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나에겐 감사하고 행복한 길

     나의 남은 인생은 고난당한 자들과 동행하겠다고! 그것이 바로 예수님처럼 사는 길이고, 그것이 바로 죽을 준비를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목회를 시작했더니 자연히 그런 분들과 가까워지게 된다. 목회에 경험이 많은 선배목사님들은 “다 소용없는 일이여, 그래 받자 당신만 고생하고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헛김 빼지 마”라고 충고하시다. 고난당한 자를 일으켜 세워 살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잠시라도 그런 분들의 옆에서 동행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힘이 되지 않겠는가!

     어느 날 70대 할머니가 40대 아들을 데리고 오셨다. 어릴 때부터 잘 아는 분이다. 자식을 낳을 수 없어 고아원에서 하나 데려다 키웠는데 너무 애지중지하여 키워 마마보이를 만드시고 말았다. 열심히 키우고 결혼시켜 손자까지 보셨지만, 술중독자가 되어 매일 술만 마시고 가장으로써의 구실을 하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는 결혼한 아들을 늘 어린아이처럼 감싸고 돌아 몇 년 전 부인이 더 이상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함께 살 수 없어 이혼하고 헤어졌다. 신혼 첫날밤부터 시어머니가 문 옆에서 물수건을 들고 지키고 있다가 “애야 다 끝났니? 물수건 여기 있다.” 하며 시중을 든다나! 그런 식으로 결혼 10년이 넘도록 아들을 얘기처럼 돌보고 있으니 어느 부인인들 참고 살 수가 있을까!

     그 아들이 부인과 헤어지고 난 후 더 심한 술 중독자가 되어 매일 술만 먹고 잠만 자는 걸 데리고 나한테 오셨다. 모든 사람들이 다 안 된다고 그런 사람 받지 말라하였다. 술 중독자는 고치기 힘들지만 그렇게 생각 없이 다 큰 자식을 껴안고 있는 마마가 있는 한 더욱 고치기 힘들다고! 난 안될 줄 알면서도 그 인생이 불쌍해서 함께 하기로 했다. 교회에 일거리를 만들어 함께 일하며 칭찬해 주기도하였다. 그럴 때 마다 신이 나서 며칠간은 술을 안 먹다가 또다시 몰래 먹는다. 멀리 갈 일이 생기면 함께 차를 태우고 여행 삼아 데리고 다녔다. 그럴 때 마다 그 할머니는 아들이 먹을 것을 모두 챙겨 함께 따라오신다. 실은 아들이 문제가 아니고 어머니가 문제인 것이다. 부인은 이혼하여 따로 살고 어머니가 아들을 돌보며 사시는데, 주정뱅이 아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70이 넘은 노모가 참기름에 달걀노른자를 넣고 꿀과 깨소금 가루를 뿌려 먹이고, 좀 시간이 지나면 과일과 우유를 먹이고, 맛있는 고기반찬을 만들어 때마다 어린 아기 먹이듯이 먹인다. 그렇게 먹여 놓으면 그 아들은 몰래 밖에 나가 술을 잔뜩 퍼마시고 취해서 어딘가 쓰러져있다. 그러면 다시 노모가 찾아서 데리고 온다. 그러기를 십수 년째이다. 그다음 날 술이 깨어 엄마에게 두 손 싹싹 빌며 이제 다시는 안 먹을 테니 요번 딱 한 번만 소주 한 병 사주라 애걸한다. 그러면 노모는 약속을 꼭 지키라며 “그럼 이번 한 번으로 끝이다.” 하며 한 푼씩 준 것이 수십 년 그렇게 하였으니 그의 부인인들 배겨날 수가 있고 나 또한 어떻게 그를 위한 목회적 돌봄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나와 함께 지내면 며칠씩 내가 시키는 일도 하고 나와 함께 멀리 여행하느라 며칠씩 술을 못 먹게 되는 때도 있어 얼굴색이 좋아지고 생기가 돌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와 항상 함께 할 수 없게 되었다. 선교사로 파송 받아 출국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필리핀 선교사로 나가서 몇 년이 지나고 잘 만나지 못하는 사이 그가 운명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죽은 아들보다 불쌍한 이는 그 아들 하나 바라보고 사신 노모다. 90이 넘으셨을 그 할머니는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계시는지! 아들이 먼저 갔으니 얼마나 슬프실까. 이제 아들 걱정은 그만하시고 잠시라도 좀 평안히 사셨으면 좋겠다.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하고 병들고 술중독이나 아편중독 된 사람들과 동행하는 일은 아무 이득도 없는 부질없는 고생길이다. 그러나 그런 길을 걸으신 분이 예수님이고 그렇게 사시다 결국은 죄인으로 몰려 십자가에 처형당하셨다. 고난당한 이들과 함께하는 삶은 결국엔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고통 외에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배척당하는 길이다. 그러나 벌써 죽었어야 할 사람이 생명을 연장받아 살고 있으니 이 길이 나에겐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한 길이며 목회의 길이라 생각한다. 물론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는 목사들이 훌륭하지만,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불쌍한 영혼을 돌보는 일도 중요한 목회라 생각한다(마10:42). 

           이글은 필자의 저서 박애로 충만한 영혼을 꿈꾸며 | 이강무 - 교보문고 (kyobobook.co.kr) 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