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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2022)
이진경  |  jinkyung.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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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5월 08일 (월) 15:15:49
최종편집 : 2023년 05월 08일 (월) 15:18:34 [조회수 : 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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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제비》 (2022)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제법 많기에 그 시절을 다룬 《제비》 역시 시놉시스만 읽는다면 ‘또 비슷한 영화겠거니’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영화의 배경은 광주에서 공권력에 의한 시민 학살이 일어난 직후인 1983년, 전두환 정권이 소위 ‘녹화사업’이라는 대대적인 학원 탄압에 나서고 있었던 시기다. 녹화사업이란 군사독재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대학생들을 공산주의 빨간 물이 들었다고 간주하고 이 빨간 물을 빼는 작업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사업은 운동권 대학생들에 대한 강제 휴학과 강제 입대, 고문과 협박을 통한 프락치 활동 강요 등을 포함했다. 실제로 강제로 끌려간 학생들 중 많은 이들이 의문사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의 주된 관심은 과거 자체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다. 《제비》는 그 세대의 자녀들을 중심으로 그 시절을 기억하고, 그 기억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제비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학생운동권의 리더 서진우는 또 다른 투쟁 동지인 행동대장 차은숙과 사랑을 나누던 사이다. 그 와중에 몰래 은숙을 사랑했던 현수는 경찰에 체포되어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는다. 결국 제비는 경찰에 체포된 후 고문 받고 살해된다. 영화는 은숙과 그의 아들 호연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다양한 인물들과 사건들을 이야기 속에 담는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영화가 시대물이나 정치물로 보이기보다 미스터리물로 보인다는 점이다. 미스터리적인 흥미와 진지한 의미가 적절히 배합되어 영화는 일종의 심리적 의무감이 아니라 순수한 재미로 영화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제비》는 그 시절을 거쳐 현재에 이른 인물들을 매우 다양하게 묘사한다. 과거를 훈장처럼 자랑하고 이용하는 사람도 있고, 부정하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다. 신념의 변절자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고, 계승자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다. 감독은 한 인터뷰를 통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 발터 벤야민의 두 문장을 내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하나는 일명 ‘호랑이의 도약’으로 우리의 기억은 누적되고 점진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호랑이처럼 어느 순간 도약한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깊은 지하실을 갖고 있다는 표현이었다고 한다. 투자를 받는 것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지금처럼 독립영화의 형식을 지닐 수밖에 없었지만 부족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빛나는 지점들이 많다.

“난 꿈을 꾸는 게 혁명이라고 생각해.” 치열한 투쟁과 비루한 현실 속에서 평범한 삶은 사치일 뿐이라고 말하는 은숙에게 제비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을 꿈꾸는 것이 혁명이던 시절이 비록 그때만일까? 매 시대는 각각 저마다의 다른 압제에 짓눌려 꿈 꿀 권리를 박탈당한다. 그리고 지금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렇다면 지금도 여전히 혁명이 필요한 시대일 것이다. 감히 평범함에 대한 꿈을 꾸는 혁명이 필요한, 그런 시대일 것이다.

어처구니없게도 당시 권력의 최정점에서 공권력을 동원해 수많은 국민을 학살했던 주범은 그 어떤 후회와 회개도 없이 고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선한 자의 처참한 죽음뿐 아니라 악한 자의 평온한 죽음 역시 당혹과 절망을 불러일으키기는 매한가지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한 만인의 부활, 최후의 심판, 영생과 영벌을 믿는다. 정의는 끝내 실현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마도 기억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 마침내 어머니 은숙을 찾아나서는 아들 호연은 호랑이의 도약 같은 기억을 경험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신앙 역시 이 호랑이의 도약 같은 기억이 아닐까?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 역시 호랑이의 도약 같이 우리의 삶 속에 불현듯 일어나 우리를 감동시키고 전율시켰으니 말이다. 그것이 지금도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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