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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시작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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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3월 15일 (수) 23:47:24 [조회수 : 2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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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봄을 시샘하는 겨울 끝자락의 몸부림일까? 갑작스럽게 일교차가 나더니 낮 기온은 영상이요 밤 기온은 영하였더라. 지난주에 봄이 오면 이별을 고하는 것 중 하나가 연탄불 가는 것을 깜박한다는 것이었는데, 다시 찾아온 추위 때문에 깜박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얼마 남지 않은 연탄을 바라보며 ‘제발! 있는 연탄을 소비하기까지만 추워라.’ 하고 주문을 외워본다. 

유난히 추웠다고 느꼈던 지난 겨울에는 연탄 1,000장으로 겨울을 났다. 등유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다가 근래에 아주 쬐끔 내리긴 했어도 농촌에서는 아직 연탄만한 난방은 없다. 비록 화석연료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라 할지라도 가격 대비, 단열 대비로서는 으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호강(?)도 이젠 누릴 수 없을지 모른다. 10년 전 음성에 내려왔을 때 연탄값은 장당 450원이었다. 그런 것이 매해 10원, 20원 오르면서 작년엔 730원에서 올해는 850원으로 훌쩍, 물가 상승 폭이 너무 심했다. 이미 연탄에서 기름으로 혹은 화목으로 전환한 집들이 많아 인기가 시들해진지 몇 년 되었지만 나는 아직 연탄을 고수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까지 가격이 기름보다 저렴하다는 것과 추운 겨울 추운 집을 그나마 24시간 온기를 돌게 해 주는 단열 방식은 연탄보일러가 제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구에게 미안하지만 연탄과 기름이 또이또이가 될 때까지는 버티려 한다.

지난 토요일 드디어 올해 농사를 시작하는 흉내를 냈다. 장화와 낫과 장갑, 모자, 마스크로 무장을 하고 마을 건너편에 있는 밭으로 향했다. 따스한 햇살 아래 땅이 많이 녹은 듯하여 비닐을 벗기러 간 것이다. 그 밭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일부러 차를 몰고 가야 하는 곳이라 내내 신경만 쓰였지 제대로 관리를 못했다. 그런 밭을 올해부터 이웃에 빌려주게 되어 서둘러 밭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참 다행이요, 매우 고마운 일이다. 작년에 들깨를 수확하고 난 뒤 방치한 밭은 풀을 제때 베지 않아 풀을 이불삼은 비닐을 걷으려면 먼저 풀을 베야 했다.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농사는 심고 거두는 때를 잘 지켜야 할 뿐 아니라 풀도 제때 베어주어야 땅에도 좋고 작물에도 좋은 법인데 난 매번 뒷북을 치다가 결국 외양간 고치는데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씩씩거리지도 못하고 힘들여 풀을 거두었다. 이마에서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덧옷을 벗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허리가 아프면 기어서라도 풀을 제거했다. 한참을 하고 나니 해가 산자락에 걸렸다. 여름이면 모를까 아직 초봄이라 늦게까지 일하기는 어려웠다. 하다 만 밭을 바라보니 마음에 큰 짐이 얹어지는 느낌이었다. 3월 안에 끝내야 하는데 가능할까? 농사 인력에 맡길까? 누구를 부를까? 여러 도움의 방식을 떠올려봤지만 딱히 결정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래저래 짬짬이 시간을 내어 3월 말까지 하기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주일에 비가 온종일 내리고 추위가 찾아왔다. 아아! 하늘이 내게 시련을 주시는구려. 흐흑...

남의 밭들은 벌써 곱게 갈려있다. 보기만 해도 풍요롭고 안정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나의 밭은 여전히 폐허와 같다. 누런 풀들과 시커먼 비닐이 한 몸을 이뤄 나풀나풀 나의 마음을 요동치고 있다. 올해 조금이라도 감자를 심으려고 했던 나의 농사 계획은 처음부터 낙제를 받았다. 일주일 안에 비닐을 거두고 밭을 간다는 것은 무리이니 하는 수 없이 5월 작물 농사에서 점수를 따야 하겠다. 그때까지는 아니 그전까지 만반의 준비를 끝내 놓을 것이다.

돌틈 사이로 제비꽃이 활짝 피었다. 지난주 한두 개 보였던 쑥은 여기저기 쑥쑥 자라있다. 달래도 보인다. 산수유는 반가운 인사를 하기도 전에 노란 꽃망울을 틔어 활짝 만개하였다. 그 옆에 있는 라일락도 보랏빛 꽃망울을 품고 피어날 적정 온도를 기다리는 듯하다. 자두나무와 매실나무의 희고 푸르스름하고 불그스름한 꽃순은 봄날의 파티에 주인공이 되려고 준비 중이다. 한라는 털갈이 중이라 완전 꼬질꼬질하다. 이젠 불러도 누워서 꼬리만 흔든다. 12년을 산 세월의 흔적이 몸 여기저기 역력하다. 냥이들을 어루만지면 목 주위에서 뭔가 잡힌다. 십중팔구 피를 잔뜩 빨아먹는 진드기다. 한라의 망중한, 냥이들의 졸음, 꽃들의 만개 등으로 봄이 부지불식간에 찾아와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그리고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찾아온 봄속에 나도 부스스 일어나 농사를 시작한다. 하기 싫다. 안 한다며 궁시렁궁시렁 거렸던 농한기였지만 기어이 찾아온 봄 앞에서는 양아치 농부도 어쩔 수 없다. 우선 저지르고 볼 일이다. 그래도 올해는 작은 다짐과 결심을 굳건히 했으니 조금 나아질 기대를 가져본다. 

황은경/농촌선교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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