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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를 마치다.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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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5월 31일 (수) 23:40:42 [조회수 : 3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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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 끝물이다. 아마 우리 마을에서 내가 속한 공동체의 모내기가 가장 마지막이 될 것이다. 이번에는 네 마지기 논에 벼를 심었다. 한 마지기 논은 물을 받는 것이 어려워 근 몇 년 논농사를 짓지 않았다. 그 논은 옆으로 실개천이 있지만 물양이 많지 않아 개천 위쪽에 호수를 대고 물을 받아 농사를 짓곤 하였다. 그러다가 이웃과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유는 우리 논 위에 다른 집 논이 있는데 그 논 주인이 자신의 논에 들어갈 물도 부족하다 하면서 우리 호수를 걷어치운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한 해는 꽤 가물어 물이 턱없이 부족한 때에 물을 받느라 호수를 대었더니 아주머니가 역정을 내면서 또 호수를 개천 밖으로 내팽개쳐놨다 하였다. 물이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자신의 논은 물이 차고 넘쳤음에도 불구하고 이웃의 안타까운 사정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되려 물을 나누어 쓰다가 자신의 논까지 마를 수 있다는 억지를 쓰면서 그 이후에도 계속 우리 논에 물대는 것을 방해하였다. 그렇게 되자 그 논은 차츰 우리의 시야와 마음에서 멀어지게 되고 결국 올봄에 두 다랑이 작은 논을 합쳐서 밭처럼 쓰도록 변경해놨다. 하나로 모았더니 정남향이면서 반듯하게 네모진 모양이 집터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꽤 큰 터가 되었다. 맹지만 아니라면 탐이 날 땅이다. 

두 다랑이 논을 하나로 터서 하나의 다른 용도로 쓸 수 있게 만들었고, 네 마지기 중 수린내의 두 마지기는 중간 물길로 만들어 놓은 논둑을 헐어서 광활(?)한 논으로 만들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 넓어 보이지 않았지만 이앙기로 모내기를 해준 전 이장님의 말로는 이앙기가 두 번 더 오고 갔으니 모가 작년보다 많이 심어졌다고 했다. 사실 그랬다. 작년 기준으로 본다면 분명 10판 정도 남았을 모판이 이번에는 모자람없이 주문한 모 45판을 모두 심었다. 보식은 이앙기로 심다가 남은 모 1판 정도가 전부였다. 그리고 건넛마을 안골에 있는 한 마지기 논은 25판 정도 심었다. 안골 논도 이번에 변수가 생겼다. 안골에 있는 논은 위아래로 논이 있다. 그런데 아래 논이 작년에 새로운 임자를 만났는데 그 임자는 논농사를 지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흙을 수십 차 받아 논을 밭으로 바꿔버렸다. 그러자 수위가 우리 논과 같아졌다. 참 애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밭이 되기 전 논이었을 때는 우리 논과 아래 논이 낙차가 있어 우리 논 중간중간 물꼬를 터서 물을 빼면 아래 논으로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 내려갔다. 그러나 이번부터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갑자기 우리 논의 물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물을 가둘 수는 있으나 빼기는 어렵게 된 것이다. 물이 들어오는 곳과 나가는 곳을 같은 곳에 설치해야 할 판이다. 게다가 이 논도 맹지다. 하필 들어가는 입구가 아래 논 임자 땅이다. 만약 아래 논 사람과 수가 틀어지게 되면 이 논은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셈이다. 다행히 올해는 트랙터와 이앙기가 들어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어 모내기를 잘 마칠 수 있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정말이다. 10년 전 우리 마을은 사람이 다니는 길가 근처는 거의 논이었다. 큰 도로가 난 곳도 거의 커다란 논이었다. 그런 논들이 차츰 밭으로 변하더니 지금은 밭도 대지로 바뀌고 있다. 심지어 그곳에 이런저런 사무실과 오피스텔, 공장들이 줄지어 세워졌다. 격세지감이 딱 맞는 표현이다. 이젠 산 좋고 물 좋은 시골이란 표현, 농촌이란 말이 무색해지고 있다. 내가 10년 전 이곳에 내려왔을 때, 내가 있는 수린내 마을은 그야말로 무릉도원처럼 보였다. 큰 도로에서 1킬로 정도 들어오는 곳인데 굴다리를 넘어서는 순간 이런 곳에 이런 마을이 있다니 하는 놀라움을 주는 곳이었다. 그런 수린내도 10년의 세월 속에서 많이 바뀌었다. 마을의 첫 집이 보이는 곳까지 길 양쪽이 모두 논이었는데 지금은 논 위에 전원주택 다섯 채가 주위 풍경을 살짝 망치듯 들어서 있고, 5톤 이상 차량 진입 금지로 외관만 번듯하게 짓다 만 공장이 산 아래 흉물스럽게 방치해있다. 그리고 검은 차양막이 드리워진 인삼밭과 언제 누가 농사를 지었을까 궁금한 밭이 몇 해째 묵혀지고 있다. 그런 다음 맞는 곳이 나와 교회 목사님과 함께 짓는 논이다. 처음 논이 만들어진 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세월을 견디고 온 논이다. 만약 나도, 교회 목사님도 논농사를 짓지 못하는 때가 온다면 어쩌면 이 논도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그 주인도 이 논을 밭으로 그리고 대지로, 건물이나 전원주택으로 전환시킬 것이다. 그리된다면 내가 처음 이 마을에 들어섰을 때 느꼈던 무릉도원이란 표현은 나의 마음속에서나 존재하는 추억의 장소가 될 것이다.

수린내의 두 마지기 논은 다행히 맹지가 아니다. 접근이 쉬운 길옆에 있는 커다란 논이요, 삼면이 개천에 둘러싸여 물도 잘 들어오고 잘 나가는 곳에 있다. 논으로서는 최적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논농사는 열 달 내내 고생하는 밭농사와 달리 오월 한 달 눈 질끈 감고 고생하면 추수 때까지 수월하게 갈 수 있는 농사다. 이젠 모판도 농가가 필요한 만큼만 주문하는 시대가 되어 4월의 볍씨 소독과 파종도 개인 농가에서 하는 경우는 드물어졌다. 우리도 재작년까지만 해도 직접 볍씨를 소독하고 파종하고 모를 앉히는 고생을 4월 내내 하였는데, 볍씨 파종하는 시기에 기온이 뚝 떨어지는 몇 번의 낭패로 볍씨 발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모내기를 못 할 뻔했다. 결국 우리도 작년부터 모를 주문하여 모내기를 하면서 나름 편안한 논농사를 하고 있다. 고생은 멈췄으나 몸이 덜 피곤한 만큼 논농사를 위한 값은 쏠찮게 치르게 되었지만 한 번 맛본 달콤한 유혹은 끊기 어렵게 되었으니 앞으로도 계속 이 상태를 놓지 않을 것이다. 그런들 어떠하랴. 모내기 값은 비싸게 치뤘으나 30분 만에 모내기를 끝내고 일한 양과 시간에 비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새참을 즐겁게 먹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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