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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영광” 계시록 21장 9절~14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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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5월 22일 (월) 23:01:07
최종편집 : 2023년 05월 22일 (월) 23:06:58 [조회수 :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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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영광” 계시록 21장 9절~14절

 

 

1. 신부, 어린 양의 아내

 

① (9절)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 20장이 최종적인 심판의 비전이라면 21장은 최종적인 구원의 비전이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의 결국이 ‘불 못’이라면 생명책에 기록된 자의 결국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별칭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다.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2)” 이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묘사한다. 주님의 몸인 교회는 주님의 신부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 5:22~25)” 이 말씀이 전하는 메시지는 주님과 교회의 관계가 여필종부나 상명하복 같은 시대착오적인 주종관계라는 말이 아니다. 둘이 하나로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룬 일심동체의 공동운명체 곧 사랑의 관계를 뜻한다.

▶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사도 요한에게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비전을 보여주는 이가 마지막 일곱 대접의 재앙을 내린 천사라는 점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지금까지의 모든 재앙의 목적이 심판과 멸망이 아니라 구원과 창조라는 사실을 증거 한다. 하나님께서 재앙을 통해 만물을 새롭게 정화하시는 과정이었음을 나타낸다. 고난과 박해를 통해 도리어 성도들의 신실함이 드러나고 마침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다. 비가오고 창수가 나는 날에 비로소 반석 위에 지은 집인지 모래 위에 지은 집인지 판가름 나듯, 하나님의 심판은 옥석을 가리고 숨어있던 진가를 만천하에 드러나는 과정이다. 나도 모르는 우리의 중심이 위기의 순간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② (10절)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 사도 요한이 본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예언자 에스겔도 보았다. “우리가 사로잡힌 지 이십 오년이요 성이 함락된 후 십 사년 정월 십일 곧 그 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그 당에 이르러 나를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겔 40:1~2)”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땅에 있는 눈에 보이는 대상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 곧 사람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다. 성전의 파괴는 믿었던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을 의미한다. 이 땅의 성전이 무너졌다고 절망하지 말고 믿음의 눈을 들어 하늘의 성전을 바라봐야 한다. 세상에 믿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그 날에도 동일하다. 땅에 거하던 장막이 무너지면 영원한 하늘에 장막이 열리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영광

 

① (11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보석이나 벽옥과 수정’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천국을 조성한 건축자재를 말하는 게 아니라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보석 같이 빛나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하다 뜻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어둠 속에 빛나는 별처럼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혼탁한 세상을 맑히는 빛과 같은 존재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거하는 주인공들의 영광이다. 빛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따라 죽기까지 순종한 그리스도인들의 영광이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4)”,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교회의 영광은 유구한 역사나 화려한 건축물, 수많은 군중이 아니라 바벨론 포로기의 다니엘처럼 순전하고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다.

▶ 요한계시록의 결말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 하나님의 도성(都城, capital city, castle town)이다. 이는 천국의 모형을 넘어 왕 되신 하나님의 통치가 완성됨을 상징한다. 국가의 3요소가 영토, 주권, 국민이듯 천국의 3요소도 거룩한 성 예루살렘,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어린 양의 신부 곧 천국 백성이다. 사도 바울은 새 창조의 궁극적인 목적을 분명하게 증거 한다.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출현이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롬 8:18~21)”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영광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② (12절~13절)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이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문이니”

▶ 사도 요한이 본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성읍(도시)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 안에 성전 곧 ‘하늘에 증거 장막 성전(계 15:6)’이 따로 있는 것이다. 선지자 에스겔도 성전과 성읍을 각각 따로 목도했다. 사도 요한이 본 ‘하늘에 증거 장막 성전’과 에스겔이 본 성전의 특징은 하나님의 영광만 가득하고 모든 공간이 텅 비워져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계 15:8)” 누구나 제자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제자로 살 순 없듯이, ‘누구나’ 땅에 있는 성전에서 경배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늘에 있는 새 성전에 들어갈 수 없다. 오직 하늘에 있는 새 성전에 합당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오직 하나님의 인 치심을 받은 성도들에게만 예비 되었듯이 거룩한 성 예루살렘도 오직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에게만 예비 되었다는 사실이다.

▶ 에스겔이 본 성전에도 ‘담장’과 ‘문간(GATE)’이 있었다. 성전 전체를 둘러싼 높고 두터운 담은 세속과 구별된 거룩함을 드러낸다. 6명의 수문장이 지키는 6개의 웅장한 관문(GATE)을 통해서 아무나 들어갈 수 없고 오직 성소에 합당한 자들에게만 허락된 성전임을 묵상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도 요한이 본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도 성을 둘러싼 높은 성곽이 있고, 동서남북 4개의 관문과 각각 3개씩 12개의 관문을 가지고 있다. 에스겔도 이와 동일한 성읍의 관문을 보았다. “그 성읍의 출입구는 이러하니라. 북편의 광이 사천 오백척이라 그 성읍의 문들은 이스라엘 지파의 이름을 따를 것인데 북으로 문이 셋이라 하나는 르우벤 문이요 하나는 유다 문이요 하나는 레위 문이며 동편의 광이 사천 오백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요셉의 문이요 하나는 베냐민의 문이요 하나는 단의 문이며 남편의 광이 사천 오백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시므온의 문이요 하나는 잇사갈의 문이요 하나는 스불론의 문이며 서편도 사천 오백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아셀의 문이요 하나는 납달리의 문이며 그 사면의 도합이 일만 팔천척이라 그 날 이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겔 48:30~35)” 여호와가 거기 계신다!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다. 12지파의 이름은 동일한 믿음의 권속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市民, Citizen)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 2:19)” 본문이 전하는 핵심은 12개의 출입문이다. 천국, 곧 하나님의 통치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9)”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양의 문이 되신 예수그리스도 한 분 뿐이심을 증거 한다.

 

③ (14절) “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 교회가 건물이 아니라 부르심을 입은 성도들(에클레시아)이듯, 거룩한 성 예루살렘도 천국의 모형이나 건축물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와 사도들이 전한 복음에 의해 새롭게 지음 받은 거룩한 성도들이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0~22)”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기초석(cornerstone, 기반, 토대)’에 어린 양의 열 두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다는 말은, 진정한 기독교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 위에 세워져야 함을 증거 한다. 예수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에 기반을 두지 않는 신앙은, 기독교가 아니다. 너무 당연한 말을 하는 이토록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놀랍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예수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과는 전혀 무관한 기독교, 예수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과 아무 상관도 없는 기독교인들이 너무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이들을 일컬어 맛을 잃은 소금이라고 부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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