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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의 복” 계시록 22장6절~9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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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7월 18일 (화) 16:58:54
최종편집 : 2023년 07월 18일 (화) 16:59:31 [조회수 : 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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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의 복” 계시록 22장6절~9절

 

 

1. 구원의 여정 ‘의인화’, ‘성화’, ‘영화’

 

① (6절)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 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 22장은 작게는 요한계시록의 결론이자 크게는 성경 66권 전체의 결론에 해당된다. 그런 의미에서 신실하고 참된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전한다. 좁은 의미에서 앞서 살펴본 21장에 기록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영광이 신실하고 참되다는 것이다. 거룩한 성도들을 위해 예비된 새 하늘과 새 땅, 환란과 핍박 중에도 끝까지 믿음을 지킨 성도들을 형상화하는 보석 같이 빛나는 도성과 관문, 성곽과 그 기초석, 수정 같은 생명수의 강에 관한 비전이 반드시 성취될 것을 약속한다. 다시 말해 십자가와 부활의 믿음으로 말씀대로 준행한 이들이 누리는 최종적인 구원의 영광, 곧 의의 최후승리에 관한 언약이 신실하고 참되다는 뜻이다. 또한 ‘이 말’은 넓은 의미에서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66권이 시종일관 전하는 메시지, ‘경외와 준행, 동행과 축복’으로 이어지는 한결같은 언약이 신실하고 참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둘 모두 성도들이 누릴 구원의 최종적인 영광, 곧 영화(glorification)를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 구원은 과거의 일회적인 사건을 넘어 현재와 미래를 포함하는 구원의 전 과정을 통해 마침내 완성됨을 가리킨다. 마치 결혼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출발이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부단한 과정을 거쳐서 행복한 가정을 완성해 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를 가리켜 구원의 여정(서정 또는 순서, order Salvation, ordo Salutis)이라 일컫는다. 사도 바울은 구원의 전 과정을 다음과 같이 증언 한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하시고 의롭다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부르심(소명, 召命)은 의롭다 하심(칭의, 稱義)으로 이어지고, 거룩하게 하심(성화, 聖化)은 영화롭게 하심(영화, 榮化)으로 완성된다. 이와 같은 구원의 과정에 대해 의인화(justification)를 과거적 구원이라 칭하고, 성화(sanctification)는 현재 진행 중이므로 ‘현재적 구원’이라 하고, 장차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영화(glorification)를 ‘미래적 구원’이라고 일컫는다. 이러한 구원의 여정은 천국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아 천국을 소망하며 날마다 천국백성으로 사는 현재적 삶을 통해서 하나로 연결되고 또 연속된다.

▶ 구원의 첫 번째 지경은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의인화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느니라(롬 3:23~24).” 구원의 두 번째 지경은 말씀대로 준행할 때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변화되고 성숙하는 성화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13~15).” 구원의 세 번째 지경은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온전하고 거룩하게 변화되어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에 마침내 완결되는 영화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라(히 12:22~24)”

▶ 구원의 여정을 요약하면 과거적 구원인 ‘의인화(의롭게 여기심)’, 현재적 구원인 ‘성화(거룩함)’, 미래적 구원인 ‘영화(완전함)’다. 의인화는 이천년 전 예수그리스도의 초림(십자가와 부활)으로, 성화는 성령의 역사(말씀과 기도)로, 영화는 그리스도의 재림(심판)으로 성취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영광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으로 완결되는 구원의 최종적 완성, 거룩한 성도로 온전하게 변화된 영화를 형상화하고 있다.

 

 

2. 말씀을 지키는 자

 

① (7절 상)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요한계시록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다. 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내일 주님이 오셔도 부끄럽지 않은 오늘을 살아가는 삶’이다. 날마다 천국, 곧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하나님의 심판대를 바라보며 사는 늘 깨어있는 삶을 촉구하는 말씀이다. 오늘날 임박한 종말론으로 혹세무민하여 저세상만 바라보게 하는 ‘피안주의(彼岸主義)’나 지연된 종말론으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이 세상에서 세속적인 욕망을 좇는 ‘현세주의(現世主義)’가 만연하고 있다. 이 둘의 공통점은 천국복음의 본연의 메시지를 상실함으로 결국 삶의 유익이 아니라 불행을 초래한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양극단적인 종말론의 원인은 요한계시록에 대한 몰이해와 오용에서 비롯된다. 이단사이비는 왜곡하고 정통교회는 외면한다. 난해한 요한계시록을 연구하고 묵상해야할 이유와 목적이 여기에 있다. 요한계시록이 전하는 묵시의 뜻을 밝혀 삶에 유익을 주는 균형 잡힌 종말신앙을 정립하기 위해서다. “희망의 종말론(Understanding of the Eschatology of Hope in Pannenberg’s Theology)”에 따르면 종말의 때는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울러 모든 종말론적 상황을 포괄한다. 요한계시록을 비롯한 성경에 기록된 모든 종말에 관한 예언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삶, 곧 ‘마지막을 생각하며 오늘을 사는 삶의 지혜’를 전하고 있다. ‘과거적 종말’인 이스라엘 나라의 멸망과 성전파괴의 사건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이라는 관점에서 시간과 공간을 넘어 모든 시대와 모든 사람에게 종말론적 사건으로 그 의미가 적용되고 확장된다. ‘현재적 종말’은 삶에서 만나는 위기의 순간을 가리키는 종말론적인 상황을 가리키며, ‘미래적 종말’은 우주적 종말과 더불어 인생의 종말인 죽음을 의미한다. 성경이 전하는 종말론이 전하는 핵심은 알 수 없는 ‘종말의 날’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진 ‘오늘’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인생의 종말인 죽음에 적용할 때 더 분명해진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자각하고 죽음을 준비하며 사는 삶이 오히려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알차게 살아낼 수 있다는 역설(逆說, paradox)이다. 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죽음을 생각하며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더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라’는 메시지다.

 

② (7절 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단순히 말씀을 듣기만 하는 차원을 넘어 말씀대로 준행하는 차원까지 나가야 함을 강조한다. 오직 말씀을 지키는 그 사람들에게만 복이 있다는 말씀이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 2:13)”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 8:11~15)” 모든 밭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말씀을 들은 자라는 사실이다. 차이점은 듣기만 한 자들과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라는 데 있다. 산상수훈의 결론은 이를 더 명쾌하게 증언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요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말씀대로 준행하는 차원까지 나가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까닭은, 진정한 순종을 위해서는 반드시 굳센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철저한 자기부인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이 전하는 본뜻도 이와 같다. 말씀대로 준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진정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한 알의 밀이 썩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다는 말씀을 믿지 못해서 죽는 시늉을 한다. 문제는 씨를 뿌리는 시늉만 했는데 어찌 추수 때에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으랴!

 

 

3. 오직 예수! 하나님께만 경배하라

 

① (8절)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 본문은 요한계시록이 역사적 상황 속에서 사도 요한에게 나타내신 비전임을 거듭 강조한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는 섬에 있었더니(계 1:9)” (메시지성경) “예수 안에서 여러분과 함께 시련과 그 나라와 열정 어린 인내에 참여해 온 나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의 증언 때문에 밧모라는 섬에 있게 되었습니다.” 밧모 섬은 소아시아 에베소 남서쪽 약 90km지점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유네스코문화 유산에 등재된 ‘파트모스’를 가리킨다. 로마 시대에 정치범 수용소로 사용된 유배지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 섬에 유배되었다. 로마제국의 황제가 통치하던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증거 하는 것이 제국의 전복을 노리는 반역죄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계 1:10~11)” (메시지성경) “그 날은 주일이었고, 나는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뒤에서 나팔 소리처럼 우렁차고 쩡쩡한 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본문에 기록된 ‘주의 날’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심판의 날이 아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안식 후 첫 날, 곧 주일(主日, The Lord's Day)을 가리킨다.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이 전하는 내용에 주목해야 한다. 요한에게 전한 주님의 음성은 지금부터 보여주는 계시를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글로 써서 보내라는 것이다. 이는 요한계시록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말씀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기록된 말씀이라는 사실임을 뚜렷하게 증거 한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시대적 배경은 주후 70년 헤롯이 지은 예루살렘성전이 로마제국의 장군 티투스에 의해서 파괴된 후, 사도들에 의해 로마제국이 통치하던 전 지역에 세워진 초대 교회들에 대한 주후 80년~90년경 도미티안황제에 의해 자행된 극심한 기독교 박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기록된 말씀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소아시아 지역에 실제로 존재했던 박해받던 초대교회 신앙공동체뿐 아니라 시공을 넘어 박해받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 변함없는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의 소망을 계시로 증거 하는 말씀으로 읽어야 한다.

 

② (9절)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 본문은 계시록 19장에 기록된 말씀을 거듭 반복함으로 강조하고 있다.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계 19:10)” (메시지성경) ‘이러지 마라, 나도 너처럼 예수를 증언하는 너의 형제자매들과 같은 종일뿐이다’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해야지, 위대한 업적이나 신비한 권능을 행한다고 해서 종을 주님으로 받들고 섬기면 안 된다. 예나지금이나 이단 사이비 교주들처럼 주인 행세를 일삼는 종들이 많다. 귀신을 내어 쫓고 병을 고치며 큰 권능을 행하며 ‘나를 본받으라, 나를 따르라!’고 현혹한다. 문제는 이와 같은 혹세무민이 단지 이단사이비교주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추락하는 것에 모두 다 날개가 있듯이, 타락하는 종교지도자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놀라운 은사와 온갖 권능을 행하던 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경우에도 종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스스로 높아진 자칭 메시아를 하나님처럼 경배해선 안 된다. 오직 사도신경이 고백하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으시고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만을 그리스도로 경배해야한다.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고 성령의 빛을 좇아 말씀 따라 살아야지 물질을 경배하거나 사람이나 세상풍조를 따라 살면 안 된다. 또한 종은 어떠한 경우에도 직분이나 연조, 자기 의나 특권의식을 버리고 주인노릇하지 않도록 스스로 삼가고 경계해야 한다. 자기 의에 사로잡힌 오만은 천국에 들어가는 길을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자, 자신도 모르게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적그리스도로 전락하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종의 자세를 세례 요한은 명료하게 증언한다. “나의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 할 자는 너희니라...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 3: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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