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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는 깊이만큼 새롭게 된다” 계시록 22장10절~15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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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8월 05일 (토) 11:22:00 [조회수 : 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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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개하는 깊이만큼 새롭게 된다” 계시록 22장10절~15절

 

 

1.때가 가까우니라

 

① (10절)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천사는 요한에게 또 다른 당부 하나를 더 한다.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다니엘서에 나오는 천사의 당부와 상반된 말씀이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단 12: 4)” 이처럼 상반된 명을 전한 분명한 이유가 나온다. ‘때가 가까우니라’ 마지막 때가 가까웠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날이다. 그때는 누누이 강조한 대로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삶, 장차 올 미래적 종말을 모두 포함한다. 성경이 전하는 마지막 때는 ‘과거’의 역사 속에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과 헬라의 에피파네스처럼 하나님의 통치를 대적하던 모든 세력을 통칭한다. 또한 로마제국에 의한 초대교회의 박해와 같이 ‘현재’의 비가 오고 창수가 나는 날, 삶에서 만나는 위기의 순간을 가리킨다. 나아가서 세상에 믿었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죽음의 순간처럼 알 수 없는 ‘미래’에 벌어질 적그리스도에 의한 박해와 환란까지 총망라한다.

 

▶ 천사가 다니엘에게 당부한 말씀은 마지막 때에 관한 믿음의 자세다. ‘이 말을 간수하라’ 심판과 구원에 관한 약속을 흔들리지 말고 지켜내라는 뜻이다. 마지막까지 배반하지 말고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라는 뜻이다. ‘이 글을 봉함하라’라고 명한 이유는 임박한 종말과 지연된 종말처럼 극단적인 종말 신앙으로 오염되고 훼손되지 않도록 밀봉해서 잘 보존하라는 뜻이다. 또한 때와 기한이 오직 하나님의 권한에 있기에 월권하지 말고 분수를 지키라는 뜻이다.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다니엘 이후에도 수많은 예언자들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통치와 메시아 왕국의 도래 곧 심판과 구원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을 의미한다. “그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마 3:1)”,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찾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4).”

 

▶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봉인된 기밀이라서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지만 그 날에는 모두 확실하게 알게 된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눅 17:27~30)” 홍수와 유황불이 내리기 전까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무시하고 무관심했지만 홍수와 유황불이 쏟아지는 순간에 비로소 깨닫게 된 것과 같다. 하지만 그 날에 가서 깨달으면 너무 늦는다. 주목할 점은 종말에 대처하는 믿음의 자세가 다니엘의 시대와 요한의 시대에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봉인되었던 예언이 때가 차서 봉인이 해제된 까닭이다. 이는 마지막 때가 마침내 임박했다고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다.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the signs of the times)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 16:3)” 오늘 우리는 전 지구적 위기 속에서 인류의 멸종을 몸소 체감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성경은 마지막 때가 임박한 현실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증언한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으라 하시니라(눅 21:34~36)”,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1~14)” 성경이 전하는 종말의 메시지는 두려워하지 말고 깨어있으라! 내일 주님이 오셔도 부끄럽지 않을 오늘을 살라!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대를 생각하며 오늘을 사는 지혜를 거듭 촉구한다.

 

② (11절)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 되게 하라”

 

▶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가장 무서운 형벌은 징계와 책망이 아니라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를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이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마 13:13~15).”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제할 수 없는 사람들, 예수님도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 12:31~32)” 성령은 회개의 영이시다.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회개치 않는 완고함과 완악함이다. 성령을 훼방하는 죄 곧 회개치 않는 죄는 결코 용서 받지 못한다. 죄로 인해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회개치 않으므로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됨을 증거 한다.

 

③ (12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영원히 참지 않으신다. 행 한대로 보응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행함은 행위가 아니라 심는 대로 거두는 불변의 법칙을 말한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8)” 속히 오시겠다는 말씀은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빨리 돌이켜 회개하는 지혜를 촉구한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9~10)” 하나님의 본심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멸망에 이르는 까닭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종말의 순간까지 회개치 않는 완고함과 완악함 때문이다.

 

 

2.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

 

① (13절)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 하나님은 창조주이자 심판주이시다. 온 세상과 모든 인생은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하나님 나라(천국, 하나님의 통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시작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십자가와 부활에 관해서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에 관해서는 입술로 고백할 뿐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잘 믿지만 우리를 심판하러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는 믿지 못한다. 요한계시록은 이천 년 전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때에 마침내 세상을 심판하러 다시 오실 것을 분명하게 증거한다.

 

② (14절)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누구인가? 앞서 살펴본 계시록의 말씀들을 통해 이미 상고한 바 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 3:3~5)”,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을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3~14)” 두루마기를 빠는 자는 어린 양의 피로 속죄함을 받은 자들, 곧 회개한 자들을 가리킨다.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계시록 2장에서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 나오는 상급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먹게 하리라(계 2:7)”,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 2:4~5)” 생명나무는 회개한 자들에게 주시는 상급이다.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는 앞서 살펴본 대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들에게만 부여된 특권을 가리킨다. 천국의 주인공인 그들은,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 곧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고 회개한 자들이다. 진정한 회개 없는 영적 각성은, 회개의 영이신 성령을 훼방하는 쇼에 불과하다. 영적 각성을 표방하며 회개하는 시늉만 하는 대규모 행사에 수많은 군중이 모이더라도, 갈멜산에 모인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의 헛된 기도처럼 허공을 울리는 집회로 전락할 것이 자명하다. 오직 회개하는 깊이만큼 새롭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씨 뿌리는 시늉만 했는데 어찌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으랴!

 

 

3. 성 밖에 있으리라

 

① (15절)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은 자와 반대로 성 밖에 거할 자를 열거한다. ‘개들’은 애완견을 말하는 게 아니라 본능에만 이끌려 사는 짐승 같은 삶을 가리키는 은유다.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잠 26:11)”,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마 7:6)”,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었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벧후 2:22).” 개들은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활동하는 짐승처럼 본능을 좇아 사는 자들을 가리킨다. ‘술객들’은 소위 돌로 떡을 만드는 매직(마법)을 추구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소위 일확천금과 불로소득의 대박을 좇는 비트코인이나 부동산 투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 ‘행음자들과 우상 숭배자들’은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며 창조주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을 더 사랑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살인자들’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오만방자하게 행하는 교만한 자들을 가리킨다.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소위 ‘많이 소유하면 행복하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오만한 요설로 거짓 신화를 설파하며 미혹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불과 백 년도 못 살면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사는 교만한 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거룩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없다. 그들의 결국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불 못이다. 왜냐하면 인생을 마치는 그날에 누구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진실을 끝끝내 멸시하고 외면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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