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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역사를 찾아서: 한국천주교회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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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2월 10일 (금) 02:34:07
최종편집 : 2023년 02월 10일 (금) 02:35:15 [조회수 :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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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역사를 찾아서: 한국천주교회사 이야기』,

정두희, 한국기독교연구소,

신국판, 251쪽, 2023년 2월 20일, 값 14,000원.

ISBN 978-89-97339-99-0 03230

 

1. 책 소개

 

한국사 전공자이며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여러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해 학술논문 형식이 아니라 자신의 생생한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그 시대를 함께 걷도록 안내한다. 이수광, 안정복, 이승훈, 정약종, 윤지충, 황사영, 정하상 등 당시의 학자들과 김대건, 최양업 신부 등 초기 사목자들뿐 아니라 신유박해(1801년), 기해박해(1839년), 병인박해(1866년)의 순교자들에 대한 심문 기록과 분석, 그리고 순교자 이순이 루갈다와 배교자 최해두를 비롯한 수많은 민중들이 목숨을 걸었던 신앙을 자세하게 살핀다. 특히 흑산도에서 16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다가 생을 마친 정약전의 삶과 글을 통해, 정치권력과 종교가 다양성을 용납하지 못한 채 사회가 무너져 내리던 절망적 현실 속에서 어떻게 유교 전통과 천주교의 핵심을 “매심”(每心), 즉 뉘우침(悔)으로 해석하고 삶의 원리로 체화함으로써 짙은 어둠을 물리치는 새로운 희망의 불빛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2. 저자

   
 

정두희 교수(1946-2013)는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한국근세사 전공) 학위를 취득했으며, Harvard-Yenching Institute 객원교수, 전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는 『조선 초기 정치지배세력 연구』, 『조선시대의 대간(臺諫)연구』, 『조선시대 인물의 재발견』, 『미국에서의 한국사 연구』, 『조광조』, 『하나의 역사, 두 개의 역사학』, 『한국사에 있어서 지방과 중앙』, 『다산 사상 속의 서학적 지평』, 『장희빈, 사극의 배반』, 『내안에 살아 숨쉬는 역사』, 『유교·전통·변용: 미국의 역사학자들이 보는 한국사의 흐름』,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 등이 있다.

 

   
 

3. 목차

 

추천사 _ 김한규 / 5

머리말 / 9

 

조선왕조와 천주교 최초의 인연 / 13

조선후기 유학자들의 천주교 비판 / 20

윤지충(尹持忠)과 조상제사 문제 / 31

한국천주교 최초의 교리서 / 44

유교적 전통과 천지창조설 / 65

「황사영 백서」(黃嗣永 帛書)를 어떻게 볼 것인가? / 75

이순이 루갈다의 순교와 남긴 편지들 / 94

배교자 최해두(崔海斗)의 참회와 고백 / 107

기해박해(1839년)의 순교자들과 당시 교회의 모습 / 116

김대건 신부 / 144

산골에 숨어 사는 양떼들을 찾아 헤매며:

최양업 신부의 생애 / 174

병인박해(1866년)의 순교자들 / 195

고통 속에 꽃피운 영성:

흑산도에 유배된 정약전의 생애에 대한 재조명 / 205

한국천주교회사의 현재적 의미를 생각하며 / 240

한국천주교 순교성인의 달을 맞으면서 / 247

 

4. 추천사

 

정두희 교수는 󰡔조선초기 지배세력의 연구󰡕(1983)와 󰡔조선시대 대간제도 연구󰡕(1994) 등 수많은 조선사 관련 논저를 통해 실증적 사료 분석과 합리적 역사 해석의 교과서적 성과를 우리에게 듬뿍 선물한 한국 조선사학계의 대표적 역사학자지만, 이 책에서는 엄격한 분석과 딱딱한 해석 대신 단아하고 미려한 문장으로 한국의 초기 천주교회사 무대에서 전개된 주요 사건들과 인물들을 문학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격동의 한국 초기 천주교회사의 고비 고비마다 만나게 된 중요한 사건과 인물들을 주제로 삼아 14편의 역사 에세이를 창작함으로써, 저자는 한국 천주교회사의 흐름을 잘 이해하도록 정리해 줄 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서 역사적 사실의 현실적 의미를 반추하도록 안내한다.

― 김한규(서강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5. 책 속으로

 

그러나 천주교 신앙과 서양의 존재에 대한 최초의 접촉은 매우 따뜻하고 호의적인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1600년대의 시작과 더불어 이수광을 통해 전해진 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지식과 호기심은 한 알의 씨앗처럼 이 땅에 뿌려졌다고 할 수 있다.

그로부터 한 세기 반이 더 지난 1700년대 후반에 이르면 많은 사람들이 이 새로운 세계를 알기 위하여 다투어 노력을 할 것이었다. 또한 이수광 이후 200년이 지난 1800년 이후가 되어서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 새로운 세계 속으로 파고들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게 될 것이었다. 실로 우연처럼 자리 잡았던 겨자씨 하나가 큰 나무를 이루는 데는 2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야 했지만, 유구한 역사의 흐름을 생각해 본다면 그 200년이란 한순간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의 상황을 돌아보면서 이수광의 『지봉유설』을 읽다 보면 깊은 감회에 젖곤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19)

 

안정복은 권철신과 그 문도들이 이처럼 예수회 신부들의 주장대로 유교와 천주교의 가르침의 유사성을 인정했던 것과는 달리, 이 두 가르침의 차이성을 꿰뚫어 본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점점 천주교 신앙에 깊이 빠져들자, 언젠가는 이 두 가르침의 차이점이 심각하게 부각되고, 그렇게 되면 수습할 수 없는 파국적인 사태가 일어나리라고 예감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1784년 권철신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21)

 

나는 『천학문답』을 읽으면서, 만약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나 처음으로 천주교의 가르침을 접했다면 어떠한 태도를 취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비록 안정복처럼 학문적으로 높은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대체로는 그의 노선을 따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18세기 후반에 남부러울 것 없는 교육을 받고, 또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장래가 기대되는 사람들이 왜 천주 신앙을 갖게 되었을까? 당시에 천주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이 비록 신앙의 초기에는 과거에 지녔던 것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머지않아 모든 것을 잃어야 할 것이었다. 안정복처럼 모두에게 존경을 받았던 큰 스승이요, 대선배까지도 이단시하는 천주 신앙을 가지기로 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결단이었을 것이다.(30)

 

오늘날의 우리는 더 이상 제사를 그처럼 중요시할 필요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 대신 현대의 우리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 모든 것들을 하나도 잃지 않고서도 올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천주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이 세상과의 결별을 요구하고 있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곧 이 세상에서 소중하게 여기는 것과 천주의 사랑 중에 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인지를 확실하게 가리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 예컨대 돈·명예 · 자존심 · 이기심 · 안락함 ·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무시하는 태도 ․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부정한 짓도 서슴지 않는 태도 등을 청산하라고 신앙이 요구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므로 윤지충이 목숨을 걸고 선택한 그런 매서운 결단력이 오늘날의 천주 신앙인들에게도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한다.(43)

 

보통 천주교회사는 박해와 순교의 역사로 기억되기 쉽다. 그러나 그 모진 박해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그처럼 증거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그러한 고통을 감당할 수가 있는가? 당시의 신자들이 천주교리와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 내용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순교가 가능하였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대부분의 신자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그 시대에 어떻게 천주교리를 깊이 체득할 수가 있었을까?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해답을 얻기 위해 당시 국내에서 만들어진 유일한 교리서였던 『주교요지』를 살펴볼 필요성을 느꼈다. (46)

 

그리고 그 희망은 당시의 양반 지식인들이 아니라 민중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임을 깊이 인식하였기에, 정약종은 이 책을 한문이 아닌 한글로 저술하였던 것이라 생각된다. 한 세기에 걸친 모진 박해 속에서 수천 명의 우매한 신자들이 순교로써 이 새로운 신앙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한글로 번역된 성서가 없던 당시에, 이 『주교요지』는 그런 가르침을 많은 이들에게 전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63)

 

조선시대에는 불교도 탄압을 받았으며, 심지어는 한 유교 내에서도 양명학과 같은 사상도 단죄되었다. 그러나 그 어느 경우에도 천주교처럼 철저하게 박해를 받은 종교나 사상은 없었다. 왜 천주교에 대해서만 조선왕조는 그처럼 박해하였던가? 그것은 천주교도의 세력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당시 천주교의 교세는 왕조의 입장에서 볼 때 조금도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처럼 철저하고 잔혹하고 또 지속적으로 천주교를 박해한 것은 바로 그 교리 때문이었다. 천지창조설을 바탕으로 하는 천주교 신앙은 유교적 전통에 젖어 있는 당시의 사람들, 특히 당시의 지배층에게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반인륜적이요 반국가적인 것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었다.(73)

 

나는 한국천주교회사의 숲속을 거닐며 큰길을 내기 위해 양옆의 덤불 속으로 버려진 무수한 작은 돌들 위로 걷고 싶어질 때가 많다. 배교자 최해두는 “자책”이라는 글이라도 남겨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지만, 무수히 많은 다른 배교자들, 세상에서 버려진 채로 천주의 사랑만을 갈망하며 살았던 이름 없고 보잘것없는 무수한 사람들이 남겼을 고귀한 삶의 의미는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 그래서 나는 소리 없는 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115)

 

앞에서 제시한 기해박해 때의 천주교도 심문 기록을 보면 해설이 필요가 없을 만치 생생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리고 당시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던 천주교도들은 매우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증언은 공통된 것이었다. 이들은 배교하기를 거부하였다는 점에서 공통될 뿐 아니라, 죽어도 신앙을 버릴 수 없는 이유를 너무나 명백하게 밝혔다는 점에서 비슷하였다. (127)

 

1801년 신유 대박해 이후 천주교는 끊임없이 모진 박해를 받아왔으나 신자들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그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당시의 조선사회에서 철저하게 배척되어 숨어사는 이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이처럼 계속 이어갈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리고 위에서 제시한 심문기록에 나타난 대로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그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버리며 자신의 신앙을 증거한 내용이 그처럼 일치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런 문제들은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것들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의 천주교회의 구성을 잘 살펴보면 그 답의 실마리를 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135)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103위의 성인들을 추앙하고 있다. 이들도 모두 박해 때에 참혹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 이름이 전해 오고 있고, 그들의 순교 행적도 다 잘 알려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박해 때에 희생된 수많은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여기 이 글의 통계에 숫자로밖에 나타낼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다. 이름 없이 억울하고 참혹하게 죽어간 이 수많은 사람들의 존재를 이런 식으로라도 드러내고 싶은 것이 나의 심정이었다.

내가 이 병인박해 순교자들에 대한 증언록을 이러한 방식으로 정리할 때 1,092명에 대한 기록은 한 사람당 단 한 줄뿐이었다. 그러나 그 한 줄에 압축되어 있는 이들의 삶과 고통 그 자체가 한 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는 결코 생각할 수가 없다.(201-02)

 

이들은 그 이름자도 제대로 전하지 못한 사람들이었지만, 천주를 믿는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린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대원군은 자신이 권력을 쥐고 있던 때는 대단한 신념의 소유자처럼 보였지만, 정작 권력에서 밀려났을 때는 너무나 초라하였다. 그는 자신의 권력으로, 소중한 가치를 끝까지 저버리지 않은 수많은 양민들을 학살하였지만, 정작 그 자신은 목숨을 바쳐야 할 아무런 가치도 찾지 못한 채 치욕스러운 말년을 보냈던 보잘것없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203)

 

죄와 회개, 죽음과 부활의 가르침은 유교적 전통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적어도 조선시대에 들어와 지배자의 이데올로기가 된 성리학의 가르침에서 이러한 죄와 뉘우침의 교리를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매심재기”는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의 핵심적 사상에 천주교가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를 살피는 데 있어서 매우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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