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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고 벗어난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요한계시록 15장 1절~4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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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1월 17일 (화) 15:11:34 [조회수 :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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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고 벗어난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요한계시록 15장 1절~4절

 

 

1. 마지막 재앙

 

① (1절)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 사도 요한이 바라보는 모든 이적은 기적이 아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계시와 비전’이자 장차 벌어질 심판과 구원에 관한 ‘표적과 징조’, ‘신호와 사인(sign)’이다. 15장에 기록된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은 5장에서부터 이어져 온 하나님의 심판 곧 일곱 인의 재앙, 일곱 나팔의 재앙에 이은 일곱 대접의 재앙이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모든 진노가 마침과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이 완성된다. 주목할 점은 하나님의 통치 곧 천국이 진노의 심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최종적인 구원과 천국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알곡과 쭉정이가 타작마당에서 구별되고, 비가 오고 창수가 나는 날에 모래 위에 지은 집인지 반석 위에 지은 집인지 판가름 나듯 극심한 재앙과 박해를 통해 짐승의 표를 받은 짐승의 노예인지, 하나님의 인 치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지 믿음의 진가를 판결하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이 땅의 삶을 마치고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것과 동일하다.

 

▶ 요한계시록이 전하는 하나님의 진노 곧 삼대칠중재앙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다. 하나님의 심판대가 없는 것처럼 천국은 따 놓은 당상이듯 여기는 무사안일에 빠진 왜곡된 천국 복음의 오류에 경종을 울리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 14:10)”,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하나님의 심판 없이 하나님이 다스리는 천국은 없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인 까닭이다. 이는 산상수훈의 결론과도 일치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또한 로마서 말씀과도 일치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 2:13)” 성경이 시종여일하게 전하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단 하나의 기준은 ‘말씀대로 준행하는 삶’이다. 말씀대로 준행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내 몫에 댄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는 순종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눅 9:23~24)” 고난 없는 영광이 없듯 십자가 없이 부활도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심판 없는 하나님 나라도 없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씀이 전하는 본뜻은 천국 곧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으로 돌이킬 것을 촉구하는 데 있다.

 

▶ 오늘날 주님을 따르는 무리는 많지만 진정한 제자는 드문 것처럼 천국을 바라보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아주 적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이 아니라 너나 할 것 없이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으로 달려가기 때문이다. 말씀을 듣기만 할뿐 말씀대로 준행하지 않는다. 한 알의 밀알로 썩어지지 않는데 어찌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으랴! 오늘날 한국교회의 강단에서 ‘십자가 없는 부활, 심판 없는 천국’을 전하는 함량미달의 값싼 복음이 판을 치고 있다. 재앙을 견디고 박해를 이기지 못하는 신앙은 하나님의 심판대를 통과하지 못하는 까닭에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한 하나님의 통치 곧 천국 복음을 증거 하면서 형통복음과 번영신학과 같은 기독교의 본질을 왜곡한 세속적인 신앙에서 돌이켜 회개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2. 이기고 벗어난 자들의 정체

 

② (2절)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은 누구인가? 다니엘이 본 이상을 통해 그 뜻을 명확하게 해석할 수 있다.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여 내 뇌 속에 이상이 나로 번민케 한지라 내가 그 곁에 모신 자 중 하나에게 나아가서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물으매 그가 내게 고하여 그 일의 해석을 알게 하여 가로되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이에 내가 넷째 짐승의 진상을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고 그 이는 철이요 그 발톱은 놋이며 먹고 부숴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인 것이라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단 7:15~22)”

 

▶ 다니엘이 본 이상에 비춰보면, 본문의 전하는 ‘짐승’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를 핍박하는 사단의 하수인 노릇하는 모든 나라와 열 왕들의 통치하는 제국을 통칭한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우상’은 짐승들이 미혹하고 말로 대적하기 위해 고안해낸 통치이념 곧 이데올로기이다. 소위 약육강식과 다다익선, 승자독식과 적자생존 같은 사고와 논리다. 오늘날 물질만능주의를 대표하는 이데올로기가 있다. ‘많이 소유하면 행복하다’는 신념이나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부동산 불패의 신화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시며 우상을 경계하셨다. ‘그의 이름의 수’는 앞서 계시록 13장 18절에서 자세히 살펴본 대로 초대교회를 박해하던 야수 같은 인물을 암시하는 숫자다. 다니엘서 7장에 따르면 ‘첫째 사자 같고(바벨론제국), 둘째 곰 같고(바사제국), 셋째 표범 같고(헬라제국),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열 뿔이 있고 입이 있어 큰 말로 하나님을 훼방하고 대적 한다’ 다니엘이 본 넷째 짐승은 유사 이래 가장 강력했던 로마제국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의 이름의 수’는 초대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한 네로황제를 비롯한 로마제국의 황제들을 의미한다.

 

▶ 다니엘서에 따르면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누구인지도 분명해진다. 그들은 극심한 로마제국의 박해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킨 성도들이다. 본문은 그들이 마침내 하나님의 권능으로 의의 최후 승리를 거두고 유리바다 가에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을 증거 한다. 이 노래는 앞서 계시록 14장에서 이미 살펴 본 노래다.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계 14:3).” 십사만 사천인은 앞서 정리한 대로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이’ 즉 땅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소속된 자다. ‘하나님의 인 치심을 받은 이들’ 즉 짐승의 노예낙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로 인 치심을 받은 구원받기에 합당한 이들이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은 내 몫에 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순종한 자들이다. 따라서 이 노래는 아무나 배우고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니다. 오직 십자가와 부활을 몸소 체험한 이들만 부를 수 있는 노래다. 받은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는 ‘흰 돌에 새겨진 이름(계 2:17)’과 같이 오직 전 재산을 팔아 밭은 산 사람만 비로소 알 수 있는 감춰진 보화다.

 

 

3.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

 

③ (3절~4절)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나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는 출애굽 당시 애굽 왕의 바로와 메마른 광야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이다. 홍해의 기적을 체험한 뒤에 부른 일명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무궁하시도다(출 15:1~18)” 그렇다면 어린 양의 노래는 무엇인가? 이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의 영광으로 승리하심을 증거 하는 찬송이다. 어린양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마지막까지 읊조리신 말씀,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마 27:46)’는 절망적인 고난으로 시작해서 승리의 영광으로 마치는 다윗의 시편에 첫 문장이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찌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 그에게 영광을 돌릴찌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찌어다...와서 그 공의를 장차 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로다(시 22:1~31)” 따라서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노래는 로마제국의 극심한 박해 가운데서도 짐승과 그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의 정절을 지킨 성도들이 ‘모세처럼 예수그리스도처럼’ 고난과 절망 중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고 마침내 최후 승리의 노래다. 이 노래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주님의 부활에 참예한 모든 이들이 함께 부를 영광의 찬송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부활할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다(롬 6:8~9).”

 

▶ 이 노래는 계시록 5장 8절~10절에서 어린 양이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서 책을 취하실 때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나와 엎드려 부른 새 노래와 동일한 노래다.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들이라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시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 하더라” 여기서 승리의 노래를 상징하는 ‘거문고’와 함께 기록된 ‘금 대접에 담긴 성도들의 기도’는 슬픔과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절규와 탄원이다. “큰 소리를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계 6:10)”

 

▶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계시록 8장에도 반복된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에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일곱 나팔을 가진 천사가 나팔 불기를 예비하더라(계 8:3~6).” 중요한 점은 일곱 나팔의 재앙이 성도들의 탄원기도로 시작되었듯이 마지막 일곱 대접의 재앙도 핍박과 박해 가운데 순교한 성도들의 탄원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보응으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환난 중에 절규하는 성도들의 탄원기도와 성도들이 부르는 승리의 새 노래가 거듭해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사 이래로 빛과 어둠이 교차했지만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긴 적이 없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고난과 박해 속에서 구원과 승리가 끊임없이 계속되었지만 이제 마지막 일곱 대접의 재앙으로 종지부를 찍고 마침내 최종적인 승리와 영광의 찬송을 부르게 될 것을 증거하고 있다. 본문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세상 속에서 왜 의인이 악인에게 핍박을 받는 지에 관한 오랜 의문에 대한 명료한 해답이다.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핍박은 잠시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비록 믿음의 성도들이 핍박을 받는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통치와 구원의 역사가 ‘하나님의 진노’를 통해 멈추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짐승의 박해를 이기고 벗어난 성도들에게 최후 승리로 인도하시는 변함없고 확실한 하나님의 언약을 앞서 간 믿음의 선배들이 부르는 새 노래로 보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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