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어머니 - 리스바

(삼하21:7-14)

사울 왕은 길보아 산에서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그의 아들 요나단과 함께 처참하게 전사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 왕과 세 명의 아들들의 시신을 벳산 거리에 매달아 놓고 조롱했다. 그러나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이들의 시신을 몰래 수습하여 화장한 후 유골을 아베스 에셀나무 아래에다 묻어 주었다.

이 무렵 다윗은 아말렉을 소탕하고 돌아와 시글락에서 잠시 체류할 때, 이 소식을 듣고 통곡했다. 하지만 슬픔도 잠깐, 유다지파에서는 다윗을 헤브론에서 왕으로 추대하였다. 한편 사울 왕과 후계자인 요나단이 죽자 사울 왕의 친척 군대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이 사울 왕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유다지파를 제외한 열한 지파와 함께 요단 강을 건너 마하나임에 거처를 정하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했다.

이러한 시절에 이스라엘은 권력 이양기의 혼돈 속에서 두 세력 간의 갈등과 전쟁으로 말미암아 땅은 피폐해졌고, 민심은 흉흉했다. 노자가 춘추전국 시대의 참상을 보면서 “군대를 일으켰던 곳에는 가시덤불이 자라고, 큰 군대가 지나간 뒤에는 반드시 흉년이 든다”라고 했듯이, 이스라엘은 척박한 대지와 참혹한 참상으로 시름하고 있었다. 그런데 국가나 권력이 개인의 인권을 보호할 수 없는 공백기에서 공교롭게도 공권력에 희생당한 슬픈 어머니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리스바였다.

리스바는 ‘뜨거운 돌’이란 뜻으로 미모가 매우 뛰어난 여인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전역에서 리스바를 흠모하는 젊은이들이 꽤 많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소문을 들은 사울 왕이 은근히 리스바에 대한 욕심을 가졌다. 그러나 이미 아히노암을 아내로 두고 있었기 때문에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울 왕은 용기를 내어 리스바의 아버지인 아야에게 청혼의 뜻을 전했다.

“나의 충성스런 아야는 들으시오. 짐이 그대의 여식을 흠모하니 짐의 여인으로 주시오.”

“왕이시여!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부족한 제 여식을 왕께서 원하신다면 기꺼이 왕의 여인으로 드리겠나이다.”

그리하여 리스바는 사울 왕의 첩이 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알콩달콩 사랑하여 두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알모니와 이스보셋이었다. 그러나 리스바의 기쁨은 찰나적으로 지나가고 불행이 엄습했다. 사울 왕이 블레셋 전쟁에서 참패하고 죽었다는 소식이 왕궁에 전달되었다. 그러자 리스바는 울며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흑흑흑~! 나의 주인이시여! 어찌 소첩을 두고 이렇게 허망하게 가십니까? 소첩은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하십니까?”

리스바의 신세는 참으로 처량했다. 사울 왕은 갑자기 죽었고, 나라는 위태롭고, 그렇다고 마땅히 의지할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리스바는 자신의 안위보다 두 아들의 생명이 더 걱정이 되었다.

“부왕께서 승하하셨으니 이제 알모니와 이스보셋의 목숨도 경각에 달렸구나.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리스바는 속이 타들어갔다. 그런데 절체절명의 순간, 어디선가 아브넬이 불쑥 나타났다.

“황후마마! 아브넬입니다.”

“오-호! 아브넬? 그대가 어쩐 일이오?”

“마마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나이다.”

“뭐시오. 말해 보시오.”

“다름이 아니오라 신이 이스보셋 왕자님을 왕으로 추대하여 마하나임으로 가서 이스라엘을 재건하고자 하나이다. 아울러 마마의 두 왕자님의 안전을 신이 책임지고 보호하겠나이다. 하오니 신과 함께하여 주소서.”

리스바는 두 아들의 생명을 지켜주겠다는 아브넬의 말에 감동을 받고 두 손을 꼭 잡아주며 말했다.

“고맙소. 내 아들을 지켜준다면 내가 그대와 함께 하리라.”

리스바는 사울 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하여 자신과 두 아들의 생명에 위험을 느끼고 있었는데, 아브넬의 친절한 말에 안심하고 기꺼이 마하나임으로 합류했다. 그러나 아브넬은 엉큼한 속셈이 있었다. 그는 일찍이 리스바를 눈여겨봤다. 평상시 그녀의 현명하고 기품이 있는 모습에 반했었다. 그래서 당면한 국정문제에 대해 자주 만나 여러 가지 의견을 함께 나누면서 점점 연정을 품고 기회만 엿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브넬은 유다의 다윗 군대와 이스라엘의 군대 대표자들의 전쟁에서 패하고 간신히 돌아오던 중에 요압의 동생 아사헬이 끝까지 추격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아사헬을 죽이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심한 죄책감에 사로잡힌 채, 리스바의 처소를 찾아갔다.

“마마! 계시옵니까?”

“아브넬 장군! 이 시간에 어인 일이십니까? 어서 오세요.”

“제가 지금 심히 마음이 아파서 마마를 뵈려 왔나이다.”

“무슨 일이기에 얼굴이 이렇게 초췌해졌습니까?”

아브넬은 리스바에게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말하며 머리를 움켜잡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리스바가 깜짝 놀래며 아브넬에게 다가오면서 말했다.

“장군! 너무 심려치 마세요. 아사헬이 장군의 말을 듣지 않고 시비를 걸다가 그렇게 된 것을 어찌 장군 탓이라고 하십니까? 만약에 장군이 아사헬을 죽이지 않았다면 장군이 죽었을 게 아닙니까?”

그러면서 리스바는 아브넬의 어깨를 넌지시 안아 주었다. 그러자 아브넬은 리스바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마마! 제 심정을 이해해 줘서 고맙습니다. 마마의 성정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아브넬은 리스바를 껴안았다. 그러나 리스바가 뿌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아브넬은 더욱 강하게 안으면서 말했다.

“마마! 소신은 오래 전부터 마마를 흠모했나이다. 사울 왕께서 승하하시고 홀로 남으신 마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픕니다. 이스보셋 왕이 혹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예측할 수도 없고, 하여 소신이 마마와 두 왕자님의 방패막이가 되겠나이다. 그러니 소신의 행동을 용서하시고 저를 받아 주십시오.”

“……”

리스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생각해 보며, 천천히 말했다.

“으-음, 사울 왕께서 돌아가신 마당에 나와 두 아들을 지켜줄 사람이 아브넬 밖에 없지 않는가? 그래 내가 주저할 이유가 없구나. …, 아브넬? 좋아요. 장군의 뜻을 받아 들이겠어요.”

이리하여 아브넬과 리스바는 동침하게 되었다.

그런데 궁궐의 이야기는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듯이, 누군가가 이스보셋 왕에게 이 사실을 고자질했다. 그러자 이스보셋 왕은 크게 분노하였다.

“뭐라고! 감히 신하 주제에 선왕의 여인과 동침을 해. 이런 괘씸한 놈을 봤나. 여봐라! 당장 아브넬 장군을 끌고 오너라.”

“존명!”

한편 아브넬은 점점 세력을 확장해 가면서 리스바를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을 통치하려고 했는데, 자신이 리스바와 동침한 게 탄로가 나자 난감했다.

“으-음, 이 일을 어쩐다. 아냐. 걱정할 필요가 없어. 어차피 리스바를 통해 왕국을 내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는데, 들킨 게 잘된 일이야. 그래 부딪쳐 보자.”

아브넬은 의외로 당당하게 왕궁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스보셋은 오히려 기가 막힌 듯 말을 더듬거렸다.

“아-아브넬! 네 이 놈! 네가 선왕의 여인을 품고도 이렇게 떳떳하게 짐 앞으로 나올 수가 있단 말이냐?”

그러나 아스넬은 이스보셋 왕의 말에 고개를 조아리기는커녕 고개를 뻣뻣하게 치켜 세우고 화를 버럭 냈다.
“당신은 나를 개 대가리로 아시오? 내가 지금까지 당신의 선친 사울의 왕실과 그의 형제들과 친구들에게 충성을 바쳐 다윗에게 넘기지 않고 있는데, 뭐라고 하셨소? 선왕의 여인을 품었다고 나를 힐난하는 거요? 당신은 오늘 하찮은 여자 일로 나를 이렇게 개망신을 줄 수 있소?”

“……”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 대로 내가 이루게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브넬에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 것이오. 명심하시오. 그 맹세는 이 나라를 사울의 집에서 다윗에게 옮겨서 그의 왕위를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과 유다를 세우리라는 것이오.”

“……”

이스보셋 왕은 아브넬의 기세에 완전히 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브넬은 이스보셋을 본 체도 하지 않고 그냥 휙 나가 버렸다. 그리고 리스바의 침소로 갔다.

“리스바 마마! 안에 계십니까?”

리스바는 반가운 얼굴로 아브넬을 맞이하며 말했다.

“어서 드시지요. 궁궐에 들어가신 일은 잘 되었는지요?”

“으-음, 이스보셋 왕이 꽉 막혀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았소.”

“그러면 어찌하시렵니까?”

“일단 다윗 왕에게 인편을 보내 망명해야겠소. 난 애초에 이스보셋이 마음에 들지 않았소. 내가 정말 모시고 싶은 주군은 다윗 왕이요.”

“하오면 저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유다에 정착한 후 반드시 당신을 데리려 올 것이오.”

“아브넬! 꼭 그리하셔야 합니다. 당신의 손에 나와 두 아들의 목숨이 달려 있습니다.”

“알겠소, 나만 믿으시오.”

그리하여 아브넬은 은밀하게 전령들을 다윗에게 보내어 자신의 뜻을 전하게 했다.

“다윗 왕이시여, 아브넬 장군의 뜻을 전하려고 왔나이다. 아브넬 장군께서 전하기를, ‘이 땅이 누구의 것입니까? 신은 폐하와 언약을 맺기 원하십니다. 신은 폐하를 도와 온 이스라엘을 폐하의 손에 돌아가게끔 하겠다’고 하셨나이다.”

“하하하! 아브넬 장군이 짐에게 투항하여 이스라엘 전체를 짐에게 넘기겠다고 하니, 이게 웬 일이냐? 좋다. 짐이 아브넬 장군과 언약을 맺겠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짐을 보러 올 때에 반드시 사울의 딸 미갈을 데리고 와야 되느니라.”

“존명!”

그 후 아브넬은 이스라엘 장로들과 베냐민 사람들에게 다윗 왕이 블레셋과 모든 대적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적임자임을 설득하고 미갈을 데리고 다윗 왕에게 찾아갔다. 그러자 다윗 왕은 아브넬을 아주 성대하게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그리고 다윗은 아브넬이 모든 것을 정리하기 위해 마하나임으로 돌아갈 때, 정중하게 인사말을 나누었다.

“아브넬 장군! 평안히 가시게.”

“폐하께서도 평안하시기를 기원하나이다.”

그런데 아브넬이 시라 우물 가에 있을 때, 의외의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요압이 전쟁터에서 돌아왔다가 아브넬이 다윗 왕을 만나고 이스라엘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 왕 몰래 급히 전령을 보냈다.

“아브넬 장군이시여! 멈추시오.”

아브넬은 다윗의 전령이 말을 타고 오는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니 폐하께서 미처 하지 못한 말씀이라도 있는 건가?”

그러나 전령은 다윗의 전령이 아니라 요압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아브넬 장군이시여! 속히 다시 헤브론으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아브넬은 아무 의심없이 헤브론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헤브론에서 아브넬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은 다윗 왕이 아니라 요압이었다.

“아니, 이게 누군가? 요압! 자네가 왜 여기에 있는건가?”

“하하하! 아무 일도 아닐세. 그냥 자네가 보고 싶어서 불렀네.”

요압은 아브넬을 안심시키고 성문 안으로 들어가면서 어깨동무를 하며 조용히 말하는 듯하며 품 안에 숨겨둔 칼을 뽑아서 아브넬의 배를 찔러 죽였다. 요압은 일전에 아사헬이 아브넬에게 죽임을 당하자 원한을 가슴에 묻고 있었다가 아브넬을 기어이 암살했던 것이었다. 이렇게 아브넬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이했다. 한편 이 소식을 들은 다윗 왕과 백성들은 통곡하며 울었다.

한편 이 무렵 리스바는 아브넬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아-하! 오실 때가 되었는데, 왜 이리 늦으실까?”

그때 전령이 들어와서 다급한 목소리로 소식을 전했다.

“마마! 큰일이 났습니다. 글쎄 아브넬 장군께서 헤브론에서 요압의 칼을 맞고 돌아가셨다고 하나이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장군께서 돌아가시다니,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 사울 왕께서 돌아가시고 정 붙일 때가 없었을 때, 그렇게 다정하게 해주시던 분이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면, 이제 나와 두 아들은 어찌 살라고. 아-하! 하나님도 무심하시구나.”

리스바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마마! 정신 차리시옵소서”

이후에 리스바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먼 산만 바라보며 살았다. 그러나 이젠 누구도 리스바를 돌볼 사람이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한 마디로 리스바는 궁궐에서 잊혀진 여인이 되었다. 하지만 한 여인의 삶이 처절하게 무너진 한 복판에서도 이스라엘 역사의 물결은 계속 출렁거렸다. 이스보셋 왕은 평상시 신뢰하던 바아나와 레갑 장군에게 암살을 당했고. 두 장군은 이스보셋 왕의 목을 베어 다윗 왕에게 투항했지만 다윗 왕에게 오히려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는 헤브론에 와서 다윗 왕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함으로써, 다윗 왕은 비로서 사울 왕 이후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리는 통일 왕국의 왕이 되었다.

“다윗 왕! 만만세!”

“이스라엘은 영원할지어다!”

이리하여 많은 전란을 겪으며 분열과 갈등, 배신과 살인이 반복되던 이스라엘이 다윗 왕 통치부터 서서히 안정을 회복해 갔다. 그런데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는데, 그것은 바로 삼 년 동안의 흉년이었다. 그러자 다윗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으-음! 지금 이스라엘은 오랜 세월 전쟁과 크고 작은 분쟁으로 지칠대로 지쳤다. 따라서 자칫 흉년이 장기화된다면 어렵게 하나 된 이스라엘이 다시 흩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그러니 이 문제를 빨리 풀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큰 소용돌이 속에 빠질 게다.”

그래서 다윗은 망설임 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이 땅의 흉년을 풀어 주옵소서.”

그러자 하나님께서 즉시 응답해 주셨다.

“다윗아? 이 일은 사울이 기브온 사람을 억울하게 죽였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아픔이 풀려야 되느니라.”

기브온 사람들은 원래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아모리 족속의 잔류민이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당시, 기브온 사람들이 여호수아를 속여 화평조약을 맺어 이스라엘에 편입되었다. 그런데 사울 왕이 다윗을 미워해 죽이고자 할 즈음, 다윗을 자신한테 밀고하지 않고 다윗의 일행을 환대했다는 이유로 사울 왕은 기브온 근처 기브아에서 놉의 제사장 85명을 처형했다. 이것이 바로 기브온의 원한이었다.

이에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의 한풀이를 듣고자 했다.

“짐이 너희들을 위하여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솔직히 말해 보거라. 짐이 어떻게 너희에게 사죄해야 너희가 이스라엘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

“왕이시여! 사울과 그의 집과 우리 사이의 문제는 은금에 있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도 없는데 저희들이 왕께 요구한들 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그대들은 걱정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말하거라. 짐이 어떤 요구든 들어 주마.”

“그렇다면 말씀을 드리겠나이다. 저희들의 요구사항은 간단합니다. 우리를 학살하였고, 우리를 멸문지화시켜 이스라엘 영토 안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못쓸 짓을 했던 사울의 자손 중 일곱 사람을 우리에게 내주옵소서. 그러면 사울의 고향인 기브아에서 우리가 직접 그들의 목을 매어 달겠나이다.”

“으-음! 알겠다. 짐이 허락하노라.”

그래서 다윗 왕은 기브온 사람들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사울 왕의 후손 일곱 명을 찾았다. 하지만 다윗 왕은 요나단과 있었던 하나님과의 맹세를 기억하고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껴서 아예 제외시켰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추려진 사람들 중에 공교롭게도 리스바의 두 아들인 알모니와 므비보셋이 포함이 되었다. 그러자 세상과 담을 쌓고 칩거하고 있었던 리스바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전해 듣고 급히 두 아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다윗의 군대가 와서 사울의 딸 메랍의 후손 다섯 명과 알모니와 므비보셋을 기브온 사람들의 손에 넘겨 준 후였다. 하지만 리스바는 정신없이 기브아로 뛰어가며 기도했다.

“하나님? 제발 제 새끼들을 살려 주세요. 이 미천한 년이 지금껏 사랑했던 낭군들은 비명횡사했거늘 이제 누굴 보고 살라는 것입니까? 하나님? 제가 기브아에 가서 기브온 사람들에게 통사정할 터이니, 그 때까지만이라도 불쌍한 제 새끼들을 제발 살려 주세요.”

그러나 리스바가 기브아에 도착했을 때, 일곱 명의 젊은이들은 벌써 목 매달려 죽어 있었다. 그러자 리스바는 미쳐서 길길이 날 뛰었다.

“아이고! 내 새끼들아! 이 어미가 힘이 없어 너희들을 죽게 했구나.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나 같은 과부의 새끼들을 이렇게 허망하게 데리고 가시면, 난 앞으로 어떻게 살라고. 흑흑흑!”

일곱 명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잘못과는 전혀 상관없이 피의 보복으로 희생당했다. 그러나 누구도 메랍과 리스바의 자식들의 억울한 죽음에 선뜻 변호하거나 위로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리스바는 세상 인심의 야박함에 치를 떨며 말했다.

“못된 세상이로다. 사울 왕과 아브넬이 만약 살아 있었다면 차마 나한테 이렇게 할 수는 없을 게다.”

그렇지만 사정은 다들 있는 법이었다. 마침 이 시기가 보리 추수를 하는 4월 경이었다. 그런데 하늘은 잔뜩 흐렸는데도 빗방울은커녕 서리와 이슬 방울조차 내리지 않는 지독한 흉년이 삼 년째 계속되었다. 그러자 민심은 점점 땅과 더불어 황폐져 갔다. 더군다나 다윗 왕의 결정에 대해서 반론할 수가 없었다. 또한 기브온 사람들의 원한 푸는 현장에 함부로 나설 수도 없었다. 그러나 리스바는 어미로서 기브아 산에 매달린 일곱 명의 시체 앞에 홀로 남았다.

“저리 썩 꺼져 버려! 이 못된 짐승들 같으니라구.”

리스바는 상복을 입은 채 낮이고 밤이고 벌써 6개월쯤 기브아 산을 지키고 있었다. 낮에는 날짐승들이 일곱 명의 시체들 위에 앉지 못하게 하려고 했고, 밤에는 들짐승들이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리스바는 도대체 힘이 어디서 낫는지 신기할 정도로 지금까지 끄덕없이 버티며 짐승 떼들과 날마다 사투를 벌였다. 그러면서 가끔 허공에 대고 푸념을 토했다.

“이것들아! 제발 내 새끼들을 두 번 죽이지 말아다오. 저 불쌍한 것들이 뭘 잘못했다고 너희들까지 뜯어먹으려고 그러니? 세상도 무심하지. 후-유! 이 년의 팔자가 참 더럽구나.”

리스바는 이스라엘의 흉년 때문에 속죄제물로 바쳐져 억울하게 죽은 일곱 명의 시체가 여전히 기브아 산에 매달린 채 앙상한 뼈만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장례를 치루지 못하게 하는 처사에 대해서 무언의 항거를 했다. 신명기에 보면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을 처형하고 나무에 달아 효시할 경우가 있다. 이렇게 나무에 달린 시체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이니, 그 시체를 나무에 단 채 밤을 보내지 말고 그날로 묻어라. 그렇게 두어서 너희 하나님 야훼께 유산으로 받은 너희 땅을 더럽히면 안 된다”(신21:22-23)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주변의 사람들은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빙자한 국가 폭력 앞에서 장례를 치룰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드온 사람들의 한풀이에 눈치만 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원한 맺힌 시체를 성벽이나 들에 방치해 놓은 채로 계절을 넘기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리스바는 거의 반 년의 세월동안 누가 뭐라해도 개의치 않았고, 어떤 것에도 개념치 않았다. 그리고 그저 묵묵히 일곱 구의 시체가 있는 기브아 산에서 어머니의 피꿇는 한으로 쓰러지지 않고 지금껏 참고 견디어 왔다.

“이 못된 짐승들아! 썩 꺼져 버려. 세상이 버려도 이 애미는 절대로 버릴 수 없으니, 이것들아! 제발 날 좀 도와다오. 세상 사람들아! 이제 저 뼈다귀들만 남아 있는 흉측한 모습을 보시오. 그러니 애비, 애미된 자들은 내 말 좀 들어 보시오. 제발 나를 불쌍히 여겨 새끼들의 장례를 치루게 해 주시오.”

이렇게 리스바가 집요하게 자식들의 주검을 지키며 한 맺힌 속울음을 토하자 마침내 이스라엘 사람들과 기브온 사람들의 마음이 서서히 움찔거렸다.

“쯧쯧쯧! 정말 안 되었어.”

“그러게 말이야. 불쌍해서 못 보겠네. 얼마나 억울하면 6개월째 저러고 있어도 흐트러짐이 없을까.”

“그러나저저나 나무에 매달린 저 시체들을 언제까지 방치해 둬야 하나?”

“이제는 내려서 장례를 치루게 해 줘야 하는 거 아냐?”

“글쎄, 누군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다윗 왕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건 그렇군.”

한편 이 무렵 다윗 왕은 리스바의 항의하는 탄원의 소리와 백성들이 동정하는 여론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다윗 왕은 리스바의 한을 풀지 않으면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단호한 결정을 했다. 그리고 즉시 명령했다.

“여봐라! 듣거라! 지금 당장 길르앗 야베스에 가서 사울의 뼈와 요나단의 뼈를 가져오너라. 그리고 기브아에 가서 일곱 구의 뼈를 수습하거라. 그리하여 이 모두를 사울의 아버지 기스의 무덤에 합장하도록 하거라.”

“존명!”

리스바는 다윗의 군대가 점점 자신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보면서 직감했다.

“으-음! 다윗 왕이 드디어 이 년의 한을 풀어 주려고 군대를 보내시는구나.”

이리하여 리스바의 한은 뒤늦게나마 풀렸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다윗이 지시한 모든 명령을 따라 그대로 행한 뒤에야 비로소 그 땅을 돌보시고 다윗의 기도를 들으셨다. 결국 사울의 후손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실상이 밝혀지고 그들의 주검을 정중하게 매장하자, 하나님은 삼 년의 흉년에서 단비를 주셨다. 그러므로 다윗 시대의 삼 년 흉년은 리스바의 한이 풀리자 하늘의 문이 열린 사건으로써, 어머니의 모정이 담긴 애틋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