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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로운 시작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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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3월 30일 (목) 00:09:26 [조회수 : 3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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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은 농사 시작의 달! 윗마을 아랫마을 옆마을 이밭 저밭에서 들리는 트랙터 소리가 농사 시작을 알린다. 나의 부러움의 대상인 농가는 감자를 심는 것도 아닌데 일찍 두둑을 만들고 비닐까지 씌웠다. 무엇을 심을 것인지 궁금하다. 이 농가는 매번 윤작을 한다. 작년엔 메주콩을 심었고, 그 전년에는 참깨와 고추를 반반씩 심었었다. 가족 넷이 힘을 모아 농사를 짓는데 재작년 아주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저씨와 아들 내외 셋이서 농사를 잇고 있다. 평생 농사를 지은 베테랑 농부이기도 하고, 대농이라 별의별 농기계를 구비하고 있기도 하지만 내가 그들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가족 셋의 협동심이다. 씨뿌리는 봄에서 가꾸는 여름을 지나 수확의 가을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농사짓는 손길은 농사의 경지에 이른 어떤 혼이 담겨져 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 혼자서 오밀조밀, 주섬주섬, 짬짬이 서툴게 하는 나로서는 매번 부러울 수 밖에 없다. 이들이 어떤 작물을 심든 그들의 농사 짓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대로 따라만 해도 어느 정도 성공(?)할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그러니 부러운 농부 가족들이 지난 토요일 일찌감치 만들어놓은 두둑은 나에게 부러움과 호기심과 기대감이 충만할 수 밖에 없었다. 

일반적으로 심는 작물은 대부분 오월 초순에 심기 시작한다. 4월은 따뜻하기는 하지만 간혹 변덕스러운 날씨로 일찍 심은 작물이나 과수 같은 경우 된서리를 맞을 수도 있다. 그래서 농부는 기상에 민감하고, 절기를 잘 따르려 한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기상과 절기가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작물 심는 시기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 부러운 농부 아저씨네는 작년에 콩을 일반적으로 심는 시기인 유월 초순보다 이주 일찍 심었다. 그에 비해 나는 평년과 같이 심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당연히 그분의 콩 농사는 대풍이었고 나는 아주 졸작이었다. 콩 뿐만 아니라 마늘, 배추, 무 등도 보통의 절기를 벗어나 이주 정도 일찍 심었다. 그만큼 지구 생태계가 조금씩 변화를 맞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절기와 날씨의 영향에 민감한 농사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남들 밭이 트랙터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을 때 나는 이제야 작년에 덮었던 비닐 거둠을 마쳤다. 맞은편 밭은 3일에 걸쳐 때아닌 풀과의 전쟁을 펼치면서 비닐을 모두 거뒀고, 집 뒤의 밭은 윗집에 사시는 사모님의 조용한 도움과 나의 하루를 바쳐 드디어 끝냈다. 다행히 뒷밭은 풀이 없어서 비닐을 쉽게 거둘 수 있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였을까. 꾀부리지 않고 단박에 정리한 밭을 보면서 올해의 농사는 순조롭게 이뤄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난 3년 동안 갱년기로 농사짓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라 농사도 저절로 멀리했다. 농사 뿐 아니라 일상 자체가 무기력하여 뭐든 미루려고만 했었다. 다행히 지난 겨울부터 회복이 되면서 지금 이 밭 저 밭에 몸을 불사르며 움직이고 있다. 게다가 200평 남짓한 비닐하우스를 손수 삽으로 쟁기질을 하고 있다. 삽을 깊숙이 찔러넣어 흙을 파내어 뒤집는 일들을 수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굼뱅이도 만나고 지렁이도 만나고 여러 봄철 나물과 풀들을 헤집어 놓는다. 쑥은 딱 먹기 좋게 지천에 깔렸다. 그런들 어찌하랴. 지금 나에게는 모두가 뽑아내야 할 풀들인 것을. 어찌보면 그들도 봄을 빛내는 주인공일텐데 나의 먹거리를 위해 그들은 뜯기고 뽑히고 던져지는 운명을 맞는다. 그래도 서러워하지 않을 것은 내년에 또 악착같이 피어오를 것이리라. 

하나의 산을 넘었다. 비닐이 모두 벗겨지는 순간 환호를 질렀다. 언제 이 넓은 밭의 비닐을 거둘 것인가 근심어린 시선이 한가득이었는데 하루 이틀 꼬박 공들이다보니 서서히 농사를 지으려는 서막이 올려지기 시작했다. 올 농사가 순조롭게 시작될 수 있다는 것에 스스로 위안이 된다. 설렘과 기대가 생겼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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