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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향한 MZ 세대, 그대들은 희망이다
김준  |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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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8월 12일 (토) 22:26:06
최종편집 : 2023년 08월 19일 (토) 07:57:48 [조회수 : 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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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드림5만리 평화 투어후기/김 준] 

   
▲ 김준

익숙하지만 어려운 “평화”. 장엄하고 막연한 주제의 순례가 유럽 땅에서 대학생들 손에서 어떻게 실현될지 걱정되면서도 기대가 많았다. 감신, 협성, 신학대뿐 아니라 여러 일반대학에서 선발 된  20여명의 학부생, 대학원생들 그리고 10여명의 목사, 교수, 장로들로 꾸려진 스태프들이 6개월의 준비기간을 통해 준비한다고 했지만 평화라는 서사의 실마리를 어디서부터 잡아 나가야 할지 사실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막막했다. 각 도시의 광장에서 버스킹하기로 한 우크라이나 찬양곡들은 수개월 연습했지만 좀처럼 입에 붙지 않았다.

평화드림5만리는 사단법인 ‘평화드림포럼이 한국전쟁 휴전 70주년을 기념하여 주최하였던 행사로 6월 25일부터 7월 7일까지 12일간 “힘과 평화”, “평화의 현장에서 평화를 외치다”, “평화통일과 시민단체”,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로 네덜란드 헤이그, 독일 베를린, 체코 프라하, 폴란드 아우슈비츠, 오스트리아 비엔나 등 분단의 아픔을 겪었거나 평화를 잃고 고통을 당한 경험이 있는 지역을 찾아 평화 퍼포먼스를 벌이며 한반도 평화를 촉구하는 순례 프로그램이었다. 행사명 <평화드림5만리>는 한국에서 출발해 탐방지를 돌아보고 돌아오는 총 연장 길이를 뜻한다.

사실 MZ세대인 20대 초반 학부생들과 30대가 대부분인 스태프들은 전쟁 혹은 분단을 직접 겪은 세대로부터 3-4세대 후손이기에 평화라는 상태를 강제로 박탈당해 본 경험이 없다. 그럼에도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오고, 통일을 준비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전 지구인들과 함께 연대해야 하는 중요한 미래의 주역들이기에 (물론 처음에는, 그 무게와 중요성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온 청년들도 있었다) 이번 순례에서 이들이 자신들의 중요성과 가치, 역할을 정확히 인식하고 평화를 이룰 당사자로 서의 다짐과 준비를 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도하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함께 순례를 시작했다.

 

   
▲ 독일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브르크문 앞에서

긴 비행시간을 지나 도착한 암스테르담에서 첫날 아침부터 도선생이 팀을 반겼다. 팀이 묵는 호텔 조식당에 나타나 조식 줄에 섞여서 아침 식사를 하는 척, 당당히 팀원 두 명의 신분증과 귀중품이 들어 있는 가방을 훔쳐간 도둑 덕에 네덜란드 경찰과 긴 미팅을 하고 대사관을 방문하여 여권을 새로 발급받는 등의 전혀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하였다. 덕분에 5만리팀의 여정은 오직 주님께만 적극적으로 의지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순탄치만은 않은 시작을 하였다. 하지만 5만리팀은 이에 굴하지 않고 헤이그 이준 열사 기념관을 예정대로 탐방했다. 이준 열사의 삶을 조명하는 세미나를 통해 조선 독립을 향한 열정과 자유와 평화를 열망했던 우리 선조들의 바램을 엄숙하고 선명하게 가슴에 새긴 다음, 의미 있는 첫 공식 일정을 버스킹과 서명운동으로 잘 마무리하고 이어 10개 도시에서의 평화 순례여정을 바쁘게 소화했다.

각각의 도시에서 체류시간은 짧았지만 우리는 각 도시 중심 광장에서 우크라이나의 전쟁 종식과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는 기도를 하고 버스킹을 하고 평화 지지 서명도 받고 역사적 평화의 상징 혹은 분쟁과 갈등의 상징들을 방문하고 공부하며 이 여정들의 주제인-‘평화’를 시간, 시간 가슴 속에서,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되새김질했다. 물론 실수도 하고 언어의 장벽에 막혀 당황도 하고 매몰찬 거절에 마음 상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섭씨 30도가 넘는 더위에 창문도 열리지 않는 버스 에어컨 고장으로 죽을 것 같은 찜통 더위를 견뎌내며 삶과 죽음을 주님께 맡기고 겸손해 졌던 8시간도 잊지 못할 것 이다. 만 2일 만에 에어컨이 고쳐졌을때 모두에게서 큰 기쁨과 감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다음 도시에 가서 말은 안 통해도 눈빛으로 평화를 이야기하며 그 곳의 사람들과 함께 평화를 지어가기 위해 은혜로운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신나게 달려갔다.

한국 땅과 다른 공기, 다른 건축, 다른 도시, 다른 공간 들에서 다양한 삶들을 관찰하고, 각국의 전통, 음식, 교통, 교회 모습, 언어 등을 경험하며, 우리가 서로 다른 점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것의 중요성이 온전히 다가왔다. 다양성은 평화의 토대이며,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평화로운 세계를 만드는 길임을 여러 나라 출신의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소통하며 다시 한번 확인했다. 기특하고 핫한 5만리 K-MZ 청년들은 발랄하고 성실하게 각 나라의 다양한 평화를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사람들에게 도전했다.

힘들지만 보람 있는 이 순례에 참여한 MZ 청년들은 평화를 위한 인류의 연대와 상호 의존성을 배웠고 다양한 사람들 과의 만남을 통해, 지구상의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몸소 깨닫기 시작했다. 인류의 연대가 평화의 씨앗을 심고 키워가는 것을 목격하며, 지구인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국가적으로, 개인적으로 평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얻었다. 특히나 분단 78년째를 맞는 한국의 MZ 청년들에게는 더 크게 다가오는 책임감이다.

5만리팀의 버스킹 소리에 사람들이 모이고 같이 노래하고 춤추고, 특히나 우크라이나 찬양을 우크라이나어로 부를 때면 (각 도시의 외곽 진입지역에서 전혀 예측하지 못한 어마어마한 교통체증 동안 버스안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 찬양 외우기 대회를 열며 지루함을 이겨냈다!! 물론 우크라이나 찬양도 자신있게 크게 부를 수 있게 되었다!!! – 상금의 힘이 크도다!!!) 어디선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나타나, 함께 찬양을 하고 사진 찍고 고마움을 전하며 힘껏 안아주던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서 오히려 우리가 큰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각국의 사람들에게 서명을 부탁하며 어색하고 쑥스러운 순간, 평화의 메시지를 적은, 하얀색 볼펜 선물이 사람들 사이에 웃음과 희망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고 서로, 손을 내밀어 맞잡고, 눈으로 혹은 주먹으로 서로 파이팅 인사하는 작은 행동들이 서로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작은 행함이 모여 큰 평화의 파동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우리 MZ 청년들 사이에 반짝였다. 인천에서부터 각자의 짐에 하나라도 빠질까 조심조심 넣어 가지고 온 우크라이나 아이들을 위한 미술용품, 악기, 화상 환자들을 위한 약품들, 생존 키트들을 루트를 통해 전달했고 전쟁이 빨리 종식되어 평화가 찾아오기를 기도했다. 마지막 도시인 비엔나에 도착하여 지난 10일간 10개 도시에서 받은 천여명의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촉구와 한반도의 평화 기원 서명지’를 유엔 본부에 전달하며 무사히 이번 순례의 목적을 큰 사고 없이 달성하게 되었음을 주님께 감사드리고 고생한 서로를 축하했다.

한반도와 함께  45년간 분단의 아픔을 겪다 재통일된 독일의 수도, 베를린 장벽의 처연함은 한국의 분단을 현실로 인식시켜주었고 오시비엥침 수용소와 유대인 박물관, 유대인 추모 기념 조형물, 그리고 유럽 전역에 남겨진 인종 학살의 희생자들의 수많은 자취들은 인간이 스스로 악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선명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그리하여 시대적, 사회적 악이라는 거대한 압력에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목적에 부합한 인간으로서 행동하려면 온전히 하나님을 붙잡지 않고 서는 불가능 하다는 귀중한 배움도 얻었다.

체코 얀 후스, 독일 루터의 종교 개혁 현장 탐방은 이 모든 평화가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으면 아예 가능하지 않다는 성경의 원리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고 평화는 크리스천으로서 추구해야 할 근본이며 필수적인 성경적 진리라는 것을 성령께서 5만리 팀 모두에게 알게 하셨다.

평화는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인류 모두가 갈망하는 가치임을 깨닫게 하시고 한국에서 태어나 이 땅과 세계에 평화의 미래를 열어 가야 할 크리스천 MZ청년들에게 평화의 사도로서의 분명한 방향과 소명을 대장정을 통해 허락하시고 이 모든 일정을 예비하시고 함께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주신 은희곤 목사님과 우경희 사모님 이하, 청년들보다 더 열정적으로 지도하고 여정을 이끌고 뛰어주신 어른들께도 큰 감사와 감동을 전하고 싶다.

뜨거운 더위와 땡볕에서 간절함과 소망을 가지고 평화의 노래를 부르고 평화를 배우기 시작한 평화드림 5만리, MZ 청년들. 그들의 기도와 열심, 배움, 행함으로 이 땅의 DMZ가 사라지고 부산에서 백두산을 지나 시베리아를 통과하여 베를린에 도착하는 평화의 철도가 놓일 것을 믿고 소망한다.

 

함께 하여 행복했던 노(老)전도사 J

 

   
▲ 이준열사 묘역에서
   
▲ 베를린 유대인박물관
   
▲ 베를린 둠교회 앞에서 서명활동중인 평화드림5만리 순례단원들
   
▲ 유대추모공원
   
▲ 브란덴부르크문에서 버스킹 중 우크라이나 난민가족과의 뜻밖의 만남
   
▲ 또 다른 우크라이나 난민가족이 찾아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위로를 받았다.
   

▲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은 세계 어디서나 한결같았다.

   
▲ 비텐베르그 루터하우스에서 루터가 만든 '내주는 강한 성이요' 즉석 콘서트를 벌이는 단원들
   
▲ 나치의 자금줄이었던 도시 드렌스덴은 연합군의 폭격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독일인들은 이 도시를 예전처럼 완전하게 복원했다.
   

▲ 루터보다 100년 앞서서 종교개혁을 외치다 순교한 얀후스 동상앞에서

   
▲ MZ세대들은 춤으로 쉽게 연결되었다.
   
 
   
▲ 한반도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는 체코의 한 가족
   
▲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만난 우크라 난민들. 이들은 우크라이나 구호활동에 필요한 물품을 사기위해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 유대인들은 이 기차길을 따라 아우슈비츠로 옮겨졌다.
   
▲ 영화에서나 보았던 유대인학살의 상징 아우슈비츠 정문. 유대인혐오라는 집단광기가 이곳에서 실제로 자행됐다. 수백명을 한번에 살해하던 가스실, 시체를 태웠던 소각로, 고문실, 전기철조망이 그대로 남아 있다.
   
▲ 유대인들의 발에서 벗겨낸 수백만 켤레의 신발. 유대인이 겪은 참상의 현장을 목격하고 나서 힘들어 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인간이 악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겨 지지 않는다.
   
▲ 유대인들은 아우슈비츠에 정착하는 줄 알고 전재산을 팔아 소지하기 쉬운 금이나 보석으로 바꿔왔다. 가방 안에는 식기도 들어 있었는데 이것들을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가스실로 끌려갔다. 귀중품은 모두 나치가 빼앗아 전쟁자금으로 사용했고 유대인들에게서 빼앗은 모든 물품은 재활용되었는데 심지어 머리카락으로 카펫을 짜고 뼈를 갈아 골분비료를 만들었다. 인간이 어디까지 악마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 거대 악을 구분할 수 있고 또 저항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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