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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 없는 결혼 예식
신현희  |  juventusjesu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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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12월 09일 (금) 00:05:59 [조회수 : 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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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결혼, 임신, 출산, 육아, 교육 대신 연애, 비혼, 입신, 생산성, 자기 개발, 반려 동물을 선택하는 시대에도 결혼예식장은 비는 시간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게나 결혼을 안한다는 통계가 무색하게 예식장은 여전히 사람들로 붐빈다. 메신저로 청첩장을 보내는 신랑이 그랬다. 예약이 밀린 결혼식장 때문에 낮에는 올해 안에 도저히 시간이 안나 어쩔 수 없이 저녁으로 잡았다고 했다. 토요일 저녁, 30분을 사이에 두고 어느 한 쪽도 불참할 수 없는 두 건의 결혼식이 있어 한강을 건너 바쁘게 움직였다. 앞에 있던 결혼식은 주례 목사가 없는 결혼식, 뒤에 있던 결혼식은 나도 익히 알고 있는 목회자가 주례를 맡은 기독교 결혼 예식이었다. 순서와 분위기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저렇게 큰 한강도 다리가 있어 건너갈 수 있는데, 주례 없는 결혼식을 주장하는 자식과 결혼식 주례 목사가 꼭 있어야한다고 말하는 부모 사이에는 건너갈 다리가 보이지 않아 갈등이 심해지는 경우도 보았다.

기독교 가치관으로 훈육 받아왔고, 교회에서 성장과정을 지내온 청춘남녀에게는 목사에게 주례를 당부하고 결혼예식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사회 통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대체적인 흐름을 따른다. 기독교인이 아니면 모를까 기독교인이 결혼 예식에서 목사의 결혼 예식 집례, 곧 주례 없이 결혼을 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친구의 말에 따르면 캐나다에서는 정부가 인정하는 종교인의 사인(sign)없이 혼인신고를 할 수 없단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주례가 없는 기독교인의 결혼식을 종종 본다. 굳이 통계를 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기독교인들의 결혼식에 주로 참석하는 나도 종종 주례 없는 결혼식을 보고 있다면, 기독교적 배경과 무관한 사람들에게 주례 없는 결혼식이 더 익숙한 풍경일지도 모른다.

크리스천 청년들이 주례 목사 없는 결혼식을 계획하고 선호하기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기독교의 대사회적 신뢰 상실을 갖다 붙이고 싶지는 않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 결혼하는 신부 또는 신랑의 어린 시절부터 성장 과정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던 목회자가 축복하는 마음으로 집례하는 결혼예식을 마다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런 현상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 오랜 관계의 부재 때문일 것이고, 그 밑바탕에는 결혼과 가정에 대한 성경적 가치관과 교회의 문화가 지금 결혼하는 이들에게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일 것이다. 살면서 어떤 관계와 접점도 없던 인물이 결혼식 주례라는 이름으로 앞에 서서 어색한 말을 오랫동안 한다는 것이 탐탁지 않기에 거부하는 것은 아닐까? 명망 있고, 이미 오래전에 결혼과 결혼 생활을 해왔다는 이유로 첫째, 둘째 헤아려가며 부부의 덕목을 가르치는 것이 불편했을까? 결혼 무렵 교회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해주는 친절한 안내가 없어서인가? 자녀가 볼 때, 자타 공인 믿음의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부모를 보니 나는 그 길을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라면 지나치게 뼈를 치는 말인가? 그것도 아니면 그냥 결혼이라는 특별한 순간에 목사가 끼어드는 것처럼 보여 싫은 것일까? 이것저것 신경 써서 찾아가 부탁하고 결혼 후에 찾아가야 할 사람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일까? 이유를 생각해보면 교회에서 멀어진 청년 부부가 주례 없는 결혼을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통용되는 표현이지만 ‘주례 없는 결혼식’은 없다. 주례사를 하는 사람을 따로 초대하여 세우지 않은 결혼식을 ‘주례 없는 결혼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예식을 주장하여 진행하는 사람(주례)이 없는 결혼식은 없다. 미리 요청을 받은 결혼식 사회자, 또는 그것을 맡은 결혼 예식장 직원이 주례다. 자녀의 혼사로 바쁜 중에도 주례를 자처하고 나서는 부모들도 있다. 드물지만 결혼 당사자들이 하객들 앞에서 서로를 소개하고 사람들 앞에서 직접 결혼 약속을 주고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때조차 주례가 없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례가 된 것이다. 법치사회에서 결혼 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혼인신고다. 결혼식을 하지 않고 혼인 신고만 하고 같이 사는 경우도 혼인신고를 받고 접수, 기록, 등재하는 공무원이 하객이요 증인이며 세속의 주례가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기독교인에게도 이른바 주례 목사 없는 결혼식이 가능한가? 대답은 ‘그렇다’이다. 개신교인에게 주례 목사가 없는 결혼예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하나님과 증인 앞에서 말씀에 근거한 약속이 없는 결혼예식은 불가능하다. 기독교에서 결혼은 사람과 사람의 약속을 넘어서는 성사(聖事)다. 결혼 예식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했던 공적인 약속이기에 앞서 하나님 앞에서 그 말씀에 기초한 거룩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결혼 관계가 성립하는 순간은 관공서에 하는 혼인 신고가 아닌 주례자의 ‘성혼 선포’ 순간이다. 사실혼 증빙 서류가 아직 없다 해도 주례자가 하나님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한 몸 이루었음을 선언(마19:4-6)하는 시점에 한 남자와 한 여자는 부부가 된 것이다. 이때 혼인이 이루어져 부부가 되었음을 선포를 하는 사람이 꼭 ‘주례를 요청받은 목사’가 아니어도 좋다. 결혼을 허락하신 하나님 앞에서 약속이 없다면 결혼도 인간 사회에서 흔히 파기되고 마는 사람의 약속과 다를 바 없다. 눈물겨운 부모-친구의 덕담과 편지 낭독이 흔들리지 않는 약속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결혼할 예정이거나 그럴 의향을 가진 젊은 세대에게 기독교 결혼 예식에 대한 안내와 교육이 앞서 이루어지는 교회가 많지 않다. 문턱이 높은 것도 문제다. 서로 협의만 된다면 언제든 결혼예식을 요청할 수 있고 이를 기쁘게 받아줄 수 있는 개별적 상담의 창구가 지역 교회마다 열려 있어야 한다. 슬픈 일을 당한 사람들과 함께 머물러 있고, 위로하는 일에 더욱 적극적인 교회인 만큼, 기쁜 날 있을 때 함께 기뻐하고, 그를 위해 축복하며 기도하는 교회, 함께 울고 함께 웃는 교회가 되어야한다면 언약 위에 세워진 믿음의 가정이 탄생하는 결혼과 그 예식을 같이 준비하는 일만큼 환영할 일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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