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정치가가 좋은 연설을 한다.” 

<정치적 말의 힘>, 박상훈, 후마니타스, 2022

“정치가란 ‘말밖에 가진 게 없지만, 말로 변화를 일궈가는 사람’을 가리킨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나 법률가 내지 행정 관료의 전문성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민 집단들의 이해와 요구를 표출, 대표, 소통, 집약하는 방식으로 일하는 것을 정치라 한다.”(23)

  배우 오정세를 좋아한다. 그가 수년전에 모 대상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남긴 소감이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을 기억한다. 100편 넘는 작품을 하면서 똑같이 열심을 다했으나 결과는 다 달랐다고, 자기가 잘해서 잘된 것도 아니고 자기가 못해서 망한 것도 아니라고, 똑같은 결과가 주어지지 않아 세상이 불공평한 것 같다고, 그러니 자책하지 말라고, 그냥 계속하다보면 평소와 똑같이 했어도 그동안 받지 못했던 보상과 위로가 오게 될 거라고. 텔레비전 스타들의 수상소감은 이토록 감동적인 데가 있다. 또 말이 지닌 힘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없다. 

“인간은 완벽한 논리적 전제가 확보되어야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다. 확실한 과학적 증명을 거쳐야만 행동할 수 있다면 인간사회는 한발 짝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은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인간은 행동한다. 희망의 여지만 있어도 행동에 나서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확고한 결과가 보장되지 않을 때라도 작은 믿음만 있으면 움직인다. 그런 점에서 철학보다 수사학이 훨씬 더 인간적이고 정치적인 것은 틀림없다.”(37)

  연설을 주업무로 삼는 직업군은 그리 많지 않다. 대중들의 심금을 울리는 유명 강연가들 몇몇 얼굴이 떠오른다. 저명한 혹은 재야의 인사들이 종종 굵직굵직한 연설을 하곤 한다. 또 누가 있을까. 종교인들이 있을 것이고, 또 정치인들이 있을 것이다. 종교인과 정치인은 결이 다르면서도 어딘가 비슷한 데가 있다. 경전과 헌법, 각기 다른 텍스트를 해석하지만, 세상의 아픔을 끌어안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정치인의 연설이 묘하게 종교적이라는 데에 있다. 말로써 분열된 사람들을 묶어내고 통합시키기를, 누군가의 희생을 치하하고, 현실의 비극 너머의 희망과 구원을 노래하는 까닭이다. 페리클레스의 추도 연설을 번안한 링컨의 연설이 그렇고, 오바마의 연설들이 그랬다.

“미국이라는 웅장한 전설 …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다. 만약 시카고 남부 지역에 글자를 읽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가 내 아이가 아니더라도 그건 내 아이의 문제다. 어딘가에서 어떤 노인분이 약값을 낼 돈이 충분치 않아서, 약값과 집세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그가 내 조부모가 아닐지라도 그건 내 삶이 궁핍해지는 일이 된다. 아랍계 이민자 가족이 법적 도움이나 적법한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구속된다면, 그것은 나의 인권이 침해당하는 일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믿음, 우리가 서로의 어려움을 돌봐주어야 할 형제자매라는 그 믿음 때문에 이 나라가 존재한다.”(266에서 재인용, 오바마 연설 중)

  <정치의 발견>, <민주주의 재발견> 등을 저술한 박상훈은 <정치적 말의 힘>을 통해 의회민주주의에서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역설한다. 또한 그 언어를 잘 활용할 때, 변화되고 개선된 미래를 가꾸어나갈 수 있다고 도전한다. 여러 모범적인 정치인들의 연설 전문을 소개하고, 그 연설들에 어떤 특장점이 있는지를 설명한다.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 버락 오바마의 연설을 비중 있게 다뤘다. “나는 뉴올리언스에서 거대한 노예선을 보았다”는 사회운동가의 날선 비판을 “나는 뉴올리언스에서 거대한 가능성을 보았다”고 변주했던 오바마, ‘정치적 말의 힘’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인 듯싶다. 

  당파성에 찌든 정치적 공방은 국민들을 피로하게 만든다. 정치를 냉소하며 무관심하게 또 외면하게 만들려는 교묘한 술수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해악한 정치임에 분명하다. 좋은 정치란 무엇일까. 정확한 의제(로고스)를 말함으로써 시민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는 데에 있지 않을까. 고유의 성품으로(에토스), 고통과 슬픔을 공유하며(파토스), 변화와 개선을 말하는 사람이 좋은 정치가가 아닐까. 저자에 따르면, “법정이 ‘과거에 행해진 일’을 다루는 데 반해 의회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다룬다.”(23) 정치가 곧 미래다. 좋은 정치, 좋은 정치적 말을 습득하자.

“진보도 성장과 자유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으며, 보수 역시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가 되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함께 일할 수 있다. 좌든 우든, 발전주의자든 생태주의자든, 시장주의자든 사회주의자든 좀 더 자유롭고 건강하고 안전하고 평등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일과 관련해, 방법론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어도 그런 목표 자체에 대해서는 이견을 가질 수 없다고 여겨야 한다. … 이견과 갈등을 통해 공통의 가치 기반이 더 단단해지고 조금씩 넓어지게 해야, 좋은 의미의 정치다. 사나운 말이나 잘못된 언어 사용 때문에, 도덕적 가치 기반이 좁아지고, 조정 가능한 갈등조차 화해 불가능한 의제로 만드는 것은 정치의 기능을 파괴하는 일이다.”(373-4)

김민호 목사 (지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