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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도다” 요한계시록 14장 6절~20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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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1월 05일 (목) 22:13:23 [조회수 :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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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도다” 요한계시록 14장 6절~20절

 

 

1. 영원한 복음, 예수 그리스도

 

① (6절)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 앞서 사도요한은 시온 산에 어린 양과 함께 선 구원받은 성도들이 새 노래를 부르는 광경을 보았다. 새 노래는 성도들의 탄식이 승리의 찬송으로 변하는 의의최후승리와 구원의 영광의 찬송이다. ‘공중에 날아가는 다른 천사’는 나팔을 부는 천사들과 구별되는 또 다른 영적 존재다. 어린 양의 지시에 따라 심판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네 생물이다.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는 말씀을 통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대천사임을 짐작할 수 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0~11)” 천사가 전한 영원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구원하신다는 사실이 영원한 복음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믿지 아니함으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6~17).”

 

② (7절)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 천사가 전한 영원한 복음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심판대가 가까이 왔으니 천국에 합당한 삶으로 돌이켜 회개하라’는 것이다. 회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한다. 멸시하던 하나님을 경외하고 가로채버린 하나님의 영광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의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롬 1:23~25)” 천사의 메시지는 하나님 아닌 피조물을 하나님처럼 섬기던 우상숭배를 회개하고 만물의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것이다. ‘나의 사자(使者, 천사)’라는 뜻을 가진 말라기의 예언을 통해 더 분명하게 전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이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지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 4:1~3)”

 

③ (8절)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베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던 자로다 하더라”

▶ 심판의 대상을 ‘큰 성 바벨론’이라고 적시한다. 이어지는 16장과 17장에도 등장하는 ‘큰 성 바벨론’은 특정한 제국을 넘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훼방하던 모든 사단의 하수인을 통칭한다. 창세기에 기록된 바벨탑처럼 하늘에 닿으려는 인간의 오만을 상징한다. ‘그 음행’은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우상숭배다. 바사 왕 고레스를 들어 70년 만에 하나님을 대적하던 바벨론 제국의 폭정에서 구원하신 것처럼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로마제국의 폭정에서도 구원하실 것을 예고한다. 큰 성 바벨론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유사 이래로 믿음의 성도들을 박해했던 모든 영적인 대적들로 의미가 확장된다. 애굽 왕 바로에 의한 사백년 압제, 헬라 제국 셀류코스 왕조의 에피파네스에 의한 성전 유린, 국권을 유린하고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일제강점기 36년도 여기에 해당된다. 그 뿐 아니라 장차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마지막 그 날에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음란하고 오만한 바벨론’을 무너뜨리시고 마침내 구원하실 것을 증거 한다.

 

 

2. 진노의 포도주

 

① (9절~11절)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 14장에 등장하는 ‘다른 천사들’은 어린양의 지시에 따라 심판과 구원을 수행하는 네 생물들을 가리킨다. ‘첫째 다른 천사(계 14:6)’가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들의 구원을 선포했고 ‘둘째 다른 천사(계 14:8)’가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을 선포했다. 이어서 셋째 다른 천사는 ‘진노의 포도주’를 받을 심판의 대상을 적시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들’이다. 표는 노예의 낙인이다. 물질을 섬기면 물질의 노예가 되고 명예를 섬기면 명예의 노예가 된다. 진노의 포도주로 받을 심판의 내용은 두 가지다.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부와 명예, 권세와 쾌락의 결말은 언제나 고통이다. 부와 명예, 권세와 쾌락은 영원하지 않고 불에 소멸하여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부와 명예, 권세와 쾌락을 추구하면 두려움과 불안에 싸여 예외 없이 평안과 만족을 빼앗기고 만다. 부와 명예, 권세와 쾌락은 내 맘대로 할 수 없고 변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9~10)”

 

② (12절)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인생이지만 결국 두 가지 삶의 방식으로 구분된다. ‘욕심-죄-사망(멸망, 심판)’ VS ‘말씀-의-생명(영생, 구원)’이다. 욕심을 좇아 죄에 빠져 사망에 이르는 삶의 방식에서, 말씀을 좇아 의를 이루며 생명에 이르는 삶의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성경이 전하는 회개다. 요한계시록은 이를 ‘짐승의 표를 받은 자 VS 하나님의 인 치심을 받은 자’로 대비한다. 누가 하나님의 인 치심을 받아 구원에 합당한 자인지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끝까지 인내하며 지키는 자’다.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늘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들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심판의 기준은 행위가 아니라 추구하는 삶의 방식에 따른 판가름이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핵심은 이어지는 말씀에 있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라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심판의 기준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이다. 곧 외적인 혈통이나 직분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말씀대로 준행하는 삶에 달려 있다.

 

③ (13절)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 ‘기록하라’ 하나님이 친히 보증하시는 언약이다. ‘자금 이후로’ 문자적으로는 이제부터(from now on)지만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의미한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이는 생물학적 죽음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죽기까지 말씀대로 준행하는 순종을 의미한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요한복음 12장에서 더 분명해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요 12:24~26)”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이 고백은 단지 기독교의 배타적 구원론이 아니다. 물질이나 권세, 명예나 쾌락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또한 교회 다니고 세례 받고 직분 받는다고 다 구원받는 게 아니라 세례 받은 자답게 직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말씀을 듣는 자 곧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사람은 구원에 합당한 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말씀을 듣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가 말씀대로 준행하는 자,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죽기까지 순종하며 사는 사람만 구원에 합당한 자로 제한하고 있다. 장차 받을 구원의 영광을 위하여 지금의 고난과 환난을 기꺼이 감수하며 인내하는 사람이다.

 

 

3. 알곡과 가라지의 심판

 

① (14절~16절)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 구름 위에 앉으신 날카로운 낫을 가지고 계신 분은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는 심판과 구원의 권세를 위임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다. 마태복음에 기록된 마지막 추수에 관한 비전과 맥을 같이 한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 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 13:24~30)” 알곡과 가라지는 모양이 똑같다. 아니 왕겨가 오히려 더 크다. 하지만 그 날에 주님께서 속이 찬 알곡인지 겉만 번듯한 쭉정인지 판가름하실 것이다.

 

② (17절~18절)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한 낫을 가졌더라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을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 본문은 요한복음의 말씀과 맥을 같이한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하여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리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 15:1~6)” 모두 포도나무 가지들이다. 차이는 열매의 여부다. 비유의 핵심은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내 안에 거하라, 저가 내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한마디로 말씀대로 준행하는 삶이다. 이는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다’는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주님과 상관없는 자기 과시를 위한 신앙생활은 감격 없는 예배, 기쁨 없는 봉사, 헌신 없는 예물처럼 성령의 열매가 없다.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 가지는 아낌없이 찍어서 불에 던지시리라!

 

③ (19절~20절)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 얼핏 보면 심판에 관한 무서운 말씀 같지만 사실은 구원의 비전을 전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술틀’은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 형틀’에 비견된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먹 포주 같은 붉은 피를 쏟으시는 광경과 일치한다. 포도주 술틀은 로마제국의 극심한 박해다. 틀에서 나오는 피는 순교한 성도들이 흘린 피와 눈물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며 말씀대로 준행하다가 무참히 죽임을 당한 성도들의 흘린 피다. 본문은 로마제국의 극심한 핍박을 받는 성도들의 흘린 피에 대한 해석이다. 사도 요한은 순교자들이 흘린 희생의 피가 도도하게 흐르는 보혈의 강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지금 성도들이 받고 있는 고난과 박해가 역설적으로 구원을 위한 추수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광복이 독립투사들의 피 위에 세워졌고 조국의 민주화가 민주투사들의 피 위에 세워졌듯 주님의 교회는 순교자들의 흘린 피로 세워진 것임을 증거 한다.

▶ 요한계시록 14장은 문학적으로 말하면 수미상관에 의한 수미상응을 이루고 있다. 서두에서 하나님의 인 치심을 받은 십사만 사천이 승리의 새 노래를 부르는 모습과 말미에서 로마제국의 박해 가운데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져진 채로 순교의 피를 흘리는 성도들의 모습을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지금 삶에서 겪고 있는 고난과 박해는 하나님이 구원이 완성되어가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말씀대로 준행하며 인내와 소망으로 최후승리를 얻으라! 고난 없이 영광도 없듯 십자가 없이 부활도 없다. 피 흘림 없이 죄 사함도 없다(히 9:22).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눈물로 씨를 뿌리지 않고서 어찌 기쁨으로 단을 거둘 수 있으랴! 요한계시록은 고난에 꺾이지 않고 박해에 뿌리 뽑히지 않고 주님께서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그 날까지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의 믿음을 증거 한다. 이 믿음은 오늘날 거의 찾아보기 힘든 삶의 폭풍에도 뿌리 뽑히지 않는 기독교 신앙의 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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