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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선생님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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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7월 16일 (일) 02:07:31 [조회수 : 2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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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잡지에 이야기 모음을 연재하는 중이다. 주제별로 짧은 이야기를 찾아 소개하는 일은 흥미진진하다. 들을 귀를 키우고, 시야를 넓히면 이야기 소재는 차고도 넘친다. 4년째 지속할 수 있는 배경이다. 세상에서 날마다 회자되는 이야기의 생산량은 아마 인구수만큼 많고, 다양할 것이다. 물론 모든 이야기가 이야기꺼리가 되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관심사는 저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소설과 영화로 만들어지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두루 공감을 주기란 쉽지 않다. 대개 창작의 실마리는 모두 이야기에서 나온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인생은 이야기로 시작하고 또 이야기로 끝난다.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고, 갈무리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야기를 남긴다’는 말도 있다. 소중한 삶의 스토리를 나누는 사람이라면 그 인생은 의미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도입말로 손꼽히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평생 이야기를 쫓아다닌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가 내린 결론이다. 행복한 사람의 모습보다 불행을 겪은 사람의 얼굴이 훨씬 다양하고, 개성이 있는 법이다. 그만큼 웃는 표정과 고난의 표정은 깊이와 넓이가 다르게 마련이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밥상을 나누는 원로 선배가 계신다. 1932년생이니, 올해 91살이다. 30년 가까운 시차는 세대 차이를 훨씬 뛰어넘는다. 매번 단골처럼 듣는 해방 후와 전쟁 직전, 평양에서 지낸 짧은 학창 시절 이야기는 딴 세상 드라마처럼 들려, 종종 핸드폰 녹음기에 손을 댄다. 그가 평생 자유롭게 이야기를 말하는 이유를 느낄 수 있다. 그만큼 그의 자유는 흠뻑 갈망과 함께 재미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선배는 요즘 당신이 읽은 소설이라면서 신간 여러 권을 주셨다. 작가 김영하의 소설집만 세권이다(<퀴즈쇼>, <빛의 제국>, <작별 인사>). 모두 2022년에 나온 소설들이다. 심심풀이로 읽는다지만, 빛의 속도로 근간(近刊)들을 탐독하는 소화력 때문에 정신이 늙지 않는 듯하다. ‘<사소한 취향>(2022, 김학찬), <완벽한 생애>(2021, 조해진), <이토록 평범한 미래>(2022, 김연수)’ 등에 이르니 1세기 가까운 이야기들을 담지하며 사는 원로의 세상이 더욱 궁금해진다. 그래서 만남이 더욱 소중하다.

  좋은 영향을 닮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생일 선물을 주문하였다. <제주도우다>(전 3권, 현기영)이다. 작가는 ‘순이 삼촌’으로 유명한 분인데, 1978년 이 소설 덕분에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곤욕을 치뤘다. 당시 ‘제주 4·3’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리 은유적이라고 해도, 밖으로 말을 꺼내는 순간 경을 칠 각오를 해야 했다. 그런데 82살 원로 현기영은 <제주도우다>에서 아예 다 드러내어 ‘제주 4·3’을 발언한다. 물론 상징언어일 필요도 없다.

  첫 작품과 마지막 작품, 그리고 전 생애 내내 작가는 제주도를 이야기하려는 주제의식으로 충만하였다. 세상을 향해 고향 이야기로 말문을 튼 현기영은 ‘제주 4·3’의 기억을 깨우고, 사회적 발언권을 확장하였다. 무릇 작가라면 자신이 풀어내는 이야기 속에 인간과 역사는 물론 소소한 세상 이야기를 품어야 한다. 직업적 소명일 것이다. 문득 자신을 돌아본다. 평소 말하는 특권을 갖고도, 자기 시대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다면 과연 내 직업의식은 얼마나 보잘 것없는 것인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김소진 단편소설 ‘마라토너’이다. 한 노장 마라토너 이야기이다. 그는 스스로 ‘페이스메이커'라고 말한다. 쉬운 말로 ‘바람잡이’다. 우승권에 있는 히어로 선수가 잘 달릴 수 있도록 초반에 적절한 보조로 이끌어주기도 하고, 상대 외국 선수를 견제하기도 하는데, 정작 본인은 완주해도 되고 안 해도 상관없는 그런 선수다. 누구나 자기 인생에서 그런 페이스메이커 한둘쯤은 함께 할 것이다. 아마 소설가의 역할도 재미있는 인생 이야기를 만들어 보라고 부추기고, 격려하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이 아닐까? 

  <예수, 학교에 가다>(이수호)라는 책이 있다. 교사인 그는 예수님만큼 좋은 선생님이 없다면서, 가장 커다란 장점으로 이야기 선생님 역할을 들었다. 후대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가리켜 위대한 이야기꾼(The great Storyteller)이라고 부른 이유다. 무릇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저마다 이야기보따리를 챙겨야 한다. 그렇게 삶의 무게만큼 무겁고, 내 인생의 꿈처럼 가벼운 그런 이야기를 찾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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