hyodo Nadry’ to visit various places in the south of the Korean Peninsula. They enjoyed themselves like children. The communists were happy that the church was helping them.

The summit between President Kim Dae-jung and North Korean leader Kim Jong-un in 2000 allowed 63 ‘Unconverted long-term political prisoner’ to return to North Korea. However, those who were previously classified as having written the memorandum of conversion applied but were rejected. But most of the memorandum of conversion they wrote was conciliatory, threatening, violence, torture. In 2001, 33 'Unconverted long-term political priesthood' in the above situation asked to be sent home, revealing that their conversion was by forceful maneuvering. There are 10 of them who are still alive.

The Story of Park Jong-rin
Park Jong-rin was sent south as an agent in June 1959. When he came down, he had a wife and a daughter less than 100 days old. It wasn't a long-stay mission, but the stay was extended for unknown reasons, and he was arrested in December of that year. He was sentenced to life imprisonment twice and had to be in prison for 35 years. In December 1993, he was released from prison after being suspended from execution due to medical bail, was taken care of at a church in Muan, Jeollanam-do. He had never written a memorandum of conversion, but in the first repatriation in 2000, he was classified as a convert because he was a Christian and was excluded from the repatriation list. The government defined that the communists live in churches as proof of conversion.

At last, he was able to visit Pyongyang in 2007, when there was a warm wind between the two Koreas. It's his testimony. “At that time, I was attending a meeting held at the Taekwondo Hall in Pyongyang. I thought it was strange that a middle-aged woman kept looking at me from the hallway. After the meeting, I asked a North Korean official and he told me she was his daughter. I was sitting on the bus on my return day, and my daughter, son-in-law, grandchild, and granddaughter were waving their hands out. I ran down, but I couldn't even hold my hand because people around me blocked me.” Through his nephew in China, he was able to hear that his daughter was a professor at Kim Il-sung University and that his wife passed away 20 years ago. He ended his life in January 2021 without being able to step on his hometown land.

At the funeral, the pastor, who accepted him and provided him with a place to live, cried and said. “Because I brought Park Jong-rin to the church, he became a convert and could not go to his hometown. I'm so sorry.” Park Jong-rin ended his life after receiving the title of deacon while living a religious life. Before he died, he said to the pastor. “Reverend, I would have already died, if it hadn't been for the church. The church accepted me, so I could live like a human being. I've never blamed the pastor or the church. So please don't be sorry. Thank you.”

The reason why ‘The fellowship with the sufferers’ continuing this ministry
They weren't Christians. Furthermore, they were called red people in South Korea. This was also dangerous in South Korea and in the church, ‘The fellowship with the sufferers’ was considered a disturbing organization. But we helped them. we are still helping them.

Our activity is based on the Bible. The reason why we have been able to continue our activities so far despite many difficulties and criticism is that everyone has been created in the shape of God(Genesis 1:27). Also, because Jesus appears to us in the shape of the hungry, the thirsty, the traveler, the naked, the sick, and the imprisoned(Matthew 25:34-40). Jesus said clearly. “Whenever you did it for any of my people, no matter how unimportant they seemed, you did it for me.” We have only remembered and put this teaching into practice. Because we realized that the one person who no one cares about in Korea, the one who no one reaches out his hand, which is the boundary between South Korea and North Korea, is created in the image of God, and Jesus who is coming among us now.

We also had to contend with authorities who not only tortured, beat and imprisoned non-converted long-term prisoners, but also constantly monitored them even after they were released from prison. Because violence against those created in God's image is violence against God. Also, it was because they thought that illegally imprisoning people who were created in the image of God was imprisoning God.

For peace and unific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the church must break up and prepare.
It has already been 70 years since the Korean War ended in a truce in 1953. The Korean Peninsula, which is aimed at each other with the most conventional weapons in a small area, is the most dangerous area on Earth. The continuing state of war left a great trauma not only to society but also to each person's inner self. It's time to end. We must put down weapons. Those who want to go home should go back. People who speak the same language should be able to come and go to each other.

The Korean church should step up for peace and unific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This is because the church is a place where Christ pursues ‘peace’ that brings him together as his body. Historically, we must remember that even when all connections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were severed, the thin link that existed between the church in South Korea and the church in North Korea reduced the risk of war and served as the last hope for reunific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Just as the five wise women filled their lamps with oil and waited for their bridegroom, the Korean church must wake up and prepare for the unification that could suddenly happen. I am delighted to be able to hear the story of the efforts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UMC) for world peace and the German church that has already experienced division and reunification. ‘The fellowship with the sufferers’ will continue to fulfill the given mission.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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