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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경계선으로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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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12월 10일 (토) 22:14:59
최종편집 : 2022년 12월 10일 (토) 22:18:17 [조회수 :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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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에서 나그네의 삶을 마치고 소천한 고(故) 이영빈 목사님이 오는 12월 14일로 어느새 4주기를 맞았다. 1955년 독일로 유학 한 이래 한평생 독일교회 목회자로서 살아온 이영빈-김순환 부부의 생애는 한반도 분단 시대의 파노라마와 같다. 분단을 강조한 이유는 그를 수식해온 가장 커다란 작명이 남과 북의 경계선에 존재했던 통일운동가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곁에 이영빈 목사의 저서와 역서 3권이 남아있다. <통일과 기독교>는 1994년 4월, 한국 사회에 그를 소개한 첫 작품으로 믿음으로 준비한 것이었다. 남북이 공동으로 합의한 1995년 한반도 희년을 앞두고 귀국이 엄금된 재독 통일운동가 이영빈-김순환 부부를 고난모임이 초대하면서 기획하였다. 무려 600쪽에 가까운 책의 출판사는 딱 한 권의 책을 내고 출판등록을 반납한 ‘도서출판 고난함께’였다. 그만한 용기가 어디에서 나왔을까? 

  이어 몸을 푼 자서전 <경계선>은 이영빈의 진가를 잘 드러내는 자전글의 모범과 같다. 신앙과지성사에서 1996년 11월 23일 자로 출판하였는데, 같은 날에 맞춰 독일 프랑크푸르트 파울게어하르트교회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너무 빠듯한 일정 때문에 정작 주인공인 <경계선>도 없이 기념식을 할 뻔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넓은 교회 안에 재독 동포와 독일인 교우들이 함께 하였는데, 베를린에서 축하 차 온 북한대사 일행도 있었다. 

  10년이 지난 2005년 8월, <경계선>은 두 장(章)을 추가해 증보판을 냈다. 마침내 부부의 역사적 귀국에 맞추어 아내 김순환 선생의 이야기를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두 분은 이 책을 통해 독일 시민으로 사는 4남매와 손자 손녀들에게 조상의 이야기를 전해주길 원하였다. 그러나 언어의 장벽이 너무 높았다. 2014년 6월에 이를 독일어로 번역하여 <Grenzgaenger>라는 이름으로 또 한 번 출판하였다. 같은 책은 20년 동안 세 차례 옷을 갈아입었다. 

  이영빈 목사님은 비록 이승의 경계선을 떠났지만, 평생 책과 버무려 산 서생(書生)으로서 행동하는 지식인의 전형과 같았다. 사실 손때가 묻은 최초의 책은 번역서로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발행한 <복음과 율법>이다. 감리교신학대학교 동기생 박순경, 허혁과 함께 칼 바르트의 <Evangelium und Gesetz>을 공역한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의 얕은 신학적 풍토 속에서 암중모색이 번역한 이유였다.

  한자투성이의 <福音과 律法>(카-ㄹ · 빨트 著)은 세 젊은이를 중심으로 바르트 신학 서클을 만들어 함께 학습하던 중에 번역한 것이다. 출판사는 금용도서주식회사였다. 표지에 등사용 철판(일명 가리방)으로 그린 소박한 포도송이 하나가 중심에 놓여있다. 이즈음 <사도신조>(Credo)도 함께 발간하였다. 그러나 이 책들은 한국전쟁이 일어나는 통에 제대로 판매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새삼 <복음과 율법>을 읽은 후배 김준영 목사(전 감리교 선교국 총무)의 회고담도 전해진다.   “1950년 6월 25일에 전쟁이 발발했다. 서울이 함락되는 것을 보고, 나는 80km나 떨어진 개성을 향해 이틀을 걸어서 갔다. 집에 있는 방공호 속에서 허혁, 이영빈, 박순경 세 사람이 공동 번역한 칼 바르트의 역작 <복음과 율법>을 독파했다. 밑줄을 그으면서 아마도 대여섯 번은 읽었을 것이다. 가슴이 벅찼으며 그리스도의 은총을 깊이 그리고 뜨겁게 맞이했다. 나로서는 어거스틴의 회개나 존 웨슬리의 얼더스케이트 체험을 바르트의 <복음과 율법>을 읽으면서 경험했다”(하희정, ‘기독교통일운동과 감리교회가 걸어온 길’). 

  <복음과 율법>의 번역본은 역사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을만하다. 아직 20대 청년이었을 신학도 세 사람은 해방 이후 낯선 공간과 위험한 세상에서 길을 찾던 젊은이들이었다. 시대의 길을 모색하고, 신학의 뜻을 찾았다. 그리고 칼 바르트의 ‘말씀의 신학’에서 빛을 찾았고, 스스로 길을 찾아 나그네가 되었다. 그 길은 위험하고, 불안했으며, 불확실한 믿음의 순례였다. 

  당시 젊은 신학도들이 찾은 길은 양 극단으로 갈라진 이념과 그에 대한 강요나 선택이 아니었다. 그들은 전쟁 중에도 하나님의 뜻을 찾았고, 미래의 등불을 밝혔다. 비록 정답처럼 새로운 지도가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기꺼이 경계선을 향해 성큼성큼 믿음의 길을 걸어 나갔다. 그런 청년들의 가슴을 우리 시대에서 다시 회복하고 싶은 까닭에, 새삼 선배들의 해묵은 책을 보듬는다. 절판된 지 오랜 책들이나 역사적 흔적으로서 소개하는 이유는 지금은 ‘다시 경계선’으로 나가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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