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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침과 모자람 사이
김기석  |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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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6월 13일 (화) 04:24:27 [조회수 : 3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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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존재는 많지만, 인간보다 더 이상한 존재는 아무것도 없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 나오는 말이다. '이상한'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데이논deinon은 이상하다는 뜻 외에도 '무서운', '경이로운' 등의 의미로 쓰인다. 평온할 때는 괜찮지만 문득 불안감에 사로잡히거나 갈등 상황에 직면할 때면 인간은 자신을 하나의 문제로 인식한다.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자기 정체성을 구성한다. 타자의 존재는 우리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한다. 타자의 요구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간됨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우리를 괴롭힐 때도 있다. 삼십 대 중반의 초등학교 교사 한 분이 자기가 겪고 있는 정체성의 혼란을 토로하며 내게 조언을 구해왔다. 그는 스스로 힘겨운 성장과정을 경험했기 때문에 학생들 하나하나를 차별 없이 따뜻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받아들여짐의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고향을 선사하는 일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의가 늘 선의로 수용되지는 않는 법이다. 일부 학부모들의 과도한 요구와 무례한 태도는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좋은 교사가 되고 싶은 꿈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컸던 것이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영혼은 회복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눈물을 글썽이는 그에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마을로 통하는 길목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뱀이 있었다. 어찌나 사나운지 사람들은 그 길로 다닐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사람들은 성인으로 소문난 수도자를 찾아가서 뱀을 타일러달라고 부탁했다. 뱀은 수도자와 만난 후 변화되었다. 혀를 날름거리며 사람들을 위협하지도 않았고 물지도 않았다. 뱀이 자기들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악동들은 처음에는 쭈뼛거렸지만 슬금슬금 뱀에게 돌을 던지기도 하고 막대기로 때리기도 했다. 뱀은 견디다 못해 수도자를 찾아가 자기 괴로움을 하소연했다. “수도자님의 말씀대로 했다가 내가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때 수도자가 말했다. “나는 물지 말라고 했지 쉭쉭 거리는 소리조차 내지 말라고 한 적이 없다.” 이 이야기는 사람들을 선의로 대해야 하지만, 무례하고 난폭한 사람들이 함부로 대해도 괜찮은 만만한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좋은 사람처럼 처신하는 것은 오히려 자기 삶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을 갉아먹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과도함이나 부족함은 악덕의 특색이라 말했다.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고,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는 상태가 중용이다. 미치지 못함보다 더 위험한 것이 지나침이다. 과유불급이다. 경계하며 삼가는 태도가 부족한 이들이 활개를 칠 때 세상은 소란스러워진다. 히브리의 한 시인은 악인의 마음에는 반역의 충동만 있다면서 “그의 눈빛은 지나치게 의기양양하고, 제 잘못을 찾아내 버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라고 노래한다. 성급하게 판단하고 말하는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아낌과 존중의 마음이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다른 이들과 공존하는 것이다. 유대인 철학자 아브라함 조슈아 헤셸은 인간성의 반대는 야수성이라면서 “야수성이란 이웃 사람의 인간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그의 요구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 말했다. 다른 이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곧 자기의 존립 근거를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절망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자신이 목적이 되는 게 아니라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섬세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해와 사랑은 느림이 주는 선물이다. 그에 반해 성급함과 우쭐거림, 자기에 대한 과도한 확신은 오해와 불신을 만들어내는 부엌이다. 자기가 갖고 있는 통념을 잠시 내려놓지 않고는 참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도달할 수 없다.
 
좋은 사람이 되기를 꿈꾸다가 이런저런 장애물을 만나 시르죽은 이들을 볼 때마다 안쓰러움을 느낀다. 좋은 사람으로 자기를 이미지화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 이미지가 영혼의 덫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나침은 언제나 자기 파괴의 씨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모욕이나 충격을 완화하거나 해소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생길 때까지 사부작사부작 조금씩 걸어가면 된다. 일어서서 한 걸음을 내디뎌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용기이다. 

김기석/청파교회
(* 2023/06/10일자 경향신문 '사유와 성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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