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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순천 감리교 역사 기행과 낙도선교회
노종해  |  ro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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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7월 06일 (목) 07:16:10
최종편집 : 2023년 07월 10일 (월) 23:48:45 [조회수 : 2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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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순천 감리교 역사 기행과 낙도선교회

 

노 종 해(CM리서치)

   
▲ 옛 순천중앙감리교회와 사택-현, 동재 카페!(이하 사진:2023.6.20)


(충주, 2023.7.5.수. 9:30pm): 필자는 50년 만에 순천역에 도착하였고 옛 기억을 더듬었다.  첫 목회지인 충주에서 50년 전(1973년), 1만 원을 가지고 돈이 떨어질 때까지 단신으로 여행을 떠난 것이다. 그때 부산까지 가서 밤 기차를 타고 순천역에는 새벽에 도착하였고, 너무나 피곤하여 순천역 광장 한가운데의 둥근 화단 둘레에서 가방을 베개 삼아 신문지를 깔고 누워 잠을 청한 일이 기억에 새롭다. 순천역에 도착 함으로, 1박2일 여수 순천 감리교회 역사 현장을 찾는 여행에 들어갔다.(2023.6.20-21)

 

   
▲ 순천역과 광장의 화단!(1970년대)
   
▲ 순천역 광장의 화단-현, 대로 중앙 로타리로!

 

순천역에서 나오니 광장의 화단은 보이지 않았고, 순천역 앞대로 가운데 로타리 화단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도 어찌나 반가운지 그때 그 시절이 떠올라 정감에 젖는 순천이었다.

순천역에서(2023.6.20.화) 신바람 낙도 선교회 회장인 김용태 목사와 만났고, 우선 점심을 위해 역 앞의 골목 식당에서 낙불고기로 주문하였다. 역시 호남 밥상은 반찬이 풍부하였다. 생선찜과 간장게장, 젓갈 등 각종 해물과 나물 반찬들이 차려졌다. 일반적인 합리적 가격에 흡족한 밥상이었고 기분 좋은 여행출발이 되었다.

 

순천의 첫 중앙감리교회와 남장로교 선교기지 기독교 역사박물관

 

여수 출신 토박이 김용태 목사의 안내로 순천 중앙동 옛 문화 거리의 기독교 발상지를 찾았다. 차량통행도 걷는 사람도 별로 없는 한적한 거리의 역사적인 정경이 포근하게 다가왔다.

김 목사의 안내로 주차장에 차를 놓고 건너편 길가의 “동재 카페”로 갔다. 카페 동재의 흰 건물은 길가 벽면 전체가 유리창으로 실내와 불빛이 한 폭의 그림같이 아늑하게 보였다.

 

   
▲ 옛 중앙감리교회 건물이 보인다!-현, 동재 카페


김용태 목사는 “여기가 순천에서 첫 감리교회인 중앙감리교회였고, 그 건물이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으며, 순천 왕지교회를 개척(1998년)하기 전까지 중앙교회에 출석하였다”고 설명하며, “현재의 건물은 교회의 원형을 보존하고 교회 내부를 카페 공간으로 인테리어 보수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 옛 중앙교회와 나란히 사택가옥-현, 옷 수선점!
   
 

 

현재 순천중앙감리교회는 인근 신도시로 이전하였고, 변호사 인사가 옛 교회 건물을 매입 인수하여 카페로 사용한단다. 종탑의 십자가는 내려져 있으나 옛 교회 건물 모습 그대로라고 한다. 옛 교회 건물 찻집과 나란히 있는 한식 “ㄱ”자 주택은 옷 수선집이었고, 담임목사 사택이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순천중앙감리교회와 주택은 원형이 보존되고 있는 셈이다.

순천 첫 감리교회인 중앙감리교회는 한국전쟁 때 황해도에서 서해안으로 미군수송선(LST)을 타고 피난 온 분들이, 1951년에 원태익 장로(원형수 목사 부친)가 중심이 되어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1955년 천막교회로 개척 설립한 교회이다.

 

 

   
▲ 옛 중앙감리교회 강단에서 본 교회 입구!

 

필자는 김용태 목사와 함께 동재 카페로 들어가 보았다. 김목사는 카페 내부는 교회 예배실 그대로라 했다. 카페 입구는 교회 입구였고 전면에 강단 자리가 보였다. 강단 벽 앞에는 긴 테이블로 배치되어 있었고, 필자는 강단 부분 테이블에 앉아 사진을 남겼다. 카운터의 여종업원이 중앙테이블로 옮겨 김목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 주었다. 김목사는 순천중앙감리교회도 다녔기 때문에 그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 조지와츠 기념관-순천 의료선교 박물관!

 

순천의 감리교회 발상지를 찾았으니, 남장로교 선교본부 기지가 있었던 매산동 언덕으로 갔다. 교육선교의 학교들과 의료선교의 병원들, 순천의 첫 중앙장로교회가 있는 역사적인 장소였다.

현재는 순천기 기독교역사 박물관이 있어, 박명록에 서명하고 방문하였다. 순천시 기독교역사 박물관에서 순천기독교 역사 화보와 자료집을 선물로 받고 둘러 보았다. 남장로교회 선교사들은 1892년 첫 7인의 남장로교회 선교사들이 내한하였고, 1893년 선교구역 분담에 따라 호남지역 전주, 군산, 광주, 목포, 순천에 남장로교회 선교부 기지들을 설치하였고, 순천 선교본부는 1913년에 설립 되었다. 1941년 추방될 때까지 100여 명이 넘는 선교사 가족들이 의료선교, 교육선교, 교회개척 선교 등으로 전남지역 복음화를 위해 헌신한 남장로교회 선교본부 지역이었다.

 

   
▲ *순천시 기독교역사 박물관 자료집- 사진과 유품, 영문 자료집
   
▲ 순천시 기독교 박물관에서!

 

호남지역은 남장로회 담당 선교구역으로 전남 전 지역에 장로교회가 개척설립 되었다. 호남은 감리교회 선교구역이 아니므로, 해방 전까지 감리교회가 없는 지역이다. 그러므로 교회사 책마다 호남지역은 남장로교 선교사들의 영웅적인 선교활동의 역사들로 서술하고, 관공서에서도 순천기독교 역사문화와 탐방 길로 조성하고 소개되어 있다. 이덕주 등 감리교 사학자들도 여수 순천지역을 기술하며 남장로교회 매산 지역을 탐방하고 감리교회의 역사는 기술치 않고 있다.(참조-이덕주:예수 사랑을 실천한 목포, 순천 이야기, 도서출판 진흥, 2008년)

 

   
▲ 순천시 매산등 성지순례길 안내판!


호남지역 감리교회 개척선교는 해방 후 국내외로 흩어졌던 인사들이 고향 땅으로 귀환하여 정착하며 감리교인들의 신앙공동체도 자생하게 되었다, 호남지역의 감리교회 평신도들은 해외에서 국내로, 남북이동으로 정착하였고 평신도들은 쉽게 기존의 장로교회에 출석 적응하였다.

그러나 감리교회 목회자와 가족들이나, 중진 임원들은 장로교회 출석이 자연스럽지 못하였고 이질감을 느꼈으며, 군산항, 목포항, 여수항 등 항구 중심과 충남 인근의 이리 등 지역에서 감리교회 공동체가 대전지방에 속하여 형성되고 개척되었다.

이로써 삼남지역의 감리교회 신앙공동체는 자생적으로 형성 되어 가고 있었으며, 호남지역에도 감리교회 공동체가 형성 됨으로,  해방 이후 분열에서 감리교회의 첫 연합연회로 모였다.(1949.4.26-5.2. 곳:정동제일교회) 연합연회 석상에서 과거의 선교구역 제한을 폐기하기로 결정하였고, 삼남지역의 도시마다 감리교회를 개척하며, 이를 위해 부활절 헌금을 삼남지역 전도사업에 충당하기로 결의하였다. 즉, 1950년 한국전쟁 전에도 삼남지역에 감리교회가 개척 되었고, 군산, 이리 등에도 감리교회가 개척 되었다.

 또한 한국 전쟁 중 피난 시절에 가정 신앙공동체를 이루다가 천막교회 등으로 개척하게 된 것이, 8.15해방 이후의 호남지역 감리교회 출발이었다.

 

   
▲ 현, 순천중앙교회 전경!

 

순천기독교 역사박물관에서 나와 오늘날의 순천중앙감리교회를 찾았다. 구도심에서 신도시 주택지구 개발지로 옮겨 넓은 대지에 중앙교회를 아름답게 신축하였다.(1998년) 순천 중앙교회는 “호남지역 감리교회 40주년 기념 교회“이기도 하다.

필자는 순천중앙교회에서 여수로 발길을 돌려, 1952년에 첫 감리교회가 개척설립 된 여수 동산감리교회로 이동하였다. 여수와 순천의 감리교회는 1.4후퇴 때 황해도 성도들에 의해 시작 된 공통점이 있다.

 

여수 진남교회와 개척자 충주 분들

 

   
▲ 여수 남해화학 앞 도로에서!


순천에서 여수 중간쯤 길목의 여천시(당시 진남시)는 여천공단 배후 도시로 웅장한 규모의 남해화학이 설립되어 있음을 보았다. 남해화학은 칠비라고도 한다. 전국의 일곱개의 비료공장을 합하여 여수에 남해화학을 설립했기 때문이다. 충주 비료공장도 여수 진남으로 이전하였고, 이때부터 충주지역의 감리교인들이 비료공장을 따라 여수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이분들에 의해 진남감리교회가 개척설립 되었다.

충주분들은 여수의 첫 감리교회인 동산교회에 출석하고 있었고, 비료공장 인근의 아파트의 속회를 분립하여 진남교회를 개척하였다.

즉, 1980년도에 여수동산교회 담임 신광준 목사는 1개 속회를 분리하여 진남교회를 개척하게 하였다. 당시 김해의 공군군목으로 제대하는 이계원목사를 연회에서 만나 개척 제의하였으며, 이를 승낙하고 이계원 목사는 아파트 노인정에서 속회를 인도하며 진남교회를 개척하였다. 진남교회 홈페이지에 의하면 교회창립은 1981년1월18일이고, 초대목사 이계원목사의 부임은 1981년6월30일로 기록하고 있다.

이계원 목사는 필자와의 대담에서, 여수 진남감리교회의 중심은 충주분들이며 남해화학에 근무하는 분들이라 하였다. 필자는 50년 전(1972년) 첫 목회지인 충주제일교회에는 충주비료공장 분들이 많았음을 기억하였다.

 

   
▲ 여수 남해화학 입구 아취 도로!


진남교회 개척 중심 성도는 장기태 권사(충주제일교회)와 이재열 권사(충주 남부교회)였고, 남해화학에 근무하는 분들의 가족들이 개척의 중심 교인들이었다. 장기태 장로는 몇 년 전에 소천하였으며, 이재열 원로장로는 지금도 여수에 거주하고 있다.

필자는 지인인 충주교회 교인에게 장기태 장로 부인에 대해 알아보았다. 장기태 장로의 부인은 충주 출신 김완중 목사(목양교회 담임)의 인척이고, 현재 충주에 살고 있으나 치매로 온전하지 못하다고 한다. 필자는 이분들을 만나 개척창립 때 이야기와 사진 등을 자료로 삼고 싶지만 그럴 정황이 아니었으며, 교회 역사정리의 시급한 과제로 남겨 두었다.

필자는 50년 전, 충주제일교회의 첫 목회를 기억하고 있다. 당시 30대 청장년들이 충주 시내에서 목행동 충주 비료공장을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교회학교와 속회, 청장년 등 교회 활동에 그 열정적 신앙과 헌신의 삶들이 생생하게 기억나기 때문이다. 바로 그분들이 여수 진남교회 창립의 주역이었다니, 감회가 새롭다.

여수 진남감리교회는 이계원 목사(1981년), 김성호 목사(1983년), 이송관 목사(1985년), 허종 목사(1989년)에 이어지며 우종칠 목사(1992년)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수동산교회로 향하며, 충주 분들을 기억하고 남해화학 앞에 정차하여 전경을 바라보며 촬영하였다. 시간이 없어 진남교회를 방문하지 못하고 동산교회로 직행하였다.

 

황해도 피난민들 중심의 여수 동산감리교회

 

   
▲ 옛 여수동산감리교회 자리-교히는 진입로로 주택 대지로 변경 되었다고, 김목사는 증언한다!


한국전쟁 발발하고 9.28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 수도를 탈환하였으며, 북진하여 평양 이북까지 점령한 UN군은, 이듬해 벽두(1951년)에 중공 의용군의 참전으로 UN군은 후퇴로, 주민들은 군과 함께 1.4후퇴로 고향을 떠나 남한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1.4후퇴는 육로와 동해, 서해 바닷길로 구분할 수 있으며, 필자도 평양에서 육로로 임진강을 건넜고, 그 추위가 거셀 때 기차 지붕에 올라타고 부산까지 피난했으며, 부산 피난살이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황해도 분들은 전쟁 중에 서해의 섬들을 넘나들며 남한으로 피난하였고, 1.4후퇴 때는 군 수송선(LST)으로 피난하여 항구 중심으로 군산, 목포, 여수, 순천 등 호남지역으로 흩어져서 피난했다. 이로써 호남 피난지 곳곳에는 감리교인들의 신앙공동체가 자생적으로 형성되었고, 천막 등 임시교회로 개척되었으며, 감리교회가 없는 호남지역에 감리교회를 개척 설립하게 되었다.

 

   
▲ 여수동산감리교회 첫 건물(사진 캠춰 출처:한국향토문화 전자대전)


여수의 첫 감리교회는 1951년 1.4후퇴 때 황해도에서 군 수송선(LST)으로 여수에 정착하여 슈퍼를 운영하는 유호영 장로 중심으로 여수동산감리교회가 개척되었다.(이계원 목사의 증언)

또한 감리교회 목회자와 가족들은 LST로 가덕도로 피난 갔었는데, 그 중 1951년 여수로 이동하여 가정에서 신앙공동체를 이루었다가, 1952년 여수 돌산에 둔전감리교회를 개척 창립했으며, 교단의 지원을 받아 시장통으로 이전 건축하고 명칭을 바꾸어 동산감리교회로 창립하게 되었다.

첫 목회자는 백은석 전도사(1952.5.24.)이며, 이후 최상봉 목사(1955년), 유병만 목사(1961년), 안창덕 목사(1963년), 백기준 목사(1965년), 지기오 목사(1968년), 한병순 목사(1971년), 신광준 목사(1975년), 이계원 목사(1981년), 고종광 목사(2020년)로 오늘에 이어지고 있다.(년도는 담임으로 부임 년도 임)

김용태 목사는 여수동산감리교회에 고등학교 1학년부터 출석하였으며, 신광준 목사의 "여수 토박이가 여수와 호남지역에서 복음 전도하며 목회해야 한다"는 간곡한 권유로 목회자의 길을 가기로 결단하였고, 이계원 목사의 추천으로 감신에 입학하였다.(83학번)

 

   
▲ 현, 여수동산감리교회 앞 마당에서!


여수동산감리교회 첫 장소를 찾았으나, 도시개발로 도로로 편입되어 교회의 흔적도 없었으며, 대로변에 개발토지로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었다. 옛 동산감리교회는 시장 근처라 시장을 찾아 보았지만 시장은 골목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여수동산교회는 1998년도에 인근 주택개발도시로 이전하여, 넓은 대지에 아름답게 신축하였다.

어느덧 해가 뉘엇뉘엇 저므는 떄 석양이 짙어져 가고 있으며, 다시 순천 시내로 이동하여, 국가정원 박람회장 인근에 숙소를 정하고 노곤한 몸을 쉬었고, 다음날 일정은 순천에서 사마람 나눔 실행이었다.

 

순천 신바람 낙도선교회와 왕지감리교호회 방문

 

   
▲ 순천 신바람 낙도선교회 창고 앞에서-곁에는 왕지교회가 나란히 있다!-반봉혁 장로의 간증집을 들로서!


다음날 아침(6.21.수) 김용태 목사의 신바람 낙도선교회 사무실을 찾았다. 신바람 낙도선교회는 김용태 목사와 반봉혁 장로가 2003년도에 창립한 섬 선교회이다.

김용태 목사는 감신을 졸업하고(59세, 83학번), 반봉혁 장로와 함께 순천 왕지교회를 개척하며 담임목회를 시작하였다.(1998년) 왕지교회는 반장로 대지 위에 개척하고 직영으로 신축 봉헌하였다.(2000년도) 역시 김용태 목사는 반봉혁 장로와 함께 낙도선교회를 창립(2003년)하며 왕지교회를 후임자를 세워주고 낙도선교회에 전념하였다. 3년 전 반봉혁 장로가 소천한 후(2019년), 김용태 목사가 낙도선교회 회장으로 취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바람(성령) 낙도선교회의 사무실과 창고를 왕지교회 구내에 두고 있었다.

 

   
▲ 순천 신바람 낙도선교회 사무실에서-회장: 김용태 목사!


필자는 김목사의 안내로 왕지교회 옆에 나란히 있는 신바람 낙도선교회의 컨테이너 창고와 사무실을 찾아보았다. 창고에는 낙도선교를 다니며 섬 주민들에게 선물로 배포할 전도용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창고 안을 둘러보며 대화를 나누는 중 낙도 섬 주민들과 교회들의 필수품들을 보급하며 돕고, 애향원 박사와 낙도를 순회하며 의료선교에 임하고 있음을 알았다.

 

   
▲ 신바람 낙도 선교회 선에서-반봉혁 장로와 김용태 목사!-선교선은 낡아 매각하였다.


낙도선교에 시급히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선교선이다. 반봉혁 장로가 있을 때는 전용 선교선이 있었으나, 낡고 수리비 등 비용과 운항에 위험하고 부적격하여 매각하였단다. 현재는 정기운항선을 이용하기도 하며, 어선 등 배를 임대하여 낙도선교에 임하고 있는 형편이다.

임대한 어선 등으로 낙도선교 운행하는데 소요경비도 만만치 않다. 가까운 섬에는 10만원 정도이며, 좀 먼 낙도 섬은 20-30만원이 소요된다, 낙도선교에 새로운 전용 선교선 구입이 시급하다.

김목사는 타교단에서는 섬 선교회에 수도권 등 전국교회들이 협력하여 선교 선이 15개씩이나 되는데, 감리교회는 본부에서는 물론 교회들의 협력이 없다고 한다.

 

   
▲ 신바람 낙도 선교회 선에서-반봉혁 장로와 김용태 목사!-선교선은 낡아 매각하였다.

 

낙도는 육지에서 먼 작은 섬이며, 정기 여객선 등의 운항도 없고, 학교, 병원, 동네 가게, 전기, 수도 등 시설도 없는 곳이다. 나이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몇 명이 섬을 지키고 있을 뿐이며, 자녀들은 학교 교육 등으로 육지도 나가 생활하고 있단다.

낙도 섬마다 교회는 있으나 목회자들이 없고, 교회도 퇴락하여 있으며, 몇몇 노인 한 두명이 기도하고 있다.

 

   
▲ 여수 앞 바다 낙도, 금오도 가정 방문-김용태 목사!

 

신바람(성령) 낙도선교회는 교회도 없는 작은 섬의 주민들을 돌보며, 교회가 있는 곳엔 교회들과 협력하여 필수품들을 보급 봉사하며 전도한다고 한다. 섬 전체 복음화를 목표로 하며, 복음화 된 낙도도 있을 정도 이다. 낙도 섬 주님들은 저들을 찾아주는 ”신바람 낙도선교회“ 방문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한다. 낙도선교회는 몇 분의 봉사자로 선교팀이 구성되어 매주 금요일마다 정기적으로 낙도를 순회방문 선교하고 있다.

필자는 선교사로 32년 열대의 나라에서 사역하다 정년은퇴하였다. 은퇴 후 5년이 지나고 있는 시점에서, 낙도선교회의 김용택 목사를 만나 대화하는 중 선교의 열정이 되살아나고 선교에 동참하고 싶은 열망이 끓어 올랐다. 김용태 목사의 멋있고, 과시하지도 않고, 겸손하고 늠늠한 모습에서 더욱 신뢰성으로 다가왔다.

신바람 낙도선교회에 긴급히 필요한 선교선을 허락해 주소서,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교선 마련에 감리교회 본부와 각 연회, 지방, 교회들의 선교협력과 후원이 긴요함을 강하게 느꼈다.

주여 인도하소서! 기도의 손을 모으며, 찬송이 가슴 속에서 울려왔다. ”풍우 대작할 때와 물결 일어 날 때에 사랑하는 우리 주 구원하여 주소서...!“(노종해:2023.7.5.오후6:00)

(*신바람 낙도 선교회 참여 문의와 선교자료는, 홈페이를 참조하세요!-검색창에서 "신바람 낙도선교회"를 클릭)

 

   
▲ *여수 앞 바다의 낙도, 자봉도에서!
   
▲ 신바람 낙도 선교회 차량?-조발도에서!
   
▲ 신바람 낙도 선교회 선교팀원들-큰 배가 지나가며 물탕을 맞고서!
   
▲ 선교팀원과 낙도 가정 기도회-김용태 목사!
   
▲ 낙도 추도의 외로운 할머니를 방문하여!
   
▲ 낙도 교회의 십자가 탑과 십자가도 교체해 주고-김용태 목사!
   
▲ 낙도 삼화도 전경!-신바람 낙도 선교회의 삼화도를 향하여!
   
▲ 낙도 금오도 남면에는 교량으로 섬과 섬을 연결하여, 관광 자원으로 개발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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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1. 필자와 대담 자료: 이계원 목사((2023.6.2. 충주 카페에서), 김용태 목사(2023.6.21. 순천 카페에서)

2. 한 밀이알의 순천에 떨어져 순천시 기독교역사 박물관 자료집, 순천시 기독교역사 박물관 발행, 2018년

3. 차재명 편저: 예수교 조선 장로회사기(상), 조선 예수교 장로 회 총회 발행, 1928년.

4. 김수진 한인수 공저: 한국기독교회사, 호남편, 범론사, 1980년.

5. 이덕주: 예수 사랑을 실천한 목포, 순천 이야기, 도서출판 진흥, 2008년

6. 감리회보, 대한감리회보, 호헌감리회보, 기감 총리원  발행, 1948-1958년

7. 장병욱: 6.25공산남침과 교회, 한국교육공사, 1983년

6. 라사행:"한국 감리교 교회 성장사(광복 후편)", 한국감리교회 성장백년사(I), 기감 본부 교육국, 1987년.

8. 김양호: 전남 기독교 이야기 3, 전남 동남부(순천) 편, 목포, 사람이 크는 책, 2020년.

9. 삼남연회 40년사 1980년-2019년, 기감 삼남연회 발행, 2020년

10. 반봉혁: 두부행전, 도서출판 세줄, 2015년.

11. 임융봉: "선교전략적 측면에서 본 호남지역 감리교 성장에 관한 소고(상)", 기독교 타임즈 2019.8.21.

*노종해: 사진자료 촬영, 2023.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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