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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요한계시록 16장 1절~11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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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2월 04일 (토) 04:42:39 [조회수 :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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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요한계시록 16장 1절~11절

 

 

1. 심판과 구원의 양면성

 

① (1절)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 16장에서 세 번째이자 마지막 일곱 대접의 재앙이 마침내 시작된다.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일곱 대접의 재앙이 성전에서 나는 큰 음성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께서는 축복만 주시지 않고 재앙도 친히 주관하신다. 재난은 우연이 아닌 섭리다. 재건축을 위해서 먼저 철거작업이 선행돼야 하듯 하나님의 심판은 노아의 홍수처럼 새로운 창조를 위한 철저한 파괴다. 다시 말해 진노의 심판은 구원으로 나가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다.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먼저 낡은 것이 무너지고 멸망해야하기 때문이다. 구약의 역사를 살펴보면 솔로몬성전이 우상숭배로 인해 파괴된 바벨론 포로기에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은 새로워졌다. 외적인 몰락이 내적인 성숙으로 이어졌다. 성전 중심에서 말씀 중심으로 변화되었다.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출애굽기에 기록된 열 번째 재앙의 장면과 유사하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로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라(출 12:23)” 유월절 사건이 하나님을 멸시하던 애굽의 바로 왕에게는 최후 심판이 되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던 히브리 민족에게는 구원과 승리가 되었다. 이는 구약의 예언서와 요한계시록이 시종여일하게 강조하는 심판과 구원의 양면성이다.

 

② (2절) “첫째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

▶ 일곱 대접의 재앙이 임하는 심판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적시한다. 일곱 대접을 통한 심판의 대상은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이다. 앞서 자세히 살핀 대로 짐승은 일차적으로는 로마제국의 황제들을 가리키는 은유다. 나아가서 짐승은 유사 이래로 하나님을 대적하던 모든 적그리스도를 통칭한다. “거짓말 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요일 2:22)” 이미 정리한대로 짐승의 표는 하나님의 인 치심과 상반되는 개념이다. 짐승의 표는 노예의 낙인이다. 물질의 섬기면 물질의 노예가 되고 사람을 섬기면 사람의 노예가 된다.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은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우상숭배를 자행하던 자들이다.

 

③ (3절) “둘째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 본문은 계시록 8장 8절~9절 말씀과 맥을 같이 한다.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은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을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일곱 나팔의 재앙으로 땅과 바다와 강에 삼분의 일이 죽는 재앙이 임했으나 회개치 않았다. 그로 인해 결국 모든 생물이 죽는 재앙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심판이 삼대칠중재앙을 통해 이처럼 점진적이고 점층적인 까닭은 한 사람이라도 더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하는 지혜를 촉구한다.

 

 

2.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

 

① (4절~5절) “세째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 땅과 바다와 강물은 생명의 근원이자 삶의 기반이다.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이여’ 아담의 범죄로 에덴동산에서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하나님을 대적하던 바로 왕의 교만을 심판하시기 위해 나일 강을 피로 물들이신 것처럼 인류의 범죄로 땅과 바다와 강에 재앙이 임하게 된 것임을 증거 한다.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성경이 전하는 의는 하나님의 뜻 곧 정의다. 정의를 생활언어로 바꾸면 정확하고 정직한 계산이다. 하나님의 뜻을 떠나 탐욕으로 인한 자업자득의 결과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합당한 죄 값을 치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단 5:25)’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지만 영원히 참지 않으신다.

 

② (6절)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 심판의 목적과 당위성을 증거 한다. ‘저희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던 짐승과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그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이다. 일곱 대접의 재앙은 그들의 압제와 박해로 인해 죽임당한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에 대한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적확한 보응이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롬 2:6~8)” 다시 말해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공의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사건이다. 신명기 28장에 기록된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받는 축복’과 ‘들어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받는 저주’가 판가름 나는 순간이다. 축복과 저주의 기준은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에 달려 있다. 말씀대로 준행하는지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지, 평소에는 그 차이가 드러나지 않지만 ‘비가 오고 창수가 나는’ 그 날에 만천하에 그 숨은 공력이 드러나는 것과 같다.

 

③ (7절)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 제단은 에스겔이 본 새 성전 중앙에 위치한 ‘번제단’을 가리킨다. 번제단은 희생제물의 피를 제단 뿔에 바르고 태워 드리던 곳이다. 에스겔 47장은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솟아나서 번제단을 지나 그곳에 뿌려진 희생의 피를 닦아 흐르며 성전에서 물이 흘러 나와 차고 넘쳐서 생명의 강과 바다를 이루는 구원의 광경과 물이 닿지 않는 곳이 죽음의 땅으로 구별 되는 광경을 선포한다. 제단이 전하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진노의 큰 포도주틀’이다.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한 낫을 가졌더라 또 불을 다스리는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을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계 14:17~18)” 앞서 살펴 본대로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은 로마제국의 박해를 가리키고 그 틀에 밟혀 터져 나온 피는 박해 가운데 순교한 성도들의 흘린 피다. ‘제단이 말하기를’이란 표현은 돌들이 일어나 소리치듯 그 모든 박해와 핍박 속에서 죽임당한 성도들의 피를 머금은 제단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선포함을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3. 회개치 아니하더라!

 

① (8절)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 이 말씀이 전하는 메시지는 일차적으로 로마제국이 섬기던 무적의 태양신(솔 인빅투스, 황제의 수호자) 곧 로마제국의 자멸을 가리킨다. 나아가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던 모든 제국들과 제국에 속한 족속들의 멸망을 의미한다. 하늘의 태양이 둘일 수 없듯이 오직 하나님만 하나님이신 까닭이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제국이 태양신을 섬기던 명절을 세상에 오신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로 정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는 이교도의 축일을 성탄절로 제정한 것에 대한 정통성을 폄훼할 일이 아니라 도리어 진짜 세상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빛을 자처하던 가짜 왕을 몰아내고 왕권을 회복한 의미심장한 역사적 사건으로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다.

 

② (9절 상)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 태양을 숭배하며 섬기던 이들이 자신들이 숭배하고 섬기던 태양에서 나온 불로 멸망했다는 뜻이다.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하고 명예를 추구하던 자는 명예를 추구하다가 명예를 잃고, 물질을 의지하던 자는 자신이 의지하던 물질로 인해 몰락하게 된다. 실제로 해가 지지 않을 것 같던 로마 제국은 폭력과 수탈, 오만과 탐욕으로 대제국으로 번성했지만 결국 식민지의 반란과 내적인 부패로 자멸하며 역사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는 로마 제국 뿐만 아니라 앗수르제국, 바벨론제국, 페르시아제국, 헬레니즘제국 등의 고대열강들과 크메르제국, 진시황의 진나라 등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로마제국의 영광을 꿈꾸며 그 뒤를 좇았던 모든 독재자들에게 단 하나의 예외가 없는 비극적인 운명이다. 이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인류 역사가 전하는 자명한 교훈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오늘날 로마제국은 사라졌지만 물질이 다스리는 물질만능의 세상을 살고 있다. 그 속에서 소유와 축적을 통해 온갖 번영과 무한 성장을 추구하던 인생들도 동일한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원한 제국도 없고, 영원한 인생도 없다. 이것을 알고 사는 게 지혜다. 모든 성경이 그러하듯 요한계시록도 이 명료한 진실을 증거하고 있다.

 

③ (9절 하)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긍휼에도 불구하고 결국 멸망에 이르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증언 한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 2:4~5)”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긍휼에도 불구하고 결국 멸망에 이르는 진짜 이유는 씻을 수 없는 죄악의 무거움 때문이 아니다. 진노의 일곱 대접을 받고도 끝까지 돌이켜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멸망은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업자득으로 인한 자멸이다. 불행 중 다행히도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은 아직 땅에 임하지 않았다. 부디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돌이켜 회개하는 지혜가 있길 바랄뿐이다. 일곱 대접은 돌이켜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last chance)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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