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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본보기, 큰 성 바벨론의 최후” 요한계시록 18장 1절~10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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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2월 27일 (월) 16:31:48 [조회수 :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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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본보기, 큰 성 바벨론의 최후” 요한계시록 18장 1절~10절

 

 

1. 바벨론의 결말, 지옥

 

① (1절)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 지더라”

▶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일곱 대접의 재앙 이후에 벌어지는 사건이다. 18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오만과 탐욕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던 ‘큰 성 바벨론’의 최후다. 일곱 대접의 재앙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사건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구원으로 나가는 과정, 곧 심판과 구원의 양면성을 증거 한다.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 지더라’ 요한계시록에 자주 등장하는 천사는 스랍(seraph)이나 그룹(cherub)을 넘어 하나님의 사자(使者)를 포함한다. 암흑 같은 바벨론 포로기에 다니엘처럼 세상을 밝히던 빛과 같은 존재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대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그리스도인의 정체는 세상의 빛, 어둠을 밝히는 빛이다.

 

② (2절)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 큰 성 바벨론은 오만과 탐욕을 추구하던 모든 나라와 모든 인생을 통칭한다. ‘곳’이라는 단어의 원어를 살피면 ‘옥(獄, gaol:감옥)’으로 번역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큰 성 바벨론의 최후가 지옥으로 귀결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오만과 탐욕의 결말은 지옥이다. 과학자들은 인류가 탄소중립을 실현하지 못해서 지구의 평균온도가 3도까지 상승하면 지구는 생지옥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무엇이 세상을 생지옥으로 만드나?’ 인류의 넘치는 탐욕과 무분별한 오만이다. 감염병의 대유행은 인간의 탐욕과 오만에 대한 대자연의 역습이다.(김양중.『자연의 역습, 감염병』,미래아이, 2020) 코로나만 바라보지 말고 코로나를 일으킨 인간의 탐욕과 오만을 볼 수 있는 통찰이 요구된다. 코로나와 싸울 게 아니라 코로나를 일으킨 인간의 탐욕과 오만과 맞서 싸워야 한다. 코앞에 닥친 극심한 기후 재앙의 원인도 인간의 탐욕과 오만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인간의 탐욕과 오만의 극복이다. 지금 우리는 교만과 거짓의 왕 사단, 큰 성 바벨론으로 인해 파괴와 멸망의 대위기를 맞이했다. 생지옥 같은 세상에서 공생과 공존으로 나가는 길은 재앙의 의미를 깨닫고 탐욕과 오만으로 치달았던 삶의 방식을 돌이켜 회개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③ (3절)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 큰 성 바벨론과 추종 세력들이 함께 멸망한 원인은 무엇인가?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 곧 음행이다. 성경이 말하는 음행은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우상숭배다. 본문은 음행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되려고 하는 ‘치부(致富)’로 꼽는다.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마 6:24)”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은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라고 단언한다. 탐심은 필요를 넘어 필요 이상의 것을 구하는 탐욕이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 6:10)”로 규정한다. 돈은 소중하지만 선용할 대상이지, 결코 사랑의 대상이 아닌 까닭이다. 물질의 축적이 부르는 폐해를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 6:9)”

 

 

2. 하나님의 자녀인가, 탐욕의 노예인가!

 

① (4절~5절)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 심판 중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구원의 외침이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인가? 천국 백성은 하늘에 속한 자, 곧 하늘에 소속된 자로 말씀대로 준행하는 이들이다. 다시 말해 죄에 참예하지 않는 자들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에 이르니라(약 1:15).” 욕심은 필요 이상을 구하는 것이다. 필요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욕심은 반드시 죄로 이어지고, 죄의 결과는 반드시 사망으로 귀결된다. 예외는 없다. 성경은 이와 정반대의 길을 제시한다. 말씀을 좇아 의를 이루며 생명으로 나가는 길이다. 이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친히 보여주신 삶의 방식이다. 회개의 진정한 의미는, 욕심을 좇아 살던 불의한 죄의 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좇는 의의 길로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회개의 본래적 의미다. ‘그의 죄, 그의 받을 재앙들, 그 죄’ 여기서 그는, 탐욕과 오만의 상징인 큰 성 바벨론이다. 하나님의 후사로 사는 하나님의 자녀와 대비되는 바벨론의 후예로 사는 탐욕의 노예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다. 본문은 죄를 주도하던 바벨론뿐만 아니라 죄에 동조하던 이들도 동일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② (6절)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듯, 죄의 값은 사망이다. 오늘날 인류가 겪는 위기와 재앙의 원인은 오만과 탐욕의 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해서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9)”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보응하실 뿐이다.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의 섞은 잔에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바벨론에게 왜, 갑절(double)로 갚으실까? 지도자(leader)는 부여된 권한에 따른 막중한 책무가 따른다. 때문에 지도자(leader)의 죄가 더 무겁고 크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약 3:1)”,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 모독을 받는 도다(롬 2:17~24)”

 

③ (7절)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는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 ‘큰 성 바벨론’의 죄를 더 구체적으로 적시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자기과시, 자기자랑’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1~23)” 바울이 지적하는 핵심은 하나님을 알고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머리와 입술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면서도, 은혜 받은 자답게 살지 않는 것이다.

▶ ‘큰 성 바벨론’이 저지른 ‘사치’는 ‘외식’을 의미한다. 신앙생활의 본질은 중심을 반듯하게 세우고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다.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겉만 번듯하게 꾸미는 ‘외식’을 일삼는 것은 가증스런 행위다. 자기과시와 외식하는 삶의 결과가 고난과 애통이다. 이와 반대로 자기부인과 겸손의 결과는 은혜와 감사다.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인간의 한계를 모르는 교만을 가리킨다. 결코 망하지 않고,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자부하는 교만은 필패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큰 죄악은 교만이다. 교만한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실패와 허물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멸망도 죄 때문이 아니라 징계를 받고도 교만함으로 회개치 않았기 때문이다.

 

 

3.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심판

 

① (8절)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 하루아침에 임할 재앙과 하루아침에 무너질 영광을 증거 한다. 생명과 건강, 물질과 자녀는 소중하지만 영원하지 않고 한 순간에 무너지고 사라질 것들이다. 생명과 건강, 물질과 자녀를 의지할 게 아니라 생명과 건강, 물질과 자녀를 주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거듭해서 죄를 짓는 까닭은 죄에 대한 심판이 없는 것처럼 무감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끊는 냄비 속에 개구리처럼 서서히 물이 데워지다 한 순간에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를 가리켜 소위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고 부른다. 어떠한 현상이 서서히 진행되다가 한순간 단번에 폭발하는 것을 말한다. 죄의 결과도 이처럼 한 번에 훅 가버리고 말 것임을 증언한다.

 

② (9절)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은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은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을 향한 심판의 본보기다. 오만과 탐욕의 결과로 무참히 몰락하는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을 강 건너 불 보듯 하지 말고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타인의 불행을 보고 울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울어야 한다. ‘나의 인생도 저렇게 허망한 것이구나, 나도 회개치 않으면 저렇게 되겠구나!’ 우리가 누리는 세상의 부요와 세상의 썩어질 영광도 어김없이 한 순간에 사라질 것들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제국도 영원한 인생도 없다. 심판의 본보기가 아니라 축복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서두에 언급한 바벨론 포로기에 다니엘이 축복의 본보기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대로 준행하는 자들과 동행하시고 축복하신다.

 

③ (10절)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 큰 성 바벨론이 하루아침에 몰락시키는 ‘그 고난’을 무서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과 우리의 세상도 언젠가 ‘큰 성 바벨론’처럼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을 알고 사는 지혜가 요구된다. 성경은 이 지혜를 가리켜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라고 말한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 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시 103:15~18)”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이 진실을, 지금은 애써 외면하며 살지만 세상이 믿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그 날에 비로소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날에 깨달으면 때 늦은 후회일 뿐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에 깨달으면 너무 늦는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빨리 단 하루라도’, 이전에 삶의 방식을 돌이켜 회개하는 것이 지혜다. 요한계시록은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을 통해 이 지혜를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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