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오늘의칼럼
담아주고 담기는 교회공동체
김화순  |  givy4u@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3년 08월 14일 (월) 00:26:02 [조회수 : 3611]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한 사람의 정신적 혼란이 사회적 혼란을 넘어 재앙의 수준으로 감지되면서,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 교회는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게 된다. 입에 담기에도 공포스러운 ‘묻지마 사건’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은 언제 또 이런 일이 벌어질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에 정부는 정신건강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포함한 ‘전국민 정신건강’을 위한 첫 종합대책을 추진하여 올 하반기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기후변화에 따른 폭염 등으로 현대인의 스트레스 지수가 늘어난 점을 고려하여 정신건강 관리대책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나온 대안일 것이다.

생애주기에 있어 청년기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건강한 시기로 알려져 있으나 최근 청년들의 건강 문제, 특히 정신건강 문제가 주요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20대, 30대의 우울 위험군 비율은 약 30% 정도로 다른 연령층에 비해 높게 나타났으며, 청년 10명 중 1명 이상은 심한 외로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층의 정신건강 적신호는 중독문제가 증가하는 것에서도 파악해 볼 수 있는데 문제음주의 증가, 스마트폰의 과의존, 도박중독에 있어 청년 환자의 현저한 증가 등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청년이 국가 성장의 주요한 경제활동 대상층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세밀하고 촘촘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정신의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보호제도를 마련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국가는 개개인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제도와 여건을 조성하며, 의료의 형평과 효율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정신세계의 문제가 우리 삶을 얼마나 많이 장악하고 있는지를 사회 곳곳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력과 예산을 투입함으로써 정신건강 증진을 위하여 실질적으로 효용성이 있는 검진을 하여 정신질환의 발생 빈도를 감소시키고 증상발현 시 조기진단과 신속한 치료를 시행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병리적 증상의 반복으로 인하여 일상생활을 지탱하는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내면적인 고통으로 힘들어하며,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언제 즈음 정신적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지 모르는 채 막연하게 살아가고 있다. 생애 초기 사랑을 상실한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병리적 트라우마를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경향성을 갖는다. 그들은 슬퍼할 때 적절하게 자신의 정서를 드러내지 못하고 병리적인 고통 속으로 빠져들곤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인간성 상실이 확연히 예고되고 있다. 이러한 때에 교회공동체는 결핍과 부재로 고통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생명선이 될 수 있다. 결핍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공동체 안에서 사랑을 재경험하게 함으로써 인생을 새롭게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하나님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아픔과 함께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담아주고 담기는 경험은 생애 초기의 황폐함을 채울 수 있는 완벽한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꼭 구조화된 상담실의 역할만이 아니라 관계와 관계 속에서 지속적이면서도 변함없는 경험을 통해 가능하다고 본다. 

교회는 정신병리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고 올바른 인식과 더불어 적절한 치료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이성적으로 접근하면서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 의한 실질적이고 충분한 상담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병력이 타인에게 공개되는 낙인효과 방지를 위한 조치도 절실하다.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보호하면서도 그들의 건강을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교회의 풍토가 바뀌어야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사랑의 공동체로 새롭게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김화순∥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소장

김화순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21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1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김경환 (211.54.116.232)
2023-08-14 02:10:14
내재적 접근보다는 외재적 접근으로 가야만 공포심에 떨지 않게 된다!
기독교인은 내 목숨은 하나님께 맡긴 것 아닌가? 묻지마 칼부림 그 자체보다 칼부림 때문에 죽을까봐 벌벌 떨면서 또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그 이유만으로 공포심에 벌벌 떠는 기독교인에게 더 큰 공포심을 느낀다. 공포심 전도사라서!

바울 등 십자가형 당한 사람의 당당한 자세, 목숨을 걸고 자청하여 우크라이나 전투에 목숨을 건 이근 예비역 대위와 같은 당당한 자세, 가스실에서 죽어 가면서도 찬송가를 부르는 기독교인의 의연한 자세... 오직 내 한 몸이라는 內在的 접근도 필요하지만 내 몸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外在的 접근도 필요하다. 즉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그 생각만 골똘하게 하면 공포심은 배가된다. 그러나 가스실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의연하게 죽어간 교인을 생각하면 공포심은 사라진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曰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리플달기
0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