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오늘의칼럼
장소를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
김기석  |  vorblick@dreamwiz.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3년 07월 14일 (금) 04:38:01 [조회수 : 3333]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그는 생긴 것은 물론이고 그윽한 목소리와 거동까지 여러 모로 영화 ‘시스터 액트’에 나오는 우피 골드버그를 닮았다. 보스턴의 찰스 강변에 있는 한 소박한 호텔 식당은 그로 인해 특별했다. 첫째 날 아침 식사를 하러 다소 주뼛거리며 식당에 들어선 내게 그는 아주 반가운 사람을 대하듯 다가와 식탁 위에 있는 접시를 가져다가 음식을 담아오면 된다고 말했다. 친절함이 몸에 밴 사람 같았다. 의례적인 친절이 아니었다. 그는 모든 손님들과 마치 오래 전부터 알던 사람을 만난 것처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해야 하는 일이 제법 많아 보였지만 그는 전혀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자기의 일터를 우애와 따뜻함이 감도는 공간으로 바꾸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면서 그를 유심히 관찰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을 떠나는 이들도 그를 찾아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벼운 포옹으로 작별을 고했다. 호텔을 떠나던 날 나도 그에게 ‘당신은 이 공간을 특별한 환대의 공간으로 만들고 있어요. 정말 고마워요’라고 인사하자, 그도 또한 내게 진정어린 은총을 빌어주었다.

예산에 있는 한 자그마한 카페 주인은 새벽 일찍 가게에 나와 빵을 굽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카페를 시작하면서 그는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밀가루, 버터, 설탕, 치즈, 바질, 과일, 커피 등은 최고의 재료를 사용한다. 둘째, 그곳을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하나님이 보내주신 이들로 여겨 정성스럽게 대한다. 첫째 원칙은 정직하고 성실한 마음을 잃지 않는 한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둘째 원칙이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고 무례한 이들을 대해야 할 때도 있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릴 때도 있지만 그는 자기 원칙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마음 때문일까? 그 카페는 이런저런 마음의 상처로 고달픈 이들이 찾아와 편안히 머물고 쉼을 얻는 장소 구실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주문받은 빵과 드립 커피를 가지고 테이블로 가서 커피를 내린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해드리며 행복한 시간이 되기를 빌어주자, 손님이 느닷없이 눈물을 흘려 놀랐다고 한다.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주인의 태도에서 자기가 소중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환대하는 일은 그에게 고향을 선물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이다. 카페 주인은 자기 일터를 성소로 바꾸고 있었다.
  
마음 둘 곳이 없는 세상이다. 경쟁이 일상이 된 세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바장이다 보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외로움에 젖어든다. 가족이나 벗들에게도 그 외로움을 쉽게 털어놓지 못한다. 칭얼거리는 사람 취급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 외로움이 지극해지면 부모님의 묘소를 찾는 이들이 많다. 그곳은 무슨 말이든 다 허용되는 곳이 아니던가. 부재하면서도 존재하는 이들 품에 잠시 몸을 맡기면 우리 속의 얼음이 녹아 생명을 살리는 물로 변한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찾아갈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야 한다. 물론 그 장소는 특정한 공간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고 공동체일 수도 있다. 아무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곳에서는 혹은 그의 곁에서는 그저 나답게 있어도 괜찮은 장소가 있다면 우리는 삶의 곤고함을 이겨낼 수 있다. 정원을 가꾸며 시름을 달래는 이들도 있고, 밭에서 호미질을 하며 마음을 가지런히 하는 이들도 있다.
 
19세기의 영국화가인 존 컨스터블은 에식스주에 있는 그의 고향 마을 데덤 풍경을 많이 그렸다. 그의 그림 때문에 데덤은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 다양한 빛으로 일렁이는 하늘 아래로 숲, 나무, 강, 작은 연못, 구름과 그림자가 평화롭고, 건초 마차를 모는 이들이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의 고향 그림 가운데 자주 등장하는 것이 마을 교회이다. 원경으로라도 교회의 종탑을 굳이 그려 넣은 것은 단순히 교회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 교회는 유년 시절부터 그의 장년 시절까지를 이어주는 기억의 매개인 동시에,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도 그가 중심을 잃지 않도록 해주는 정신의 돌쩌귀였던 것이 아닐까?

세상 도처에 환대를 통해 장소를 아름답게 만드는 이들이 있다. 적대의 바다에서 환대의 샘물을 솟쳐 올리는 이들 덕분에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김기석/청파교회
(* '월간 에세이' 7월호 원고입니다)

김기석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4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