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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만드는 사람들
김정호  |  fumc@fumc.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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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8월 04일 (금) 02:28:48
최종편집 : 2023년 08월 04일 (금) 02:29:10 [조회수 : 2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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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쿠바를 다녀오면서 공산주의 지상천국을 구호로 외치지만 국민의 현실 생활의 지옥 같은 어려움의 모순을 문제 삼는 내용으로 제가 목회수상을 썼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쿠바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쿠바 생활이 너무 불편한데 그의 아이들은 좋아한다는 내용입니다. 방학이 길어지면 아이들이 선생님을 그리워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어느 날 알게 됩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를 데리러 갔다가 마당에서 놀던 아이가 넘어져 울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여선생님이 달려가서 아이를 안아주고는 아이와 함께 우는 것을 본 것입니다. 그 장면을 보고는 불편한 쿠바가 너무나 사랑스럽게 되었다는 ‘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정승구)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한국에서 교사를 폭행하는 학생들 그리고 함부로 하는 학부형들의 문제가 사회문제로 등장하면서 그 글을 쓴 분이 이런 말을 인용합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체 게바라가 말하는 ‘새로운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친구가 근심하면 나는 울고, 내가 기뻐하면 친구는 춤춥니다.”(스탠포드 대학 마틴 카노이 교수의 쿠바 교육의 특징)

예수님은 천국,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많은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천국이라고 하면 보통 죽어서 가는 내세를 말하지만 예수님은 언제나 현재 여기 이 삶에서 살아가는 하나님 사랑과 은혜의 현실을 말씀하십니다. 그 따듯한 사랑의 나눔, 정의로운 세상 만들기, 죽을 죄를 진 인간들에게 새롭게 허락되는 은혜의 오늘과 내일 … 이런 것들입니다. 물론 우리는 죽음 이후의 천국 소망과 죽음 권세를 이기는 부활의 승리를 믿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이 작은 겨자씨와 같은 사랑에서 시작되며 이러한 현실이 천국이라 하셨습니다.

자본주의 최고 부강한 나라 미국에도 천국과 지옥이 있고 공산주의 최고 어려운 나라 쿠바에도 천국과 지옥이 공존합니다. 천국은 우는 아이의 아픔을 공유할 줄 아는 선생님에게서 시작됩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려고 애쓰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자기 인생이 지옥이니 남들도 그러기를 바래서 그렇습니다. 지옥을 결단하고 지옥을 사는 못난 인간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중에 알곡과 가라지를 골라서 가라지는 불에 태워져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겨자씨 같은 작은 사랑 나눔으로 천국을 만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1979년 보스턴신학대학원에 입학했을 때 공부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서 심한 열등감에 시달렸고 첫 학기를 못 마치고 쫓겨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를 연세 많으신 구약교수님이 보자고 하시더니 어떻게 지내느냐 물으십니다. 이 할아버지 교수님이 드디어 나에게 학교 그만 다니라는 통보를 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 자신에 대한 큰 기대가 없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순간 몸이 크고 수염이 긴 Dr. Harrell Beck 교수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내 양 어깨를 꽉 붙잡고 흔들면서 “나는 너에게 많은 것을 기대한다”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제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퇴학을 두려워하던 제가 졸업생 대표로 마틴 루터 킹목사님도 졸업하셨던 그 학교 채플에서 졸업 예배 때 헤렐 백교수님과 함께 성만찬을 집례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 교수님 말씀 한마디가 제 인생을 바꾸어 주었던 것입니다. 겨자씨 같은 소망의 말 한마디, 재정적 도움, 기도, 설렁탕 한 그릇… 모두 훗날 큰 나무를 이루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뉴욕에 사는 어느 분이 애틀란타에 사기꾼들 많고 못된 인간들 많다고 비하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 사람들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인간들은 뉴욕에도 많고 서울에도 부산에도 많습니다. 다만 애틀란타에서 목회할 때 경험한 것은 거기에는 인생 망하고 실패하고 온 사람들도 많고 은퇴하고 온 분들이 많아서 교회에 은혜를 아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너그러웠습니다. 텃세 부리는 인간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뉴욕에서 목회한 지 이제 8년을 넘어갑니다. 뉴욕의 큰 장점은 열심입니다. 영적 갈망이 큽니다. 교회를 사랑해서 헌신하는 교인들을 보면 고개가 숙여집니다. 좀 살아보니 개선할 점은 속은 안 그런데 겉으로 드러나는 말이 거칠고 마음이 각박한 것입니다. 서로 귀하게 여기는 것이 부족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로 천국을 사니 천국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이 천국을 만드는 사람들 되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교회는 지역사회는 물론 우리가 속한 교단에서 큰 집과 같은 교회입니다. 야박하지 말고 넉넉해야 합니다. 많이 참아야 합니다. 많이 도와줘도 당연하게 여기고 고맙다는 말 잘 안 해도 그래도 겨자씨 사랑 포기하지 않고 해야 합니다. 주님은 많이 준 자에게 많이 바라신다 하셨습니다. 후러싱제일교회는 누가 뭐래도 하나님 축복 많이 받은 교회입니다.

김정호/후러싱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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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1.54.116.232)
2023-08-04 10:06:04
체 게바라가 언급되었기에 체 게바라의 실체를 살펴보고자한다
체 게바라는 김일성 이상으로 너무 美化되었다. 어느 기자가 찍은 유명한 사진이 히트를 치자 歐美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여 미녀 영화배우 에바 가드너 등 수많은 미인들이 쿠바를 방문하여 카스트로, 게바라에게 추파를 던지며 꼬리치고 다닐 정도였다. 카스트로와 게바라는 이런 미녀들의 방문을 손 벌려 환영했다. 민중은 굶주리고 있는데...

<첫째> 그가 대학시절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하면서 밑바닥 민중의 민생고를 보고 혁명가가 되었다는 그 유명한 책이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인데 이 책은 쿠바공산당 선전선동부의 작품이다. 훗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김일성 관련 ‘피바다’ 공연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둘째> 혁명 성공 후 게바라는 ‘카바냐 요새(소련으로 치면 KGB)’ 초대 소장으로서 학살을 즐겼다. 이에 대한 증거, 증언은 수도 없이 많다. 쿠바정권 교체되면 공론화되리라 본다.

체 게바라는 ‘처형’을 즐겼다. 한 어머니가 체 게바라를 찾아와 反혁명죄로 체포된 10대 아들의 구명을 호소하자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어 그 소년을 즉각 처형하라고 명령했다는 증언도 있다. 저항할 힘도 없는 사람들을 권총으로 쏘아 죽이거나, 어린 소녀와 임신부를 직접 사살했다는 얘기도 있다.
 
훔베르토 폰타바는 피델 카스트로가 게릴라 지휘관으로서는 별다른 재능을 보여주지 못했던 체 게바라를 중용한 것도 그의 이런 잔인성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1957년 1월 정부군 스파이 혐의를 받은 게릴라 대원을 체 게바라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권총으로 쏘아 죽이는 걸 본 카스트로가 집권 후 소련에서와 같은 숙청할 때 체 게바라를 활용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는 것이다.

훗날 게바라가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활동할 때 산속에서 조우한 농민 일가족을 몰살하기도 했다. 그들이 정부군에 게릴라의 위치를 알릴지도 모른다는 것이 처형 이유였다.

<셋째> 혁명 성공 후 게바라는 요트 선착장과 폭포가 있는 커다란 수영장, 사우나와 마사지룸, 목욕탕 7개인 대저택에서 살며 롤렉스시계를 차고, 고급 시가를 피워 대서 비판자들은 그를 ‘아바나 백작’이라고 부를 정도로 호화로운 사치를 누렸다.

<넷째> 환상적이고 반항 기질이 강한 게바라는 反蘇, 현실적이고 책임감이 강한 카스트로는 親蘇였기에 두 사람이 갈라졌다. 살기 위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게바라가 카스트로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소련에 의지해서 소련식 공업화를 달성하려 했던 카스트로로서는 소련에 비판적이고 중국에 호의적인 발언을 일삼는 체 게바라가 불편했다는 것이다. 게바라와 함께 콩고와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투쟁을 했던 다니엘 알라콘도 “카스트로는 게바라가 볼리비아에서 죽어서 소련과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랐다”고 술회했다.

소련의 지시를 받은 볼리비아의 공산반군이 정부군에 체 게바라에 대한 정보를 흘려 신출귀몰한 게바라를 제거했다는 거다. 신출귀몰한 게릴라가 몰래 숨어 있는 위치를 내부 배신자가 발설하지 않으면 붙잡기 힘들다는 게 사회적 통념 아닌가?

<다섯째> 첫째~넷째는 다른 사람의 증언에 의지하기 때문에 일부 과장이 있을 수 있다. 게바라가 신격화 된 과장만큼이나... 그런데 실제로 드러난 게바라의 행태를 보면 그 신빙성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는 빼박 증거다. 중앙은행총재로 취임한 게바라는 32층짜리 건물을 신축하기로 했다. 설계도면상에 나와 있는 엘리베이트 설치를 거부했고, 화장실도 반으로 줄이라고 지시했다.

 “32층 건물에 무슨 엘리베이터가 필요한가? 천식을 앓는 나도 시에라마드레산맥을 넘나들며 게릴라전을 했다. 그런 내가 계단을 이용하겠다는데 건강한 사람들이 못 할 이유가 뭔가?”

다른 사람이 자기를 따라 하는 게 진리였다. 抽象的인 인간을 위해 抽象的인 게릴라전을 폈던 이가 게바라였다. 크메르 루즈의 폴 포트와 게바라는 판박이다. 자신의 정의를 남에게 강요하는 것, 그는 자신의 정의를 카스트로에게 강요하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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