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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교회의 제명당한 교인들과 8년간 예배드렸던 목사의 결말부활절 앞두고 돌아보는 지난 날에 대한 소회
박경은  |  0117669763@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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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4월 06일 (목) 00:13:10
최종편집 : 2023년 04월 06일 (목) 21:47:24 [조회수 : 2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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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교회의 제명당한 교인들과 8년간 예배드렸던 목사의 결말

최초작성 : 2023.01.16(월).

상도교회의 제명당한 교인들과 예배를 드린 지난 8년의 세월 중 마지막 해 끝자락인 2022년 12월 16일자로 감독이 상도교회에 담임자를 직파했다. 며칠 후 그 세월 내내 나와 함께 꼬박꼬박 상도교회의 제명당한 교인들과 예배를 드리던 박ㅇㅇ장로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배 고사시키는 작업에 하나된 후배목사들

감독의 직파로 온 목사가 자신을 권사로 칭하면서 ‘왜 남의 교회에 불법적으로 들어와 있느냐’며 면박을 주더라는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명당한 교인들이 권면하여 당회 때에 참석했는데 당회원이 아닌 사람이 왜 여기에 있느냐며 대놓고 무안을 주는 바람에 더 이상 버티고 있을 수가 없어서 나왔다고 했다.

8년이나 함께 예배드린 18년급 장로에게 ‘남의 교회에서 불법적으로 예배드린 자’라고 말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서 아무래도 감리교회를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감리교회 장로가 아니면 어떠냐면서 목사님과는 달리 평신도이기 때문에 교회나 교단을 옮기는 문제는 자유롭지 않겠냐고도 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장로님, 저와 장로님의 문제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처리될지 동작지방회의 현장을 마저 구경하고 마무리하시지요.” 그때 박ㅇㅇ장로는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나와 박ㅇㅇ장로, 그리고 교회문제는 다음달 2월 어느날의 지방회 때까지로 그 수명이 한정되겠다.

박ㅇㅇ장로에 따르면, 상도교회의 제명당한 어느 권사가 직파되어 온 목사에게 ‘그 동안 우리와 예배를 드렸던 박목사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목사는 ‘내 앞에서 그 이름 다시는 꺼내지도 말라’고 단호하게 답했다고 한다. 이어지는 박ㅇㅇ장로의 말에 의하면 그동안 동작지방회에서는 ‘목사님과 자신, 그리고 교회를 없애는 수순을 밟고 있었다’고 한다. 이미 자신은 장로직에서 면직되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동작지방회의 장로가 아니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말 듣고 화들짝 놀란 나는 행정책임자들과 대면소통을 시도하였다. 그런데 교단의 각 행정책임자들이 후배들로 채워진 상황에서 한 후배 책임자는 대면소통이 필요없다는 취지의 문자를 보내와 핵심내용을 문자로 주고받게 되었다. 그 이후 나는 이들에 대해 “살리는 성향의 목사”들이 아니라고 보게 되었다.

상도교회를 매각처분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반대했던 교인들을 무자비하게 제명한 ㅁ목사, 그와 동기로서 당시 지방행정을 책임졌던 ㅇ목사와 ㅇ목사, 상도교회에 들어오려고 작업하다가 마침내 그 뜻을 이룬 타신학교 출신 ㅇ목사, 현재 행정책임자 중의 한 명인 ㅇ목사, 이들은 한 선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형성하며 선배목사, 또는 동료목사와 그의 교회, 그리고 18년이나 된 장로를 고사시켜 간단하게 없애는 수순을 밟고 있었다.

 

제명당한 교인들과 예배드린 것이 왜 불법인가?

 

교인 한 명 얻기가 매우 힘든 시대에, 목사의 교회매각을 반대하다가 제명당한 교인은 교인이 아니라는 것이 저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ㅁ목사와 친분이 있는 그의 동기들 및 선후배뿐만이 아니라 감리회 본부의 최결자(최종결재자) 자리에 있었던 전임 행정책임자들도 한결같이 모두가 동일한 입장이다. 심지어 이사회 때에는 ㅁ목사의 입장을 나서서 지지한 목사들도 있다.

저들은 제명당한 교인들이 ㅁ목사가 인도하는 예배에 참여하면 그것은 예배를 방해하는 행위가 된다는 논리를 펼쳤다. 실제로 ‘교인도 아닌 사람이 예배를 방해하러 들어와 있다’는 ㅁ목사 말을 들은 후 나가라는 압박에 못 이겨 예배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는 증언이 있다. 여기서 묻게 된다.

1.저들의 주장에 따르면 제명당한 교인은 교인이 아니다. 교인이 아닌 사람이 예배를 드리면 새신자의 자격도 없는 것인가? 그리고 내 입장에서 볼 때, 교인이 아닌 사람들과 예배를 드린 것이 어떻게 법적으로 불법을 행한 소행이 되는 건가?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의 뇌구조가 그들과 다르기 때문인가?

2.제명당한 교인들 입장에서 ‘예배도 안 드리는 사람들이 무슨 교인이냐’는 공격에도 대비할 겸, 주일 정규예배를 드려야겠기에 ‘양측은 서로 예배를 방해말라’는 법원판단에 근거하여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것은 장정에 근거가 없으므로 불법행위인가?

3.제명당한 교인들이 나에게 ‘성경공부 인도해 주시고 예배도 인도해 주시라’고 요청했을 때 요청받은 나는 어떻게 했어야 했는가? 제명당한 교인들은 교인이 아니므로 그 제의를 거절했어야 마땅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자명하다. ‘죽이기 성향’을 작동시키면 ‘불법’일 것이고 ‘살리기 성향’이 발동되면 ‘응해야 한다’일 것이다. 그러므로 ‘살리기 성향’을 발동시킨다면 행정은 다음과 같이 조치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살리는 성향’을 발동시킨다면?

 

박ㅇㅇ목사와 박ㅇㅇ장로 그리고 그 교회는 건물이 없다. 그러나 목사, 장로, 교인이 있는 실체이다. 그러므로 박목사와 박장로는 교회 부담금을 납부하면서 교회로서의 기능발휘에 최선을 다하라.... 이것이 ‘살리는 성향’에서 나오는 행정조치가 아닐까? 그렇지만 그건 내 생각. 강자의 ‘죽이기 성향’이 발동되면 약자는 그대로 당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2005년도에 ‘살리는 성향’이 아닌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월세건물과 교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적하자 여부와 상관없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미파처리되지 않았던가? 그 후에 ‘살리기 성향’을 지닌 선배에 의해 행정구제 되었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다. ‘살리는 성향’을 지닌 선배에 의해 행정구제될 때 나에게 한 가지 약속을 서명받기만 하면 된다면서 건네주었던 약속증서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건물 임대계약이 만료되면 다른 지방으로 이전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난 선배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또박또박 명확하게 말했었다.

이렇게 문자로 남기면 이것은 매우 일방적이다. 이 문장을 문서로 남기는 취지는 ‘전에 담임하던 교회의 교인들 빼갈까 봐’가 아니냐. 그러므로 이 문장 앞에 ‘교인 빼간 것이 확인되면’이 붙어서 ‘교인 빼간 것이 확인되면 그 즉시 전세 계약이 만료됨과 동시에 다른 지방으로 이전한다’고 명시되어야 공평한 것 아니냐고 했었다. 그때 살리는 성향의 그 선배는 ‘교인 빼가지 않으면 그만이지. 그리고 교인 빼갈 작정이었으면 처음부터 분리해서 나왔겠지 네 몸만 나왔겠냐? 걱정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니겠어?’ 이렇게 해서 행정구제안이 실행되었었다.

만일 후배목사들이 20년 가까이 된 이 문서를 근거삼아 이것을 문자적으로 지키게 하는 것이라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그것은 ‘죽이고자’ 작심한 결정을 작동시켜 선배를 삭제시키는 일일 뿐이다. 하지만 ‘살리는 성향’이 조금이라도 꿈틀댄다면 그 문장의 ‘취지’가 무엇인지를 살피려 할 것이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전도활동 현상

 

여기에 덧붙여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여전히 해석 불가능한 현상 하나를 짚게 된다. 개척설립 후 2년쯤 되는 해였던가? 어느 주일날 예배 후 서너 시가 되었을 무렵 사택으로 얻은 건물로 가기 위하여 밖으로 나갔는데 개척 전에 담임하던 교회의 교인들과 마주쳤다. 그것도 내외를 한꺼번에. 사알짝 놀라서 여기 웬일이냐 했더니 선교회원들과 전도활동 나왔다고 했다. 그 말에 뒤를 돌아보니 아는 얼굴들이 모두 고개를 꾸벅하여 목인사를 했다. 어깨에는 그들의 출석 교회명이 쓰인 어깨띠가 둘러져 있었다.

바로 이 현상이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납득되지 않는다. 그들이 전도활동 행사를 하려면 중앙대 중문에서 정문방향으로 나가 9호선 흑석역 쪽으로 가야 자연스럽다. 여기는 정반대 쪽이며 더구나 흑석동에서 오려면 낮지 않은 고개를 넘어야 한다. 그들의 교회는 북동쪽 방향인 중앙대 정문 쪽이고 여기는 남서쪽 방향인 상도동의 7호선 상도역 방향이다. 가볍게 넘기에는 좀 부담스런 고갯마루를 넘어야 하는 지형적 특성상 내가 개척하고 있는 교회부근의 상도역 방향으로 전도활동 행사를 한다는 것은 전혀 자연스럽지가 않다.

그러므로 누가 보더라도 그들의 전도활동 행사는 그들이 다니는 교회를 중심으로 실행하는 활동이 아니라 마치 내가 개척하는 교회를 중심으로 실행하는 전도활동이었던 것처럼 보게 된다. 물론 전도활동이야 어디서는 못할까만 이것저것 고려해 볼 때 ‘교인 빼갈까 봐’ 행정구제 조건으로 내걸었던 문장에 비추어 보면 내 뇌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이었다.

상황과 발생현상이야 어떠하건 간에 나에 관한 한, ‘살리는 성향’을 작동시키고 싶어하지 않는 후배목사들은 교회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교인들을 제명시킨 ㅁ목사의 편에서 선배, 그리고 적지 않은 세월 동안 나와 함께 해 온 박ㅇㅇ장로, 그리고 교회를 없애는 수순에 들어가 있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정의를 물같이, 하나님의 공의를 강같이’ 흐르도록 법대로 처리하는 정의로운 목사들이겠다.

그들은 합법적 제명임을 내세워 교회를 매각처분한 후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감리교회를 탈퇴해버린 ㅁ목사와 함께 “살리는 목사”들이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 8년 전에 벌써 선배목사의 교회를 ‘사고구역’으로 처리해 놓았었다. 그에 따라 나와 박ㅇㅇ 장로는 회원권이 박탈되어 선거권, 피선거권 등이 상실된 상태였다. 사회일반에서 선거권, 피선거권이 8년이나 박탈당할 경우 대체 어떤 죄에 걸려야 하는가? 이렇기 때문에 나는 이들을 가리켜 “살리는 성향의 목사”들이 아니라고 단정하게 된다.

 

이단에 빠진 것 같았던 맹신적 목회관 소회

 

이와 연관하여 개척 전에 담임했던 교회에서의 일을 되새기다가 이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두세 명도 아니고 여러 교인들의 카드를 빌려쓰고 갚지 않아 문제를 일으켰던 장로, 청년회장의 할부차를 인도받아 운행하면서 할부금을 갚지 않아 할부금이 밀렸다는 통지를 받게 했던 바로 그 장로, 치리받지 않은 그의 내외는 착하고 충성스럽게 교회를 위해 열심히 헌신하며 봉사하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고 나는 이 모양 이 꼴이 되어 불법을 행한 자로서 후배들에게 죽어 마땅한 자로 처분되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때 나는 일을 저지르고 ‘나 몰라’ 했던 그들 내외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했다. 피해를 입힌 부분에 대해서 만큼은 배상안을 마련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겠거늘 피해를 입힌 가해자에게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고 ‘살리는 것이 목회’라는 것에 미신적으로 묶여 골골거리다가 오늘에 이르도록 이 모양 이 꼴로 지내게 되었다. 당연히 치리했어야 할 사안을 놔두고 ‘살리는 것이 목회’라는 맹신적 목회관에 젖어 마치 이단에 빠져 이성이 마비된 것처럼 미신적인 행태를 보였던 것에 대한 자연스런 결과일 것이다.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20년 세월을 허송한 것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없다. “네 잘못도 아닌데 네가 왜 거기서 나와?”에 대해 유구무언이다. 내가 당하는 고통이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전가되고, 그 흔한 학원조차 제대로 보내지 못했던 것에 대해 무한히 밀려오는 아련함....

그런데 후배목사들은 나와 성향이 아주 다르다. ‘나와 완전히 다른 반대방향에서’ 굳이 치리하지 않아도 될, 피해자가 전혀 없는 일에 관하여 아무런 동정심도 없이 불법행위 운운하며 합법적 징계를 내세워 선배목사와 장로, 그리고 그 교회를 조용히 사라지게 해놨다. 상도교회의 제명당한 교인들과 예배를 드리는 것은 불법이라며 선배목사를 향한 손가락질은 항상 현재진행형이었다. 제명당한 교인들을 하루라도 빨리 솎아냈어야 했는데 내가 걸리적거려서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해 그랬던 것인가? 그러다가 이즈음에 이르러 나와 박ㅇㅇ장로는 최종적으로 확인사살 당하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부활절은 다가오고 있는데....

생명얻음의 은총을 받을 수 있을까? 아니면, 내겐 그저 덧없는 소망일까?

 

복음서들은 회당장 야이로의 어린 딸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며 생명의 호흡을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사42:3,5)에 잇대어져 부활생명을 공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죽어가는 어린 딸의 아빠는 사랑하는 딸이 숨지기 전에 예수께 와서 구원을 요청했다(막5:23; 눅8:42).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일행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어린 딸은 생명의 호흡이 끊어지고 말았다(막5:35; 눅8:49).

마태복음은 한걸음 더 나아간다. 아빠는 어린 딸의 호흡이 완전히 끊어졌음을 확인했다(9: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딸을 포기하지 못하는 아빠는 ‘부활의 주’께 구원을 요청했다. 그것은 딸을 살려낸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를 보여준다(9:18; 마태복음에서 어린 딸의 아빠는 이름없는 한 관리이다. 이것은 예수 공동체의 영향으로 유대의 생명력없는 율법주의적 조직문화가 변방에서부터 이미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음을 나타내는 전략적 서술로 여겨진다).

복음서들을 통해 보는 대로 ‘생명살림(막5:41~42; 마9:25; 눅8:54~55)’의 원천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약자를 향한 무한사랑에 있다. 바로 그런 사랑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약자를 향해 쏟아질 때 그 약자는 죽어 누워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나게 된다는 ‘생명얻음’에 대한 복음이다(막5:42; 마9:25; 눅8:55). ‘살아남’의 사건, ‘생명얻음’의 사건을 발생시키는 ‘살리는 믿음’이란 것은 이처럼 “무한사랑을 실현시키기 위해 예수를 찾는 믿음”이어야 함을 전한다.

나는 목사들에게 이런 정도의 인간애를 기대하지 않는다. 사람을 향한 내 인간애 또한 그런 정도의 수준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목사이고 아니고를 떠나 인간적인 입장에서 ‘살리는 성향’을 가진 인간존재들이어야 하지 않겠나.... 할 뿐이다.

박ㅇㅇ장로는 면직된 장로의 직을 살리려면 다른 지방회로 이명해 가야한다는 후배의 말을 듣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에 따라 박ㅇㅇ장로는 그 동안 나와 함께 했던 댓가로 청춘이 심겨진 동작지방회에서 쫓겨나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그나마 장로는 내쫓아서 살려놨다.

그와 다르게 나는 소리없이 사라져야 하는 물안개 신세가 되었다. 행정실무자는 나에게 ‘건물을 얻어 등록해 놓으셔야지 그렇지 않으면 은퇴하신 후 은급비가 지급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니 알아보시라’고 했다. 나와 적지 않은 세월을 같이 했던 장로마저 내쫓아버려 사실상 교회가 완전히 해체된 상태에서 은급금에 대해 알아보고 뭘 어쩌란 말인가? 다시 개척수순을 밟으란 것인가? 그동안 겨우겨우 간신히 붙잡고 있던 한가닥 가느다란 나뭇가지같은 소망마저 부러진 채 지금은 이렇게 서서히 스러져가고 있는 중이다.

 

-- 기고 전 추가 --

 

그 동안 짬짬이 준비한 매우 발칙하고 얄미운 도발

 

부활절을 앞두고 있는 현재, 나에 대한 공식적인 행정처리 공지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그것은 마치 말라 시들어버린 나무를 제거할 날짜만 남겨 두고 있는 산림청의 작업일정 공지와 같다고 할까? 사그라져가기만 하는 지금의 이와 같은 대책없는 상황을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니지만 부활절을 기점삼아 그동안 짬짬이 준비해 온 내용들을 중심으로 인터넷 활동을 좀 하고자 한다.

그간 이따금씩, 드문드문 준비해 온 내용들은 ‘매우 발칙하기 짝이 없는 도발적인 것들’이다. 스스로 돌아봐도 뒷머리가 바짝바짝 곤두서는 섬칫한 내용들이 더러 있다. 2,000여 년의 교회사뿐만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종교권력을 동원하여 이단사냥감으로 몰아 제거하려고 하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내리 찍어눌러 비판하지 못하도록 둘러막고 있는 비상식적인 교리들, 그리고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는 비성서적인 내용들을 성서비평학의 관점에서 가감없이 비평하는, 힘 좀 꽤나 있는 입장에서 볼 때에는 주는 것 없이 “아주아주 괘씸하고 얄미운 지적질”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서 그만이 아니다. 성서비평학적 관점에서 나름 종교적이며 신앙적인 대안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성서비평학적 ‘지적질과 그 대안’의 방향성은 이렇다.

ㅇ상식적 성서이해 : 비상식적, 비과학적, 비역사적인 내용들에 대한 종교적 신앙적 이해

ㅇ상식적 믿음생활 : 지난날의 맹신적 목회관을 염두에 두고 보는 상식적인 실천행의 믿음

ㅇ상식적 교리이해 : 종교권력형 교리로 변질되는 이유와 비복음적 교리화의 원인 지적

ㅇ상식적 교리수정 : 종교권력에 기여하는 비상식적인 교리주의 탈피와 그 대안

물론 그래봤자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일 뿐이므로 살랑거리다 마는 찻잔 속의 풍랑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정 정도 권력형 입지에 있는 교권자들은 지금 갖고 있는 현재의 종교권력에 어떤 손상이 가해질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더구나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종교관련 사이트들은 별로 인기가 없기에 관심가질 만한 일도 아니다. 그러니 그저 목장없는 자유목자로 거듭난 백수의 시간 보내기용 일상이랄까.... 뭐, 그런 정도로 치부해 버리면 될 것이다.

최종마무리 : 2023.04.05(수).

 

* 당당뉴스는 이 기고글에 거론되는 당사자나 이해관계자의 반론을 보장합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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