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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신학노트10-이성/묵상 & 의지/습관
장경현  |  claremontkr@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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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1월 07일 (일) 00:00:00 [조회수 : 3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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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신학노트10-이성/묵상 & 의지/습관

인간이란 몸과 정신과 영혼이 있는 존재라고 합니다. 이를 근거로… 유비해서 인간의 본성을 살펴 본다면… 몸이라 함은 자연적인 존재이고… 정신이라 함은 이성적 존재이고… 영혼이라 함은 영적 혹은 종교적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이란 1) 자연적 존재, 2) 이성적 존재, 3) 영적 혹은 종교적 존재인데… 이 세 가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핵심적인 단어는… 본능, 이성, 그리고 의지가 될 것입니다.

인간은 이 세 가지, 곧 본능, 이성, 그리고 의지를 가지고 매사에 판단을 내리며 살아 갑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배설하고 싶으면 배설하는 것은 동물 과에 속하는 인간이 동물처럼 본능에 따라 판단하는 것으로 가장 쉬운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이 됩니다. 본능에 따른 판단을 못한다면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성과 의지에 따른 판단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성을 앞세운 의지인가, 혹은 의지를 앞세운 이성인가... 하는 두 갈림길은 동양이나 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지성… 그 역사를 수 놓은 두 축, 곧 주의주의(Voluntarism)와 주지주의(Intellectualism)가 됩니다. 사실 이성과 의지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주신 유일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의지를 이성에 접고, 이성에 따라서 판단을 한다는 것은 (Intellectualism)… 자신의 “아는 것” 곧… 자신의 지식체계에 의해서 성립된 “세계관”에 따라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성에 따른 판단을 잘 하려면… 이성에 따른 자신의 세계관을 잘 세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고... 세계를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대해서 스스로 묵상하는 것 혹은 사고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묵상 혹은 사고를 깊게 하는 것은 “아는 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주어… 결국 자신의 세계관을 세우는 데에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것”이 된 “아는 것”만이 이성에 따른 판단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것”이 되지 못한 “아는 것”은 그저 단편적인 지식으로 끝나… 사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아퀴나스 같은 사람이 의지를 이성에 접고… 이성에 따른 판단을 하는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성을 의지에 접고, 의지에 따른 판단을 하는 것은 (Voluntarism)… 이성적인 “세계관”의 한계를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성을 버린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어거스틴이 이에 속하는데 그는 “알기 위해서는(이성) 먼저 믿어야 한다(의지)”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 아마 아퀴나스는 반대로 “믿기 위해서는 먼저 알아야 한다”는 입장이었을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다른 부분에서는 그런대로 중간쯤 갔지만)… 여자 문제에서 만큼은… 정확히 이야기 하면… 정욕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아주 파렴치한 탕아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처절하게 괴로워했고… 그 괴로움 속에 슬피 울고 있던… 어느날… 하나님의 말씀 (로마서 13:13-14: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을 받으며 그 유명한 무화과 나무 아래 회심을 하게 됩니다. 그런 경험을 한 그가 … 이성을 의지에 접고 의지에 따른 판단을 주장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의지를 바르게 하려면 좋은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의지를 이성에 접고, 이성에 의한 판단… 혹은… 이성을 의지에 접고, 의지에 의한 판단… 중에 여러분은 어느 쪽을 더 선호하십니까? “내가 타락하지 말아야겠다”라고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타락하지 않을 의지”가 있으신 분들은 아퀴나스처럼 “믿기 위해서 먼저 알아야 한다”… 도 괜찮을 듯 하고… “타락하지 않을 의지”가 없으신 분들은… 어거스틴처럼 “알기 위해서 먼저 믿어야 한다”는 입장을 택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만은.

어거스틴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지 않으신 것이 두 가지가 있다고 보는데 그 중의 하나가 罪입니다. (다른 하나는 無입니다 *^^*) 죄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의지의 타락” (혹은 “선의 결여”) 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는 “의지의 타락” 혹은 “선의 결여”… 곧, 죄의 문제에 대한 솔직한 고백… “주여 언제까지입니까? … 주여 언제까지입니까? … 왜 지금은 아닙니까? … 왜 이 순간에 나의 불결함이 끝나지 않는 것입니까?” 라는 처절한 눈물… 그 고백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받고 회심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가까운 시간을 더 갖기 위해… 화려한 교수직을 사임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주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 이후…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사랑하시고… 어떻게 역사 속에서 그를 쓰셨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종교인… 모두… “이성”과 “의지”를 잘 훈련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이성을 훈련하는 것은 “묵상”에 있고… 의지를 훈련하는 것은 좋은 “습관”을 갖는데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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