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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무엇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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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6월 11일 (일) 16:36:50 [조회수 : 3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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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무엇이기에
시 8:1-9
(2023/06/11, 성령강림 후 제2주, 환경선교주일)
음성으로 듣기

   
 

[주 우리 하나님,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서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는지요? 저 하늘 높이까지 주님의 위엄 가득합니다. 어린이와 젖먹이들까지도 그 입술로 주님의 위엄을 찬양합니다. 주님께서는 원수와 복수하는 무리를 꺾으시고, 주님께 맞서는 자들을 막아 낼 튼튼한 요새를 세우셨습니다.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저 큰 하늘과 주님께서 친히 달아 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내가 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주님께서는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그에게 존귀하고 영화로운 왕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손수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습니다. 크고 작은 온갖 집짐승과 들짐승까지도, 하늘을 나는 새들과 바다에서 놀고 있는 물고기와 물길 따라 움직이는 모든 것을, 사람이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주 우리의 하나님,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서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는지요?]

∎ 비상사태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환경선교주일인 오늘 우리는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경재앙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동부 지역에서 발생한 400여 건의 산불로 남한 면적의 40%에 해당하는 숲이 불타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미국 동북부 지역이 오렌지색 연기로 가득 찼고, 대기질 경보가 발령되기도 했습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롬 8:19)라고 말했던 바울 사도의 말이 새삼 떠오르는 나날입니다.

우크라이나의 다목적댐 노바카호우카댐이 인위적으로 폭파되어 드니프로강이 범람하고 그 강가에 살던 사람들과 생태계가 크게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파괴된 습지와 하구가 복구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인근 지역 사람들은 농업 용수와 식수 부족에 시달릴 것이고, 세계인들에게는 식량난이라는 또 다른 위험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150톤이 넘는 기름이 유출되어 땅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전쟁 중에 매설되었던 지뢰들이 흩어지면서 농부들은 큰 위험 속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설왕설래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130만 톤 이상의 오염수를 30-40년에 걸쳐 바다에 방류하겠다고 합니다. 주변국들은 방류수의 안전성이 충분히 그리고 정직하게 검토되지 않았다며 염려하고 있습니다. 어민들의 시름이 깊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와 일본은 그 오염수를 ‘Alps 처리수’라고 바꿔 말합니다. 알프스는 다핵종제거설비의 이름입니다. 기묘하게도 청정 자연을 연상시키는 알프스라는 이미지를 갖다 붙인 것처럼 보입니다.

자연·사회과학자들의 국제 모임인 ‘지구위원회’가 지난 5월 31일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지구 시스템의 안전하고 정의로운 경계’라는 논문은 지구 환경 지표가 매우 심각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복잡한 사안을 간단히 말하자면 지구가 만일 정기 건강검진을 받는다면 여러 차원에서 질병을 앓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티핑 포인트에 가까워졌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아주 작은 변화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도처에서 이런 징후들을 보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고백이 진실하다면 우리는 세상의 어떤 것도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숨결이 닿아 있는 것을 어떻게 함부로 대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뜻대로 창조된 세상을 보고 기뻐하셨습니다. ‘보시기에 좋았다’ 할 때 사용된 단어 ‘토우브ṭôḇ’는 ‘기분 좋다’, ‘선하다’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기분 좋음에 동참하는 것이 인간의 인간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쓸모로만 인식할 때 우리는 참된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소유에 대한 욕망은 오히려 행복을 해치기 때문입니다.

∎ 찬미로의 초대
피조물의 신음소리에 응답하는 것이 이 시대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 매우 중요한 도전입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은 이 세상을 하나님의 작품으로 보는 눈입니다. 예수님도 일상의 일에 매인 채 바장이는 이들에게 ‘공중의 새를 보아라(emblepō)’,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katamanthanō)’(마 6:26, 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보라’는 말은 감각기관인 눈으로 보라는 말이라기보다는 ‘마음으로 보다’, ‘숙고하다’라는 뜻입니다. ‘살펴보라’는 말은 ‘주의깊게 조사하다’라는 뜻입니다. 마음의 눈을 열고 보면 세상에 기적 아닌 것이 없습니다.

시편 8편은 “주 우리 하나님,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서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는지요?”(1, 9절)라는 경탄의 문장으로 시작되고 끝납니다. 온 땅에 넘치는 주님의 위엄은 두 방향으로 번져갑니다. 먼저는 하늘입니다. “저 하늘 높이까지 주님의 위엄 가득합니다.”(1b) 그 다음은 어린이들과 젖먹이들입니다. “어린이와 젖먹이들까지도 그 입술로 주님의 위엄을 찬양합니다.”(2a) 주님의 위엄은 또 다시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역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입니다. “주님께서는 원수와 복수하는 무리를 꺾으시고, 주님께 맞서는 자들을 막아 낼 튼튼한 요새를 세우셨습니다”(2b) 둘째는 창조된 세상의 경이로움입니다.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저 큰 하늘과 주님께서 친히 달아 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내가 봅니다”(3). 하늘도 땅도 천체도 우연히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높은 경륜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발생론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 인간이 얼마나 경이로운 세상에 초대받았는지를 상기시키기 위한 표현들입니다.

정현종 선생님의 ‘한 숟가락 흙 속에’라는 시는 우리 삶이 온통 빚짐이라는 사실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 숟가락 흙 속에/미생물이 1억 5천만 마리래!”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이 시는 흙 한 숟가락 속에 온 우주의 신비가 담겨 있다고 노래합니다. 시인은 우리가 흙길을 걸을 때 발바닥으로 느끼는 그 탄력이 실은 “수십억 마리 미생물이 밀어올리는” 바로 그 힘이었다고 말합니다. 생명은 이렇게 이어져 있습니다. 사랑의 빚짐이 곧 생명입니다. 흙 한 숟가락 속에 깃든 놀라운 기적에 눈을 뜬 사람은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 세상 이치를 제대로 깨달은 사람은 겸손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세상을 욕망의 전장으로 이해하는 이들만이 아무렇지도 않게 파괴를 일삼습니다.

∎ 인간의 유한함
우주의 오묘한 질서에 눈을 뜬 이들은 비로소 자기의 작음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임을 압니다. 미래 세대가 누려야 할 몫을 앞당겨 누리는 것이 죄라는 사실을 자각합니다. 이 놀랍고 장엄한 세계를 바라보며 시인은 한없는 경외심에 사로잡혀 외칩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시 8:4)

과학자들은 사람이 ‘별 먼지’로부터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별들이 탄생하는 과정 가운데서 만들어진 원소들로 이루어졌다는 말입니다. 우주의 장구한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삶은 찰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편 기자도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각별한 돌봄을 받는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할 때 ‘사람’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ĕnôš는 영원하신 하나님과 대조되는 유한한 인간, 곧 죽음의 운명 속에 있는 존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에노스라는 단어가 고난의 문제를 다루는 욥기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그런 인간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신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시인은 한번 그 사실을 놀라움으로 회상합니다. 이번에는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벤 아담(bēn āḏām)입니다. 그야말로 흙에서 온 존재라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돌보아 주십니다. 돌보아주신다는 말은 ‘관심을 갖는다’는 뜻과 ‘그리워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그리움의 대상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은 먼지에 불과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 덕분에 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시인은 “주님께서는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그에게 존귀하고 영화로운 왕관을 씌워 주셨습니다”(시 8:5)라고 고백합니다. 존귀하고 영화로운 왕관이 씌워진 존재라는 말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과 상통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우리가 삶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존재라는 말입니다.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존재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 부름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창조된 세상을 보시고 기뻐하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마음 아픔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적대감을 가지고 서로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적대감이 넘치는 세상을 환대의 세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피조물의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세상을 치유하는 일입니다. 욕심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 더 깊은 찬양으로의 초대
하나님은 손수 지으신 만물을 다스릴 책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다스린다는 말은 척박한 환경 가운데서 살아가기 위해 온갖 악조건들을 극복하며 살아야 하는 인간의 소명을 말하는 것인 동시에, 각각의 피조물들이 자기 생명의 몫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도우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감리교 운동을 시작한 존 웨슬리는 피조세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모든 생명이 다른 생명에 의존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의 질서라면서, “하찮아 보일지는 모르나 그들도 모두 한 분의 아버지, 똑같은 사랑의 하나님의 피조물들”(<웨슬리 설교전집 6>에 나오는 설교 113, ‘새로운 창조’, 대한기독교서회, p.217)이라고 말합니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일에 부름을 받은 우리를 가리켜 청지기라고 표현합니다. 청지기는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할까요?

“청지기는 수중에 맡겨져 있는 것을 자기 마음대로 자유롭게 사용해서는 안 되고 주인의 생각대로 사용해야만 합니다. 그는 주인의 뜻을 따라 하는 것 외에는 자기 수중에 있는 것을 아무것도 처분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웨슬리 설교전집 3>에 나오는 설교 51, ‘선한 청지기’, p.303)

믿음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과 사람을 보는 것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늘 그럴 수는 없어도 그 근본 사실을 상기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눈으로 보면 세상에 하찮은 존재는 없고, 함부로 대해도 괜찮은 사람도 없습니다. 평화는 그런 조심스러움을 통해 우리 가운데 스며듭니다. 피조물들의 신음소리가 넘치는 세상이고, 사방에서 경고의 나팔소리가 들려오는 세상입니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깨어나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애써 보아도 병든 지구를 고칠 수 없다는 비관론이 퍼지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해야 하기에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을 가리켜 ‘불가능의 가능성’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궤를 어깨에 멘 제사장들이 넘실거리는 요단강물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강이 갈라졌습니다. 우리는 절망의 땅에 희망의 씨를 파종하라고 부름 받았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사람은 기쁨으로 거둔다”(시 126:5). 이 말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망가진 세상을 고치시려는 하나님의 꿈에 적극 동참할 때,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 아름답게 드러날 것입니다. 즐겁게 불편을 선택하는 것, 욕망을 절제하는 것, 작은 일에도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이야말로 이 소비주의 세상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저항입니다. “주 우리의 하나님,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서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는지요?” 우리 삶을 통해 이 고백이 온 땅에 아름답게 울려퍼질 수 있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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