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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고생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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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11월 16일 (수) 23:49:01
최종편집 : 2022년 11월 16일 (수) 23:55:45 [조회수 : 2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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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집으로 이사를 마쳤다. 지난 토요일 비가 내린다는 소식을 듣고 짐 옮기는 것을 서둘렀다. 아직 남아있는 짐은 한두 번 움직이면 그때는 옛집과는 이별이다. 가을이 시작하는 시점에서 시작하여 가을이 끝나가는 오늘까지 거의 3개월 동안 짐을 옮겼다. 몸은 하나요, 손은 두 개라 물건을 쥐고 옮기는데 수도 없이 발걸음을 놀린 것 같다. 무리를 한다 싶으면 그 다음날은 곡소리가 저절로 나오긴 했지만 수차례 오간 발길 속에 드디어 옛집은 비워지고 새집은 채워졌다.  

많은 짐들이 정리되어가고 있다. 잡다란 짐들이 많아 그것들을 어디에 둘지 많은 고민도 했지만 나의 정리 솜씨는 이번에도 진가를 발휘했다. 넣고 빼기를 반복한 끝에 일상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게 정리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웬만한 것들은 모두 버리고 싶었지만 오랜 세월 함께 한 정과 쉽게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에 결국 비우기 프로젝트는 이루지 못했다. 대신 당분간 물건 사는 것은 멈추기로 하였다. 지난번 김장을 하면서 김치냉장고를 살까 고민했다. 몇 번 중고시장을 드나들며 장바구니에 마음에 드는 것을 담았지만 숙고 끝에 장바구니를 비웠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 성격상 들어가면 나오지 않으니 김치냉장고도 집에 들여놓는 순간 분명 뭔가로 가득 채워질 것이 분명했다. 혼자서 먹을 양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니 처음부터 싹을 도려내는 것이 마땅할 일이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였던가. 땅을 팠다. 그리고 30포기의 김장김치가 들어갈 만한 항아리를 묻었다. 눈과 비와 바람과 추위를 막아 줄 용도로 고추 막대기를 여러 개 박고 거기에 털고 난 참깨단을 세웠다. 항아리 위에는 두꺼운 천도 올려놨다. 김치냉장고를 대신한 땅속 김치 맛이 어떨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괜한 일을 사서 고생한다. 내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낑낑거리며 땅을 팠을까. 30센티 정도 파 내려갈 때는 괜찮았다. 그러나 그 이상 팔 때는 허리가 아팠다. 너비가 좁아 위에서 흙을 끌어올려야 했기 때문에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혀 땅을 팔 수밖에 없었다. 힘에 부쳐 사나흘 오가며 팠다. 괜한 일을 한다 싶다가도 독을 묻을만한 공간이 만들어지니 기분이 좋았다. 땅속에 손을 넣었다. 땅속이 서늘했다. 냉장고 2도 정도 되는 온도가 느껴졌다. 예감이 좋다고나 할까. 김치 익어가는 소리가 머릿속에 상상이 되어 군침이 돌았다. 옛날 엄마가 해주던 그 맛이 떠올랐다. 아삭함과 시원함이 다른 반찬 없이도 밥 한그릇 뚝딱하게 했던 엄마의 김치! 그 맛을 기대하며 난 힘을 다하여 땅을 팠다. 

처마에 차양도 내어 달았다. 목재와 투명골판을 사다가 뚝딱거리며 사다리에 올라가 두드리고 박고 하면서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아냈다. 지난 토요일 억수로 내린 비에는 속수무책이긴 했지만 그래도 하지 않았을 때보다 조금 나았다. 집 벽에 들이치는 비가 훨씬 줄어들었다. 처마에 매달아 놓은 곶감용 감이 비 피해를 입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흡족한 차양막 작업이었다. 몇 개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지만 살다보면 무뎌져서 그 거슬림도 잊혀질 것이다. 

엊그제는 집 옆의 배수로에 꽂혔다. 배수로 통이 거꾸로 놓여있어서 비가 올 때마다 빗물이 역류하여 집 한쪽이 늘 습했다. 볼 때마다 신경이 쓰였던 배수로 통을 이번에 바로 잡았다. 빠떼루와 삽을 챙겨들고 와서 배수통을 뽑았다. 하나를 들어내니 아뿔사! 괜한 일을 자초했나 싶었다. 배수통이 집의 벽보다 높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배수통 아래에는 젖은 흙과 크고 작은 돌들로 가득했다. 이럴 때도 손이 그리웠다. 둘이서 하면 쉽게 할 수 있는 것일텐데 괜히 혼자 사서 고생을 하고 있었다. 이마 위로 땀이 송송 맺혔다. 겉옷을 벗어던질 정도로 후끈했다. 두어 시간 힘을 빼고 나니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다. 전문가처럼 반듯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만족했다. 앞으로 배수로를 볼 때마다 저것을 언제 정리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난 손으로 뚝딱거리며 만지는 것을 좋아한다. 고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전문가가 하는 것을 눈여겨 보았다가 비슷하게 흉내내는 눈썰미가 있다. 그 덕분에 이번에 새로운 거처를 어설픈 구석이 있긴 하지만 최소 비용으로 사브작사브작 매만지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사서 고생을 하는가 싶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손을 빌리지 않고 틈이 날 때마다 할 수 있어서 좋다. 눈에 띄는 곳들이 더러 있으니 사서 고생할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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