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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봉쇄수도원 방문과 사마람 삶 나눔기
노종해  |  ro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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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7월 13일 (목) 23:49:33
최종편집 : 2023년 07월 18일 (화) 02:23:00 [조회수 : 3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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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쇄수도원 원장과 사마람 임원들!

(충주:2023.7.13.수. 오전 11:50):사마람 임원 5명은 충주 봉쇄수도원을 방문하였다. 원장 강문호 목사는 수도생활 중에도 은퇴목사를 돕는 사마람 활동에 후원하며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주, 충주 서로 이웃에 있는 사마람 임원들이 원로의 삶을 나누고자 방문하였다. 

 

   
▲ 봉쇄수도원에 도착한 사마람 임원들!

충주 봉쇄수도원은 산척면에 있으나. 제천과 분계 지역에 있어 제천, 원주와 가까운 위치이며, 행정구역 개편으로도 충주와 제천로 이동되었고 현재는 충주 석천분교이었다. 

 

   
▲ 산척면 애련길에 들어서서!

 

봉쇄수도원은 하늘 오르는 길, 천등산(天登山) 줄기 언덕에 있으며, 소백산맥의 치악산, 국망산, 월악산 등이 둘러 있는 험준한 산악 산골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로 신유박해 때(1801년) 천주교 성도들의 피신처였던 천등산 깊은 산속에 배론성지도 있고, 한국 최초의 토착화 산학자 탁사 최병헌 선생의 생가도 이웃에 있다. 

 

   
▲ 봉쇄수도원 가는 산골길에서!-송골길 이정표가 보인다!

 

또한 바위돌에서 솟는 물이라는 뜻의 석천리(石川里)는 산골짜기 시냇물로 원서천(院西川)을 이루어 남한강으로 흘러 서울 한강에 이른다. 산골짜기 계곡물가에는 차박 등 피서객, 낚시꾼들이 찾고 천등산 등산객들이 찾아 오는 지역이도 하다. 영화 박화사탕 촬영지이기도 하다. 

산골 주민들은 1.4후퇴 때 산속으로 피신해 들어 온 이북사람들의 주거 지역으로, 해방 후 석천분교가 설립 되었다.(1947)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 140가구가 정착하여, 어린이 학생들이 증가했고  한때는 정규 석천국민학교이기도 했었다.  현재 피난민들은 세상을 떠나거나, 타지로 전출하였고, 너무 깊은 산골이라 주민도 몇 안되며 교통도 불편한데다 어린학생도 없어 분교는 폐교 되었다.(1997) ​

 

   
▲ 봉쇄수도원 가는 산골길에서!-송골길 이정표가 보인다!

 

강문호 목사는 정년은퇴 5년을 앞두고 2014년부터 수도원 생활을 결단하고 봉쇄수도원 설립 구체화에 착수하였다. 수도자료들을 모으고 국내 수도원들을 찾아 탐색하였다. 봉쇄수도원에 대한 멘토가 없음으로 국외를 찾아 다녔고, 이스라엘 수도원들을 집중하여 조사 체득하였다. ​

이러한 탐방 조사 체득과정을 통해 한국형 봉쇄수도원을 설립하게 되었다. ​

석천분교를 매입하고 숙소를 지어  봉쇄수도원을 개원하였다. 학교 교실은 수도원학교 교실과 기도실 도서관이 되었고 운동장은 수도원 농장이 되었다. 현재 농장 일은 하지 않고있다 한다. 수도원생들이 농산물을 구입하자고 하여서다.

 

   
▲ 충주 봉쇄수도원 표비가 보인다!

 

필자는 윤바울 목사의 운전으로 충주시내에서 츨발하여, 제천행 자동차전용도로에서  백운면으로 우회전하여. 산척 산골짜기 계곡 1차선 길을 운행했다. 

 

   
▲ 충주 봉쇄수도원 표비에서 우측 길로!

 

산골로 구비쳐 들어가다가 좌측 애련길로 들어섰고, 가파른 산길 소로로 오르니, "충주 봉쇄수도원"을 표시한 작은 돌비가 보였다. 좌측 소로로 언덕에 올라서니 수도원 입구가 보였다. 

 

   
▲ 산골 언덕에 오르니 수도원이 보여!-분교운동장!

 

수도원은 길가에 늘어선 소나무 사이로 언듯 보였고. 정문입구에 들어서니 수도원 학교와 우측에 단층으로 된 수도원생들의 단촐한 긴 숙소가 보였다. 숙소 앞 마당에는 "충주 봉쇄수도원" 입석비가 보였다. 

 

   
▲ 봉쇄수도원 입구에서-기다리고 있는 원장!
   
▲ 충주 봉쇄수도원 비석과 숙소!

 

강문호 목사는 수도원 뜰에서 친히 기다리고 있었고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수도원 학교 벽에는 봉쇄수도원 생활에 대한 안내가 표기 되어있었다. 잠시 눈여겨 보다가 수도원 학교 기도실에 들어서 책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 봉쇄수도원 수도사 학교 교실에서!

 

원장 강문호 목사와 사마람 임원들은 1960년대 신학교 학창 시절을 같은 캠퍼스에서 지냈음으로 어색함도 없이 심정적으로 통하였다. 책상 위에 준비한 수박과 커피를 나누며 지난 삶의 이야기가 기쁨의 꽃으로 피어 올랐다. 

 

   
 

 

강목사는 6.25전쟁 때  피난길에서 포탄으로 죽을 뻔 했고, 미군부대 통역병으로 월남전쟁에 참여하여 포탄에 죽을 고비를 넘기는 등 3번에 걸쳐 죽을 고비를 넘겨 덤으로 사는 삶이라고 간증하며, 늘 하나님과 합일의 수도사의 삶을 살겠다고 증언하였다. 

 

   
 

 

교실 뒷편으로는 강문호 목사의 저서들이 수도원 교재로 전시 되어 있었다. 강문호 목사는 세계 수도원을 탐방하며 조사연구한 저서, 문서들 140여 권이 복도 한편 책장에 전시 되어 있었다. 

​강문호 목사는 정년은퇴 후 봉쇄수도원에서 2년 동안 외출하지 않았으며, TV등 일체 외부소식과도 단절하여 청빈 순결 순복 노동 정주 등 수도사의 삶에 몰두하였다. ​

삶의 이야기가 무르익어 가는 옆면에는예수님 제자의 전도자 파송 성화가 눈에 띄어, 성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강목사는 성화를 가리키며 특별한 내력을 설명하였다. 

 

   
 

 

이라크의 후세인궁에서 그림을 그리던 화가 김주교는 이라크에 취업한 남한식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영접했으며, 그 후 화가 김주교는 우상 그림을 포기하고 몰래 후세인궁에서 이 성화를 그렸다고 그 내력을 소개하였다. 

 

   
 

 

이후 김주교와 남한식은 모두 복음 전하는 목사가 되었고, 이라크에 교회를 개척하였으며, 봉쇄수도원에 이 성화를 기증하였다고 한다.(2018.3.13.) ​

봉쇄수도원은 초교파로 성도들의 헌신과 후원으로 설립 되었으나, 언론매체와 인터넷 알려지며 비난과 비판, 오해를 많이 받았다. 

 

   
 

 

강문호 목사는 수 많은 댓글과 악플로 시달림과 상처를 받았지만 일일히 대응하지 않고 수도자의 삶에 묵묵히 몰두하였다. 이제는 모두 잔잔해 지고 평온하다고 한다. 강목사는 잔잔히 미소짓고 있었고 나긋나긋한 음성에 온화한 모습이었다. 

 

   
▲ 봉쇄수도원 원장과 필자!-저서를 받고서!

 

봉쇄수도원 생활이 외롭고 어렵지않습니까?고 물으니, 수도원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많아 심심할 틈도 없다고 한다. 수도사 양성학교, 장막성전 강의,  금식 등 각종집회에 초교파적으로 참여하여 봉쇄수도원 수도자 생활이 즐겁고 기쁘다고 한다.​

강문호 목사는 봉쇄수도원 규칙에 의해 수도원 밖으로 나갈 수도 있다 한다. 현재 봉쇄수도원 규칙은 주일예배 인도, 설교 등으로 외출할 수 있다.​

봉쇄수도원이 이런 산골에 위치하기까지 전국에서 장소 추천을 받아 일일히 답사해 보고 충주 산척면 석천리를 결정했다고 한다. 

 

   
▲ 봉쇄수도원 교재들-원장 강문호 저서들!

 

이에는 충주 장로들의 추천과 헌신이 있었다. 충주는 전국의 중심도시로 2시간 대이며, 하늘 오르는 길 천등산이 있고, 산골 바위에서 흐르는 물, 석천은 산골 시냇물로 남한강으로 흘러 한강으로 흐른다 했다. 

 

   
▲ 폐교 된 석천분교-(사진-봉쇄수도원 홈페이지에서)

 

충주 장로들이 "산척 산골에 폐교가 있는데 수도윈으로 최적지"라고 추천하였으며, 폐교 된 대지 8천여평과 교실 3칸의 석천분교를 매입하여 숙소를 짓고 봉쇄수도원을 건립 봉헌하였다.(2018년) 

 

   
▲ 봉쇄수도원 수도사 학교 복도의 자료들!


수도생활과 지난 삶의 이야기는 점심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이미 강목사는 사마람 임원들의 접대를 위해 제천의 박정민 목사와 약속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수도원을 나서서 방문 기념사진을 남기고, 20분 거리의 제천으로 향했다. ​

제천 의림지 식당에서  박정민 목사(충북연회 감독)는 자리를 예약하고 기다리고 있었으며, 도착시간에 맞추어 주문하였다. 식당에 도착하고 보니, 유명한 건강음식 맛집이었고 도토리 음식 전문점이었다. 

 

   
▲ 제천 의림지 맛집에서!

 

도토리전, 도토리묵, 도토리 깨죽, 도토리 산채, 도토리 스시, 도토리 비빔국수 등등 도토리를 레시피로 하는 건강밥상이 차려졌다. 

 

   
▲ 김광덕 목사의 식사 기도!

 

김광덕 목사의 기도 후 도토리 건강밥상을 즐기며, 사마람의 어려운 은퇴목사들을 찾아 돕고 삶을 나누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

사마람 회장 이요한 목사는 충북연회 감독 박정민 목사께 연회 은퇴자 중 생활이 어려운 분들을 선정해 주실 것을 요청하였다. ​

또한 은퇴목회자를 돌보며 나누는 사마람에 대해 소개하고 충북연회에서도 참여를 당부하였으며, 흔쾌히 참여하겠으며 환영한다는 답을 받았다.​

어느덧 2시반이 넘고 있었고 수요일로 예배준비로 자리에서 일어나 마치었다. 식다 마당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서 원주로. 충주로  헤어졌다. 

 

   
▲ 의림지 맛집 앞에서 충북연회 박정민 감독과 함께!

 

은퇴 후 원로들의 다양한 삶을 감사드리며, 주님의 사랑과 은혜, 인도하심과 평강을 기도하며 찬양하였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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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외출 가능하군. (121.168.160.158)
2023-07-23 05:10:53
이름만 봉쇄수도원. 처음시작할 때부터 알아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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