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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온 수마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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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7월 20일 (목) 01:34:10 [조회수 : 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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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온 수마

지난 금요일 밤 엄청난 비가 내렸다. 하루 종일 내리고도 밤새도록 쉼없이 내렸다. 잠결에 들리는 빗소리는 예상치 않게 거셌다. 한 시간마다 눈이 떠졌고 귀는 바깥 빗소리에 쫑긋했다. 훈련원 공동체의 맞은편에 있는 공동체 밭 비탈에 변고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끊임없는 염려와 걱정이 지워지지 않았다. 이미 3년 전인 2020년 8월에도 비가 60일 정도 내렸는데 그때도 물을 잔뜩 먹은 밭이 끝내 무게를 이기지 못하게 아래로, 도로로, 공동창고 쪽으로 그리고 이웃집 아주머니 밭으로 흘러내렸다. 그리고 밭도 창고도 무너졌다.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이 그 이후 여름 장마가 들면 저절로 떠올려지는 트라우마였다. 그 트라우마가 지난 금요일에도 밤새 내리는 비와 함께 몸과 마음 구석구석 쑤시고 다녔다. 제발 이번에는 무사히 지나가기를 빌었고, 흙이 무너지지 않기를 저절로 읊조려가며 기도했다. 이른 아침 일어나 곧바로 걱정과 염려로 붙들어 놓았던 밭으로 달려갔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잊지 못한다. 걱정과 염려는 현실이 되어 있었다. 무너져 내린 흙더미처럼 내 마음도 참담했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피해 현장은 지난 2020년 입었던 피해보다 더 컸다. 비탈의 2분의 1이 무너졌다. 주저앉은 밭 비탈 중간에 구덩이가 생겼다. 뭉개진 비탈은 휘어진 계단처럼, 협곡처럼 보였다. 위에서 바라본 현장은 과연 이것을 제대로 복구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심란했다. 원장님께 피해 사실을 알리고, 바로 읍사무소 산업계로 전화했다. 토요일 이른 아침에 누가 전화를 받을지 의심쩍은 생각도 했는데 전화가 됐다. 비상시라 공무원 모두 대기 상황이었다. 피해 상황을 신고하고 나서 곧 천막을 들고 무너져내린 밭 위로 올라갔다. 10미터 천막을 풀었다. 비는 여전히 쏟아졌다. 차가운 비가 몸을 때렸지만 여전히 흘러내리는 토사를 최대한 막아야 한다는 일념밖에 없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푼 천막을 아래로 펼쳤다. 떨어지는 거센 비의 무게에 천막은 펼쳐지다 말았다. 그래서 맨 아래는 천막이 말린 상태가 되었다. 내려가서 펼치려 했지만 발을 잘못 디뎠다가는 토사에 휩쓸릴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해 보여 포기했다. 겨우 윗부분만 덮었다. 비닐하우스가 위태롭게 서 있다. 아찔하다.   

읍사무소에서 팀장이 실사를 나왔다. 수해 현장을 바라보더니 입이 떡 벌어진다. 사진을 몇 컷 찍어 실무자에게 전송했다. 그리고 통화를 했다. 실무자도 사태의 심각함을 알고 바로 굴삭기를 보내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하루 종일 복구작업이 이뤄졌다. 굴삭기 기사의 작업 솜씨가 좋았다.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일을 진행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일머리가 있었다. 쓸려온 토사가 너무 많아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음을 알고 덤프트럭을 부르기로 했다. 읍사무소의 허락을 받은 뒤 덤프가 흙을 여러 차례 외부로 실어 날랐다. 오후 5시가 넘도록 작업을 한 굴삭기는 막혔던 도로를 뚫었고, 배수로를 냈고, 비탈을 다졌다. 임시방편이다. 비가 더 내린다는 소식은 임시방편으로 복구해 놓은 밭 비탈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저 마지막 비가 내릴 때까지 더 이상 무너지지 않기만을 간절히 기도하고 바라고 기다릴 뿐이다. 

밭 비탈뿐 아니라 공동체의 집 지붕도 샜다. 지붕 사이로 스며든 비가 천장에서 똑똑 떨어졌다. 양동이를 떨어지는 곳에 놓았다. 양동이에 물이 채워지면 양동이를 비웠다. 공동 논은 어떤가. 이례적인 강수로 논 옆의 개천은 수위가 올랐고 흐르는 속도가 거셌다. 그 속도에 논둑 밑이 패였다. 아마 비가 더 내렸다면 논둑이 무너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손을 볼 곳이 많다. 월요일에는 수해 맞은 곳을 돌아보고 읍사무소에 가서 신고하고 위험천만한 곳은 숙원사업으로 신청도 했다. 오전부터 이리저리 뛰어다녔더니 엄청 피곤했다. 그래도 한번 경험을 하고 난 처지라 이번 피해 앞에서는 좀 의연했다. 

앞으로 라니뇨로 가뭄이, 엘리뇨로 홍수가 날 일이 많아진다고 한다. 솔직히 수해 입은 것과 수해 복구를 위한 막막함도 있지만 더 큰 걱정은 농사다. 이번 비에 대부분의 농작물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나의 참깨는 여기저기 쓰러졌다. 일으켜 세웠지만 대가 부러져서 그냥 두었다. 고추는 잘 열렸는데 벌써 물러지는 것이 보였다. 토마토는 장마를 이기지 못한다. 콩은 키만 커지고 있다. 대가 굵어져야 하는데 키만 크니 쓰러질 수 있다. 상추와 같은 작물은 비에 녹아내리고 있다. 아, 모든 작물이 성장하기를 멈췄다. 그중에 그나마 들깨만 잘 자란다. 역시 우리 토종이 만세다. 제때 내리는 비는 모든 작물에 유익하나 때아닌 비는 모든 작물을 힘들게 하니 농부의 마음도 썩어 문드러진다. 작은 농사를 짓는 나도 이렇거늘 농사를 생계로, 업으로 사는 농부들은 어떻겠는가. 농부는 이런저런 일로 속이 타기도 하고 이런저런 경험 속에 겸허해진다. 놀라운 것은 크고 작은 기후 위기에도 내 주위 농부들의 입에서 하늘을 탓하는 농부는 없었다. 그들이 대인배다. 매우 존경스럽다. 

연초에 누가 예언했나. 올 7월은 몇 날을 제외하고 비가 내린다고. 맙소사! 이런 예상은 충분히 빗나가도 되건만. 다시 찾아온 수마가 마지막 길은 곱게 지나가길 진정 바란다. 


황은경/농촌선교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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