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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전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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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8월 13일 (일) 15:43:24 [조회수 : 2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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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전초
행 13:1-3
(2023/08/13, 성령강림 후 제1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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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교회에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과 더불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마나엔과 사울이다. 그들이 주님께 예배하며 금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위해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라. 내가 그들에게 맡기려 하는 일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금식하고 기도한 뒤에, 두 사람에게 안수를 하여 떠나보냈다.]

∎ 안디옥 교회
슬픈 자를 위로하시고, 약한 자에게 힘을 주시는 주님의 은총이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반도를 관통한 태풍과 집중 호우로 많은 분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농경지가 침수되고 과수 농가의 낙과 피해가 많았지만, 인명 피해가 많지 않아 그나마 다행입니다. 저도 혹시 비가 새는 곳은 없나 싶어 몇 번씩 예배당 곳곳을 살폈습니다. 하와이 마우이 섬에서 일어난 화재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는 징후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주 심각하게 우리 삶을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병원에서 중병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사람들은 자기 삶을 아주 단출하게 만들면서 그 병으로부터 회복되기 위해 집중합니다. 병은 그동안 자기가 숨 가쁘게 좇아가던 가치가 실은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고속전철을 타고 질주하던 삶을 잠시 멈추어야 할 때입니다. 심각한 경고의 나팔소리가 이미 울렸습니다. 이제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세상과 우리가 맺는 관계를 바꿔야 할 때입니다.

신앙을 설명하는 개념 가운데 하나가 ‘시선의 변화’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자아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바라보던 태도에서 벗어나 타자 혹은 절대 타자인 하나님의 눈으로 사람과 세상을 대합니다. 보는 관점이 달라지면 세상 또한 달리 보이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자아 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처럼 딱한 노릇이 없습니다. 믿음은 다른 삶을 상상하는 능력입니다. 믿음은 세상의 가치질서를 전복합니다. 높은 사람이 가장 낮은 사람을 섬기는 것이 믿음의 세계입니다. 주님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관념도 아니고 환상도 아닙니다. 절실한 삶의 문제입니다.

주님은 자아 중심의 세상에 틈을 만들고, 그 속에 새로운 삶의 기운을 불어넣자고 우리를 공동체로 불러주셨습니다. 사도행전은 교회가 어떻게 세워졌고, 그 교회를 통해 복음이 어떻게 확장되어 갔는지를 아름답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세상 도처에 세워졌던 교회 가운데 안디옥 교회에서 일어난 일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안디옥은 지금의 튀르키예의 안타키아(Antakya)에 해당되는 곳입니다. 남쪽으로는 레바논과 이어져 있고 동쪽으로는 시리아와 연결되는 지중해변의 도시입니다. 안디옥은 초기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북아프리카에 있는 알렉산드리아와 더불어 매우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당시에 세계 학문의 중심지였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에 그리스 세계는 카산더, 리시마쿠스, 셀레우코스, 프톨레미 등 4개의 왕조로 분열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집트를 다스렸던 프톨레미 왕조입니다. 프톨레미 왕조는 지중해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얻어진 부를 통해 세상의 뛰어난 인재들을 모아들였고, 그들을 통해 어마어마한 규모의 도서관을 세웠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세상 모든 지식의 총화라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학문이 발전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그렇게 갖춰졌던 것입니다. 유대교 학자들과 기독교 학자들도 그곳에서 많은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안디옥은 알렉산드리아와 비교하긴 어려웠지만 동서 문화가 교차하는 길목에 있었기 때문에 아주 창의적인 인재들이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성경에서 안디옥은 일곱 집사 가운데 하나인 니골라의 고향으로 처음 소개됩니다(행 6:5). 그리고 스데반이 순교한 후에 각지로 흩어진 이들이 페니키아와 키프로스 그리고 안디옥에 이르러서도 복음을 전했다는 구절도 나옵니다(행 11:19). 처음에는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습니다. 나중에는 키프로스와 구레네 사람 몇이 안디옥에서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안디옥에서 이방인 선교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 교회가 또 중요한 것은 고향에서 은거하고 있던 바울을 품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안디옥에 와서 바나바와 더불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고,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처음 명명된 것도 이곳입니다(행 11:26)

∎ 다양성과 일치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안디옥 교회에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다고 간략하게 말합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이고, 교사들은 하나님에 관해 가르치는 이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교회를 지칭하는 단어인 ‘에클레시아’(ekklēsia)입니다. 에클레시아라는 용어는 그리스 세계에서는 시민들의 모임인 민회를 일컫는 단어입니다. 에클레시아가 주로 다루었던 의제는 폴리스의 외교 정책과 명예와 시민권에 관련된 사항들이었습니다. 시민들은 외교관들의 보고를 듣고 그 활동에 대한 승인, 거부, 평가, 처벌 문제를 투표로 결정하였습니다(박영호, <에클레시아>, 새물결플러스, p.39). 전쟁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논의하고 결정했습니다. 에클레시아가 얼마나 중요한 모임인지 아시겠지요?

교회를 에클레시아라고 말할 때 이런 맥락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교회는 단순히 저 죄악된 세상에서 부름 받은 이들의 배타적인 모임이 아닙니다. 교회를 에클레시아라고 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고 헌신하고 책임을 지는 존재로 부름을 받은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남의 눈치나 보면서 살아가는 수동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세계의 문제에 뛰어들어 세상의 변혁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열어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가 바로 에클레시아입니다. 교회는 특별한 장소에 세워지고 장소에 따른 이름이 부여되지만 그 교회들은 개별성을 넘어 하나님의 에클레시아에 속해 있습니다. 에클레시아로서의 교회는 그렇게 해서 서로 연결됩니다.

누가는 안디옥 교회에 있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 사람으로 ‘위로의 아들’ 곧 바나바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요셉.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 니게르는 ‘검다’는 뜻입니다. 그의 피부색이 검다는 뜻일 테니 그는 아프리카계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레네 사람 루기오. 루기오는 ‘빛’ 혹은 ‘희다’는 뜻입니다. 니게르와 대조됩니다. 분봉왕 헤롯과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마나엔. 마나엔이라는 이름의 뜻은 ‘위안을 주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사울이 있습니다. 사울은 바울의 유대식 이름입니다. 이 몇몇 사람들만 보더라도 안디옥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출신 지역이 다르고, 성정이 다른 이들이 함께 모여 에클레시아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공동체는 사람들이 미심쩍어 하던 바울까지 품어 안았습니다. 다양함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함께 예배하고 금식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특정한 사람이 중심인 교회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
교회를 설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표현들이 있습니다. ‘교사와 어머니’로서의 교회라고 말하는 이도 있고, 구원의 방주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표현보다 더 적확한 표현이 또 있을까요? 교회는 그리스도 주위에 모인 것이 아니라 그분의 몸이 되어야 할 소명 자체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나오는 교회에 대한 정의도 흥미롭습니다. “교회는 인류가 그 일치와 구원을 되찾는 곳이다. 교회는 ‘화해를 이룬 세상’이며, ‘주님의 십자가의 돛을 활짝 펴고 성령의 바람을 받아 이 세상을 잘 항해하는’ 배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번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p.358-9)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것은 성령이십니다. 흙으로 빚어진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넣으셨던 것처럼 제도로서의 교회는 성령의 숨이 생동할 때 그리스도의 몸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새로운 세상의 꿈을 우리 속에 심어주십니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기독교 작가 필립 얀시가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교회의 존재 이유를 잃어버릴 때다. 나는 세계를 다니면서 복음이 살아 숨 쉬고 진정으로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진 교회를 봐 왔다. 그들은 일종의 ‘신혼여행기’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교회는 그 다음 단계에서 삼성이나 코카콜라 같은 영속적 기관이 되고 말았다. 이들 기관은 사역을 위해 전문인을 고용하고 대형 건물을 세우며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하나님의 영은 한 곳에 담겨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 모르는 바람처럼 움직인다. 리더들은 바람에 귀 기울여 듣고 분석하는 ‘기상 예보관’ 같아야 한다. 리더는 하나님께서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가. 그 바람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민감해야 하며, 그의 목적과 부르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필립 얀시, 2014년 9월 20일 자 국민일보 인터뷰)

오늘의 교회는 과연 이런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람으로 표상된 성령이 어디로 불어가고 있는지를 잘 알아차리고 그 방향을 향해 돛을 펼치는 것이 리더들의 역할입니다. 교회는 전통을 소중히 해야 하지만, 전통에만 집착하는 순간 현실 적응력을 잃게 마련입니다. 전통적이면서도 새로운 시대적 소명에 응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구성하는 이들은 세상적 가치에 매몰되어 살면 안 됩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으니 세상을 외면하고 살 수는 없지만,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꿈꾸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인은 세상의 인력을 떨쳐버리고 유쾌하게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는 사람들, 유쾌한 탈주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았기에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고, 폭력과 착취가 만연한 세상 현실을 아파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금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애통하는 마음, 그 가난한 마음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 개척 파송
안디옥 교회는 “너희는 나를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라. 내가 그들에게 맡기려 하는 일이 있다” 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따라, 함께 금식하고 기도한 후에 두 사람의 머리에 안수하고 떠나보냈습니다. 이 간결하고 확고한 조치가 초대교회의 역동성의 비밀이었습니다. 치밀하게 계산하고 따져본 후에 떠나보낸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후에 일어난 일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바와 같습니다. 둘은 함께 또 홀로 소아시아와 유럽에 복음을 전파하는 위대한 일을 이루어냈습니다. 무모해 보이던 결단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그렇게 세상 도처로 뻗어나갔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과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교회 공간이 많이 부족해서 교우들이 친밀하게 사귀기 어렵고, 다양한 활동들을 하기에도 규모가 너무 커졌습니다. 오래 전부터 우리 교회가 꿈꾸던 일이 이제 시작됩니다. 교인들이 두 개의 교회를 개척 파송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교회 쪼개기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유기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노력이고, 다양한 소명에 응답하기 위한 결단입니다. 나무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원뿌리가 든든해야 하지만, 곁뿌리 또한 건강해야 합니다.

개척 파송하는 교회의 목회자는 우리교회와 오랜 기간 인연을 맺어온 동역자들(synergos)입니다. 한 분은 10년 이상을 이 교회에서 사역해온 이범석 목사입니다. 그는 뿌리 깊은 신앙의 가정에서 성장했고, 무엇보다 모범적인 영성과 실력을 갖춘 사람입니다. 긍정적이고 친화력 있는 성품으로 사람들을 돌보는 유쾌한 목회자입니다. 또 한 분은 지금 창천교회 부담임목사로 일하고 있는 손성현 목사입니다. 그는 일반대학에 다니던 20대 초반에 우리교회에 와서 졸업 후 신학대학에 편입학했고 대학원에 다니는 내내 우리 교회에서 헌신적으로 수고한 일꾼입니다. 학문적 역량과 인품이 뛰어난 그는 독일에 있는 튀빙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후에도 우리교회에 와서 수련목 과정을 거쳤습니다. 수련목으로 안수 받는 사람은 같은 교회에서 목회할 수 없다는 당시의 규정 때문에 교회를 떠나갔지만, 청파교회의 지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30년 동안 보아온 그는 한결같은 사람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파송한 것처럼 우리도 같은 일을 하려 합니다. 청파교회는 물론이고, 이미 세종시에 세워진 세종청파교회, 우리가 기쁜 마음으로 새롭게 파송하려는 두 교회는 깊고 친밀하게 연대하여 하나님 나라의 전초, 분열된 세상에 다리를 놓는 교회, 욕망으로 구축된 세상에 조그마한 틈을 내고 그 속에 하늘의 빛을 끌어들이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 가슴 벅찬 소명에 많은 이들이 동행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해주시고,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일깨워주시고, 선한 길로 인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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