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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함”에 대한 살냄새 나는 안내서
우동혁  |  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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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7월 27일 (목) 01:24:08
최종편집 : 2023년 07월 27일 (목) 01:25:26 [조회수 : 1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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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함”에 대한 살냄새 나는 안내서

(<각각의 계절>, 권여선, 문학동네, 2023)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사람 참 많이 변하더라.’ X세대라 불리며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이 중년에 이르고보니 참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좋아하는 음식, 음악을 듣는 취향, 손길이 가는 책, 패션 센스, 생각의 습관까지 이루 말하기 어렵습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젊은 시절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어른들을 보면 참 촌스럽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중년에 이르고보니 울긋불긋한 색에 눈길이 갑니다. 점점 잃어가는 생기를 색으로 보충하려는 듯이.

많이 변해버린 나를 돌아보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젊은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인가. 내 아이가 그 시절의 나처럼 산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나이듦 속에서 얼핏얼핏 드러나는 옛얼굴만 아니라면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각각의 다른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나를 닮은 아이가 나와 다른 것 만큼 다를 수 있습니다. 봄과 가을, 여름과 겨울이 각기 다른 계절인 것처럼 말입니다.

권여선 작가의 <각각의 계절>은 그 다름을 생각하게 합니다. 사람마다 각자 살아가는 계절이 다르고, 같은 사람이라도 때에 따라 살아지는 계절이 다릅니다.

“그러나 과거를 반추하면 할수록 내게 가장 놀라웠던 건 그 시절의 내가 도무지 내가 아닌 듯 무섭고 가엾고 낯설게 여겨진다는 사실이었다. 오래전 기억 속의 자신은 원래 그렇게 생각되는 법인지 모른다. 하지만 원래 그렇더라도 놀라운 건 놀라운 것이다. 내가 손쓸 수 없는 까마득한 시공에서 기이할 정도로 새파랗게 젊은 내가 지금의 나로서는 결코 원한 적 없는 방식으로, 원하기는거녕 가장 두려워해 마지않는 방식으로 살았다는 사실이, 내게는 부인할 수도 없지만 믿을 수도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이런 게 놀랍지 않다면 무엇이 놀라울까. 시간이 내 삶에서 나를 이토록 타인처럼, 무력한 관객처럼 만든다는 게.”(p. 204)

젊은 날의 자신을 돌아보며 같은 사람이 맞나 고민하는 것도 사실은 나이들어 누리는 호사입니다. 대체로 그렇습니다. 나이듦이 억울해서 젊은이들에게 꼬장을 부리는 어른들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 반추해 볼 시간이 길다는 것은 넉넉한 성찰의 공간이 됩니다. ‘무엇을 기억하는가, 어떻게 기억하는가, 왜 기억하는가’하는 물음 속에 지금의 나를 설명할 열쇠가 있습니다. 

<각각의 계절> 속에는 중년 혹은 노년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며 젊은 날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얼마나 다른 계절을 살고 있는 지 돌아봅니다. 또한 그와 내가, 혹은 그들과 내가 얼마나 다른 각각의 계절을 살아왔는지도 생각합니다. 그 시절이 흐르는 동안 절친했던 사이가 원수가 되기도 했고, 서먹했던 관계가 깊어지기도 했습니다.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중-노년의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30대 오익과 오순 남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대학원생 오익은 오빠로 인해 차별을 받았다는 동생의 주장에 시달립니다. 자신이 공부를 못해서 못 간 대학을 오빠 때문에 못 갔다고 하고, 자신이 뒷바라지 해서 오빠 대학공부를 시켰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오익은 동생에게 뒷바라지를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오숙이 하는 말 속에는 전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오순은 어머니와 오빠에게 의절 통보를 합니다. 그동안 받은 차별이 억울해서 더는 못살겠다는 것입니다. 오순이 보내던 용돈이 끊긴 어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 오익을 괴롭입니다. 오익은 차라리 자신이 딸로 태어났으면 좋았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 이야기는 남녀의 이야기도 30대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바로 기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많은 문제가 기억의 다름에서 비롯됩니다.  과연 기억의 다름은 누구의 문제일까요? 혹은 무엇의 문제일까요?

<각각의 계절>에 담긴 이야기를 읽다보면 초로의 작가가 들려주는 한편의 지혜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기억하고, 왜 기억하는지가 당신의 미래가 됩니다.’ 개인사만 그런게 아닙니다. 우리의 현대사는 결국 기억의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각각의 계절>은 기억에 대한 성찰, 성찰하며 기억하기에 대한 살 냄새나는 안내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동혁 목사 (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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