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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보면서
신현희  |  juventusjesu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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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11월 25일 (금) 00:16:05 [조회수 : 2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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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 속에 응원

  ‘월드컵기간 거리 응원 전면 금지’하기로 했었던 정부의 당초 계획과 달리 이제는 광화문 광장에서 거리 응원이 허용되는 분위기다. 아무리 많이 모인들 2002년 한일월드컵만큼 모이지는 않을 것이고, 참사가 준 경고 때문에 경찰기동대와 특공대를 투입해 인파의 안전을 관리하고 시민들도 자발적이고 질서 있게 응원전을 펼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지만, 불안과 우려는 남아있다. 이제는 많은 인파만 봐도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하는 염려가 앞선다. 얼마전 온라인 네트워크로 전국적인 연합기도회를 열었던 한 교회 예배 현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발 디딜 틈 없이 꽉차있었지만, 무질서는 보이지 않았다. 인도자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견실하게 마스크를 쓰고, 질서를 지키며 앉고 일어서며 또한 뜨겁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심(고전14:33)’을 보여주는 일종의 희망 같은 뭉클함을 느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 초기에 사회의 억울한 질타는 씹어 삼키고, 방역지침과 질서를 유지하면서 예배 현장을 생명처럼 지켜왔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기독교인들을 ‘참 대~단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응원과 예배는 따름의 영역으로 가면 본질적 차이가 있지만 겉으로 볼 때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참사의 슬픔이 아직 가시기도 전에 열린 월드컵 기간에 다른 어떤 제약과 우려에도 거리 응원에 나선 사람들 역시 정말 대단(?)하다.

이변 속출

  나는 강팀과 약팀 중 어디를 응원하나? 강팀이 이변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는 두 가지다. 실력이 명실상부하지 못했거나, 강팀이라는 자의식이 주는 안이함과 방심이다. 큰 교회는 품이 큰 교회라는 말이다. 하나님주신 은혜를 선용할 기회가 많은 교회, 주고 또 주고 계속 줘도 줄게 있는 교회가 큰 교회다.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지방회가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을 버리고 주 안에서 연결된 교회들과 함께 부흥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약팀은 어떻게 이변을 일으켰나? 심각한 전력 열세와 패배를 예측하는 언론에 주목하지 않고 어려운 경기상황을 견디면서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한 두 번의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파상공세에 밀릴 때 침착했고, 천금 같은 골을 얻었을 때 마음껏 환호했다. 작은 교회라는 열등의식을 버리고 은사와 강점을 살리며 생존이 아닌 부흥을 향해 매진해야한다. 지금 당장에는 생존 문제가 다급하게 느껴지겠지만 생존이 우리의 목표가 될 때 우리는 침체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약팀이 강팀을 그것도 극적인 역전으로 이기는 이변이 계속되는 승부 속에서 나도 반란을 꿈꾼다.

강팀과 약팀의 남은 경기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축구만 보고 싶은데, 교회 생각으로 자꾸만 연결되니 병폐다. 기왕 생각났으니 문제의식이 흘러 가는대로 연결지어보겠다. 그런 말로 규정되는 것이 싫지만 교계현실에서 큰 교회와 작은 교회 구분은 엄연히 존재한다. 아직도 감리회는 미자립 교회를 ‘문제’로 인식한다. 교회가 설립 된지 오래되었음에도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분명 문제이겠지만, 미부흥 교회도 문제도 지나칠 수 없다. 교회가 언제 설립되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교회의 생명력을 찾아볼 수 있는가를 묻고 싶다. 사실 크다 작다 하나 ‘산 교회’, ‘죽은 교회’만 있다.  

  생존(survival)을 위해 부흥(revival)을 추구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부흥(revival) 없는 생존(survival)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지역교회의 고령화는 지금 급속한 속도로 지방회 교역자 평신도의 고령화, 이중직 허용에 따른 젊은 교역자 층의 이탈, 소외를 야기하고 있다. 허입한 정회원 이상으로 확대된 선거권은 도리어 정회원 11년급 이하의 젊은 부교역자를 다수 보유한 대형교회에서 그 수만큼 늘어난 평신도대표로 더 큰 발언권과 투표권을 얻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제 교회를 통틀어 연회대표이며 투표권을 가진 자격자가 담임목사 한 명 뿐인 교회들은 들러리가 되고 말았다. 여기에 만약 교역자 기초생활비에 대한 정책이 교단차원에서 현실화될 경우 그나마 작고 가난한 중에도 여건에 매이지 않고 지역 교회 목회에 고군분투해온 교역자들은 최저생계비에 기대어 생존에 안도하며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측은 너무 부정적인 생각인가? 가히 역대 이변이라 할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큰 교회와 작은 교회의 양극화는 더 격화되고 말 것이다. 강팀다운 면모를 보이든, 약팀의 드라마틱한 반등을 노리든 지금은 생존을 넘어 부흥을 위해 함께 협력해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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