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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부활과 둘째 사망, 죽음으로 사는 삶” 계시록20장7절~10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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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4월 25일 (화) 19:39:29 [조회수 : 3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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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부활과 둘째 사망, 죽음으로 사는 삶” 계시록20장7절~10절

 

 

1. 첫째 부활, 죽음으로 사는 삶

 

① (5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 앞에서 ‘천년’은 문자적 기간이 아니라 주님의 초림에서 주님의 재림까지의 전 과정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기간임을 확인했다. 매우 난해한 4절과 5절의 핵심은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는 자들’과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는 그 나머지 죽은 자들’로 구별된다. 이를 요약하면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이다. 따라서 본문은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대로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광경이다. 또한 마태복음 25장에서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영생에 들어갈 오른 편 양과 영벌에 들어갈 왼편의 염소로 구별되는 장면과 일맥상통한다. 여기서 ‘산 자와 죽은 자’는 단순히 생물학적인 생사(生死)의 구분이 아니다. 본문에 따르면 산 자는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순교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 곧 하나님 안에서 산 자를 가리킨다. 이와 반대로 죽은 자는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지 않은 배교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한 우상숭배자, 이마와 손에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 곧 죄로 인한 영적 사망에 이른 자들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산 자는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되도다(계 14:13)”에 해당하는 명실상부한 신앙인들 곧 나는 죽고 예수로 산 자들이다. 죽은 자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에 해당하는 유명무실한 신앙인들이다. 전자가 한 알의 밀알로 썩어진 자들이라면 후자는 씨 뿌리는 시늉만한 한 자들이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 12:25)”

▶ ‘첫째 부활’이 전하는 메시지를 알기 위해서는 부활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주목해야 한다.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믿지 않은 이유는 부활을 단순히 육체의 재생이라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하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을 의논할찐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막 12:24~27).” 예수께서 사두개인들에게 전한 부활에 대한 가르침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육신은 이미 죽어서 소멸했지만,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는 산 자들이다. 성경이 전하는 부활은 ‘불사(不死)’가 아니라 ‘불멸(不滅)’에 더 가깝다.

▶ ‘첫째 부활’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그런 의미에서 첫째 부활에 참예한 자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고난에 동참해서 죽기까지 주님을 따라 순종했던 순교자들을 가리킨다. 기독교가 고백하는 몸의 부활에 대해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전 15:44)” 사도 바울이 전하는 몸의 부활은 썩어질 육체의 재생이 아니라 썩지 않을 신령한 몸으로의 변화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51)” 신령한 몸에 관해 지금 우리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에 비로소 확실히 알게 될 비밀이다. 신령한 몸으로의 변화는 하나님께 속한 감춰진 신비인 까닭이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전하는 부활신앙의 결론만은 분명하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니라(고전 15:57)” 부활의 메시지는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에 나타날 의의 최후승리를 믿고, 오늘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② (6절)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는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

▶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는 누구인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실제로 참예한 자, 극심한 박해 가운데서도 내 몫에 댄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주님을 따라 순종한 순교자들이다. 다시 말해 본문이 가리키는 ‘그들’은 죽기까지 말씀대로 순종하며 한 알의 밀알로 썩어져서 끝까지 믿음의 정절을 지킨 순교자들이다. 예수님의 최종 목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기까지 순종하는 십자가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상에서 만납시다!’라는 책의 제목처럼 세상에서 더 높아지고 더 위대해지고 더 유명해지길 소망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올라가신 정상은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 꼭대기 위였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올라야할 정상도 다르지 않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최고의 영광은 예수님을 좇아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교였다. 한마디로 예수님처럼 영원한 말씀을 좇아 죽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십자가가 끝이 아니라 십자가 후에 부활이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도 죽기까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면 마침내 승리하게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실 것을 확신했다. 이것이 기독교가 전하는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믿음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본문은 십자가와 부활의 믿음으로 산 자들이 누릴 영광과 승리를 증거 한다. 이는 첫째 부활에 참예한 대표적 인물인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에 잘 드러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성경에 따르면 사람은 반드시 두 번 태어나고, 두 번 죽는다! 첫 번째 출생이 육체적 출생이라면 두 번째 출생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거듭남이다. 첫 번째 사망이 육체적 죽음이라면 두 번째 사망은 최종적인 하나님의 심판 곧 영벌이다.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계 20:14)” 둘째 사망은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영원한 형벌인 불 못에 들어가는 영적 사망이다.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십자가를 지고 죽은 자들, 곧 첫째 부활에 참예한 자는 둘째 사망에 이르지 않는다는 역설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 곧 나는 죽고 예수로 산 자들은 둘째 사망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첫째 부활은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순종한 순교자들이 누리는 의의 최후승리이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한 순교자들과 내 몫에 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 순종자들이 누리는 부활의 영광이다. 첫째 부활이 전하는 메시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의의 최후승리’다. 첫째 부활이라는 단어는 부활의 두 가지 차원을 암시한다. 첫째 부활이 몸이 다시 사는 ‘의의 최후승리’라면 둘째 부활은 아버지의 품 안에서 영원히 사는 ‘영생’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은 첫째 부활에 참예한 순교자들이 천년 동안 즉 주님의 초림으로부터 주님의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믿음의 본보기가 되어 순교자로 추앙을 받으며 주님과 함께 다스리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을 증거 한다. 주님이 다스리는 참된 삶이다. (메시지성경) “이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여기에 포함된 사람들은 참으로 복되고 참으로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둘째 죽음이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들입니다. 그들은 천 년 동안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입니다”

 

 

2. 둘째 사망, 영원한 형벌

 

① (7절~8절) “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 ‘천년이 차매’ 천년은 문자적 기간이 아니라 주님의 초림에서 주님의 재림까지의 완전하고 상징적인 기간이라고 배웠다. 따라서 천년의 기간이 다했다는 말은 주님의 재림, 곧 하나님의 심판대가 열리고 하나님의 통치가 완성되는 때를 가리킨다. 이런 맥락에서 ‘곡과 마곡의 전쟁’은 주님이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날, 바로 직전에 하나님의 통치를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에 의한 최후 결전이 벌어질 것을 예고한다. ‘곡과 마곡’은 누구인가? 선지자 에스겔은 일찍이 마곡의 왕 곡이 북방 군대를 인솔하여 선민 이스라엘을 공격하나 하나님의 권능으로 멸망하게 될 것을 예언했다(겔 38장). 곡과 마곡은 단지 과거 역사 속에 등장한 나라와 인물이나, 미래에 등장할 특정한 나라와 인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창세 이래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대적하고 위협했던 모든 이방 대적들을 통칭하는 은유다. 그들의 뒤를 잊는 또 다른 적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의 통치에 대적해서 최후의 결전을 벌일 것을 예고한다. 이처럼 곡과 마곡으로 대표되는 적그리스도에 의한 최후결전은 새로운 사건이 아니라 이미 앞서 기록된 ‘아마겟돈 전쟁(계 16:16)’과 같은 빛과 어둠 간에 벌어진 영적 전쟁의 반복이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절대적 권능으로 모든 대적들을 물리치고 택하신 백성들을 마침내 구원해 주실 것을 거듭 선포하며 재확인하는 말씀이다.

 

② (9절~10절)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앞서 살펴본 큰 붉은 용과 바다와 땅에서 올라온 짐승들처럼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던 모든 적그리스도를 통칭한다. 이것 또한 새로운 사건이 아니라 거듭 반복해서 재확인하는 말씀이다.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지금까지 살펴본 유사 이래 벌어진 모든 핍박들과 더불어 장차 벌어질 주님의 교회와 교회에 속한 성도들을 핍박할 모든 박해를 통칭한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이것 역시 새로운 사건이 아니라 앞서 기록된 하나님을 대적하던 이들에게 내리신 일곱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모든 재앙을 통칭해서 일컫는 말씀이다.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앞서 살펴본 17장과 18장에 나오는 큰 음녀, 큰 성 바벨론에게 임할 동일한 최후를 거듭 재확인하는 말씀이다.

▶ 이처럼 20장 전반부에서 앞서 언급한 모든 심판을 간단하게 축약해서 또 다시 반복하고 있는,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다. 적그리스도와 그의 추종자들은 이 세상에서 심판을 받고 멸망으로 끝나는 것뿐만 아니라, 이어지는 계시록 20장 11절~15절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영벌에 놓이는 최종적인 심판, 곧 둘째 사망이 있다는 사실을 증거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을 대적하던 적그리스도와 그의 추종자들에 대한 심판은 세상에서 멸망을 당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영원히 타는 불 못에 던져질 운명에 놓일 것을 증거 하기 위함이다. 20장 전반부에 기록된 말씀들은 이 사실을 증거 하기 위한 사전 설명에 해당된다. 따라서 20장 전반부의 말씀은 연속되는 새로운 비전이 아니라, 이어지는 일명 ‘백 보좌 심판’을 말하기 위한 대전제로 읽어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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