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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밭매기 삼매경!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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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6월 21일 (수) 23:58:13 [조회수 : 3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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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에 부리나케 심었던 콩이 드디어 작은 구멍을 통해 머리를 디밀고 올라왔다. 사실 열심히 심기는 했어도 반신반의했다. 과연 콩이 제 모습을 보여줄까? 이유는 지난주에도 말했듯이 근처가 산이다 보니 고라니와 산새들의 습격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무심코 콩밭으로 발을 옮기고 고랑 사이를 지나가니 위쪽은 상해 입은 흔적이 역력했다. 머리만 똑 따 먹어 줄기만 앙상하게 남아있기도 하고, 어떤 것은 아예 뽑혀 있었다. 줄기만 남은 것은 고라니가 지나간 자리요, 새들은 땅속의 콩을 귀신같이 찾아내어 콩째 먹다가 어떤 것은 간간이 흘리고 갔다. 싹뚝 잘린 콩이든 뿌리가 나오다 만 콩이든 모두 마음을 쓰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초반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명을 꽃피우겠다고 일주일 동안 몸부림쳤을 것을 생각하니 콩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미안함으로 콩을 심은 이랑을 처음부터 마지막 줄까지 살폈다. 아뿔사! 생각지 못한 복병이 숨어있었다. 바로 뜨거운 열기였다. 모종기로 심었던 터라 구멍이 작았다. 용케 그 작은 구멍을 뚫고 올라온 콩은 대단한 생명력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콩은 구멍을 찾지 못하고 비닐 속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는 처량한 신세였다. 중요한 것은 요즘같이 한여름을 방불케하는 온도와 열기가 비닐속에서는 어떻겠는가? 마치 습식과 건식을 동시에 갖춘 사우나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어떤 콩은 최대한 몸을 낮춰 옆으로 뻗기도 했고, 어떤 것은 기어이 올라오다가 비닐에 막혀 거기서 멈췄다. 비닐과 접촉한 콩은 거의 직접적으로 닿는 뜨거운 열기에 완전히 녹아내려 흐물흐물 하던지 아예 녹아 없어져 끝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결국 콩들은 나의 무심함 속에서 2차 피해와 고통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칼을 꺼내 들었다. 고랑 사이를 누비며 구멍을 째어 열었다. 작은 구멍이지만 습한 열이 후끈 올라왔다. 벌려진 틈 사이로 바람을 들이고 조심스럽게 흙으로 복토를 했다. 줄기만 남은 콩에게도 흙을 올렸다. 한 줄 한 줄 그렇게 하여 또 몇 날 콩밭 매는 삼매경에 빠졌다. 이젠 나이를 속이지 못한다. 10년 전 43세 살 때만 해도 처음하는 농사였어도 몸을 사리지 않고 거뜬히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쪼그리고 하는 농사라 허리도, 엉덩이도, 무릎도 아프고 호미를 쥔 손은 물집이 잡힐 정도였다. 경사진 밭이라 위에서 내려오면 앞으로 쏠리는 것 같고, 아래에서 올라가면 등산하듯 헐떡거렸다. 역시 나이는 못 속인다. 집은 지척인데 내려가는 몸은 천근만근이다. 뒤늦게 밥상을 물리고 나면 졸음이 쏟아지는 것은 식곤증이라기보다 몸이 피곤하기 때문일 것이다. 침대는 코앞인데 거기까지 옮겨지는 다리는 왜 이리 무거운지 가다가 쓰러질 것 같았다. 농사도 때가 있듯이 체력을 쓰는 것도 때에 따라 움직이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복토를 하면서 콩의 상태를 살필 수 있어 좋았고, 복토를 하면서 고랑의 풀을 제거할 수 있어 좋았다. 고랑에 부직포를 깔아야 하는데 이것을 하려면 또 일주일을 고되게 움직여야 한다. 농사는 정말 끝이 없다. 이거 하고 나면 저거 해야 하는 일이 수확 때까지 무한 반복이다. 복토를 끝내고 나서 좀 여유가 있다 싶었는데, 부직포를 깔아야 하고, 그런 다음 순도 쳐야 하고, 중간에 추비도 줘야 하고, 중간중간 콩밭 주위의 풀들도 예초해야 한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는데 난 십 년째가 되어 겨우 농사의 주기가 머리에 들어오는거 같다. 늦긴 했지만 싫진 않다. 오히려 반가웠다. 이제야 농사의 길이 보인다고 할까?

얼마 전 밭을 매면서 하도 힘들어 잠시 쉴 때 순간 지금의 내 모습을 보았다. 돌이켜보니 지난 10년 동안 되도 안되는 농사를 지을 때마다 내 마음속에 일어났던 수많은 분심과 분주함이 꽤 잦아들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알아챘다. 지금의 내가 참 고요하고 평화롭다는 것을. 양아치 농부로서 10년을 보냈는데 흙은 나를 물리치지 않고 넓은 아량으로 기다리고 받아주었다. 흙을 밟고 만지면서 나도 은연중 흙을 닮아가고 있는 것일까? 아직 골라야 할 돌도 많고, 거둬야 할 풀도 많지만 지금까지 왔던 것처럼 하다보면 언젠가는 나도 좋은 흙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밭매기 삼매경에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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